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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가족을 살리는 자(마 9:9~13) 조회수 : 2607
  작성자 : 이길근 목사 작성일 : 2004-05-11
  첨부파일:   주일녹취040509.hwp(63K)
2004. 5. 9 하나로교회 주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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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끊어진 길

1) 끊어진 길
어제 식사를 하는데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다. 오늘만 같으면 참 좋겠다 하시는 것이다. 왜 그러시냐고 여쭈니깐 아들들이 평소에도 용돈을 주지만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히 용돈도 보내주고 선물도 주니까 오늘 같으면 좋겠다, 그러시는 것이다. 저도 오늘 예배를 드리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예쁜 집사님이 예쁜 꽃을 꽂아주는데 기분이 좋다. 참 감사하다. 얼마나 좋은지. 사실 우리 자녀들의 소원이 있다면 부모님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되어 하나님 자녀로서 이 땅에서 풍성한 축복을 누리다가 생명이 끝나는 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자녀의 소원이다.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그리스도만 영원한 분이시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의 축복이다. 지난 주간에 양양의 두 권사님과 함께 양양에 전도를 하러 갔다. 우리 권사님이 늘 기도하셨던 분이고 동창이신데 시골길을 가게 되었다. 그 시골길이 지금은 얼마나 잘 닦여있었든지 시골 기분이 안 들 정도였다. 아마 최근에 한 것 같은데 깨끗하고 날씨도 한산하고 참 좋아서 차 속도를 조금 내며 가는데 갑자기 길이 끊어진 것이다.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았는데 그 앞은 비포장 도로 길이었다. 그런데 오던 속도 때문인지 브레이크를 아무리 밟아도 차가 잘 서질 않았다. 저는 야, 이게 인생이구나 생각했다. 인생이 이렇다. 열심히 달렸는데 어느날 뚝 끊어진 것이다. 이 땅에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창 3장이 뭔가? 하나님 만나는 길이 끊어진 것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가는 곳이 지옥이다. 이 창 3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가 이 땅에 사는 일이요, 삶의 이유요, 저의 사명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길이 좋은 길이겠거니 행복한 길이겠거니 승리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간다. 저는 돌아오면 되었지만 인생은 돌아올 수가 없다. 누구에게 보상받겠는가? 사람들이 끊어진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종교생활이 이렇다.

2) 이정표가 없는 길
그리고 찾아갔던 그 사람을 만났다. 이 분이 사슴목장을 하고 계신데 복음 받을 생각은 안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 준다. 며칠 전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얼굴도 이상하고 옷도 형편이 없이 입었다. 본래 얼굴 형이 그런 분이 아닌 것 같은데 행색을 너무 초라하게 해서 자기 집으로 들어오더니 전화 한 번 쓰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아마 길을 잃어서 집에다 전화하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양양에 사는 목사님이신데 산에 두릅을 따러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어떡하다가 이 집을 발견하고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그 목사님을 차에 태워 잘 모셔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말했다. 선생님, 사람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죠? 아무리 내가 애써도 안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목사님을 도와주셔서 자기 갈 길을 간 것처럼 우리 인생은 정말 도움이 필요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길을 잘 알려주고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이 분은 복음을 받질 않았다.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정표가 없으니까 방황하고 있다. 이것이 길인가하고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길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만나는 길인 그리스도를 몰라서 사람들이 방황하고 고생한다. 그 길 잃은 목사님이 어떠했겠는가? 그 산속에서 동행도 없이 혼자 길을 잃고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겠는가?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같이 가고 있지만 사실은 혼자이다. 가는 길을 모르니 방황하고 염려하고 답답해하고 두려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2. 우리의 가족

1) 우리의 가족
우리 주위에 우리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 끊어진 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고 이정표가 없는 길을 가면서 방황하고 있다. 누가 이 사람들을 살려내겠는가? 얼마 전에 이웃 교회 집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예전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다. 집에 같이 갔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집사님이 제게 말하는 것이다. 목사님, 이 강아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제가 사람도 잘 기억 못하는데 어떻게 강아지를 기억하겠는가? 그 강아지가 20년 된 강아지라고 한다. 강아지는 한 25년 산다는데 지금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지금 치료 중인데 너무 불쌍하다면서 하는 말이 우리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우리 가족이 도대체 누구인가? 피를 나눈 친족도 그렇지만 개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의미에선 이웃도 가족이고 온 성도가 가족이다.

2)모르는 것

① 원죄
특별히 유대인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면 원죄를 몰랐다. 죄가 뭔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죄라면 못된 것, 나쁜 짓 한 것, 남에게 실수한 것 등으로 알고 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죄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친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이런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이 죄를 몰라서 결국은 망한 것이다. 지금도 지식인들이 모르는 것이 죄이다. 착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죄를 안 짓는 것이라고 안다. 죄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를 모르는 것이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다. 이 말을 알 길이 없다. 죄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죄라고 하는 걸 모른다. 구원받은 사람만 알 수 있다. 죄를 모르므로 죄를 해결할 줄을 모른다. 헌신하고 선행을 하면 이 원죄는 없어지지 않는다. 자범죄는 없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지식인들 특히 유대인들은 모르므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나. 우리를 이 죄에서 구원하시러 오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문제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죄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② 흑암세력
또 유대인들은 흑암의 세력을 몰랐다. 흑암 세력이 무엇인가? 요 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라고 했는데 그 도적이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망하고 죽이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도적이 누구인가? 오늘날도 지성인들이 흑암세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우리가 TV의 무서운 프로그램을 보고 자면 꿈속에서 악몽을 꿀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뭔가에 눌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밤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시달려보지 않기 때문에 이해를 못한다. 흑암세력을 몰라서 그렇다. 멀쩡한 대낮에 뭔가가 보인다. 그 사람의 운명이 보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걸 알겠는가? 유대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모른다. 너무도 힘드니까 해결해보려고 어딘가에 찾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는 듯 하다가 무너지고 되는 듯 하다가 무너지니까 찾아간다. 안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다. 운명이겠거니 하고 사는 것이다. 우상숭배, 굿, 점치고 절간 다니고 성당 다니고 교회도 다니다. 교회를 다녀도 흑암세력을 모르면 해결이 안된다. 예수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하셨다. 이것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하셨다. 흑암세력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40년을 시달렸던 성도 한 분이 그러신다. 복음 받고 예수 믿고 나니깐 얼마나 감사한데 얼마 전에 꿈을 꿨는데 희안한 게 나타나서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더라는 거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말씀이 꿈 속에서 생각나서 등산화로 악한 것의 머리를 짓이겼다는 것이다. 꿈을 깨고 마음이 너무 시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죠? 하는 것이다. 그렇죠, 롬 16:20에 나오지요 그랬다.

3) 가족을 살리는 자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건지 모른다. 모르니까 우리 가족 중에 혹시 이런 사람을 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살리는 자로 이 땅에서 쓰임받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① 올바른 복음
가족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은 정말 무엇이 되어지면 되는가 하면 올바른 복음이다. 이게 꼭 확인되어야 한다. 인생은 정말 끊어진 길, 이정표가 없는 길을 달려가고 있고 원죄와 흑암세력에게 잡혀서 끌려가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해결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분이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끊어진 길을 회복하시고 이정표 없는 길에 방향을 세우려고 오신 것이다. 우리의 원죄와 흑암세력을 꺽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 분이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증거로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만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절대자이시다. 올바른 복음을 꼭 확립하셔야 한다.

② 영적인 유산
우리 부모 된 자들은 꼭 후대들에게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셔야 한다. 세상적인 것도 영향을 준다. 저를 보시면 제 몸에서 태어난 아이가 누구인지를 아실 것이다. 완전 붕어빵이다. 자식들은 전부다 붕어빵이다. 육신적인 것이 닮는데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것이 다 가 있다.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것이 우리 아들, 딸에게도 와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영적인 영향도 가 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연세드신 분들이 제사 문제만 해결해도 후손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는 모든 것이다. 가정의 영적인 영향이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다. 우상숭배 하나만 해결해도 자손이 대대로 복을 받는다. 성경에 말씀하신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상숭배 하는 자 치고 3, 4대 가서 안 망하는 자가 없다. 꼭 확인하셔야 한다. 어른들이 제사를 끊어주셔야 한다. 자녀들은 좀 힘들기 때문에 어른들이 제사 안 지내고 예배 드리겠다고 말해주셔야 한다. 그럴때면 저를 부르세요. 왜 귀신 불러들이는 일을 하는가? 우리가 영적인 영향력을 안다고 하면 이것 끊어야 한다. 엉거주춤하게 채려놓고 할 것 없다. 예배 드리면 되지. 걱정할 것이 없다.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 성경의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은 사람인데 형제들에게 미움 받고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도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어느날 자기 혼자 생각해 낸 것인가? 아니다. 아버지 야곱을 통해서 배웠던 것이다. 야곱이 예전에는 인본주의를 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고 기도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생애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벧엘로 올라가서 기도한 것이다. 이것이 언약이다.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언약을 붙잡고 기도했다. 이것을 요셉이 들었던 것이다. 요셉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기에 아마도 야곱이 어린 요셉을 껴안고 얘기를 많이 해 주었을 것이다. 요셉아, 내가 어려움 당할 때 어떻게 한 줄 아느냐, 나는 늘 벧엘을 향해서 올라갔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이렇게 응답하셨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 때 요셉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 인생의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면 아버지에게 응답하신 그 하나님이 나에게도 응답하실 것이다는 그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영적인 유산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성전에 가서 기도했다. 나실인의 언약을 깨닫고 기도해서 사무엘의 응답을 받았다. 사무엘이 어려서 늘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우연이겠는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영적인 영향. 이것이 우리 후대를 살리는 것이다. 정말 우리 가족을 살리는 것이다.

3. 죄인을 부르심

1) 죄인을 부르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하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 오셨다. 우리 가족중에 이미 예수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 있지만 아직도 예수 모르고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방황하고 인생의 끊어진 길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왜 예수도 안 믿고 그러냐고 뭐라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먼저 복음 깨닫게 하시고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은 꺼져가는 등불 냄새난다고 훅 불어 꺼버린다. 하나님은 다시 살려내는 분이시다. 상한 갈대를 다시 꺽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유대인이 초대교회를 향해 얼마나 비아냥 거렸는가? 무식하고 가난하고 병들었지 않느냐. 왜인가? 자기 기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율법 정신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사람을 보면 되는 것이 없다. 이 땅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보면 정확하다. 내 몸에서 나온 나의 자식도 나와 같지 않다. 어떤 이는 꺼져가는 등불, 상한 갈대같은 사람도 있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보다 못난 사람은 짓밟고 끌어내릴 것인가? 잘난 사람은 잘 도와주면 되고 못난 사람은 긍휼하게 여기고 축복 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다.

2) 하나님의 능력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힘으로 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① 복음의 능력
복음은 구원얻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꼭 확인해야 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은 복음의 능력 외엔 없다. 그리스도 밖에 없다.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나라로 옮길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신분을 유지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영원히 항상 함께 하시는 신분을 유지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스도밖에 없다. 천국열쇠를 우리에게 주신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 자신이 꼭 인하셔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복음의 능력 뿐이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우리 성도 중에 예수님 믿은 지 얼마 안되는 분이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틀림없이 예수 영접할 것이다라고 복음을 전했는데 거절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하는 건가?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사단의 역사를 모르면 알 길이 없다. 다른 사람 다 해도 친한 친구가 안하니까 낙심이 안됐겠는가? 기도하라는 싸인이다.

② 기도의 축복
내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 자녀, 가족을 위해 기도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살 된 아이가 집 나가서 못된 짓 하다가 아줌마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 사람이 어거스틴이다. 이 사람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겠는가? 내 자식은 소망이 없구나. 어쩜 이리도 못돼 먹었을까? 낙심하고 있는데 암부르스라는 목사님이 어거스틴의 어머니에게 말한 것이다. ‘눈물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기도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목사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기도한 것이다. 이 탕자가 12년만에 회개하고 돌아왔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원하는 기독교의 진리를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신학교에선 어거스틴에 대해 많이 공부한다. 이 사람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만큼 방대한 일을 한 사람이란 말이다. 어머니의 기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 분명히 기도의 어머니의 자식은 돌아오게 돼 있다. 정말 기도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③ 변화된 사람
이 때 하나님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성경 빌레몬서에 보면 오네시모가 나온다. 참 못된 사람이다. 주인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도망갔다. 노예가. 도망가서 얼마 또 못된 짓을 많이 했던지 감옥에도 붙잡혀 왔는데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이다. 이 사람이 복음을 받고 말씀으로 양육되어지고 바울의 심복까지 된 것이다. 보세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눅 7:2에 보면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가 나온다. 얼마나 시달렸겠는가? 그런데 복음을 깨닫고 완전히 귀신에게서 해방되어 일꾼이 되었다.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중의 한 명이 되었다. 예수님을 끝까지 도와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잘못하면 저 사람 귀신 들려서 얼마나 시달린 줄 알아? 손가락질 할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가니 완전히 바뀌어서 복음 위해 한 생애가 쓰임받았다. 복음은 배반자인 베드로, 핍박자인 바울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꼭 이것을 소망으로 삼아야 한다. 인간의 어떤 방법도 안되지만 복음은 변화시킨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3)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의 소원으로 삼으면 승리한다. 배반자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언약으로 가슴에 새기고 성령충만 받아 기도하던 중에 행 3장의 앉은뱅이를 보았다. 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양이구나, 저 사람을 살려야 겠구나. 이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었다. 육신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줄 알았던 것이다. 운명을 바꾼 이름은 어떤 이름인가? 그리스도이다. 그 운명을 바꾼 이름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다. 행 10장의 고넬료는 로마 이달리야대 백부장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이 다 있는데 그리스도를 모른다. 기도, 선행, 예배도 잘 드리지만 그리스도를 모른다. 종교인이란 말이다. 그런데  사람에게 베드로가 무슨 얘기를 했는가? 이 사람이 어린양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말했더니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다. 고넬료를 통해서 로마 복음화의 문이 열렸다. 우리에게 어린 양은 누구인가? 운명에 매인 사람, 세상에 성공한 사람이다. 누구를 모르는가? 그리스도를 모른다. 저와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 인생을 드려야 할 줄로 믿는다. 혹시 손해를 끼쳤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복음이 들어가서 복음을 위한 심복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시다. 언제까지 그 사람을 귀신 들렸던 사람으로 볼 것인가? 그리스도를 몰라서 귀신 들렸지 않은가? 이 사람이 은혜받고 치유받고 복음 위해서 쓰임받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시다. 이것 때문에 물질의 축복도 받아야 하고 건강의 축복도, 생업과 자녀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이 어린 양을 먹이고 후대를 살리고 우리 가정을 살려할 될 줄로 믿는다. 이것 때문에 우리 가정을 개방해서 미션홈으로 열고 그 가정을 찾아가서 다락방말씀운동 해주고 지역지역마다 모여 지교회 운동도 하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같이 누려야 될 줄로 믿는다.

((언약기도))
오늘 복된 주일 우리의 가족들이 혹시라도 끊어진 길을 달려가고 있고 이정표 없는 길을 가면서 방황하고 있진 않는가, 문제와 흑암세력에 매여서 고통당하고 있지 않는가를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신 유일하신 이름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복음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사 이 축복된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이 확립되어지게 하시고 우리 후대와 가족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 축복된 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업과 가정과 자녀들에게 증거를 주셔서 이 분들에게 증인이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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