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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과 동행 조회수 : 1016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10-19
  첨부파일:   20161016.hwp(31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하나님과 동행

성경

5:21-27

일시

20161016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1. 신앙의 기본

지난 월요일에 우리 교회에서 노회를 했습니다. 노회장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어느 교단에 장로님들 수련회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80% 이상이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었다. 그런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또 어떤 기독교 단체에서 조사를 했는데 하루에 얼마나 기도를 하느냐? 물었더니 평균 하루에 2-3분 기도를 한다. 그런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교회는 다니는데 성경 말씀은 안 읽고 교회는 다니지만 기도 생활은 안 된다는 거죠. 이 말은 구원은 변함이 없습니다. 말씀 안 읽고 기도 안 해도 세상적인 축복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축복, 영적인 능력, 영적인 행복, 성령 인도는 없죠. 자기 수준 따라 자기 기준대로 자기 방법대로 살겠죠.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는 다녀도 전도는 상관이 없죠. 교회는 다니는데 성경을 안 읽으니까. 말씀 따라 사는 것은 모르죠. 교회는 다녀도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안 하니까 영적인 응답을 없죠. 더 큰 문제는 세상은 강한데 우린 참 연약합니다. 그런데 평상시 잘 모르다가 어떤 문제가 왔다. 어떤 어려움이 없다. 어떤 답답한 일이 왔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럼 어디서 힘을 얻을 것이며 어떻게 인도를 받을 것이냐? 그러니까 사람 따라가고 사람 의지하면 인도 받겠죠. 우리가 신앙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큰 것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서 인도 받는 겁니다. 이게 신앙의 기본입니다.

2.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창세기 3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을 보면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당연히 도와주어야 하는데 자세히 보면 안 도와줍니다. 큰 아이가 힘이 있다고 동생 것 빼앗고 그럽니다. 우린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창세가 3장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치유가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형보고 동생 때리지 말고 도와줘야해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습니다. 못살게 합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 치유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힘들지만 아동센터, 비전센터, 선교원, 공부방을 할까요? 세상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빼앗고 왕따 시킵니다. 그러니 약한 사람은 계속 상처받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사람 심리가 이상합니다. 사람이 약하면 도와주고 해야 하는데 더 무시합니다. 더 뺏어갑니다. 그러니 약한 사람들이 상처가 쌓이고 울분이 쌓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폭발합니다. 아이들도 괴롭고 힘듭니다. 우린 정말 사람을 복음 안에서 치유 받고 복음 안에서 힘을 얻어서 세상의 성공자로 후대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돕고 사람을 살리는 이런 후대로 키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야할 이유입니다.

3. 새사람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얼굴이 예뻐집니까? 키가 커집니까? 아이들이 공부가 잘 됩니까? 갑자기 부자가 됩니까? 그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환경과 상황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혼이 바뀌는 겁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이전 것은 끝난 겁니다. 영적인 것이 바뀌는 겁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고 삶도 바뀌는 겁니다. 지난주에 한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이런 고백을 하십니다. 자기가 교회를 다녔지만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가 그리스도, 사단을 꺾고 죄의 저주를 해결하시고 지옥 권세를 해결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죠. 저 사람 왜? 저럴까? 늘 이런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늘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깨닫고 보니까 자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 저분이 저럴 수밖에 없지! 내가 어떻게 저 사람을 잘 도울 수 있을까! 왜 저 모양이야 이게 아니고 그래, 저 사람이 그리스도 못 누리니까 저럴 수밖에 없구나! 또 불신자를 보면 저 사람 어떻게 살리지! 이렇게 자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족 중에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 내가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하지! 어떻게 저 사람을 잘 도와서 내가 깨달은 그리스도 알게 할까! 그러니까 그때부터 가정이 바뀌고 아이들이 바뀌고 주변이 바뀌고 그랬다고 합니다. 참 저 사람 소중하구나! 참 저 사람 불쌍하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생긴 거죠. 우리가 얼마나 똑똑하고 잘났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 거지!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래, 복음은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지!

4.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오늘 찬송가 524장을 선택했습니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을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우리가 죄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사단의 올무에 잡혀 있었습니다. 상처라고 하는 저주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을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거기서 빠져나왔습니다. 이게 구원의 감격입니다. 대상15:29절 이하에 보면 언약궤가 왕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너무 기뻐서 백성들과 노래하며 춤춥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인데. 이것을 보던 아내 미갈이 생각합니다. 왕이 체면도 없이 저런다며 업신여깁니다. 다윗의 심정을 보세요. 이것이 다윗의 영적 상태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15:24절 이하에 보면 둘째 아들 탕자가 못된 짓을 합니다.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재산을 달라고 해서 그 재산 다 탕진하고 못 된 짓에 다 쓰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식이 거지되어 돌아왔는데 돌아온 자식을 보며 너무 기뻐서 잔치를 베풀어라. 그럽니다. 죽었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 한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삶을 인도하십니다. 천국까지 보장하시고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빚진 자로 살다가 빚을 다 갚으면 얼마나 후련합니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습니다. 얼마나 빚에 눌렸으면 그렇습니까? 우린 사단의 올무에서 지옥의 올무에서 죄의 올무에서 살다가 그 올무를 그리스도께서 꺾으시고 우릴 건져주셨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십자가상에서 다 해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 만나게 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기뻐 뛰며 노래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즐거움도 막 뛰고 놀고 그러는데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늘 짓눌려 살고 있고 기쁨이 없다. 감격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거죠. 다윗은 이것을 누려서 하루에 7번씩 찬양을 한다. 내가 영원히 찬양한다. 난 평생 찬양한다. 살아있는 동안 난 찬양한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상태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

1. 에녹

에녹은 아담의 7대손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아담의 7대손 에녹이 있고 가인의 후대인 에녹이 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4장에 가인의 후손인 에녹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인이 성을 짓고 성 이름을 에녹이라 했습니다. 그 에녹은 아버지 가인의 피를 받아서 라멕을 낳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살인하는 후손을 태어나게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 셋의 후손 에녹은 유다서115절에 보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심판 받을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라는 겁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죄가 가득했는데 복음을 전한 사람이 에녹이라는 겁니다. 구원의 길을 말해준 사람이 에녹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

그 에녹은 성경에 보면 300년 동안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반짝 하나님과 동행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 자기감정대로 살았다. 이게 아니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게 에녹의 인생입니다. 피 제사를 아는 가문입니다. 그 언약을 아는 가문입니다. 11:5에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 했습니다. 인생이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만큼 기쁜 인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임마누엘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게 죄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왜요? 함께 하기 위해서. 그 예수님이 함께 하는 방법이 아예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내가 너희 안에서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와 함께하는 겁니다. 이렇게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 이것이 에녹의 인생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목사님 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과속을 했습니다. 경찰에게 걸렸습니다. 경찰이 목사님 이렇게 빨리 다니면 안 됩니다. 딱지를 떼는데 앞으로 천천히 다니세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항상 같이 다니 시니까요. 경찰이 3명이 타는 것은 위법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에녹이 사실적으로 누렸다. 이겁니다.

3. 세상에 있지 아니함

에녹은 하나님이 불러갔습니다.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11: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 영혼이 죽지 않기 때문에 육체가 죽은 이후에 영혼이 가는 곳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에녹의 영혼을 데려갔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분명히 천국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땅은 영원한 세상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 노아로 말미암아 홍수가 올 땅입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습니다. 에녹은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천국으로 간 사람입니다.

4. 므두셀라

그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 969세까지 살았다. 성경이 말합니다. ? 969세까지 살아야 할까요? 이 므두셀라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의 손자 노아에게 언약을 전달할 사명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나던 해에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길게도 살 수 있고 짧게도 사는데 그 인생이 하나님 손안에 있는데,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은 후에 심판이 오리라. 그 심판이 홍수 심판입니다. 므두셀라가 살아 있을 때는 홍수 심판이 안 옵니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격려한 사람이 므두셀라입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는 아버지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후손 노아에게 이 언약을 계속 심은 겁니다. 인생을 살면서 후대에게 신앙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부모라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피 제사, 언약의 가문, 후대를 이어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노아에게 피 언약을 뿌리, 각인, 체질 시키는데 그 인생을 쓰임 받았습니다. 그 시대 흔들리지 않는 제자 세우는 것이 므두셀라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사명 감당하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이게 므두셀라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3- 벽을 넘어선 사람

1. 하나님의 마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무엇을 원할까요? 육신적으로도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원할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리는 복 받기를 원했습니다. 1:28.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인격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인격이 있기 때문에 타락 할 수도 있고 불순종 할 수도 있고 순종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인격을 주셔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폭력적으로 우릴 다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단에게 메여있을 때 그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죄의 저주 가운데 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저주 해결하시고 지옥 배경에 살고 있을 때 천국의 소망을 주신 그 분이 우릴 인격적으로 대우하셨습니다. 자원해서 순종하고 자원해서 충성하고 헌신하시를 원하시는 겁니다.

2. 벽을 넘어선 사람

1) 벽에 갇힌 사람

그런데 이 축복을 몰라서 우리가 벽에 갇힌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세요. 그 속에 어떤 사상이 있습니까? 선민사상, 율법사상 유대인들은 착하고 진실하고 성실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만, 율법사상에 갇혀서 남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러니까 하나님과는 방향이 안 맞습니다. 육신적인 축복은 받았을지 몰라도 그들은 망했습니다. 사울 왕을 보세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디에 갇혀 있나요? 내 왕권, 내 자식에게 물려준다. 갇혀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자살하여 죽습니다. 우린 과거에 어디에 갇혀 있었나요? 사단에게 갇혀있었습니다. 죄의 저주 속에 지옥 운명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 물질 ,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성공, 여기에 갇혀 있습니다. 사람이 원망, 불평 할 수 있죠. 그러나 늘 원망, 불평한다? 그 속에 불신앙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 속에 깊이 숨겨진 상처가 있는 겁니다. 늘 신경질, 짜증낸다. 늘 그런다. 그건 그 속에 실패된 감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린 교회에서 복음소식 지속하고 기도 개인화해야 할까요? ? 우린 집중 훈련 통해 메시지 지속해서 듣고 왜? 정시기도 해야 할까요? ! 내가 벽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구나! 인정하면 지속합니다. 우리가 세상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때만 하면 되는 것이 있나요? 어떨 때는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도 가야되죠. 공부가 싫어도 할 수 있도록 설득합니다. 직장도 가기 싫어도 가야하죠. ? 우린 예배 속에 기도 속에서 찬양 속에서 인도 받아야 할까요? 안 해야 할 이유, 핑계가 너무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 의식 속에 무의식속에 영혼 속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요? 사단을 꺾으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지옥 권세 깨뜨리시고 천국 소망을 주신 그리스도 그 분이 함께 하시고 나의 주인 되시고 왕 되심이 의식, 무의식, 영혼 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이러지 않으면 절대 벽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2) 벽을 넘어선 사람

우린 벽에 부딪혔다. 한계에 왔다. 그럽니다.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분명히 벽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하고 나이 75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쉽지 않죠. 말씀 붙잡고 떠났죠. 분명히 벽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말씀 붙잡고 가는데 또 문제가 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래 내 힘으로 안 되지! 다 양보하고 마므레 숲에 들어가서 제단 쌓습니다. 아브라함이 상상 못할 일이 일어납니다. 벽을 넘어섰습니다. 37:9에 요셉을 보세요. 엄마 없어요. 형들이 괴롭혀요. 그 벽을 넘어설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얘기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셉은 문제, 어려움 올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창37:9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이 언약을 붙잡습니다. 언약 붙잡은 요셉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벽을 넘어섰습니다. 3:10에 나이 80인 모세,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던 모세를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모세는 피 제사 언약 하나 붙잡고 인도받았습니다. 마가다락방 교회는 베운 것도 없고 약하고 돈도 없습니다. 이단 누명 쓰고 있습니다. 핍박받습니다.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 주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언약 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느 날 오순절 날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바울이 왕 앞에 고백합니다.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내가 눈이 어두워서 사단에게 잡혀서 영적인 눈이 어두웠다. 그 어둠에서 빛으로, 내가 알고 보니까 사단의 권세에 잡혀있었는데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내가 죄의 저주 가운데 있었는데 죄로부터 자유 함을 얻고 나를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셨다. 우린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나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23)

3. 강한 후대

우린 강한 후대를 새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결혼 안 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 디도에게 내 아들아. 그럽니다. 영적인 후대입니다. 지금 우리 후대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얼마나 거칠고 나 밖에 모릅니다. 이 후대들에게 올무를 끊어버리고 벽을 넘어서게 하는 그리스도, 반드시 전달해야 합니다. 14: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후대들을 믿음 안에 복음 안에 언약 안에 세워야 합니다. 어린 양을 먹이라. 후대를 우리 보다 강한 후대로 세워야 합니다. 나 보다 못난 자식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후대들에게 어찌하건 언약을 심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서울 임마누엘 교회 황상배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본인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새신자 교육인데 새신자를 교육시킬 교사들 교육을 누구에게 맡길까? 그런데 본인 사모님께 맡겼다고 합니다. 왜냐? 가장 내 마음을 잘 알고 그 심정으로 사역을 할 수 있으니까? 후대가 중요하니까요.

4. 인생 이유

우리 인생 이유는 뭡니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vs 사단과 동행하느냐? 이겁니다. 한 번사는 인생인데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느냐?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어린 양을 먹이는 일에 방향을 맞추고 있느냐? 이겁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이 있는 현장에서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16:16-20)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모르고 삽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 이겁니다. 가인의 후손은 세상 적으로 보면 성공했지만 하나님의 관심밖에 있습니다. 아담의 계보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 땅에 훌륭한 사람, 배운 사람도 많은데 피 언약을 전달할 후대들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후대들이 왜? 성공해야 합니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피 언약 전달할 후대로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인생이유입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구원의 참 감격이 있다면 기뻐 뛰며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동행하는 겁니다. 벽을 넘어서고 강한 후대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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