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내 언약을 세우리니 | 조회수 : 107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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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내 언약을 세우리니 |
성경 |
창세기6:17-20 |
일시 |
2016년 12월 4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택함 받은 사람
1. 마무리하는 사람
▶ 두 달 전에 김영희 장로님이 오셔서 양양 집에서 아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할 계획이라고 그런데 아들 목사님이 엄마 아빠는 하나로 교회 장로님이니까 오지 마세요. 그런데 손주가 3명인데 아이들도 봐줘야 하고 또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래도 아들 목사 개척하는데 동참을 해야겠습니다. 두주 전에 장로님들과 식사를 하는데 김영희 장로님이 마지막 주일에 식사 당번인데 봉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그러시는 겁니다. 그 자리에 김경희 장로님이 계셨는데 목사님 제가 아무래도 조카라 교회 개척을 하는데 가서 좀 도와야겠습니다. 이해 부탁합니다.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전도회 임원들과 다락방을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께 보고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강단말씀 따라서 인도를 잘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단은 좋은 일고 그래서 사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그분들이 맡고 있었던 일을 다른 분들이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번 주에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참 귀한 장로님들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에 권사님이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그 권사님이 청량리역에서 빵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서 닭장을 사서 개조를 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인정도 많고 사랑도 많은지 교인들이 그분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참 좋은 분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교회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이 소천을 하셨습니다. 장례를 하는데 그 권사님의 며느리가 장례를 마치는데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제가 이제부터는 시어머니가 앉아 기도했던 그 자리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시어머니가 하셨던 헌신을 이제는 제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교인들일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부족하지만 권사님처럼 큰일을 못하지만 형편에 맞추어 교회 봉사하고 헌신하겠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하셨습니다. 참 좋은 교회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세분이 오늘부터 가셨습니다. 그 빈자리가 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성도들이 더 교회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시고 또 내가 해야 할일이 뭔지 찾는 것이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후대를 살리는 일에 더 마음 담고 기도해야 합니다.
2. 나의 위치
▶ 지난 수요일에 서울 지교회 배수윤 목사님이 소천 했습니다. 제가 어제까지 발인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마지막 제가 발인 예배를 드리면서 남편과 두 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엄마가 없다고 아내가 없다고 빈자리만 생각하고 있다면 현실을 모르는 겁니다. 엄마는 이제 안 계신다. 그럼 빨리 현실을 인정해라. 빨리 엄마가 없구나! 아내가 없구나! 그것을 알고 내가 아내의 일을 내가 엄마의 일을 하겠다. 이게 바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로 영적 힘을 얻어서 이런 일을 감당하는 자세로 살아가시라고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위치가 다 다릅니다. 내 위치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 복됩니다.
3. 택함 받은 사람
▶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모세를 택하셨을 때 모세의 상황은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너를 바로에게 보내서 내 백성을 건져내겠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자신을 잘 압니다. 내가 누군데 갑니까? 이제 출3:12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약속은 딱 하나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 약속 하나입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자기에게 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잘 압니다. 또 애굽에서 40년 왕자로 살았기 때문에 애굽을 알고 바로를 압니다. 내가 나이 많고 가진 것 없고 능력 없음을 잘 압니다.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 나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를 들어서 택하셔서 이 민족을 살리겠다. 내가 일에 택함을 받았구나! 이 일을 확인한 후부터는 모세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택함 받은 것을 안후부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데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근원적인 힘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것은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에게 근원적인 근거, 근원적인 힘이 어디에 있어야 하냐?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이것을 딱 붙잡으세요.
4. 실패자도 됩니다
▶ 이것을 붙잡으면 실패자도 되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데로 모세의 80년 인생은 누가 봐도 실패자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80입니다. 거기에 목동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가 없습니다. 자기 것이 없습니다. 비참한 인생이죠. 저는 모세를 생각할 때 우리 성도들 중에는 모세와 같이 실패한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 모세보다는 나은 인생입니다. 누가 그 사람을 인정합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 모세를 불러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희생제사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희생제사 비밀이 뭡니까? 사단을 꺾으신 피 제사입니다.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피 제사, 지옥 권세를 꺾으신 피 제사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주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은 그 모세 한 사람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모세 인생을 보면서 문제가 없었던 사람보다 또 인생이 늘 승리했던 사람보다도 인생이 처절히 실패했던 모세가 한 맺히게 이 약속을 붙잡았던 것 아닙니까! 피 제사 아니면 살길이 없다. 이런 피 맺힌 한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실패의 아픔과 비참함과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흔히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밥이 뭔지를 안다. 늘 먹을 것이 풍성한 사람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본 사람과 밥이 생겨서 눈물 흘리며 밥을 먹어본 사람과 같겠습니까!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 물론 영적이 문제가 있겠지만 피 제사를 피 맺힌 한으로 붙잡았을 겁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2- 내 언약을 세우리니
1. 홍수를 일으켜
▶ 홍수를 일으켜서 모든 육체를 멸하겠다. 땅에 있는 다 죽이겠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심판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게 하신 일이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또는 정죄 우리 인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의 저주에 메여있습니다. 이 심판의 문제를 누구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겁니다.
2. 생명의 기운
▶ 그럼 심판이 뭡니까? 요3:18에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심판이 뭡니까? 육신적으로 병들고 사업이 망한 것이 심판입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 모르기 때문에 사단의 종이 되는 겁니다. 결국 지옥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저주 속에서 운명 속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판을 해결하실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럼 심판이 뭡니까? 그리스도 안 믿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리스도 안 믿기 때문에 모든 저주는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 홍수가 왔습니다. 이 땅에 모든 생명의 기운, 모든 육체는 생명의 기운이 있는데 그게 숨 쉬는 것이고 호흡하는 것인데 이 생명의 기운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겁니다.
3. 내 언약을 세우리니
▶ 그런데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겠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변할 수 없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한순간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쌍방의 약속이 아니고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 내가 너에게 은혜를 주었다. 내가 너에게 피 언약을 주었다. 하나님의 이 약속, 언약은 일방적입니다.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마16:16-20,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 속에 있습니다.
4. 생명을 보존하라
1) 그 방주로 들어가라
▶ 그래서 그 방주로 들어가라. 이 방주는 하나님이 설계한 겁니다. 하나님을 바로 보도록 설계한 겁니다. 그래서 위로 창을 냈습니다. 왜요? 인간은 영적 존재기 때문에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이 방주에 너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인격, 선행,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방주 안에 들어간 자들은 결코 심판을 받지 않도록,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2) 생명을 보존하라
▶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라. 그랬습니다. 너와 네 가족, 왜 노아의 가족입니까? 이 생명운동을 이어갈 사람들. 이 피 제사를 전달한 사람들, 이 방주운동을 전달할 사람들 그 택한 받은 백성입니다. 우리는 잘 해도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사람하고 개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사람이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개한테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됩니다. 개와 비기면 개 같은 놈이 되는 겁니다. 참 우린 세상 살면서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우린 생명 살리는 일, 후대 살리는 일, 교회 살리는 일에만 관심 가지면 됩니다. 누가 어떻고 뭐가 어떻게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낭비할 가치 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3- 영적 지향성
1. 한 사람
▶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을 통해서 시대를 살리셨다. 그것을 제 가슴에 담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택함 받은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2. 각인 전쟁
▶ 지금 이 시대는 각인전쟁시대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여 우리 입으로 말하라. 시인하라, 선포하라. 왜?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각인이 바뀌어야 말이 나옵니다. 분명히 우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면 우린 새로운 피조물의 축복 속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얼마나 다른 것이 많이 있는지요!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에게는 흔적,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게 항상 보입니다. 왜요? 내가 그리스도 알지 못해서 복음을 핍박했던 자 아닙니까? 그러던 자기에게 예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게 항상 보이는 겁니다. 그리스도 흔적. 이것을 늘 보면서 자신에게 각인시켰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육체의 가시. 성경학자들은 안질, 간질 이런 얘기를 합니다. 바울은 늘 그것을 보면서 각인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왜? 복음소식, 기도개인화, 집중훈련, 특별훈련을 합니까? 각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예수의 흔적, 육체의 가시가 발판일 될 줄 믿습니다. 그럼 스스로 복음 속으로 스스로 기도개인화 속으로 스스로 집중훈련 속으로 스스로 특별훈련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3. 반응하는 사람
1) 하나님 앞에
▶ 창3:8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사단에게 속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잘못인데 더 잘못은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숨었다는 겁니다. 이게 사단에게 잡힌 사람의 특징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불러서 동침하고 애를 낳고 충성스런 부하도 죽게 만들었습니다. 나쁜 놈이죠. 삼상12:13에 나단이 얘기합니다. 당신이 죄인입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도다. 회개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혹시 상처가 있고 문제가 있나요? 하나님 앞에서면 모든 것이 발판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2) 반응하는 사람
▶ 오늘 찬송가260장르 불렀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3절에 지금 죄에서 사함 받았습니다. 지금. 4절에 주님이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우린 언약의 사람이요. 택함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응합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알고 반응할 줄을 알고 그래야 합니다. 아이들도 보면 반응하는 것을 보면 예쁩니다. 기쁜 일을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은 같이 슬퍼하고 이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전혀 기뻐할 줄도 모르고 슬퍼할 줄도 모른다면 이건 뭔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이 시대를 보며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마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피리를 불면 사람들이 춤을 춰야 하는데 춤 출 줄도 모르고 애곡해도 슬픈 얘기를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감정이 메마른 시대라고 예수님이 진단하셨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합니까! 반응하는 것이 복됩니다.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4. 영적 지향성
▶ 은혜 받은 사람은 생각도 바르고 방향도 바릅니다. 성경에 바리새인들을 보면 규모도 있고 인격적이고 성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왜요?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주인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니까 인생을 자기가 꾸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보다 복음보다 자기 의, 자기 규모, 자기 인격, 자기 선함 이게 더 앞장섭니다. 그러니 속으로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기 자아가 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가다락방 성도들을 쓰셨습니다. 인격, 규모 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쓰셨습니다. 왜요?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자신을 잘 압니다. 내 인격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내 수준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나에게는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다. 나에게는 어제도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내일도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오직 그리스도 아니면 소망이 없다. 이것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정말 이 땅에 문제가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죄의 저주입니다. 결국 지옥 가야됩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제도 오늘도 그리스도, 미래도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교회에 유익한 것, 사람을 살리는 것, 후대를 키우는 것이 영적 지향성이 되면 가장 복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점치는 일을 계속 하다가 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굿을 계속 하다가 망합니다. 인생이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 찾아다니다가 그 사람과 함께 망합니다. 그런데 성령인도 받는 사람들은 계속 성령인도 받다가 가장 복 있는 인생을 삽니다. 계속 기도하는 사람은 계속 기도 속으로 들어가다가 응답의 주인공 됩니다. 계속 강단 말씀을 붙잡고 따르다가 가 말씀 성취를 보게 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다가 응답을 받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일에 관심 같고 인도 받다가 그 응답의 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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