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호와의 이름 | 조회수 : 112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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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여호와의 이름 |
성경 |
창4:25-26 |
일시 |
2016년 10월 2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이제는 살았구나
1. 기대되는 사람
▶ 지난 주일에 교회 마당에 풀을 뽑고 나무 정리를 했습니다. 교인들의 수고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을 하고 있는데 렘넌트들이 와서 자기들도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손 조심해라. 그랬더니 아이들이 끝까지 하는 겁니다. 보통 아이들은 하다가 마는데 우리 아이들이 끝까지 하는 겁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소망이 있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하다가 말고 또 일을 방해하고 시켜도 안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와서 하겠다고 하고 끝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장래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보면 압니다.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른들도 뭔가 한 가지 일을 하면 지속하는 사람은 반드시 뭔가 일이 됩니다. 그런데 하다 말다 그러면 어떤 일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소망이 넘치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맡았으면 끝까지 하는 그런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
▶ 지난 주 집회 때 부평에 박용배 목사님이 계신데 이 분이 간증을 하는데 교회가 저지대에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교회에 물이 차서 예배드리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러던 중에 다른 곳에 교회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과 의논을 해서 예배당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빚이 있는 상황에서 구입을 해서 빚이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헌금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어려우니까 마음은 있어도 헌금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조선족 여자 성도가 있는데 그 분은 늘 옷도 5천 원짜리 비싸면 만 원짜리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입고 먹는데 돈을 절약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고 교회에서도 조선족이니까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매년 북한 선교를 놓고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 정도를 헌금하는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게 절약을 해서 돈을 모아서 북한 선교를 하는 겁니다. 북한 선교하는 목사님도 후원을 하는 겁니다. 그것j이 교인들에게 알려지니까 교인들도 저렇게 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저렇게 많이 헌금을 하는데 우리도 헌금을 해야 하지 않냐!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어려움의 고비가 넘어갔다고 합니다. 또 RU 박사학위를 받는데 학교에 후원을 해야 하는데 교인들이 그것을 알고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일을 해야 훌륭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 귀합니다. 아무래도 어렵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불신앙에 잡히고, 나는 안 돼!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정받지도 못하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이 분이 꾸준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데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우린 참 부족하고 연약하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위기 믿음의 분위기를 만드는 이런 축복의 사람이 되면 이것처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없습니다.
3. 이제는 살았구나
▶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내 몸을 고칠 약을 발견했다. 죽을병에 걸렸는데 내 병을 고쳐줄 의사를 만났다면 아 이제는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우리가 밤중에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데 어디선가 불빛이 보인다면 아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천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1:21에 예수님이 그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 예수가 태어났는데 백성을 구원할 자다. 그랬습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수천 년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또 속국이요. 얼마나 답답한 세월을 지냈습니까? 그런데 그 분이 오시면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 죄를 해결하시고 지옥 권세를 해결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는데 바로 그 분이 오셨다. 그 분이 예수다. 그때 백성들은 이제 살았구나! 이제 더 이상 마귀에게 당하지 않는구나! 이제 더 이상 죄로 인해 고통 받지 않구나! 이제 지옥의 운명에서 완전히 빠져나왔구나! 이 고백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오실뿐만 아니라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하신다.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백성들이 아! 이제 고생 끝났구나! 이제 살았어! 그럴 겁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주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은 당신이 우릴 구원할 자입니다. 이겁니다. 당신은 마귀를 멸하실 자입니다. 당신은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당신은 지옥의 권세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이 고백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음부의 권세가 너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천국열쇠를 너에게 준다.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베드로가 이제는 살았구나! 이제는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정말 어디서 자유를 얻습니까? 진리 되신 그리스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 진리 되신 그리스도 때문에 자유 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평안이 임할 때 우린 주님 이제는 살았습니다.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저주를 해결하시고 지옥의 권세를 해결하시고 마귀를 멸하시고 부활하셔서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시민권까지 하늘에 있는 겁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사실적으로 믿어질 때 이제는 살았구나! 고백합니다.
4. 축복의 시간
▶ 이 축복이 나에게 사실이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에게 사실은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알고 보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게 축복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왕궁에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 먹으면서 삽니다. 그러다 나이 40에 사람 죽이고 광야로 갑니다. 처가살이 합니다. 얼마나 외롭습니까? 힘듭니까? 분명 인간적으로 실패입니다. 자신도 보면 분명 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세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이 축복의 시간입니까? 실패의 시간입니까? 그때 그 모습을 보면 분명 실패의 시간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세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사람의 눈에는 실패의 시간이지만 이게 사실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때 그 시간을 축복의 시간인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니까 이게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이었구나! 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요셉은 엄마 일찍 돌아가시고 형들에게 왕따 당하고 그 시간은 실패한 인생이죠. 그러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게 실패가 아닙니다. 정말 아무도 의지할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오직 하나님에 축복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비밀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인생전체를 놓고 보면 축복의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실패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으로 바꾼다면 이건 실패의 시간이 아니고 축복의 시간이 되는 겁니다.
2- 여호와의 이름
1. 다른 씨
▶ 오늘 성경에 보면 아벨을 대신해 다른 씨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씨가 셋입니다. 아벨은 피 제사를 드리고 죽었습니다. 그럼 아벨을 대신해 셋을 죽였다는 말은 이 피 제사를 전달할 자를 또 세웠다는 겁니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놓친 피 제사를 셋을 통하여 회복시키겠다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을 세워서 피 제사 언약을 전달하겠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일은 절대 막히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절대 막히지 않습니다. 이 피 제사 언약은 반드시 전달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방향에 맞추는 것이 축복입니다.
2. 그때에
▶ 그때에 셋을 통해서 에노스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개인도 나라도 교회도 다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어느 일이 결정되는 그날, 그날은 특별한 날입니다. 우린 똑같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전도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그날이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에서 내 생일보다 더 소중한 날입니다. 영혼이 사는 날입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기도하는데 어느 날 그때가 왔습니다. 이때는 다른 날과는 다릅니다. 특별한 날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날이 인생 변화되는 날입니다. 실패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신 어느 날.
3. 여호와의 이름
1) 비로소
▶ 그때 비로소, 완전히 인생이 바뀐 그날, 새롭게 시작되는 그날, 인생에 비로소 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 중심으로 살았는데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 되셨구나! 이제부터, 비로소,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구나! 내 인생이 바뀌는 그날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어부였지만 비로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핍박 자에서 부활하신 주님 만나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2) 여호와의 이름
▶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나를 구원하신 그 이름, 우리의 아버지 되신 그 이름,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그 이름, 우린 그 이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뭔가 계약을 하면 도장을 찍고 싸인을 합니다. 내가 책임지겠다. 우리에게 여호와의 이름. 그 이름을 우리가 알고 그 이름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귀신도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가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할 때 나면서부터 운명에 메인 자가 살아났습니다. 그 이름입니다.
4. 불렀더라
▶ 그 이름을 비로소 그들이 불렀더라. 불렀다는 것은 그 이름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찬송했다. 우리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에 대하여 아는 것과 그 예수가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왕 되심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다릅니다. 언약의 말씀을 들은 것과 듣고 기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베드로가 약속잡고 기도해야지 이것과 정말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은 예배한다는 겁니다. 예배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3- 신앙의 양심
1. 예배의 축복
▶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 뭐냐? 예배의 축복입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나를 그분 앞에 무릎 굻게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나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다니엘에 죽는데도 전에 하던 대로 예배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최고 가치다. 예배 이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그래서 사단은 예배를 못하도록 속이고 방해합니다. 행1:14에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예배 했다는 겁니다. 우린 예배하다가 죽어도 좋다. 못 말리는 겁니다. 그래서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렇게 생을 걸고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눅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눅17:16 예수님이 문둥병자 10명을 고쳐주셨는데 그중 1명이 내가 낳았구나!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돌아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이 사람이 사마리아인입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성경을 보면 5천명이 떡을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실 때 그들이 없었습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구원받았구나! 나는 예배하다가 죽어도 좋다. 이게 예배하는 자입니다. 교회 한번 가볼까? 이건 아닙니다. 가족이 여행을 갔는데 아들이 아빠에게 아빠,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아빠가 기름이 타서 열이 나서 바퀴를 돌리는 거야. 아이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더 쉽게 설명을 해서 밥을 먹으면 힘이 생겨서 뛰어놀잖아 그것처럼 자동차도 기름을 먹고 힘이 생겨서 바퀴를 돌리는 거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아들이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 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엄마가 간단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야. 아이가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예배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겁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2. 새 생명 얻은 몸
▶ 저는 오늘 찬송가 436장을 선택했습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새 생명을 얻은 우린 어떻게 삽니까?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겁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사는 겁니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 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사는 날 동안 주님을 높이겠다. 시146: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147: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우린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이게 새 생명 얻은 자의 삶입니다.
3. 신앙의 양심
▶ 우리 신학교 이사장이 김동권 목사님이신데 이번 주에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지금 75세입니다. 이 목사, 운동하나? 내가 지금 75세인데 마음은 40대보다 건강하다는 겁니다. 그 비결이 뭔지 아나? 내가 늘 영적 생활하고 운동하는 거야!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메시지에서 목사님이 전도한 사람이 12살 때 아이가 밖에 있다 돌아왔는데 엄마가 자살한 것을 본 겁니다. 큰 충격을 받았죠. 나중에 예수 믿고 30년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밤마다 시달리는 겁니다. 엄마가 매달려 죽은 그 모습.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다가 목사님을 만난 겁니다. 이게 사단이 너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이게 너를 붙잡고 누르는 거다. 예수님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이 분이 하나님의 역사로 치유가 된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이 목사님, 내가 이 30년 동안 고통의 세월에서 빠져나왔는데 지금도 내 과거처럼 눌린 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가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양심이지 특별한 것이겠습니까! 이건 내가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신앙양심이지요. 나를 30년 동안 시달리게 했던 이 저주, 사단의 올무, 사단이 나를 가지고 놀았던 이 문제와 같이 시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신앙양심입니다. 나를 해방하신 그리스도, 내 인생 주인 되신 그리스도 전하는 것이 신앙양심입니다. 사42:5-6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왜? 이렇게 하셨냐? (사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내 과거가 눈먼 자처럼 눈이 멀었고 감옥에 갇힌 것처럼 갇혀 살고 흑암에 묶여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셨고 내 손을 잡아 주셨고 지금 나를 보호해주시는 축복 속에 있는데 과거 나와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신앙양심이다. 어떤 목사님이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신호위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경찰이 자기 교회 교인입니다. 그래서 제일 싼 딱지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교회 직원이 딱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직원 표정이 이상합니다. 보니까 노상방뇨라고 쓰여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양심을 회복하면 사람 살릴 수 있습니다.
4. 통하는 사람
▶ 계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보시죠. 예수님이 인간에게 행한 사역을 보면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시고 내가 마음에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시기를 원하십니다. 귀신은 겁주고 억지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내가 스스로 인격적으로 마음에 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게 예수님의 인품, 성품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잘못하면 내가 옳을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큰 실수입니다. 성경에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무례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예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릴 위해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오시어 마음 문 열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성령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주님과 통합니다. 그러면 주님과 통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 목사님과 통하고 교회와 통하고 성도와 통합니다. 내가 주님과 통하는데 목사님, 교회, 성도와 안 통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님과 통하는 사람은 교회 방향, 목사님과 기도제목이 통합니다. 결국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불신앙이 사라지고 사람과 통합니다. 목사님, 교회, 성도. 용서가 됩니다. 만약 사단에게 마음과 생각이 빼앗기면 모든 것이 막힙니다. 하나님과 막히고 교회와 막히고 성도와 막히고 다 막힙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말씀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니까 나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통했습니다. 복음화의 길입니다. 통하면 예의가 있고 예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렸습니다. 무례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은혜 받으면 예절, 예의가 바릅니다. 자식도 부모가 좋으면 잘 통합니다. 싫으면 불통합니다. 정리합니다. 우린 그리스도 때문에 살았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었습니다. 새 생명 얻은 우린 사람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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