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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호와를 찬송하라 조회수 : 69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22
  첨부파일:   20201122.hwp(64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여호와를 찬송하라

성경

15:19-21

일시

20201122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답 쪽에 있는 사람

1. 사탄의 함정

제 메일과 휴대폰에 문자가 많이 들어옵니다. 그 문자를 보면 돈을 많이 벌어준다. 그런 내용입니다. 그럴듯하죠. 그런데 이게 함정입니다. 사단은 분명히 함정을 파 놨습니다. 네가 하나님 같이 된다. 그 말은 하나님 필요 없다. 네가 하나님 같이 되니까. 하나님은 필요 없어.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해서 인간을 망하게 하는 겁니다. 세상에 그 어떤 나라도 이런 법이 없습니다. 어떤 법이 없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떠난 것이 죄다. 하나님이 믿지 않는 것이 죄다. 그런 법이 없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게 죄다. 우상을 섬기는 게 죄다. 이런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은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이런 벌을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그렇게 되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됩니다. 죽음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면 그건 죽음입니다. 망하는 겁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섬기는 유대인들은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처절하게 저주와 재앙을 당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죠? 사단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겁니다. 세상 풍습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여론 필요합니다. 그건 참고해야 하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단의 함정이 뭔지를 알아야 하고 사단의 함정을 분별할 수 있어야 거기에 빠지지 않고 속지 않습니다.

2. 마음에 담긴 것

사람이 무슨 생각을 계속 하고 있냐? 이 생각이 마음에 담깁니다. 이 생각이 마음에 담기면 이것이 뇌에 담깁니다. 이게 영혼이 각인이 됩니다. 결국 그래서 그것 때문에 사람은 그것 때문에 축복을 받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어떤 기자가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제 병은 의사가 못 고칩니다. 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잘못된 것만 보입니다. 잘못된 점만 보이니까 자꾸 지적을 합니다. 자꾸 정죄를 합니다. 심판을 하고요. 그게 자기 병이라는 겁니다. 안 보이면 좋겠는데 사람만 보면 자꾸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자꾸 얘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인생에 사람에 잘못이 보이고 그래서 지적하고 심판하고 정죄해서 고친 적이 있습니까? 누가 나한테 너 잘못했어. 너 이렇게 해. 그러면 내가 고쳐진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내가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면 그 사람이 고치리라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고쳐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게 병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비판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면 내 영혼이 병듭니다. 그 기자가 고백을 제대로 했습니다. 내가 병이 들었다고요. 그분은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구나! 아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병인지 모릅니다. 병인지 모르면 어떻게 고칩니까? 우리의 영혼이 힘이 나고 사는 길은 하나님 말씀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봐도 자기 마음에 담긴 것 중심으로 성경을 봅니다. 성경은 율법도 있고 구제도 선행도 바르게 사는 것도 있습니다. 정의도 있습니다.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그 신비가 그 정의가 내 영혼에 힘을 주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은 영혼에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상처가 언제 치유됩니까?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이 있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은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발버둥 치는 겁니다. 그래서 불안이 떠나지 않는 겁니다. 불안하니까. 외로움이 외로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외로움이 불안으로 자꾸 갑니다. 불안하니까. 뭔가 내가 가져야 합니다. 뭔가 내가 가지면 불안 요소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뭔가 가지면 불안이 없어집니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혼에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외롭습니다. 근원적으로 불안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막 하는 겁니다. 그런데 채워집니까? 이것을 이기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이 복음 언약만이 우리의 깊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리스도 언약만이 우리 외로움을 해결하는 겁니다. 왜요? 그리스도만이 사단을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세상 사람들을 운명에 끌고 가는 지옥권세를 꺾기 때문에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에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외로움을 해결하시고 그리스도만이 불안을 해결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이 복음의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담는 겁니다.

3. 답 쪽에 있는 사람

성경에 야곱과 요셉은 증인입니다. 야곱과 요셉은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이거 보통상처가 아닙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야곱과 요셉에게는 깊은 상처가 그 마음에 담겨있을 겁니다. 상처 쪽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과 요셉의 공통점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그 비밀,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비밀 그 영적인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럼 생각해 보세요. 내 인생이 지금, 내가 지금 답 쪽에 있는가 아니면 문제 쪽에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분명히 야곱과 요셉은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럼 우리 상식으로는 상처 쪽에 있어야 하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언약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답을 가졌다는 겁니다. 틀림없이 외롭겠죠. 틀림없이 그 외로움은 불안으로 다가왔겠죠. 그러면 그 문제에 잡혀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 있는 겁니다. 이 땅에 누구도 예외 없이 어려움이 오고 문제가 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과 문제를 어떤 사람은 발판으로 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거기에 잡혀서 운명에 잡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어려움과 문제가 도리어 디딤돌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문제와 어려움이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문제와 어려움이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단에게 통로가 돼서 사단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은 모든 문제 모든 어려움을 벧엘로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문제와 어려움이 왔지만 그것이 도리어 발판이고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야곱, 한번 그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자식이 있다면 에서와 야곱 중에 어떤 자식을 더 좋아할까요? 야곱은 성격도 여리고 마음도 여리고 몸도 약한 것 같습니다. 형 에서는 밖에 나가서 사냥도 하는데 야곱은 엄마 옆에서 팥죽이나 끓이고 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면 나가서 놀라라. 그럽니다. 그런데 나가서 놀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 영적인 비밀 무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전부 벧엘에서 전부 발판삼고 디딤돌 삼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아빠한테 고자질이나 하고 별로 좋은 성품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가 임해서 언약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야곱이 그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벧엘로. 하나님 앞에 언약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서 그게 발판이 되고 디딤돌이 되니까 가장 어려운 아이 요셉에게 자기 인생을 전달합니다. 자기가 말씀 붙잡고 기도한 것을 요셉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 후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무엇으로 양육할겁니까? 이게 우리에게 와야 합니다. 바로 야곱은 이것을 붙잡고 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어려움을 당하는 그 아들에게 답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 문제가 끊임없이 올 겁니다. 미국에 대통령의 큰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 강대국입니다. 최고의 의료수준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 훌륭한 의사들이 있어도 코로나에 걸리는 겁니다. 문제가 없습니까? 베드로가 답 쪽에 있지 않을 때는 혈기를 부립니다. 문제가 오니까. 예수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언약을 붙잡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가 제9시 기도시간에 그 성전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보입니다. 답 쪽에 있으니까. 보이는 겁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내 인생을 변화시킨 그리스도, 내 인생을 치유하신 그리스도가 보인 겁니다. 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0:9절에 베드로가 피장 시몬에 집에 갑니다. 6시 기도시간에. 늘 베드로의 인생은 답 쪽에 있는 겁니다.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고넬료를 만나라. 그래서 가서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고넬료 가정에 복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사람은 승리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승리한 사람은 답 쪽에 있기 때문에 승리하고 멸망하는 사람은 문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제를 수습하는 쪽에 있는가? 나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쪽에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가정을 세우고 사람을 세우는 자리에 있는가? 나는 가정을 해치는 자인가? 내가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사람을 모으는 자인가? 흩어지게 하는 자인가?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인가? 원수 맺는 사람인가? 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인가? 오해하는 사람인가? 내가 답 쪽에 있는지 문제 쪽에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령인도라고 하는 겁니다.

4. 하나님의 나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감람산에 불러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시간에 그것도 40일이나 불러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이 땅에 모든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삽니다. 그럼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요? 물질입니다. 만약 영적인 눈이 없으면 아무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도 세상에 살기 때문에 물질에 메여서 노예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아십니다. 무엇을 얘기합니까? 너희들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물질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희들은 위로부터 주는 영적 힘을 얻어야 산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복음 전할 수 있다. 이 땅에 사람들이 영적인 힘이 없으니까. 세상에 노예입니다. 물질의 노예입니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고 힘이 없어서 그럽니다. 위로부터 오는 위로와 힘과 소망이 없으니까. 메여서 삽니다. 이 땅에서 먹을 것 없으면 못삽니다. 입지 못하면 못 삽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내가 손에 잡은 것이 많아도 안 됩니다. 많이 먹어도 안 됩니다. 인간은 영적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존재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주시는 힘과 기쁨과 소망이 있어야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놓치면 세상에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면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수없이 말합니다. 말씀을 따라가라 언약궤 따라가라.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울은 왕입니다. 왕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왕인데 알고 보니까. 악신 들렸습니다. 그러니 왕인데 악신 들리니까. 외롭습니다. 왕인데 악신 들리니까. 불안합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합니다. 불안해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게 사단에게 당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를 찬송하라

1. 바로의 군대

바로의 말과 병거가 바다에 함께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 잡아서 다시 노예 삼으려고 쫓아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의 위로 흐르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갔던 사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다에 빠져죽었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을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갈라놓으신 바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땅도 다 말려놓으셨습니다. 마른 땅을 걸어가는 겁니다.

3. 선지자 미리암

그때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든 여인들이 따라 나와서 그 소고를 잡고 춤을 춥니다. 미리암이 먼저 선창합니다. 너희는 먼저 여호와를 찬양하라.

4.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러니까. 모든 여자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라. 모든 사람이 그는 높고 영화롭다. 같이 화답합니다. 그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졌다. 그러니까. 여인들이 같이 합창합니다.

3- 앞장선 사람

1. 하나님이 하신 일

이 말씀에 보니까. 바로의 군대가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와 그 바다를 고실하게 건너는 자. 그렇게 하나님이 딱 구분해서 일하셨습니다. 그 바다에서 망하는 자, 그 바다에서 증인된 자. 하나님은 구분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사람들은 다 바다에 빠져 죽은 겁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바른 자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기준이 뭡니까? 얼마나 훌륭한가? 똑똑한가? 착하냐? 얼마나 예쁘냐? 능력이 있냐? 공부했냐? 그건 기준이 아닙니다. 피를 발랐냐? 안 발랐냐? 그게 기준입니다. 하나님 자녀냐 마귀 자녀냐 그게 기준입니다. 분명히 천국과 지옥을 나누었습니다. 분명히 멸망과 영생을 나누셨습니다. 분명히 사망과 생명을 나누었습니다. 기준은 딱 하나 피 제사입니다. 2장에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고백합니다. 어찌할꼬 그리스도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구나! 회개합니다. 그들에게 구원 얻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행7장에 보면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이를 갈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처절하게 망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오랫동안 기회를 주셨습니다. 많은 기적을 베풀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쌓은 선에서 선을 냅니다.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는 겁니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못된 짓을 계속해도 하나님이 모르겠지! 아닙니다. 반드시 결말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인데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외롭고 괴롭고 시달립니다. 자기를 포장합니다. 내가 왕이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왕이 외롭구나! 괴롭구나! 시달리고 있구나! 보인 겁니다. 그러니까. 왕을 죽일 생각이 없는 겁니다. 절대 언약 붙잡지 않은 사람은 외롭습니다. 결국 당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안 죽입니다. 불쌍하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손을 보셨습니다. 악한 자를 우리가 손댈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2. 앞장선 사람

미리암이 선지자입니다. 모세가 나이 80입니다. 미리암은 누나니까. 나이가 더 많겠죠. 나이 많은 할머니죠.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한 일이 소고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말입니다. 소고는 간단한 악기입니다. 이것은 전문가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여인들이 다 따라 나와서 같이 찬양을 했습니다. 무엇을 얘기합니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노인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도 할 수 있습니다. 미리암이 소고를 들고 찬양하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모든 여인들이 다 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내가 미리암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참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는데 있다. 복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특별하지 않지만 조금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을 살리고 후대를 키우고 교회를 세워나가고 가정을 지켜나가고 여기에 조금 앞장서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선한 일에 앞장설 수 있습니다. 조금 영적인 일에 앞장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잖아요. 우리가 주의 일에 헌신하고 전도하는 일에 조금 앞장설 수 있잖아요. 이게 얼마나 복된 겁니까? 내가 하는 일은 적은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지금 미리암은 노인인데 나와서 소고를 들고 찬양하는데 많은 여인들이 나와서 찬양을 합니다.

3. 하나님의 구원

그래서 미리암이 선창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자. 그러니까 온 백성들이 같이 화답합니다. 그 광경, 그 영적 분위기를 한번 보세요. 그 분위기 그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이분들이 무엇을 찬양합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셨다. 하나님이 저 애굽 군대를 멸하셨다. 하나님이 우릴 건지셨다. 이 여인이 한 일이 하나님만 높입니다. 우린 절대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린 인격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격을 자랑하면 실수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하나님만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경건을 자랑하면 실수하는 겁니다. 우릴 구원하신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승리했다. 나는 성공했다. 물론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자랑하면 실패하는 겁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우린 그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릴 구원하신 그리스도. 왜요? 사단을 꺾는 유일한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경건이 사단을 못 꺾습니다. 죄 문제를 율법으로 해결할 수는 겁니다. 정말 지옥 문제를 우리의 성공 축복으로 해결되는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한분. 미리암이 알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았는가?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셨다. 찬양하니까. 모든 여인들이 같이 찬양했습니다.

4. 주의 이름

저는 이번 주에 9:1-3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어디서 옵니까? 다윗은 주께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신 그 주님, 그분이 지존하시다. 최고의 하나님이다. 그분만 높인다. 그런데 원수들을 하나님이 완전히 무너뜨리게 만드는 겁니다. 다윗에게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오는데 다윗을 괴롭히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바라보는데 하나님은 원수들을 멸하셨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대를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또 대적한 적도 없습니다. 도망만 갑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애굽 군대를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우린 자꾸만 내가 뭘 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게 신앙입니다. 왜 사람들이 외로워할까요? 왜 두려워하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찬송가 283을 선택했습니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왜 사람들이 낙심할까요? 왜 좌절할까요? 왜 포기할까요? 참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 그럴까요? 참 즐거움이 없기 때문에. 참 행복이 없고 참 소망이 없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좌절합니다. 사울은 왕인데 주님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대적자를 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싸울게 없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뭘까요?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영원한 신분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왜요? 예수가 그리스도 맞기 때문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맞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릴 이 시대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도 올 수 있고 문제도 올 수 있습니다. 내가 답 쪽에 있으면 이게 발판이 되고 디딤돌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린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앞장서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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