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는 나보다 옳도다 | 조회수 : 87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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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그는 나보다 옳도다 |
성경 |
창38:24-30 |
일시 |
2019년 9월 8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축복 받은 사람
1. 오늘의 자리
▶ 우리가 살아가면서 응답과 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축복과 응답보다 오늘 어디에 있는가? 이게 먼저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강릉에 최원철 집사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아산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겁니다. 지역에 있는 의사의 소견으로는 장에 혹이 두 개가 있는데 안 좋으니까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고 입원을 해서 상황을 봐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강릉사역을 마치고 병원에 가서 전화를 했는데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겁니다. 지난주부터 아팠다고 합니다. 검사결과는 하나는 물혹이고 하나는 염증이라는 겁니다. 며칠 뒤에 결사를 다시 하기로 하고 퇴원을 했습니다. 통증은 있지만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집사님과 한진자 권사님과 수아에게 이번 기회에 집중신학원을 다함께 하자. 그래서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일을 보면서 우리는 응답도 받고 싶고 축복도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이것이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기도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축복 이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응답이었습니다.
2. 만 가지 은혜
▶ 오늘 찬송가 216장을 선택했습니다. 4절에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이번 주가 추석입니다. 제가 명절이 다가오면서 저를 한번 생각했습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일년에 몇 번씩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저희 집은 장사하기 때문에 가게에서 매달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가 복음을 받지 않았다면 추석에 당연히 제사를 지냈겠죠. 제가 보고 자란 것이 제사 문화 속에 있었습니다.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제사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인데 몰랐습니다. 제사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저희 가정이 제사를 지내는데 저희 가정에 임한 저주, 저희 가정에 임한 재앙을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함정에서 그 틀에서 하나님은 그 올무에서 저를 건져내주셨습니다. 시124: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가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응답입니다.
3. 원래의 것
▶ 하나님이 원래 인간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돼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셨습니다. 이게 영세 전에 감춰졌던 건데 이것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말고 인생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습니까? 돈이 많아도 안 됩니다. 성공해도 안 됩니다. 노력을 해도 안 됩니다. 건강해도 안 됩니다. 이유 없이 나에게 임한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 배경을 바꿀수가 없습니다. 내 운명을 바꿀수가 없습니다. 배경이 지옥배경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안 보이게 나를 끝까지 이상한데 몰고가는 사단을 알수도 없고 이길수도 없습니다. 바로 그 사단을 꺾으신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겁니다. 우린 그리스도 모르면 성경에 성부, 성자, 성령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늘 보이는 것만 찾던 체질이 돼서 안 보이니까 안 계신 줄 압니다. 이때 하나님이 저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이 땅에서 속지 말아야 되는데 옛날에 사단에게 속았던 그 체질이 계속 남아서 속는 겁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서 돈을 법니다. 땀을 벌어서 돈을 벌었는데 사기꾼에게 속아서 다 없어졌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사단에게 속아서 내 인생을 사기꾼에게 다 당한 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축복을 다 놓치고 사는 겁니다. 그게 가장 안타까운 겁니다.
4. 축복 받은 사람
▶ 눅17장에 보면 문둥병 10명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불치병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우릴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간청을 듣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나게 하겠다. 제사장에게 판정을 받으라. 그들이 가다가 정말 치유를 받은 겁니다. 평생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었던 문둥병이 치유 받은 겁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10명 중에 한 사람이 자기몸이 치유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쫓아왔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0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9명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 하나님께로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없느냐?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우리가 병이 들었는데 치유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다가 해결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거기에 머물러버립니다. 나는 응답 받았다. 나는 축복 받았다. 거기에 머물러버립니다. 안타깝습니다. 더한 사람은 그렇게 응답받고 축복 받았는데 교만해져서 하나님도 멀리하고 내 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에서 치유 받은 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축복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병이 나은 사람입니까? 응답 받은 사람입니까? 축복받은 사람입니까?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믿고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머물러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응답을 받고 가버립니다. 여기 치유받은 9명이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무엇이 축복입니까? 가이오는 많은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끝났습니까? 자기가 받은 복을 가지고 많은 교회를 돕습니다. 자기가 응답을 가지고 많은 전도자를 세웁니다. 이게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오바댜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성공한 거죠.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시대 선지자는 다 죽이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축복과 응답을 주셨나? 선지자를 살리라는 거다. 자기 집에 선지자 100명을 데리고 살리는 겁니다. 이게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평생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그는 나도다 옳도다
1. 누구의 것입니까
▶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이후에 그 형제들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형들 중에 유다가 있는데 자녀가 셋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다말이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자식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을 통해서 대를 이러가기를 원했습니다. 그게 그 시대풍습입니다. 그래서 대를 잇기 위해서 형수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은 형의 대를 잇는 자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둘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셋째는 너무 어려서 며느리 보고 친정 가서 있어라. 한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다는 부인이 죽고 외롭고 허전해서 창녀를 찾은 겁니다. 하룻 밤을 지내는데 당신이 나에게 약조물을 달라. 그래서 유다가 자기의 도장, 끈,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후쯤에 그 동네에서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유다는 며느리를 불태워 죽이라고 합니다. 이때 다말이 끌려가면서 소리 칩니다.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내가 임신했습니다. 이게 누구의 것인지 확인해 주세요.
2. 그것들을 알아보고
▶ 유다가 그것을 보니 자기 것이라. 몇 달 전에 창녀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가 며느리인 겁니다.
3. 그는 나보다 옳도다
▶ 그래서 유다는 사람들 앞에 고백합니다. 저 여자는 나보다 옳다. 내가 저 며느리에게 셋째 아들을 주지 않았구나!
4. 해산할 때
▶ 유다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를 죽이지 않습니다. 때가 돼서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쌍둥이입니다. 큰 아이는 베레스라고 하고 둘째는 세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게 성경의 내용입니다.
3- 다락방 사역
1. 시대 이해
▶ 오늘 성경 본문은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인이 둘입니다. 사라가 애를 못 나니까. 그 집에 여종을 남편의 아내로 맞는 겁니다. 애를 낳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부인이 둘입니다. 야곱은 부인이 4명입니다. 부인이 서로 애 낳기 경쟁을 합니다. 그래서 12아들을 낳았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죠.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지금 시대기준으로 이해를 하면 안 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수혼법이라고 하는데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편법으로 그 여자가 남편의 동생으로부터 씨를 받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죽은 형의 자식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대를 잇는 겁니다. 그게 그 시대 문화입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겁니다.
2. 회개하는 사람
▶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음란한 짓을 해서 임신을 했다고 불태워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자기를 통해서 임신을 한 겁니다. 사람들은 이런 속성이 있습니다. 자기 죄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무섭습니다. 사람은 죄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속이려고 합니다. 드러난 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잽니다.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게 율법주의자들의 특징입니다. 자기 죄는 숨겨져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며느리 다말은 배가 불러오니까 죄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죽이라는 겁니다. 유다는 갑자기 재판장이 되어서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생명까지도 좌지우지 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약조물을 보여주고 서야 그는 나보다 옳다. 고백합니다. 나는 며느리보다 더한 죄인이구나! 내가 저 며느리에게 셋째를 안 줘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씨를 얻기 위해서 후대를 얻기 위해서 이렇게 했구나! 자기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있지 않았구나! 이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언약을 놓쳤는데 다말은 언약을 붙잡고 있었구나! 나는 내 후대에게 생명이 전달되지 않아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말은 내 몸이 망해도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 이게 다말입니다. 이것을 유다가 본 겁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3. 생명의 후대
▶ 다말의 후손은 베레스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족보 속에 다말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이상한 방법으로 태어 난 베레스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기생 라합이 나옵니다. 살몬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방 여인 룻이 나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갑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도 이방여인입니다. 성경에 예수님 족보에 나오는 여인들의 공통점은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입니다. 무시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강권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다말은 하나님이 다 죽이라고 한 가나안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말이 야곱가문에 시집을 와서 복음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생명의 후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여인들을 통해서 생명의 후대들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생명의 후대들이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우리나라도 애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자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방인의 여자, 다말, 룻.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다윗이 태어납니다. 이런 사람의 후대를 통해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이 오십니다. 다윗의 가문은 자랑할 만한 가문이 아닙니다. 숨기고 싶은 가문입니다. 우리가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라면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윤리와 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불태워 죽을 사람입니다. 윤리의 기준으로 보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한 일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후대. 이 일을 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후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 디도를 내 아들이라. 그랬습니다. 영적인 후대를 세운 겁니다. 많은 제자를 낳았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자식이 없지만 많은 생명의 후대들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뭘까요? 우리를 통해서 생명이 전달되는 영적인 후대를 세우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4. 다락방 사역
▶ 저희 신학교에서 집중신학원을 할 때 크리스티나 사모님이 다문화 사역을 하는데 포럼을 했습니다. 이분은 소외된 사람을 품어라 버려진 자를 품어라. 이 말씀을 천명으로 받았습니다. 이분은 미국선교사님 딸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얼굴은 한국 사람인데 미국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인 줄 알았는데 한국사람인 겁니다. 또 한국에 와서 보면 미국 사람인 겁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선교를 하면서 너무 가난해서 그 상처가 말할 수 없는 겁니다. 그 가난으로 오는 아픔, 상처를 다 감추고 사는데 또 미국사회에서도 차별이 심합니다. 그 차별을 받으면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복음을 받았습니다. 회복이 되면서 저희 신학교를 졸업한 미국 목사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가 한국에 와서 보니까. 자기가 자랄 때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이 아이들에게 한명 한명 복음 전해서 다락방을 한 겁니다. 자기가 압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인간적인 위로와 방법이 잠깐은 도움이 되겠지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락방을 한 겁니다. 그리스도를 심은 겁니다. 정말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상처를 주셨냐? 하나님은 왜 우리를 차별받게 하셨냐? 다이아몬드는 깎으면 깍을수록 더 가치가 있는데 우리를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하라고 양쪽 문화를 이해하라고 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이게 먹히는 겁니다. 그 상처많은 아이들이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고 사명을 깨닫는 겁니다. 이 사모님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다문화 사역을 하는데 여러 프로그램은 잠깐이고 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차별받은 아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 사람을 살립니다. 제가 오래전에 함경직 목사님이 오셔서 홍천에 가는데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홍천에 백학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이 영안모자 회장님이 고아, 노인들의 위한 복지센터를 만든겁니다. 거기에 병원도 세우고 교회도 세워고 작업장, 교회도 세웠습니다. 왜 홍천에 세웠냐? 자기가 전쟁 고아인데 불이나서 화상을 입었는데 미군이 담요로 덮에서 불을 꺼주고 미군 부대병원에 가서 치료해 준 겁니다. 그게 홍천입니다. 미군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자신이 예수를 알게 된 겁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돌아가고 자신은 모자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고 나중에 영안모자라는 회사를 세운 겁니다. 세계최고 모자 공장 회장입니다. 그분이 세운 겁니다. 거지인데 전쟁고아인데 이 한 사람을 살린 미군이 한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거지가 전쟁고아가 나중에 커서 기업에 회장이 될 거라.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우리나라 재벌 중에 한분입니다. 우리가 왜 다락방 사역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육신적으로 인간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다락방 사역은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겁니다. 영혼이 살면 그 사람은 평생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사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나도 옛날의 나와 같이 고아들을 살리고 노인들을 살리는 겁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것 그게 다락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수만 있다면 다락방을 많이 열어놓고 그리스도 운동하는 겁니다. 바다에도 어망을 많이 쳐놓으면 고기가 많이 들어옵니다. 이게 다락방 사역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정말 축복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응답 받고 축복 받은 이후에 끝까지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후대를 세우는 사람의 최고의 사람입니다. 우린 정말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달하는 다락방 사역의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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