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너희를 넘어가리니 | 조회수 : 61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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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너희를 넘어가리니 |
성경 |
출12:11-14 |
일시 |
2020년 8월 2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나의 복음
1. 영적 서밋 자리
▶ 군대 가서 훈련을 받을 때 보니까 저에게 정해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정해진 자리를 절대 떠나면 안 된다. 상관이 지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자리가 있구나!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은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도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셨을 때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에 파수꾼으로 세웠다. 이게 에스겔 선지자기 있어야 할 자리죠. 내가 파수해야 할 자리, 내가 지켜야 할 자리. 그 자리가 분명히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감람산에 40일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현장에 가게 할 때 첫 번째 말씀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왜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한다. 그 성령이 임할 때 까지 너희는 이 자리를 떠나지 말라.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500명인데 그 말씀을 붙잡고 그 예루살렘에서 마가다락방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언약 붙잡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했던 사람들은 120명 이었습니다. 그 120명에게 오순절이 임했을 때 바람 같은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영적 서밋으로 부르셨습니다. 영적 서밋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 언약궤 옆에 있었다. 언약궤를 붙잡고 있었다. 이게 성경말씀입니다. 야곱은 아빠의 자리에서 요셉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도의 사람 언약의 사람으로 세웁니다. 요게벳은 엄마로써 엄마의 자리에서 모세를 길러냈습니다. 언약의 사람으로 한나는 엄마로써 엄마의 자리에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길러냈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으로써 많은 일을 했지만 다윗 같은 사람을 세운 겁니다. 최고사역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써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릴 영적 서밋으로 부르셔서 우리로 하여금 가정을 살리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현장을 살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리기 원하십니다. 이게 영적 서밋의 자리입니다.
2. 모든 문제 해결자
▶ 옛 말에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분에게 종이 하나가 있는데 말을 기르는 종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주인에게 달려와서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말이 도망갔습니다. 그러니까 새옹이라는 사람이 도망 갈수도 있지. 얼마 있다고 또 종이 쫓아와서 주인님 기뻐하세요. 도망갔던 말이 야생마를 데리고 와서 말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겁니다. 또 종이 와서 큰일 났습니다. 또 뭔일 이냐? 주인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래 말 타다가 다리도 부러질 수 있지. 그런데 또 종이 쫓아와서 주인님 기뻐하세요. 전쟁이 나서 모든 청년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데 주인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못 갑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무엇을 얘기합니다. 세상에서도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말이 가벼우면 인생이 가볍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없겠습니까? 그러면 답답한 일이 없겠습니까? 그럼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없겠습니까?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 속상한 일, 답답한 일도 있는데 거기에 하나님 계획이 없겠습니까? 야곱에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촌 라반 집으로 도망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어떻게 살아가나? 얼마나 염려가 됩니까?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 순간만 보면 그게 망한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나 요셉이나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없었냐?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눅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우리 머리털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다 세고 계신다. 그러면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르시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사실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마10:29에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생겼는데 하나님이 모르시냐! 잘못하면 조금 축복받고 응답 받으면 막 흥분하고 날뛰고 또 어떤 문제 사건이 생기면 낙심하고 이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보면 이게 과정이었구나!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가는 여정이었구나! 이런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우릴 인도하시는구나! 이것을 안다면 그래, 나는 하나님 자녀의 신분 가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고 천국을 보장하셨는데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되시고 왕 되심이 확인되면 모든 문제는 끝입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사실화가 되어야 합니다.
3. 나의 복음
▶ 바울은 (롬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단을 꺾으신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죄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지옥권세를 꺾은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것 가지려고 했던 것이 알고 보니까 틀린 것이었다. 이게 복음이 아니었다. 그럼 바울이 가진 사상은 뭡니까?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 알고 보니까 속은 겁니다. 틀린 겁니다. 망할 겁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이 한이 된 겁니다. 내가 틀린 것을 붙잡고 있었고 내가 속고 있었구나! 내가 망할 짓만 하고 있었구나!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복음이 깨달아진 겁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다. 이게 세상적인 한이 아니라. 복음적인 한입니다. 내가 이 복음을 몰라서 내가 이 복음을 몰라서 이렇게 내 인생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구나! 예수님 사역을 보면 제자들을 부르시고 처음 주신 메시지가 마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입니다. 팔복이라고 합니다. 복이 뭐냐? 가난한 자가 복 있고 애통하는 자가 복 있고 어떻게 가나이 복이 됩니까? 어떻게 애통 하는게 복이고 핍박 받는 게 복이 됩니까? 종교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겁니다. 뭔가 잘되는 것이 복이지 가난하고 핍박받고 애통한 것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습니까? 무슨 얘기입니까? 부자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부자가 되었는데 그리스도 모르면 그건 저주입니다. 평안하게 아무 문제 없는데 그리스도 모르면 그게 복이 아니고 저주라는 겁니다. 근원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남을 심판하고 판단하고 그러는 겁니다.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남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는 더 큰 잘못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한번 보세요. 남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데는 완전 전문가. 그런 살벌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남을 비판하면 비판하는 쪽으로 눈이 밝아집니다. 결국 남 비판하다 자기도 죽는 겁니다. 남의 티를 그렇게 잘보고 골라내는 겁니다. 그러다 죽습니다. 예수님이 남에 티, 보지 말고 네 눈 속에 들보부터 뽑아라. 상처를 받은 사람이 치유 못 받으면 늘 상처 말하다가 결국 그 상처에 메여서 죽어 갑니다. 이 땅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린 상처를 받아 왔고 지금도 상처를 받고 앞으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늘 내가 상처 받은 것만 얘기하면 그 상처가 점점 더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상처에 메여서 죽어가는 겁니다. 정말 어떤 문제가 와도 어떤 상처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내가 누구냐? 나는 복의 근원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삽니다. 상처를 붙잡으면 내가 당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이것을 붙잡아야 사는 겁니다. 이 복음이 나에게 적용이 안 되면 나의 복음이 안 되면 결국 그 상처 때문에 남 때문에 핑계 하다가 죽는 겁니다.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눅10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짝을 지어서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말하니까 귀신들이 쫓겨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를 받는 겁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기쁜지 예수님께 돌아와서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귀신이 쫓겨납니다. 병들이 나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응답과 증거를 받을 수 있다. 필요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있다. 이게 나에게 있어야 혹시 살아가면서 답답한 일, 어려운 일, 안 되고 풀리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낙심하고 좌절할 겁니까? 포기할겁니까? 예수님께서 그래서 아버지 약속을 기다려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우리에게 근원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게 우리가 진짜 받아야 할 응답입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니까.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핍박도 상관없고 환경도 상관없고 죽음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들이 핍박받아서 흩어졌는데 그럼 겁나서 숨어서 살아야 되는데 아닙니다. 그들이 안디옥에 가서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핍박받아서 포기한 것이 아니고 안디옥 교회를 세운 겁니다. 열심히 아닙니다.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의 된 겁니다. 여기에 바울을 붙으십니다. 그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깨닫습니다. 의인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무슨 말입니까? 내가 율법을 잘지킨다고 의인된다고 했는데 의인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내가 몰라서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내가 몰라서 마가다락방 교회를 이단누명 씌우고 내가 몰라서 성도들을 감옥가게 하고 나는 율법을 잘 지키고 선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게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나의 복음 되어야 합니다.
4. 부르신 부름의 상
▶ 바울 나이가 75세 쯤 되었습니다. 감옥입니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그의 고백이 빌3장입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게 바울의 인생입니다. 나이가 들면 약해집니다. 젊을 때와 다릅니다. 그러나 75세 된 바울이 지금도 나는 달려간다. 내가 육신적으로는 젊을 때 처럼 할 수 없지만 내 영적으로는 이 복음을 위해서 올인 한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겁니까? 나는 앞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나는 복음을 위해서 나는 달려간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이때 갈렙 나이 85세입니다. 몸이 얼마나 약해졌겠습니까? 그런데 (수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 이다 하니 이게 나이 85세라고 해서 좌절하고 낙심하고 인생 다 살았다. 그게 아니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 몸은 연약해졌어도 나이는 많아도 복음을 위해서는 그 열정이 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이 복음 운동, 영혼 살리는 운동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겁니다. 내가 나이 들어 육신적으로 힘이 없다고 복음에 대한 열정까지 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세 80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호흡을 주실 때까지 나는 복음을 위해서 산다.
2- 너희를 넘어가리니
1. 여호와의 유월절
▶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어린 양을 잡고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것을 먹어라. 먹을 때 어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라. 떠날 준비를 해라. 머뭇거리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하시면 즉간 움직여라.
2. 애굽의 모든 신
▶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애굽에 처음 난 것을 심판하겠다.
3. 너희를 넘어가리니
▶ 그런데 내가 애굽을 칠 때 그 피르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4. 영원한 규례
▶ 이것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라. 이날이 기념해서 여호와의 절기로 삼고 대대로 지켜라.
3- 그를 찬송할지어다
1. 너희가 사는 집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사는 집. 집은 똑같은 집입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의 집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노예가 사는 집이 어떻겠습니까? 애굽 사람들의 집은 깨끗하고 크고 웅장하죠. 이스라엘 노예의 집은 겨우 움막 같은 집에서 살고 있겠죠. 그런데 애굽 사람들의 그 좋은 집에는 피가 없습니다. 움막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피가 있습니다. 피가 있는 집은 재앙이 떠나갔고 피가 없는 집은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재앙이 임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눈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그가 얼마나 똑똑하냐. 인격적이냐 성공 했냐 돈이 많냐 능력이 많냐? 이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은 너 왜 이렇게 못 났냐? 왜 이렇게 비리비리 하냐? 왜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고 이게 뭐냐? 하나님의 눈이 거기 있습니까? 하나님의 눈은 예수의 피에 있습니다. 이 땅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아무리 훌륭하고 진실하고 바르고 율법을 철두철미 하게 지켜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소중하고 필요하지만 아닙니다. 우린 부족하고 허물 많고 연약해도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입니다.
2. 너희를 위하여
▶ 그래서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가 혹시 부족하고 허물 있고 연약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혹시 초라해도 우리 안에 예수의 피. 이게 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이 너희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습니다. 너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의 완벽하게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큰 날개를 펴서 이 백성을 감싸준다. (사 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전능자의 펼쳐진 날개로 저와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겠다.
3. 각인 시켜라
▶ 이것을 각인시켜라. 여기에 명령이 4가지입니다. 기념해라. 절기로 삼아라. 영원한 규례다. 대대로 지켜라.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 절대. 절대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절대 잊지 마라.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끝내셨다. 이것을 절대 잊지 마라. 그 피가 너희 집에 있어서 표적이 되리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내리지 않으리라. 오늘 찬송가 265장을 선택했습니다. 양의 피를 볼 때 내가 널 넘어서 가리라. 우리는 느낌도 감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과 감정은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4. 그를 찬송할지어다
▶ 저는 이번 주에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묵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 여호와,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린 그분을 찬양하고 인도받으면 다 되는 겁니다.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가 맞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맞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가 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충만 이 언약 잡고 하나님이 237 나라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복음이 나에게 확인되어 지면됩니다. 피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섭니다. 우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복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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