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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내가 주었노니 조회수 : 665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17
  첨부파일:   20210117.hwp(256K)

분류

주일예배

제목

내가 주었노니

성경

1:1-4

일시

2021117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의미 있는 일

마음의 병

옛날 어르신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면 뭐가 문제 있겠냐?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대는 배고프고 추운 것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는 영양실조 때문에 안 좋은 환경 때문에 병이 많이 왔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옛날보다 생활이 풍족해졌습니다. 의술도 발전했고 좋은 약도 많습니다. 이렇게 생활은 나아지고 환경은 좋아졌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게 마음에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참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외로워합니다. 두려움이 참 많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밤에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이 참 많습니다.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것은 증상은 치유가 되는데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않습니다. 생각은 뻔합니다. 그런데 실제 마음은 안되는 겁니다. 누구에게는 두려움이 있고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이길 힘이 없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은 그러다가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기에 계속 사로잡혀서 시달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은퇴한 여자 교장 선생님이 계십니다. 테니스를 잘 치시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영어도 너무 잘하십니다. 아들은 변호사로 키우시고 딸은 의사로 키우셨습니다. 자식도 잘 키웠습니다. 재산도 넉넉합니다. 연금도 나옵니다.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남편도 사람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두려운 겁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두려운 겁니다. 돈이 없습니까? 자식이 안되었습니까? 그런데 계속 두려움 겁니다. 그래서 계속 병원에 입원하는 겁니다. 이런 환자가 많습니다. 제가 소아 정신과 의사 한 분을 알고 있는데 이분 얘기가 지금 어린아이들도 정신병 환자가 많다는 겁니다. 이분이 너무 바쁜 겁니다. 그만큼 병원이 잘 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게 마음에 병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이건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급속도로 번지고 있습니다. 예수 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지금 이 땅에 사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살고 있구나! 이게 보이는 겁니다.

재앙 막는 자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재앙을 받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성은 타락한 도시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이 많아서 망했다. 타락해서 망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재앙이 온 겁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문제가 결국 사단의 문제인데 이 사단을 꺾을 그리스도를 말해줄 전도자가 없다. 이 땅에 문제는 죄로 인한 저주가 오는데 이 저주를 막을 그리스도를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결국 이 땅에서 실컷 살다가 지옥 갈 수밖에 없는데 그 지옥 권세를 꺾을 그리스도를 말해 줄 전도자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망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합니다.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피 제사 말하고 빠져나와라. 그런데 400년 종살이하던 이 사람들이 거기서 빠져나왔습니다.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길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정말 언약 가진, 복음의 비밀 가진 한 사람만 있으면 그 가정에 저주와 재앙은 끝나는 겁니다. 우리 후대 에게 이런저런 문제, 속상한 문제가 있지만 기도하는 부모 한 사람 있으면 그 자식은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재앙 막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교회에 이런저런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처럼 언약 가진 한 사람, 사무엘같은 언약 가진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재앙 막는 한 사람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 짓는 일에 생을 걸었습니다. 왜요? 건물입니까? 재앙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성전이다. 성전은 오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어떤 문제가 오고 어떤 사건이 오고 재앙이 와도 그 재앙을 막을 자는 전도자 그리스도밖에 없다.

시공간 초월

그리스도 언약 붙잡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축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건 영원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분은 영원한 겁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축복입니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는 안 믿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절대로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게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에게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권세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흑암을 꺾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성령이 눈에 안 보이게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하늘 군대를 동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면 할수록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응답이 옵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10:19). 사단이 속이니까 꺾어버리라고 주셨습니다. 사단에게 사용하라고 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처럼 (103: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사들이 활동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 세계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지만 실재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름 그리스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단의 권세를 꺾어버린 그리스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지옥 권세를 꺾어버린 그리스도. 시공간을 초월해서 죄의 저주를 꺾어버린 그리스도. 이것을 사용하라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의미 있는 일

우리의 소중한 시간, 소중한 물질, 소중한 재능이 의미 있 곳에 쓰임 받는다면 참 복된 겁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의미 없는 데 쓴다면 그것은 낭비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후대를 키우고 제자를 세우고 세계 복음화하는 이 일을 지속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고의 헌신처가 교회가 된다면 가장 바른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드릴 수 있고 물질이 드려질 수 있고 재능이 드려질 수 있다면 복된 겁니다. 그래서 우린 많이 복 받아서 많이 드릴 수 있다면 그게 복입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써야 사회가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됩니다. 교회 빈 곳, 현장에 빈 곳,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내가 마음 담고 헌신하면 그게 복된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 있는 일입니다. 이학임 권사님이 얼마 전부터 교회에 후대 키우는 장학금을 헌금하고 있습니다. 이 장학금을 어디에 써야 하지? 그래서 지금 교회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는데 수학, 영어, 일반 과목을 가르칩니다. 실비만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 부모들은 그것을 아니까. 교육비를 주십니다. 그런데 불신자 가정에서 나온 아이 중에서 여유가 없는 아이는 못 내고 있는데 아이는 공부를 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장학금으로 후원을 하자. 돈이 들어갑니다. 저는 교회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심미혜 집사님이 오빠한테 얘기해서 한 달에 10만 원 장학금을 합니다. 그리고 제 딸이 30만 원 도움을 줍니다. 제 딸이 경제 관념이 투철합니다. 가족들 머리를 직접 깎아줍니다. 그런데 후대 키우는 일을 하니까. 선뜻 헌금하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하나님이 응답을 주십니다.

2- 내가 주었노니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1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누구냐? 하나님께서 모세의 수종자 그랬습니다.

모세가 죽었으니

그러면서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죽었다. 무슨 말입니까? 현실을 정확하게 봐라. 그럼 지도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네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이 모든 백성을 데리고 내가 약속한 땅으로 가라.

내가 주었노니

그 땅은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이다. 가라.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3- 동일한 역사

영적 정체성

여호수아가 누구의 종이냐? 이게 사실은 모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사실은 누구의 제자냐?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시고 선언하십니까? 모세의 수종자라고 했습니까? 그 말은 지금까지 여호수아에게 모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다 보고 계신다면 이게 얼마나 복된 겁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너는 복의 근원이야 그랬습니다. 너는 행복자야.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 경험,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경험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릴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나를 압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사단이 우릴 어떻게 속입니까? 너는 별 볼 일 없어. 넌 그 모양이잖아. 너는 아무것도 없잖아. 가진 것도 없잖아. 배운 것도 없잖아. 사단이 우릴 기죽이는 소리를 합니다. 절대 구원받은 자녀는 기죽지 마세요. 낙심할 것 없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을 사단 앞에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내가 부족한 거 사실이고 내가 실수한 것 사실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하셨어. 이것을 사단 앞에 선포해야 합니다. 기죽고 눌리고 끌려다니지 말라는 겁니다. 우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어떻게 사용하시겠다는 겁니다. 현장에 빈 곳 살릴 영적 파수꾼을 세우셨다. 치유의 빈 곳을 영적 의사로 부르셨다. 서밋에 빈 곳을 살릴 영적 삼중 직의 대사로 우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라고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현실을 보라

모세가 죽었습니다. 지도자가 없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모세는 없습니다. 지도자가 없습니다. 그럼 모세의 역할을 여호수아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압니다. 나는 부족해요. 모세와 같은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린 부족하기 때문에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린 무능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과 나와 갭이 있습니다. 그 갭을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갑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습니다. 요셉은 엄마도 없고 형들이 괴롭힙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까? 모세가 자기 자신을 압니다. 애굽에 가라, 가서 말해라. 난 말을 못 해요. 입이 둔해요. 맞습니다. 현실을 본 겁니다. 난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함께한다. 네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함께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족으로 제자로 삼아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능력이 없습니다.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그래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겠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우리 현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만 오직 그리스도가 붙잡히는 겁니다. 정말 나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나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려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나님의 능력이 입힐 때까지 기도하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그때 나가라.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 내가 예배 속에서 기도 속에서 말씀 속에서 인도를 받는 겁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에스겔아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냐. 이때 에스겔이 (37:3)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이 하시면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동일한 역사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똑같이 하겠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일하신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섬기면서 본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연약함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럼 모세는 말씀을 붙잡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힘을 주시면 가서 실천합니다. 인도받습니다. 이것을 여호수아는 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봤습니다. 바로가 꺾이는 것을 봤습니다. 애굽이 항복하는 것을 봤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봤습니다. 물이 없을 때 하나님이 물을 주시고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처럼 너에게도 동일하게 일하겠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신 것 같이 나를 사용하시겠구나!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역사하신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 역사하신 것 같이 이 시대 말씀을 붙잡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동일한 역사를 이루시는 겁니다. 왜요? (13: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일하셨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서 일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서 일하셨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를 세워서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날 이 시대 우리를 세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부흥을 붙잡고 인도받고 있습니다. 원산에 100년 전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원산에 부흥 운동이 평양 부흥 운동으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흥 운동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사람을 세우는 운동을 부흥을 통해서 이루신 겁니다. 하디 선교사가 한국에 문제가 많다. 왜 이렇게 타락하고 방탕하고 성적으로 무너지고 이러는 것이냐.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하디 선교사에게 지금 한국이 문제가 아니고 네가 문제다. 그래서 하디가 회개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원산에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평양에 길선주 장로님이 시대가 어렵다. 교회가 어렵다. 하나님이 길선주 장로한테 너의 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죄를 회개하는데 평양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부흥의 역사를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게 하신 겁니다. 이게 부흥 운동이 목적입니다. 제가 교회 부흥 운동을 보는데 방은덕 이라는 경찰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문을 듣고 죄인들이 회개한다. 그래서 교회 가게 되면 죄인을 잡고 실적을 올린다. 그래서 교회에 간 겁니다. 그런데 설교하는 목사님이 그때 물질을 도둑질하는 자는 잡을 수 있지만 마음에 숨겨진 죄는 다스릴 수 없다. 이런 말씀이 마음에 온 겁니다. 자기 마음에 성령이 역사하신 겁니다. 이 사람이 회개한 겁니다. 죄인을 잡으러 온 내가 죄인이구나! 그러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또 회개하고 이분이 훗날 고향에 돌아가서 복음 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들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변화되죠. 우리에게 뭐가 보이면 가장 정확할까요? 하나님이 안 믿어지니까. 자꾸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이 안 믿어지니까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고 행복도 없고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 세상 적이고 육신 적인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시고 참된 행복을 주시고 참된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린 위도 모르고 옆에도 모르고 밑에도 모르고 나만 알았던 내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윗사람도 섬길 줄 알고 옆에 사람과 같이 갈 수 있고 밑에 사람을 도울 줄 아는 마음에 여유가 우리에게 생겼습니다. 나밖에 모르면 내가 어떻게 하면 후대를 살리고 사람을 살릴까?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세울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내가 조금 헌신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봉사하는 마음도 희생하는 마음도 생기고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후대를 키우는 마음이 생기고 교회도 세울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의미 있는 일을 찾으면 가장 복된 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 하게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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