2004. 5. 30 하나로교회 주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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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치유 받을 마음
1) 변덕을 부리는 마음
내 마음판은 싸움판 같다 그런 말이 있다. 우리 마음이 평안하기도 하지만 어느때는 갑자기 우리 마음이 변덕을 일으킨다.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가 말 한마디만 들으면 좋았던 기분이 싹 사라지고 완전히 낙심되고 좌절되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어떤 때는 너무 소망이 넘쳐 내 앞길이 이렇게 비젼이 보이는구나, 평탄한 길로 잘 가는구나, 기쁨이 넘치다가 갑자기 떨어져서는 절망하는 때가 참 많이 있다. 어떤 때는 믿음이 얼마나 넘친지 하늘을 쪼갤 것 같다가는 어느 순간에 보면 믿음은 온데 간데 없고 불신자보다 더 불신앙에 사로잡힌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우리 마음이 바다 같이 넓어서는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용서했다가 어느 순간에 좁쌀같이 되어가지고는 도무지 수용을 못하고 그래서 자기도 괴로우니까 남을 괴롭히는 그런 경우를 본다. 참 이것이 그렇다. 옛날 유행가 가사에 이런 것이 있더라. 내마음 나도 몰라. 왜 이렇게 내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지 참 모른다.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저는 종종 그렇더라.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다가 갑자기 내 마음이 변했어요. 뭔가 낙심되고 좌절되고.꼭 장마철 날씨처럼 우리 마음이 변덕이 요동을 친다. 이것이 문제다. 내가 그렇지 않고 싶은데 실제론 그렇다. 어떤 사람은 남도 알만큼 너무 드러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저 같은 사람은 위장술이 워낙 뛰어나서 속으로만 그러지 겉으로는 안 나타난다.
2) 다스림 받을 마음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은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가끔 저의 어머님과 전호세 집사님이 교회 주위의 풀을 메느라 얼마나 수고를 하시는지 모른다. 하지 마시라고 해도 하신다. 젊은 사람들은 전도하느라 바쁘다고 하시면서 두 어른이 오셔서 하루 종일 풀을 멘다. 그러면서 하시는 얘기가 아이구, 왜 이렇게 풀이 많은지 모르겠다 하신다. 보세요. 안 가꿔서 그렇다. 풀씨를 심지도 비료를 주지도 않았는데도 풀이 난다. 가꿔주지 않으면 이런 것이다. 사실 우리 마음판도 그렇다. 우리 마음판도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꾸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와서 마음을 완전히 어지럽히고 마는 것이다. 풀은 안 가꿔져도 자란다. 그런데 곡식은 반드시 가꾸어줘야 자란다. 이상하다. 우리 마음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고 다스려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온갖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잘못된 것이 들어와서 마음판을 온통 풀밭으로 만든다.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3) 깨어진 마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뭔가? 우리 마음이 깨어졌다. 거울이 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비치는 것이 전부다 이상하게 비친다. 마음판이 깨어진 사람은 생각이 편협 되어있다. 마음판이 깨졌기 때문에 보는 것을 전부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외골수라고 한다. 보세요. 자녀를 기를 때도 어떤 분은 아들만 예뻐한다. 아들만... 그리고 딸은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깨어져서. 아들은 잘못해도 예쁘고 딸은 잘해도 미운 것이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 없다.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고 한번 싫어하면 끝까지 싫어한다. 이상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잘못할 수 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잘할 수 있다. 그런데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안 듣는다. 좋아하는 사람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 말을 믿고 싫어하는 사람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내 편, 네 편 나누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인 관계가 잘 안된다. 자꾸만 사람을 편을 가른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왜 그런가? 마음판의 거울이 깨져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변덕 안 부리고 싶고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싶고 깨어지지 않고 바른 시각으로 보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다스려지는 것이다. 잘 다스려지던가? 깨어진 마음이 바꿔지는가? 저 딸도 너무 예쁘지, 봐주면 되는데 싫어하는 딸이 밥만 잘 먹어도 잠만 잘 자도 밉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내가 깨끗한 마음 갖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제가 깨달았다. 여기 놀이터에 꼬맹이들이 놀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싸운 것이다. 애들끼리 맞고 때리고 울고 하더니 조금 지난 후 다시 와서 보니 때린 놈이 야, 가자 하니까 맞은 아이가 금방 따라 나선다. 제 생각에 저 꼬마아이가 참 속이 없다 그랬다. 나 같으면 나를 때렸다고 앙심을 품고 복수하리라 생각을 가질텐데 언제 맞았냐는 듯이 싹 잊어버리고 가, 형아 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제가 복음을 깨달았다. 때린 놈도 잘못 했지만 너는 나한테 맞았으니까 절대 나랑 편이 아니다, 갈 때 혼자만 가야 하는데 아니다. 금방 마음이 바뀌어서 같이 가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 그런데 또 맞은 아이도 복음이다. 네가 나 때렸지, 자존심이 있지, 안 갈거야 딱 버티는 게 아니고 형아, 같이 가 하고 언제 맞았냐, 울었냐 없이 팔짱끼고 따라간다. 애들은 유치하지만 복음이다. 사람들은 한번 마음이 깨어지면 돌아설 줄 모른다. 자기 자존심 때문에. 이것은 율법에 사로잡힌 것이다. 복음은 자존심이 있어도 가자, 하면 가는 것이다. 부부싸움도 한번 토라지면 안 푼다. 제가 안 푼다. 잘못했다고 할 때까지 안 푼다. 잘못된 것이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이고 다시 가는 것이 복음이다. 제가 놀이터에서 복음을 발견했다. 때린 놈이 가자고 하는 것도 복음이고 얻어 맞은 놈도 속도 없이 따라가는 것이 복음이다. 세상은 변덕이 죽 끓듯 일어나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그 속에 분노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마음이 깨어져서 절대 받지를 못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4) 회복되는 길
이런 마음들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내 힘으로 회복하다보니 안 되어서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내 결심으로 되던가요? 어떤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되지만 안 된다. 마음이 비워지지도 않지만 거기에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가 온다. 절대 안되는 것이다. 이 깨어진 관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왜 우리가 이렇게 치유가 안 되는가?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시각이 틀어진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니 마음이 안 다스려지고 변덕을 부릴 수 밖에 없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상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주셨다고 하신 것이다. 깨어진 관계를 완전히 예수께서 회복하셨다. 이것을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다고 했다. 정말 우리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다. 왜? 변덕이 요동친다. 인간의 한계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미쁘신 자로 오신 것이다. 정말 회복되어지는 길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내 마음의 왕좌에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셔야만 되는 것이다. 내가 결심하고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의 왕좌에 주님이 오셔야만 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의지, 내 느낌, 내 감정을 다스려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약속하셨다.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어 내가 너희 안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다. 그래서 나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고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이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변덕이 일어나고 깨어진 마음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 또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을 때 정말 주님의 평안,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시고 다스려 주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이 내 마음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래야만 치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안 되지만 지속해서 언약 붙잡고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치유되는 것이다.
2. 교회의 자부심
바로 이것을 말하는 곳이 교회이다.
1) 교회의 소중함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성도간에 교제하는 곳이 교회이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이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을 교회화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와 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교제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 바르게 자라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후대가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 우리 후대들이 복음 받고 복음이 체질이 될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신앙의 양육을 받아야만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셨던 집사님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실 때는 꼭 저와 상담을 한다. 어느 교회로 가야할 지를 상담한다. 참 바른 신앙이다. 그 지역을 잘 모르니깐 어느 교회로 가야 신앙생활을 잘 할지를 상담하는 것이다. 그럼 제가 우리 세계복음화 신문을 보고 어느 지역의 교회를 소개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같이 예배 축복을 누리고 성도간에 교제하고 복음 때문에 헌신하면서 잘 자라가는 것이다.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된 사람도 교회화 되어져야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안되어지면 이 땅의 어떤 사람도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정상적인 교육이 된다. 아이가 부모에게 잔소리 듣는 것이 싫어서 가출하면 이 때부터 문제가 온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집을 나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집을 나가면 문제가 온다. 집을 왜 나가는가?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럼 정말 행복한가? 아니다. 부모가 좀 부족해도 부모의 잔소리 교육을 받으면서 잘 자라는 것이다. 교회 참 중요하다. 이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물론 교회는 세상에 있고 또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변덕 부리는 마음도 있고 깨어진 마음이 성도들 간에 많이 있기 때문에, 상처 받기도 하고 어려움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이 교회를 세우셨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승리하는 것이 가장 바른 신앙이다.
2) 교회의 자부심
우리는 정말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① 해결하는 곳
우리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교회가 아니면 절대 해결이 안되는 것이 있다. 교회만이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불신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 있다. 이 죄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율법적인 죄로 알고 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다. 이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다. 죄 문제를 해결할 곳은 없다. 교회외에는 없다. 또 이 땅의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사단의 권세에 잡혀 있다. 이것을 해결할 곳도 교회이다. 분명이 그들은 지옥권세에 잡혀 있다.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 살면서도 지옥권세에 묶여 산다는 것이다. 절대 해결할 곳이 없다. 교회만이 해결한다. 그래서 불신자를 살리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② 치유하는 곳
두 번째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영적문제를 치유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영적문제는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똑같은 증상이 아니다. 영적으로 많이 시달렸던 사람들은 시달린 증세로 나타나고 아무 시달린 것이 없던 사람은 뭔가 성공하는데 무너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음속이 채워지지가 않는다. 깨어진 독처럼. 심각한 문제가 온다. 성경에 바벨탑 사건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없이 성공했다가 무너졌다는 말이다. 영적문제가 온 것이다. 그런데 영적문제가 있는 것을 자신이 모른다. 여기 계시지만 예수 믿은 지 한달 조금 된 성도 한 분이 오늘 새벽에도 그러신다. 자기 후배중에 얼마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느 절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데 여하튼 이상하다는 것이다. 지난 주간에 말씀드렸지만 ‘은둔형 외톨이’ 라는 것이다. 사람과 대인관계가 안되고 뭔가에 빠져들어서는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있는 영적문제이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이것이 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지만 과거에 이런 상처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것은 복음 외엔 해결이 안 된다. 복음을 지속해서 들으면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깨끗이 치유받는다. 교회만이 할 수 있다. 정신병원에서 이 문제 해결이 안된다. 약을 먹여서 조금 안정시킬 뿐이지 안된다. 지금 이 자리에 정신병원에 갔다 온 성도도 계시지 않는가. 해결이 안 된다. 복음뿐이다. 이 복음을 계속 듣고 치유 받고 지금 전도자가 된 분이 있지 않는가? 얼마나 감사한가?
③ 사람을 세우는 곳
제자를 세우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우리가 왜 복음을 계속 듣고 복음화 되고 체질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이고 이것만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이상한 영향을 받는다. 좋은 사람 만나면 좋은 영향을 받는다. 왜 후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하려고 하는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참으로 영향을 끼치는 자로 살아야 한다. 복음의 영향이다. 우리가 제자로 양육이 되어야 한다. 확립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복음이 확립되어지지 않는다면, 정말 예수가 내 인생의 주인되시고 나를 다스리시고 예수의 인도받는 이것이 체질이 안되어지면 도리어 영향을 받는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지역에서 복음의 영향을 주는 전도제자가 되어지길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불신앙자를 만나서 복음의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고 오히려 영향을 받고 온다. 불신앙이 들어와서는 불신자와 똑같다. 영향 받지 말고 끼치는 제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다. 어떤 교회인가? 복음을 말하는 교회, 그리스도를 말하는 교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3) 교회를 세우는 자의 축복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자는 정말 축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성경에 다윗이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가? 어린 시절부터 찬송과 기도의 비밀을 안 자였다. 교회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뭔가? 성전을 짓는 것이었다. 왕이지만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기쁘다고 할 정도로 성전을 세우는 것을 그렇게 소원했다. 그리고 성전을 세울 준비를 다 해놓았다.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다. 그러면 성전을 왜 세우는가? 다윗이 성전을 세웠으니 우리도 예배당을 세워야겠구나,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다윗이 왜 성전을 세우려 했는가? 모든 성도들이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모든 성도들이 찬송이 회복되어지고 기도하 회복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알았던 것이다. 목동생활을 하면서 계속 찬송하고 기도했지 않는가? 온 백성들이 마음을 합해서 예배가 되어지고 찬송이 되어지고 기도가 되어지는 이 현장이 바로 전이란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세우는 일에 그의 인생을 다 드렸다. 왕이 되었으면서도 이 일에 최고의 삶을 목표를 드렸다. 다윗이 받은 축복이다 .우리가 예배당을 세울 수는 있지만 사람들에게 예배를 회복하게 하고 찬송과 기도를 회복하게 한 다윗이 받은 축복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축복이다.
3. 하나님의 마음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이 땅의 문제가 정말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양심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라. 물론 경기가 안 좋아서 생활이 어려울 것이다. 이것도 우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30년 전만 생각하면 문제 될 것도 없다. 지금 소수의 사람이지만 많이 먹어서 탈이고 운동을 안 해서 탈이다. 이 땅의 문제는 복음이 없어서 문제이다.
1) 복음의 능력
이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인데 이 땅에 점점 심해지고 있는 개인에게 임하는 저주, 사회에 임하는 재앙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고 지식은 더 많아졌고 뭔가 더 많은 것을 소망하고 사는데 이 개인에게 오는 저주, 가정에 임하는 재앙의 문제는 해결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이 저주와 재앙,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재앙을 완전히 꺽으셨다. 복음만이 해결할 수 있다. 여러분, 꼭 아셔야 한다. 우리 민족 5,000년 역사는 우상숭배의 역사이다. 이 후손들에게 어떤 문제가 오는가? 지금도 우상숭배 많이 하는 가문의 후손들에게 오는 문제가 무엇인가? 저주와 재앙이다. 우리 성도들의 조상을 보세요. 1대, 2대, 3대만 올라가면 전부 우상숭배했다. 그러면 분명히 우상숭배하는 사람은 3, 4대까지 저주받는다고(출 20:4-5) 했는데 그 저주가 우리에게 와 있다. 이 저주 끊어지는 길은 복음 외엔 없다. 복음의 능력. 우리가 왜 복음이 체질이 되고 확립되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임하는 저주가 나의 대에서 끝이 나야 하고 우리 후대에게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가 예수님 믿고 돌아가신 것은 축복중의 축복이다. 저주가 끝나야 한다. 이 땅에 있는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하던가요? 사실적으로 보라. 행복한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행복이 없다. 행복한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존재이므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없으면 절대 행복이 없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술에 취하고 노름에 취하고 취미 생활에 취하고 일에 중독이 되는가? 행복이 없다는 증거이다. 너무 행복한데 술에 계속 빠져있는가? 그런 법이 없다. 그 마음속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독증상이다. 지금 이 땅의 문제가 뭔가? 중독증상, 젊은이들은 컴퓨터중독, 어른들은 술중독, 마약중독, 일중독 심각하다. 왜 그런가? 행복 없으니까. 탈피하려고 한다. 일로 채워보고 술로 채워보고 마약으로, 노름으로, 이상한 짓을 한다. 복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 마귀는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도 우리를 속이고 있다. 물론 특별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다 일어나는 일이겠는가마는 행 13장 성경에 분명히 말한다. 총독이 오늘날로 말하면 도지사같은 직위로 성공한 사람인데 왜 박수무당을 끼고 사는가? 보세요. 지금 굉장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성공한 사람들이 점집을 찾아가는가? 왜 그런가? 행 16에 보니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의 얘기가 나온다. 행 19장에 보면 온 백성들이 미신을 믿고 있다. 왜 그런가? 사단에 속았다. 사실이다. 극소수 사람에게만 있는 것인가?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이 이렇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얼마전만 해도 이렇게 사로잡혀 시달렸던 사람도 있다. 복음은 이 사단의 존재를 완전히 꺽어버렸고 우리를 지금도 승리케 한다. 참 놀라운 일이다. 우리 성도중에 예수 믿고 교회를 나왔는데 예배 시간만 되면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고 한다. 이상하지요? 집에 있을때부터 아팠으면 정상이지만 왜 예배시간만 되면 그런가? 또 배도 아프다. 언제? 예배시간만 되면. 누가 이렇게 하는가? 무슨 역사인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데 은혜 못 받게 방해하고 속이고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이 깨다고 예수 이름으로 흑암의 세력, 사단의 세력, 귀신의 세력을 꺽었더니 깨끗하게 나았다. 머리도, 배도 다 낫고 예배시간에 말씀이 들린다. 참 놀라운 일이다. 지금 여기 여러 사람이 증인이다. 다른 사람은 은혜 받는데 자기는 못받으니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고 교회 오기가 싫은 것이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제가 여기에 서서 불경을 읽는가? 소설책을 읽는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고 멍하니 있다가 가는 사람이 있다. 과거에 그랬다는 말이다. 사단의 존재. 복음을 지속해서 받으면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잡혀서 시달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모이는 자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모이기를 원하신다. 오늘 말씀처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 성도들이 꼭 확인하셔야 한다.
① 귀중한 사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귀중하게 보실까? 이걸 아셔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 잘 생기고 실력 있고 성공한 사람을 귀중하게 본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사람인가? 이 눈이 열려야 한다. 사람들을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계신데 며칠 전에 우리 집사님이 밤중에 모시고 왔었다. 제가 저녁기도회 끝나고 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어떤 사람 오니까 만나달라고 해서 만나서 그리스도를 설명했다. 그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오늘 오셨다. 이렇게 오신 분도 복이 있지만 사람을오게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자기 힘으로는 못 온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한 사람은 혼자 올 수 있다 해도 대부분 자기 힘으로는 교회에 못 온다. 사람을 오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너무 귀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 그 얻어맞은 아이와 같지 않아서 자존심도 있고 상처가 있어서 가자고 하면 안 간다. 그렇죠? 왜 안가려고 하는가? 뭔가 걸려서 그렇다. 이 사람을 자꾸 오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사람이다. 우리 성도들은 사람들이 복음이 말씀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오게 하는 축복을 누려야 할 줄 믿는다.
② 귀중한 집
우리 집이 하나님 보실 때 귀중한 집으로 쓰임받아야 한다. 얼마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속초에 돈을 많이 번 의사라고 했다. 해변가에 집을 잘 지어놔서 가 봤는데 거실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그림같은 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림같은 집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별 관심이 없으시다. 그 집이 생명 살리고 제자 세우는 집으로 쓰임받으면 하나님이 보실 때 귀중한 집이다. 예전의 유행가에 그런 노래가 있다. 그림같은 집을 짓고... 가만이 가사를 보니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하나님 보실때는 아무 가치가 없다. 우리 집이 정말 생명 살리고 제사 세우는 집으로 쓰임받을 때 우리 사업장이 생명 살리고 제자 세우는 사업장으로 쓰임받을 때 그것이 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것이 복이 있고 가장 가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조경아 자매, 조경옥 집사님이 사업을 하시잖아요. 이 분들이 복음 전해야겠다 하고 사업을 하신다. 저를 오라고 해서 제가 가서 말씀운동을 하고 있는데 저 분들의 중심이 우리 직원들 복음이 확립되기를 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장사인데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어 잘 살까? 보다는 어떻게 복음 전할까 하는 집이 복된 집이다. 꼭 확인하시기 바란다.
③ 귀중한 교회
우리 교회는 귀중한 교회로 쓰임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말하는 곳이 귀중한 교회이고 영적문제 있는 자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면 이렇게 모여있는 곳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 삶의 현장을 전부 교회화 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업장, 가정을 전부다 교회화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다락방이요 지교회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가서 성도들 모두 예배 드리자는 건 아니고 나 혼자라도 우리 집을 교회화 시키자는 것이다. 혼자 말씀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집이 교회이다. 가정을 교회화 시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가정에 역사하는 흑암이 꺽이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누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3) 영향을 주는 자
우리 자신이 이 축복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거미가 있고 개미가 있고 꿀벌이 있다. 거미는 남을 잡아 먹고 개미는 자기만을 위해서 일을 한다. 꿀벌은 자기도 좋고 남도 좋게 한다. 세상에서 거미같은 사람은 별로 쓸모가 없는 사람이고 개미같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하나님 보실 때는 꿀벌같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고삐만 당겨도 주인이 이리로 가라는 거구나를 아는 명마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는 부족해도 사람을 복음 듣는 곳으로 오게 할 수는 있다. 이 축복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 가정을 개방해서 정말 우리 가정이 생명을 살리고 제자 세우는 가정으로 쓰임받고 또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개방할 수는 없지만 나 혼자서라도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교회화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이 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영향을 주는 자로 가정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 내 결심과 상관없이 변덕스러운 마음과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과 깨어진 마음 때문에 갈등하고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시고 내 마음의 왕좌에 오셔서 나를 다스리시고 주의 말씀으로 상처난 심령들을 치료하여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우리가 복음화 체질화가 되어지게 하시고 뿐만 아니라 이제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람을 복음 듣는 일에 그리고 우리 가정과 일터가 교회화 되어져서 사람 살리고 제자 세우는 일에 온전히 쓰임받도록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래서 나 자신이 살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축복 가운데 한 생애가 쓰임받도록 주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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