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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이웃을 살리는 자(막 2:1-12) 조회수 : 2892
  작성자 : 이길근 목사 작성일 : 2004-05-19
  첨부파일:   주일녹취040516.hwp(66K)
2004. 5. 16 하나로교회 주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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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 보는 눈
개구쟁이 개구리가 들판을 아무데나 펄떡펄떡 맘껏 뛰어다니다가 우물속에 퐁당 빠졌다. 거기에 자기와 똑같은 개구리가 몇 마리 사는 것이다. 이 개구리들이 서로 얘기를 시작한다. 야, 세상이 얼마나 넓은 줄 아니? 우물 안에서 태어나 자란 개구리는 이만큼 동그랗게 넓다고 한다. 본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들판을 맘껏 뛰어다녔던 개구리는 아니야, 세상이 동그랗게 넓은 게 아니고 내 눈 끝에 안 보일만큼 넓어. 둘이서 멱살을 잡고 싸운다. 피가 터지게 싸워도 해결이 안된다. 대화가 안되는 것이다.

1) 세상의 눈
세상 살다보면 사람들의 모습이 꼭 이와 같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데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틀린 것이 아닐 것이다. 본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이것이 세상의 눈이다.

2) 신앙의 눈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자들은 또 다른 눈이 있다. 눈에 안보이지만 실재하는 것이 있는 것을 안다. 공기, 영혼,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은 눈에 안보이는 세상을 보고 있다. 이것은 영원하다. 일시적이 아니다. 님, 성령님, 하나님의 나라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보는 순간 예수님이 내 죄를 해결하셨구나, 보여지는 것이다. 신앙의 눈이다. 우리는 이 신앙의 눈이 열린 것을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전도자의 눈
그런데 더 놀라운 눈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눈이다. 이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만 보인다. 안 보이는 사람은 죽어도 안 보인다. 오늘 성경에 보니 중풍병자가 있다. 얼마나 고생하는 병인가. 우리 이재선 성도도 중풍병으로 고생하시지만 참 힘든다. 감사하게도 예수님 믿고 계속 말씀운동하면서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 처음에 제가 봤을 땐 누워서 겨우 움직이셨는데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을 혼자 가신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병은 고생을 오래 하다보니 가족도, 본인도 지쳐서 다 포기한다. 뭐, 한 두해여야지. 갈수록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믿음 없는, 전도자가 아닌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힘들다, 고통스럽다. 어떻게 도와 줄까, 이정도 밖에는 안보인다. 그러나 전도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운명에 매여 있구나. 운명. 저 사람의 문제가 중풍병에서 해결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바로 운명에 매여 있구나. 저 사람이 완전히 사로 잡혀 있구나. 이 사람 살리는 길은 그리스도 밖에 없구나, 보여진다. 사도행전 3장에도 나온다. 사람들이 이 사람을 아무리 도와주어도 거지다. 그런데 전도자의 눈 베드로의 눈에는 이 사람 운명에 매여 있구나. 그래서 이 사람 내게 있는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그래서 내게 있는 그리스도를 말해서 이 사람 문제가 해결됬다는 말이다. 전도자의 눈이 저와 여러분에게 열려지시기 바란다. 우리는 꼭 이 축복을 누려야 한다..

2. 이웃을 살리는 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이웃과 같이 살아간다.

1) 우리의 이웃
그러면 우리 이웃이 누구인가? 저와 여러분의 이웃이 누구인가? 한마디로 늘 만나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우리 성도가 이웃이다. 그런데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끊어진 길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정표가 없는데 방황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이웃이다.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운명에 매여 있는 것이 우리의 이웃이다. 운명의 산물로 나타나고 있는 중풍병 걸린 사람 우리의 이웃이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의 이웃들이 너무나 시달리고 있다. 지난 주간에 우리 설악동 지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다가 아는 분이 문밖에서 쳐다보고 있기에 만났다. 들어가서 이야기 하는데 이 분이 신앙생활 잘하던 분인데 지금은 힘을 다 잃고 있었다. 남편도 신앙 생활하셨던 분인데 지금 교회 안 나간 지 4개월 됐고, 또 본인도 교회 나가긴 나가는데 억지로 나가요. 너무 힘이 없는 것이다. 아 이 사람도 나의 이웃이구나. 이 사람도 내가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왜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이니까. 이웃이다. 저는 또 지난 수요일 날 제 처재를 통해 연결 된 사람인데 이 분이 저에게 말하는 것이다. 20년 전에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 다닐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절에도 다니고 미신도 믿고 다 해 봤는데 하나님 은혜로 이제 복음을 받은 것이다. 복음을 받았는데 교회를 이 교회 다녀 보고 저 교회 다녀봐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교회를 안나가고 있었다. 아, 이 사람도 나의 이웃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인 지 아는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에게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선생님에게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있다. 하나님의 특별할 소유가 됐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당신을 택해 놨기 때문에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이냐. 제가 한 시간 동안 성경을 찾아가면서 본인에게 확인시켜 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 사람이 저에게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내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한번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교회만 나오라고 그랬지 내가 얼마나 복된 존재인지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참 소중한 곳이구나, 이제 내가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분은 하나님 자녀이니까 교회 안 나가도 구원은 받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안 나가니 은혜를 지속해서 못 받고 영적인 힘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지금 예수를 믿어도 낙심한 자, 예배의 축복을 놓친 자,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교회 다니다 상처받은 자도 이웃이고 하나님 모르니 인생을 방황해 살아가는 사람도 이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소중한 이웃들을 주셨다.

2) 이웃을 살리는 자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들을 보세요. 중풍병에 걸린 이 사람. 단지 동정만 하고 말았는가? 아니다. 이 사람을 우리의 이웃이라는 마음뿐 아니라 예수께 데려온 것이다. 이 네 사람은 어떤 자들이었는가? 자신들이 이 병자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① 인간의 한계
우리 인간의 한계를 안 자들이었다. 인간의 한계.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이 사람에게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약도 갖다 주고. 좋은 것이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병자에게는 아무리 자신들이 뭘 해주어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예수님께 데려가자는 것이다. 이 병자를 메고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지붕을 뜯어서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은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알았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 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가는 것뿐이란 걸 알았다.

② 복음의 능력
그리고 복음의 능력을 알았던 것이다. 중풍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 사람은 복음 아니면 해결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주위에 교회 다니다가 낙심한 사람 복음의 능력 아니면 해결이 안 된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위로해주고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해주어도 해결 안 된다. 이 사람에게 생명되신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야만 해결되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 인생을 망하는 곳에서 영원히 해방하실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음부의 권세가 너희를 이기지 못하리라 하신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③ 하나님의 방법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을 알았다. 지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길이 없다는 말이다. 보세요. 중풍병자가 자기의 방법으로 예수님 앞에 나올수가 있는가? 불신자가 자기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수가 있는가? 낙심하고 좌절한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교회 나올수가 있는가? 없다. 이번 주간에도 한 집사님을 만나 얘기를 했다. 집사님, 문제가 어디서 왔습니까? 제가 예배를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집사님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뭡니까? 예배 아닙니까? 집사님이 예배 회복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넘어설 길이 없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 인간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전도자에게 이 눈을 열어주셔서 전도자로 하여금 그 사람을 도와주게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 그 교회에서 사역을 다 마치고 난 후 한 여자집사님이 100년 된 국수집으로 대접을 하셨다. 100년 된 국수집이라 해도 대단한 것은 없어보였지만 국수맛이 뒷 맛이 단백한 것이 뭔가 있었다. 국수를 먹는데 그 집사님이 그러신다. 제 발을 보더니 발이 너무 예쁘다는 것이다. 저는 눈이 매력적이라든지 코가 외국사람 같아요, 들어봤는데 발이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성경에 복음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도다라고 하셨잖아요 라는 것이다. 복음 전하러 일본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죄문제 해결하시고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신 이 복음을 말해주신 목사님 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시는데, 그럼 그렇지, 저는 또 제 발이 예쁜 줄 알고 착각했잖아요. 제가 그 이후로 생각을 바꿨다. ‘내 발은 아름답다’ 복음 전하러 가는 발은 아름답다. 반대로 죄 지으러 가는 발은 죄 된 발이다. 이렇게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방법은 전도자이다.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 전도자인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찾아가야 한다. 알지 못해서 방황하고 낙심하고도 자존심 때문에 못 나온다. 가서 이야기하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다.

3) 성경 가진 자
오늘 성경에 보니 서기관이 나온다. 이 사람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알고 있는가?

① 성경 지식
서기관이 뭐라고 말하는가?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오늘날의 종교인이다. 사랑의 하나님,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신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예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알고 있다.

② 그리스도
그러나 중풍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 사람의 운명을 해결하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성경을 왜 기록했는가?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록하셨다는 것이다. 눅24:44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이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서기관이 성경을 잘 알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을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 종교인들의 모습이다. 절대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중풍병자의 그 문제가 죄로부터 와 있는데 이 문제 해결받은 것을 알지 못하고 참람하도다라고 한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아는 자들은 율법주의자가 되고 만다. 사람을 살리기는 커녕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절대 지식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절대 율법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다. 율법으로는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할 수 밖에 없다.

3. 하나님의 마음
우리는 정말 이 하나님의 마음, 이 축복을 누려야 한다.

1) 전달자의 축복
오늘 성경 2:1에 보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소문이 들렸다. 이것이 축복이다.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이 지역에 오셨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에게 소문을 낸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가, 예수앞에 나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예수는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예수는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소문낸 것이다. 이 땅의 지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이 땅의 사람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다. 이것이 근본적인 죄인데 모른다.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가? 자꾸만 종교적인 죄만 말한다. 또 사단의 존재를 모른다. 실재를 모른다. 결국은 모르니까 백전백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 해결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소문이 난 것이다. 전달자가 축복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 전도자를 축복하실 수 밖에 없다. 자꾸만 예수의 소문을 내는 전도자, 축복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이 중풍병자가 소문을 못 들었다고 하면 운명에 매여 살다가 죄 문제 해결 못 받고 사단에 잡혀서 평생 고생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 꼭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 세상에서도 좋은 사람은 소문을 좋게 내는 사람이다. 악한 사람은 나쁜 소문만 낸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소문을 내는 자이다. 전도자의 축복이다.

2) 관계 회복
결국은 이 땅의 문제가 무엇인가?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사람이 이 관계가 깨어지면 참 힘이 든다. 제가 아내와 살면서 늘 행복하지만 어떨 때는 속을 때가 있다. 서운할 때가 있고 말 안하고 지낼 때도 있다. 그러면 제 아내는 자꾸만 말을 시키고 저는 더 말을 안 한다. 사람이 성령충만 안 하면 마음이 쪼그라든다. 왜 그런가? 관계가 조금만이라고 비틀어지면 힘 든다. 잘 삐지는 분들이 계신가? 힘든다. 또 자존심이 있어서는 여기에 잡혀가지고 얼마나 힘든지. 속으로는 ‘야, 너가 그 정도밖에 안되냐’ 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계속 삐져 있는 것이다. 얼마나 힘든지.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저는 그리스도 없으면 안되겠다는 걸 절감한다. 사람과 관계만 그래도 밥 맛도 없고 잠도 안온다. 아침에 일어나도 멍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제가 쓸데없는 데 서운해하고. 이런 데 인생 낭비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나와 가까운 사람과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복잡하고 힘든다. 그러면서 삶의 의욕도 떨어진다. 안 그런가? 우리 성도들은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신가 봅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는데 절대 행복할 리가 없다. 거짓이고 다 속이는 것이다. 절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깨어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 힘으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내 감정 하나도 스스로 다스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에겐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구나를 깨닫는다.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못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안된다. 그러면 기도할 힘이 없어 기도하지도 못한다. 기도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되어지는 것이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 되어지면 예배도 은혜 못 받는다. 엉뚱한 생각만 한다. ‘목사님이 어떻게 내 속살을 알아서 콕 꼬집는구나’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세수하는 것을 봤습니까? 목욕하는 걸 봤습니까? 본 적 없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이 하나님의 마음을 꼭 축복으로 여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너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과 아무 거리낌없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그래서 그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늘 이 관계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마음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이다. 29살 새 며느리가 채소장사 남편에게 시집을 갔는데 가서 보니 시동생이 둘 있다. 젊은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시어미니가 간경화로 4년을 동안을 고생하는 것이다. 의사가 간이식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다 이식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며느리가 몰래 조직검사를 해보니 시어머니에게 간 이식을 할 수 있다고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며느리가 친정어머니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이다. 모두 안 되는데 내 간만 이식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친정어머니가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도 내 어머니라며 간을 이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편도 반대를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면서 며느리가 병원에 가서 간을 이식을 하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이유를 쓰라고 하니 뭐라고 썼냐 하면 ‘나는 시어머니를 사랑합니다’라고 쓴 것이다. 수술을 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 다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신문에 난 것이다.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못할 일이 없구나. 어떻게 소중한 간을 떼어 주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 낙심한 이웃, 시험당한 이웃, 좌절에 빠져있는 이웃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 영혼을 사랑하면 헌신할 수 있다. 성경에 오네시모 알지 않는가? 아주 몹쓸 사람이다. 이 사람을 바울이 복음으로 양육했다. 치유가 되니 완전히 복음의 심복으로 바뀌었다.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해 주었겠는가? 여러분,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가 있었다. 이 사람이 자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겠는가? 그런데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복음을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한 사람일 것이다. 이 마리아가 치유받고 완전히 복음을 위해 쓰임받은 사람이 되었다. 성경을 보세요. 이렇게 어려운 사람만 그런가. 고넬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구제 많이 해도 그리스도를 몰랐다. ‘저 사람, 종교인이구만. 율법주의자구만. 망해라‘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께선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듣게 햐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데오빌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누가가 사역을 했다. 계속 그리스도를 말했다. 이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 누가복음이고 사도행전이다. 이 땅에 성공한 사람에게도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완전히 실패한 사람에게도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행 13장에 보면 총독이 나온다. 성공한 사람이지만 자기 속에 뭔가가 모르지만 문제가 있으니까 무당을 끼고 산 것이다. 이 사람에게 바울이 그리스도를 말하니 이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 되어지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수가 있다. 저와 여러분에겐 지금 상처받은 우리 이웃들이 많다. 교회 다니면서 목회자에게 상처받고 성도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 자기 문제 때문에 넘어진 자도 너무 많다.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것이 축복의 길인 줄 알고 막 달려가는 자도 있다. 우리의 이웃이다. 이 사람들을 살리는 길은 복음밖에 없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이웃들을 만나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받는 사랑, 내게 있는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축복된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 축복을 이번 한주간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헤가 임하여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 것은 우리 이웃들이 지금 방황하고 있고 상처받아 있고 낙심해 있고 좌절하고 있는 것을 살리라고 축복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은혜로 무장하게 하시고 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이 주신 이 축복속에 쓰임받게 해 주셔서 쓰러져가고 죽어가는 우리 이웃들을 살리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이 축복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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