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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조회수 : 634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21
  첨부파일:   20200621.hwp(32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성경

8:16-19

일시

2020621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말씀

이길근 목사

1- 성도의 가치

1. 영광의 싸움

신앙생활을 하는데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밝히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주인이냐? 이겁니다. 보이는 것이 주인이냐? 안 보이는 것이 주인이냐? 인간이 주인이냐? 하나님이 주인이냐? 누구를 높이느냐? 나를 높이느냐? 과학을 높이느냐? 세상을 높이느냐? 돈을 높이느냐? 하나님을 높이느냐? 결국은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영광의 싸움을 하는 것 입니다. (2: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바꿀 수가 있느냐?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왕이 되어서 늘 언약궤를 사모하다가 하나님 허락 속에 언약궤를 모시고 성에 들어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모시고 와서 레위 자손들에게 명령합니다. 언약궤를 섬기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양을 하게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대상 16: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 할지어다 다윗을 보면 참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다윗의 삶을 보면 (71: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생활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아름답고 깨끗하고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종일토록 주께 영광 돌림이 내 입에 가득한 이게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누구를 높이느냐? 입니다. 누구를 생각하느냐? 입니다. 이게 세상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시간을 정말 가치 있는데 쓴다면 그건 복 있는 겁니다. 소중한 물질은 아름답게 쓰면 그 물질은 복입니다. 그런데 그 물질가지고 엉뚱한데 못된 짓 하는데 쓴다면 그 물질은 저주입니다. 한 번사는 인생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인생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2. 희망의 시간표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하던 아브라함을 부르자마자 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일이 되기까지는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이게 내 마음에 와 닿기 전까지는 아브라함이 자꾸 불신앙하고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니까 마음에 믿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게 자기에게 사실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약속하신대로 복의 근원이 되고 천한만민이 복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나에게 사실이고 이게 나에게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면 우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 있었습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교회를 가게 되면 부모 형제가 같이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부럽고 사모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니까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게 제 마음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신 것은 분명히 우리 집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제 마음에 믿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밤에 그런데 부모님들이 안 믿는 겁니다. 낙심되고 좌절되고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왜 응답을 안 주실까? 다른 성도들은 응답을 잘 받는데 나는 왜 응답이 안 될까? 내 기도가 부족한가 하고 또 기도하고 그런데 또 아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보니까. 다 믿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부끄러운 고백인데 내가 쓸데없는 낙심을 했구나! 내가 쓸데없이 좌절했구나! 분명히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왔고 믿음으로 왔고 희망이 되었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빨리 안 오니까. 내 시간표대로 안 되니까. 그것을 못 견디는 겁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 사건 문제를 통해서 다 이루시는 겁니다. 우리가 소망이 있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여유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나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3. 성도의 가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성도는 존귀하다. 하나님이 우릴 보실 때 기뻐하신다. 이게 우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나를 볼 때 존귀하다. 내가 너를 볼 때 마다 기뻐한다.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게 우리입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나를 즐거워하고 기뻐하신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말씀들이 저에게 오면서 바뀐 것이 있습니다. 전에는 내 수준으로 내 입장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왜 저럴까? 왜 저것도 못하지?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이 제 마음에 많았습니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왜 저 모양이야.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보니까. 이상한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사람이 바뀌어서 너무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 받는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지금 내가 볼 때 내 입장에서 볼 때 저 사람 왜 저래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사람이 변화돼서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구나! 왜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것처럼 그를 기뻐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뭐가 잘났다고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변화 되서 어떻게 쓰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뭘 안다고 똑똑하다고 능력 있다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정죄합니까? 굉장히 교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광수 목사님이 자기가 타락해서 돌아다닐 때 어머니가 늘 자식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어머니 동생이 저 놈은 안 돼. 왜 기도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를 놓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지금 이렇게 세계복음화에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왕따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그런데 그가 총리가 되어 세계복음화 할 거라고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우리 자신도 나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존귀하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함부로 합니까? 다른 사람을 나를 함부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4. 기도의 축복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류광수 어머니한테 기도를 시키신 거죠. 이렇게 기도가 된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내가 기도가 된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억지로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죠. 안되기 때문에 해야지. 이것도 필요한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기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기도가 축복이구나! 이게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시간이 행복하고 기도할 때 마다 감사가 나오고 힘이 오는 겁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억지로 기도했습니까? 사명감 가지고 기도했겠습니까? 저는 억지로 기도하는 사람은 거기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대부분 나를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사명감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겠죠.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을 뻔히 다 알면서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 3번씩 기도했다. 늘 기도가 행복하고 하나님이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고 그래서 감사하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온 거지요. 사람이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뇌 세포가 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하고 즐거워하면 뇌 세포가 살아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답답한 일, 염려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기도로 바뀌면 어떻게 됩니까? 염려 문제사건 답답함 외로움 쓸쓸함이 전부 기도로 바뀌면 어떻습니까? 예레미야에게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게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덤으로 우리에게 힘도 오고 행복도 오고 기쁨도 오고 그럽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1. 네 지팡이를 들어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명령을 하라고 합니다. 네 지팡이를 들어서 땅에 티끌을 치라. 그러면 그것이 온 땅에 이가 되리라. 그래서 모세는 아론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2. 그대로 행할 새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지팡이를 들어서 땅의 티끌을 쳤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었습니다. 그게 사람에게 가축에게 붙었습니다. 이는 모기와 같은 겁니다. 힘들죠. 이가 있으면 몸이 가렵습니다. 그래서 요술사들이 왕에 보고 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4. 마음이 완악하게 하여

그렇다면 모세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안 믿습니다. 완악해져서 더 안 믿었다.

3- 하나님을 찬송하리이다

1. 믿음의 사람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아론에게 이렇게 말해라. 그럽니다. 아론이 또 바로 앞에 일을 행합니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쳐라 그게 이가 되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리라 믿었구나! 그러니까 의심도 없고 질문도 없습니다. 그냥 갔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말한 겁니다. 말씀이 들렸다. 말씀이 믿어졌다. 하나님의 축복 은혜입니다. 모세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불러도 난 못가요. 난 못해요.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믿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도 질문도 불평도 염려 의심도 없고 말씀한대로 간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은 바로는 지금 몇 번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안 믿습니다. 요술사가 임금한테 가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런데 완악해져서 안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창조적인 능력

이제 지팡이를 쳤는데 이가 되었습니다. 티끌이 이가 되었다. 생명체가 아닌 것이 생명체가 된 겁니다. 이 땅에 세상에 어떤 방법, 어떤 과학자도 역사상 생명 없는 것이 생명 된 적이 없습니다. 티끌이 이가 되었습니다. 뭘 말합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3. 영적인 습관

모세가 아론과 함께 그대로 행할 새.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모세에게는 영적인 습관이 형성된 겁니다. 나는 못해요. 나는 못가요. 나는 말도 못해요. 40년 동안 광야에게 처절하게 홀로 살았던 그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했더니 그 말씀대로 성취되는 것을 본 겁니다. 이게 자꾸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확인이 되었습니다. 의심도 없어지고 두려움도 없어지고 불안도 없어졌습니다. 핑계고 없어졌습니다. 당연하게 되어졌습니다. 습관이 된 겁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습관이 형성되면 다 되는 겁니다. 왜 우리가 복음이 계속 반복 지속 되야 합니까? 이게 우리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후대를 키웁니까? 우리속담에 3살 버릇이 80간다고 합니다. 어릴 때 좋은 습관이 평생 간다. 반대로 어릴 때 못된 습관이 형성되면 평생 고생합니다. 왜 후대교육을 합니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복음이 심어지고 아름다운 습관이 형성되면 그 인생이 복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헌신하고 있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왜 개인영적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까? 이게 어느 날 영적인 것이 나에게 습관이 되면 이제 사단은 우리 앞에 올수가 없습니다. 습관이 반복되고 체질이 됩니다. 이게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4. 하나님을 찬송하리이다

저는 이번 주에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의 무거운 짐을 한번만 대신 져주어도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저주십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사단을 꺾으신 만왕의 왕 이십니다.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제사장입니다. 지옥권세를 꺾어버리시고 천국보좌의 축복을 주신 선지자십니다. 그 주님이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짐이 많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짐이 있고 남편은 남편의 짐이 있습니다. 아내는 아내의 짐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니까 경제의 짐도 있습니다. 또 잊은 줄 알았는데 과거의 짐이 있습니다. 상처의 짐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짐을 날마다 우리 주님이 지십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 그분은 우릴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찬양합니다. 오늘 찬송가 96장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의 기쁨이 되시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짐을 져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미래의 짐도 저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혹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지었다고 해도 죄의 짐을 대신 저주십니다. 혹시 살아가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운 그 짐도 주님을 대신 저주십니다. 왜요? 예수는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자녀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존귀합니다.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그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저 주시는 구원자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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