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조회수 : 92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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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성경 |
창29:31-35 |
일시 |
2019년 3월 10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새 틀을 갖추어라
1. 찾아낸 것
▶ 애굽에 바로 왕이 꿈을 꿨는데 너무 힘든 꿈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는데 한 신하가 요셉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얘기합니다. 바로가 그 얘기를 듣고 어떤 일을 합니까? 아, 정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불신자 바로 왕이 그 요셉을 보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왕하2장에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따라 갑니다. 엘리야가 제자에게 너는 길갈에 머물러라 그러니까. 아닙니다. 따라 가겠습니다. 또 가다가 너는 벧엘에 머물러라. 그러니까 아닙니다. 따라 가겠습니다. 여리고 에서도 또 따라 가겠습니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뭐냐? 그때 엘리사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신 성령의 역사가 갑절로 내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뻔히 압니다. 절대 한 달 동안은 누구 이름으로도 기도하지 말라. 임금님만 바라봐라. 만약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지겠다. 이게 국가법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다 알면서 전에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감람산에 불렀습니다.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이 현장에 나갈 때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아버지 약속을 기다려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말씀들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다른 제자들이 보지 못한 중요한 것을 사모했습니다. 다니엘은 죽는지 아는데 죽어도 좋다. 뭔가가 있었습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핍박시대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 충만이 뭔지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다른 것 실컷 하고 다른 것은 다 가지고 있는데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세계, 영적비밀, 영적 힘을 놓치면 인생은 허당입니다. 바로 왕이 감동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사모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엘리사가 원했던 갑절의 영감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감사하며 무릎 꿇었던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핍박과 누명을 썼지만 상관이 없는 영적인 세계 영적인 축복을 찾아내야 합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통해서 임금님이 아버지여 그랬습니다. 도단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전 세계에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가 일어났습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을 통해 250년 만에 로마복음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부족하지만 성령이 역사하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2. 옛 틀을 깨라
▶ 사단이 무엇을 우리에게 심어놓았습니까? 아무 가치도 없는 것, 쓸데도 없는 것, 틀린 것, 망할 것을 심어놓아서 인생을 아무 가치 없게 살게 만듭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흙을 먹으면 됩니까?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마시면 됩니까? 사람이 없으면 없는데서 시작해야지 없는데 허영에 들떠서 사치하면 됩니까? 그건 아닙니다. 사람이 갈급하면 거기서 시작해야 하는데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왜 사람들이 시기 질투 비교합니까? 내 것이 없어서 그럽니다. 내가 많으면 내가 힘이 있으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신경 안 쓰입니다. 우리는 나를 바꿔야지 자꾸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뭔가 부족하니까 다른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겁니다. 나를 바꿔야지 그 사람을 헐뜯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 내가 정말 힘이 없구나! 내가 정말 부족하구나! 그럼 그 자리에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남을 헐뜯고 끌어 내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옛 틀을 깨라는 겁니다.
3. 새 틀을 갖추어라
▶ 왜요 너는 복의 근원이다. 그러니 새 틀을 갖추라는 겁니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내가 저주 할 거다. 너를 축복하면 내가 축복하겠다. 그러니 너는 새 틀을 갖추라.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너를 당할 자가 없다. 이 언약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복의 근원이다. 나는 언약 속에 있는 사람이다. 새 틀을 갖추고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를 불러서 나를 따라 와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어부는 그날그날 고기 잡아 먹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네가 비록 어부지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새 틀을 갖춰라. 바울에게 너는 이방인에 사도가 될 것이다. 너는 과거에 나를 핍박하고 저주하고 복음 전하는 교회를 핍박했지만 너는 임금들과 많은 왕을 살리고 이방인에 사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 언약 속에 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부르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언약의 여정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자의 여정 속에 살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의 흐름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흐름 따라 강단 흐름 따라 인도 받는 삶. 이게 새 틀을 갖추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 듣는 이 자리에 있다는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복음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응답입니다. 내 인생이 전도자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승리하는 삶입니다. 물론 시간표와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를 통해서 복음운동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평강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정한 것이 없으니까 흔들리는 겁니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럽니다. 우리는 아무리 부족해도 언약의 여정, 복음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전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흔들리는 겁니다. 우리가 내가 복음전해야지! 후대 살려야지! 교회 살려야지! 이 생각 자체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4. 말씀 성취
▶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많은 각인 뿌리 체질 잘못된 것들이 치유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내 마음과 생각이 집중되는 겁니다. 그래서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것을 알게 됩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이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복 있는 자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말씀이 즐겁고 말씀 듣는 그 시간이 행복하고 그 말씀이 생각나고 이미 복 받은 사람입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우리가 주의 법,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오는 응답 중에 응답이 큰 평안이 옵니다. 하나님 주신 평안입니다. 그러니까 장애물이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말씀응답입니다.
2-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사랑 받지 못함
▶ 오는 말씀에 보면 레아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합니다. 원래 결혼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방법에 따라서 아버지 뜻에 따라서 결혼을 한 겁니다. 준비 안 된 결혼이죠. 그러니 남편이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을 안 해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의 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 백성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보시고 아십니다.
2. 나의 괴로움
▶ 레아가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의 괴로움을 들으셨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레아는 그냥 법적인 부부일 뿐입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의 감정도 없고 그러니 레아의 가슴이 얼마나 아픕니까? 사랑 받지 못한 그 마음을 하나님이 돌보셨구나! 그 증거로 아들을 주셨구나! 그런데도 남편을 관심이 없고 사랑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의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알 받지 못한 것을 들으셨다. 그래서 내게 아들을 주셨다.
3. 나와 연합
▶ 이제는 남편이 나와 연합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주지 않겠나! 소망을 가지고 아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4.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레아가 또 다시 임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제는 네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내가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느냐! 나에게 관심 가져 주느냐! 거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나는 이제 하나님을 높이겠다. 나는 이제 하나님 바라보고 살겠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관심 받고 사랑받는 것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나는 이제 하나님 바라보고 살겠다. 나는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다. 나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겠다. 나는 하나님만 높이고 살겠다.
3- 성전 세우는 문화
1. 사람의 멸망
▶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한 여인의 아픈 인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답답했으면 그 아들을 낳을 때 마다 자기 아픈 가슴에 상처들을 아들의 이름에 새기는 겁니다. 사랑 받지 못한 사람, 인정받지 못한 사람, 관심 받지 못한 사람의 아픔이 얼마나 큽니까? 어떻게든 사람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게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습이고 내 모습입니다. 자신의 열악한 신세를 자식을 낳을 때마다 이름에 새기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아픈 여인의 모습입니다. 그가 그 고통과 슬픔 가운데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은 긍휼이 여기셔서 자식을 주어 위로하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마음도 관심도 사랑도 주지 않습니다. 그가 깨닫습니다. 내가 더 이상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겠다. 나는 여호와를 찬송하겠다. 그 시대 최고 사명이 자식 낳는 겁니다. 레아는 자식을 낳아도 아무 대우를 못 받습니다. 그때 깨닫습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레아의 열망을 바꾸셨습니다. 세상 것으로 채우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깨닫게 하셨습니다. 한나가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자식이 없구나! 하나님께서 한나의 열망을 바꾸시고 응답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왜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그렇습니까?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낙심하고 좌절합니까?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은 끝이 없고 한이 없습니다. 레아가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사랑받으면 되지 않겠나! 남편과 연합하면 되지! 그게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레아의 모든 관심은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셨습니다. 변하지 않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변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2. 변하지 않는 것
▶ 오늘 찬송가 430장을 선택했습니다.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변하지 않는 것 붙잡고 인도받는 겁니다. 이 땅에 변하는 것을 붙잡고 있다가 이게 아니구나! 후회되죠. 사람의 사랑 받는 것 좋은 거죠. 관심 받고 인정받는 것 좋은 거죠. 그러나 그것은 변하는 겁니다.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 변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이게 뭔가 그럽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레아가 깨달았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꽃이 아름답지만 어느 날 시들어버립니다. 그 시들어버릴 것을 붙잡지 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래서 바울은 롬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변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사는 겁니다. 무엇이 변하지 않습니까? 복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똑같이 창세기3장에 사건이 계속 일어납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계속 속이고 망하게 해서 네가 인생 주인이야. 네 스스로 살 수 있어. 사단이 지금도 속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까지도 속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복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피 제사면 산다. 피 제사 적용하면 그 현장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우린 변하지 않는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우리 인생 변하지 않는 것은 복음운동 전도운동입니다. 내 인생이 여기에 올인 하고 집중되어 있다면 하나님이 내 인생 책임지는 겁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된 이후에 끝이 오리라. 사람의 감정, 관심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운동 전도운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복음 받은 제자들은 핑계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익, 자기 동기 따라 삽니다.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인도 받는 것이 복 있습니다.
3. 집중 훈련
▶ 갑자기 집중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3월 마지막 주에 집중합숙을 계획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회가 집중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이번 주 금, 토요일에 집중훈련을 받게 됩니다. 4월에도 받고요. 왜 이렇게 갑자기 이럴까? 제는 일을 갑자기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크다. 이런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급하게 주실 은혜가 있구나! 우리가 어떤 때는 이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돌아라. 이해가 안 되는 일인데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번 집중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실 은혜가 크기 때문에 갑자기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힘을 얻어 버리면 은혜를 받으면 이게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우리 수준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정에 교회에 나에게 후대에게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감람산에 불러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집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할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아버지 약속을 기다려라. 제자들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열흘 동안 집중해서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들의 수준, 한계, 배경 다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에 불러서 다 회개하자. 우리가 우상을 버리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리고 며칠 집중했는데 블레셋이 쳐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박을 내리셔서 블레셋을 다 꺾었습니다. 빼앗겼던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평화가 그 땅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4. 성전 세우는 문화
▶ 저는 성전을 볼 때 마다 안타깝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성전도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것이다. 이제는 기도할 시간표가 왔다. 생각이 듭니다. 마음껏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예배당이 필요합니다. 여기 교회 처음 왔을 때 마음껏 기도하고 찬양하려고 드럼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지나고 다 치웠습니다. 옆집에서 항의가 들어와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껏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이런 예배당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우리 후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고 끼도 발산할 수 있는 예배당이 필요합니다.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왜 방주를 만들라고 했을까요? 성경은 너와 네 가족을 위해서 방주를 지어라. 그랬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못 질에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120년을 했습니다. 왜 방주를 만들라고 했나? 그게 네가 사는 길이고 네 후대가 사는 길이다. 네 가정이 사는 길이다. 노아가 이것이 깨달아 지니까. 땀 흘리고 수고하는 것이 전부 축복이고 감사였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피 제사 드려라. 피 제사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짐승을 칼로 피 흘리고 삶아 먹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네 가족 네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그런 수고와 헌신이 없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길이기 때문에 거기에 헌신하는 겁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광야에 백성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소중한 것을 바쳐서 성막을 만듭니다. 그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짓고 백성들이 모든 텐트를 성막 중심으로 텐트의 문을 성막을 향해 짓는 겁니다. 이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면 평생이면 계약이 성전입니다. 왕은 과정입니다. 그의 고백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게 평생소원입니다. 다윗의 이면계약입니다. 나의 평생소원이 뭡니까? 그는 대상29: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다윗은 성전 지을 준비를 위해서 저축했다가 성전에 드립니다. 우리 인생이 사람 살리는 성전, 후대 키우는 성전, 지역 문화를 바꾸는 성전, 세계 살리는 성전에 마음 담고 기도하면 인도받기를 바랍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는 새 틀을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는 언약 속에 있는 나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나입니다. 이게 새 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를 찬송하는 인생, 성전 마음 담고 인도받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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