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홈  >  메시지  >  강단녹취
  제  목 : 네 평생에 조회수 : 81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24
  첨부파일:   20210124.hwp(352K)

분류

주일예배

제목

네 평생에

성경

1:1-6

일시

2021124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교회 운동

영적 세계

제가 어릴 때 제 동료들이 귀신을 봤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면 귀신이 나온다. 이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커서 보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점집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귀신같이 맞춘다. 이런 말을 합니다. 나중에 예수를 믿고 성경을 보니까.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다른 신이 귀신이구나! 깨달아졌습니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집에서는 제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이게 귀신을 불러들이는 일을 많이 했구나!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많이 왔구나! 예수를 믿고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귀신 들려 점친다는 말이 나오고 귀신 들려서 귀가 들리지 않고 귀신 들려서 말을 못 하는 벙어리가 나오고 귀신 들려서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게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살면서 우리 주변을 보니까. 이렇게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귀신이 실제 하는데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참 애매합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영국에서 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회의는 불신자들이 주최하는 회의인데 하나님은 없다. 이것을 증명하는 회의였습니다. 첫 번째 나와서 강의하신 분이 유명한 천문학 박사였습니다. 평생 천문학을 연구한 분인데 이분이 최고의 고성능 최신형 망원경을 가지고 별을 연구한 분인데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다음에 그 시대 유명한 의학 박사님이 나와서 말하는데 이분은 평생 수술을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의사인데 나는 평생 수술을 하고 사람의 몸을 해부했는데 뇌 속에도 핏속에도 영혼을 본 적이 없다. 그때 한 할머니가 제가 얘기해도 되나요? 할머니가 천문학 박사님한테 바람을 고성능 망원경으로 볼 수 있나요? 이 박사님이 바람은 안 보이죠. 할머니가 고성능 망원경으로 바람도 못 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천문학 박사님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두 번째 의학 박사님한테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디에 있나요? 뇌에 있나요? 핏속에 있나요? 박사님이 내가 자식을 많이 사랑하는데 이게 어디에 있지?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면 있고 눈에 안 보이면 없다. 이것을 보고 물질세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눈에 안 보입니다.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안 보입니다.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보이는데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데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 그게 죽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이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어리석은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자마자 제일 먼저 주신 것이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귀신이 실재하기 때문에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다는 겁니다.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귀신이 실제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실제 하기 때문에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시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안 보인다고 안 믿는 겁니다. 굉장히 어리석은 겁니다.

영적 배경

신학교에 이상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전도협회 행정책임자인데 목사님이 몇 년 전에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제가 갔습니다. 좀 일찍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그날 식사비가 한 사람당 13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20만 원 축의금을 했습니다. 얼마 후에 사모님이 신학교에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이 사돈이 사업을 하는데 굉장히 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손님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돈도 엄청나게 들어왔다고 합니다. 손님이 많이 와서 식사비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돈이 식사비를 다 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위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사돈이 유학비로 4억을 줬다고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부모의 배경이다. 부모가 돈이 있으니까. 다 대는구나! 육신 적으로도 이런 배경이 있으면 혜택을 받습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우린 어떤 배경이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 임하십니까? 예수님께서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겁니다. 구원받는 그 순간에 우리 안에 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둘씩 짝지어서 현장에 복음을 말하니까. 귀신들이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예수 그리스도 전했더니 귀신들이 떠나갔습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그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 말씀하시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너희의 배경은 하나님 나라다. 이게 우리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게 우리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살다가 우리 배경인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겁니다.

세계 복음화 이해

우린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세계화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다 문제입니다. 미국,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합니다. 코로나가 완전 세계화된 겁니다. 세계화를 보게 하는 겁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완전 세계화되었습니다. 세계재앙이 임한 겁니다. 코로나가 문화가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미국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습니다.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상관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세계화가 되어있는 겁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계화가 이해돼야 세계 복음화가 이해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첫 번째 무엇을 지시하십니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세계 복음화입니다. 이삭도 똑같습니다. 야곱에게도 너로 말미암아 세계가 복을 받는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세계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이 계속 왔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이유는 세계 복음화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선민이야. 저들은 이방인이야. 그러니 망한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그들이 복음을 버리고 율법을 붙잡은 겁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성경은 훌륭하고 똑똑하고 배울 게 많습니다. 그런데 망했다. 왜요? 세계화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하나님과 방향이 안 맞는 겁니다. 지난가을에 노회에 갔더니 춘천에 신경주 목사님이 저한테 우리 교회도 선교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 교회는 3층에서 월세를 얻어서 합니다. 교인도 몇 분 안 됩니다. 우리가 어려워도 선교를 해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몰도바 선교를 하는데 몰도바 선교를 같이하자. 그래서 한 달에 20만 원씩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저한테 어렵다고 언제까지 제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어렵지만 힘을 합쳐서 적지만 선교를 해야겠다. 참 귀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은 사실 후원받고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한 번도 저한테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신경주 목사님한테 복지를 하면 좋겠다. 그래서 복지 자격증 따서 지금 노인복지를 하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렵다. 어렵다. 그럼 끝까지 어렵습니다. 언제 우리가 여유 있을 때가 있었나요? 내가 어렵다. 어렵다. 하니까. 끝까지 어려운 겁니다. 내가 지금부터라도 적지만 해야겠다. 이런 자세가 중요합니다. 세계 복음화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보고 기도하면 인도받습니다.

교회 운동

구약성경에 보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언약궤. 언약궤를 만들어라. 언약궤를 따라가라. 성막을 만들어라. 성막 주위에 성막을 따라가라. 성전을 지어라. 왜 이렇게 언약궤. 성막. 성전을 지어라. 말씀하실까요? 이것을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라. 바울이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교회를 없애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깨닫고 한 가장 중요한 일이 복음 받고 제자가 세워지면 그 제자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게 7 교회입니다. 왜 이렇게 교회를 세웠습니까? 그리스도를 지속해서 말하는 곳은 교회밖에는 없습니다. 정말 사단을 꺾는 길은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죄의 저주를 해결하는 이름은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지옥 권세를 꺾는 이름은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지속해서 말하는 곳이 교회기 때문에 교회를 세운 겁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지속해서 말해서 영혼을 살리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지속해서 후대들에게 그리스도를 각인시키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정말 그리스도 운동을 지속한 제자를 세우는 곳을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운동이 필요한 겁니다.

2- 네 평생에

여호수아 1장에 모세가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너는 모든 백성과 일어나서 요단을 건너가라.

네 평생에

네가 이 일을 할 때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함께 있었던 같이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 네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방향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광야를 떠나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요단을 건너야 합니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권면과 명령은 다릅니다. 권면은 이렇게 하면 좋겠다. 명령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말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한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이 백성들은 노예근성, 광야 근성, 그 분위기, 그 사상에서 떠나야 하는데 아직도 미적미적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떠날 시간표가 된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실 때는 이 명령은 축복이고 이 명령은 분명히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한 것은 문제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신앙하고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생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애굽에서 피 바르고 나왔을 때 버리고 나왔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홍해를 건널 때 바다에 전부 버리고 나와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끈질기게 따라왔습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이 각인되어야 할까요? 복음 각인이 안 되면 옛것이 나를 따라다닙니다. 왜 우리가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까? 우린 은혜 받지 못하면 옛날 상처가 또 되살아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까?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또 옛날 사상이 돌아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 때문에 환경 때문에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누구 때문이고 환경 때문입니까? 정확하게 보면 내 문제 때문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내가 그 문제에 걸려있는 동안 나는 영적 힘을 잃어버린 겁니다. 내가 그 문제에 걸려있는 동안 내 영적 상태가 무너진 겁니다.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은혜를 받고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그 말씀에 힘을 얻고 있었을 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해도 그게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더 넘어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렇다면 우리는 이전에 우리의 과거 상처, 사상, 체질, 근성에서 어떻게 떠나갈 수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약속이고 두 번째는 보장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가서 밟는 땅을 네게 주겠다.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와 함께 하겠다.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 과거에서 떠날 수 있는 길을 딱 하나입니다. 그 약속이 나에게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떠날 수 있습니다. 왜 못 떠납니까?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럽니다. 여기서 떠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절대 너를 떠나지 않겠다. 내가 함께한다. 내가 너를 지켜줄 거야. 이것을 여호수아가 붙잡았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에게도 떠나라고 했습니다. 떠나라. 처음에는 미적거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면 내 과거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떠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장

하나님이 보장하신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신 겁니다. 여호수아가 어느 날 내 평생에 나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하시겠다. 이게 아니고 하나님이 보장하신 겁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다. 하나님이 보장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신 것이 믿어지고 내 것이 되면 떠날 수 있습니다. 왜 못 떠납니까? 왜 미적거리죠? 하나님이 보장하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우린 떠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한다. 아브라함이 보장으로 자기 마음에 오는 순간 아브라함은 이길 자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봤습니다. 모세의 형이 아론, 누나가 미리암입니다. 모세가 그러면 안 되는데 이방 여자를 아내로 택했습니다. 그래서 형과 누나가 네가 아무리 백성의 지도자이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가 잘못했지만, 아론과 미리암을 문둥병에 걸리게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해서 다시 회복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들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모세가 잘못했어도 모세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여호수아가 본 겁니다. 고라의 자손. 고라가 250명을 선동해서 모세에게 대적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갈라서 250명 전부 땅에 파묻어 죽입니다. 모세와 함께한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모세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한 것 같이 너를 대적할 자가 없게 하겠다. 이것을 여호수아는 본 겁니다. 그러니까. 광야를 떠날 수 있는 겁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린 선포해야 합니다. 악한 자가 구원받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는 겁니다. 이게 보장이고 약속입니다.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겁니다. 이것을 붙잡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절대 떠나지 않겠다. 절대 버리지 않겠다. 너를 내가 보장한다. 이것을 붙잡고 인도받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향

2021년 부흥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인도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원산 부흥 운동, 평양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부흥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 운동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회개 운동입니까? 우리나라는 5천 년 역사가 귀신 섬기는 우상의 역사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다 버리고 제사 다 버리고 삶의 우선순위를 예배 중심으로 다 바꿨습니다. 그래서 삶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 예배 중심이 되니까. 그들의 삶에 잘못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육신 적으로 타락한 것 죄지은 것이 다 생각납니다. 영적인 것이 보이니까. 육신의 잘못도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회개 운동이 일어나죠. 그런데 그 회개 운동이 어떻게 일어났냐? 삶에 구체적인 변화로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 앞에만 회개한 것이 아니고 사람 앞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내가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이들에게 예배가 회복된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며칠을 걸어서 3백 리가 넘은 곳에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옵니다. 집회에 며칠을 참석해야 하니까. 먹을 것을 지고 옵니다. 지고 와서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또 갑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하는 겁니다. 그들이 무엇을 붙잡았습니까? 정말 예배가 중요하구나! 예배가 모든 것이구나!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곳곳마다 예배 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들이 예배 중심 안 되었던 것 하나님 중심 안 되었던 것 기도 중심 안 되었던 것을 회개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전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린 잘못하면 예배 놓치고 삽니다. 그런데 사실은 더 예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교회 운동은 그리스도 지속하는 운동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럼 우린 하나님께 방향 맞추는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축복 속에 증인 되기를 바랍니다

 "

  이전글 : 내가 주었노니
  다음글 : 함께 하느니라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