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호와로 말미암아 | 조회수 : 127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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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여호와로 말미암아 |
성경 |
창4:1-2 |
일시 |
2016년 8월 14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주 안에서
1. 내가 길이요
▶ 속초에 많은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철도가 생깁니다. 시간이 절약되고 좋은 일이 많을 거다. 기대를 합니다. 옛날 선조들은 길을 찾았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을 것이다. 길을 찾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길을 찾을까요?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길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이 길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부모 사랑받고 후대를 잘 키우는 것이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필요한 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영원한 길은 아닙니다. 길처럼 보였을 뿐이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 시대에 바리새인들의 길은 넓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은 좁은 길이였습니다. 가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고 큰 길이라고 생명의 길입니까? 성경은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주신 적이 없다. 정말 우리에게 눈에 안 보이는 사단이 인간을 망하는 길로 끌고 가고 있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진실하게 바르게 살아도 해결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신 생명의 길, 그리스도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바르게 진실하게 살다가 죽는데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 지옥의 저주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길, 그리스도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보내주셨나요? 멸망 받지 말라고 그럼 멸망이 뭡니까? 사단에게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죄에 사로 잡혀서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이 멸망입니다. 지옥 배경에 메여 사는 것을 멸망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멸망 받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빠져나올 길이 없는 겁니다. 이 축복 누리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은혜 받을 때
▶ 이렇게 생명의 길로 들어간 사람은 뭘 해야 할까요? 우린 생명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은혜 받는 일을 해야 합니다.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내가 은혜 받지 못하면 세상에 끌려 다닙니다. 똑같은 문제 속에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은혜의 길이 되는 겁니다. 감사를 찾게 됩니다. 오늘 새로운 은혜를 받으면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은혜를 못 받으면 모든 것이 문제이고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듭니다. 낙심되고 짜증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도 힘이 듭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이 하나님과 통하게 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늘 통하고 예배되고 말씀 잡고 기도되고 인도 받는 삶이 되면 그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사명도 감당하고 헌신하는 기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영적 힘을 잃어버리니까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안 맞고 힘들고 어려워지는 겁니다. 결국은 사단에게 속는 겁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사단에게 100전 100패입니다. 오늘 새로운 은혜를 받으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요, 기도 제목입니다.
3. 주 안에서
1) 극히 담대하라
▶ 어느 날 모세가 하나님 나라 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이어서 여호수아는 젊고 경험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가 가는 인생에 겁줄 자가 많다는 겁니다. 두려워할 일이 많이 생긴다. 놀랄 일이 많이 생긴다. 이겁니다. 우린 연약합니다. 마음도 약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혜사 성령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놀랄 일이 있고 두려워할 일이 생기는데 담대하라.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약하고 나는 여리지만 내 안에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요1서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2) 주 안에서
▶ 그래서 이것을 가장 잘 누린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늘 고백합니다. 주 안에서. 사실 바울은 예수 믿고 망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베냐민 지파요. 세상 적으로 성공한 사람,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복음 깨닫고 그 사회에서 쫓겨났습니다. 행23:12에 유대인들이 40명 결사대를 조직해서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겠다. 이렇게까지 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 안에서. 고백합니다. 두려움 있지만 주 안에 있다. 이겁니다. 고후11:23에 이하에 바울은 여러 번 죽임을 당할 뻔합니다. 40에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3번은 태창으로 맞고 1번은 돌에 맞고 동족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자지 못하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고 그런 바울의 중심에 염려가 하나 있습니다. 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지금 바울은 자신의 어려움이 염려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죽을까 살까 성공할까 실패할까? 이것이 염려가 아니고 교회를 향하는 염려입니다. 그 바울의 고백입니다. 나는 주 안에 있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에 있어야합니까? 주 안에. 만약 내 인생이 아무 가치도 없는 일에 신경을 다 쓰고 아무 쓸데없는 일이나 하고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지도 않는 일을 걱정하고 염려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영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겁니다. 우린 바울처럼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가장 나를 잘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잘 알고 있는 주님 앞에 나의 무능함과 실수를 알고 있는 주님 앞에 우리의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린 당연히 멸망 받고 저주받고 지옥에 가야할 자들입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우상 섬기고 귀신 섬길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사실 내 자신을 보면 아무 쓸모없는 자들 아닙니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 안 되던 인생 아닙니까? 내 운명을 이길 수 없고 죄를 이길 수 없고 사단에게 종노릇 하는데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우리였습니다. 결국 지옥에 끌려가야 하는 주님은 우릴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듯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진 자들이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주님 안에 서야만 진정한 기쁨이 있고 진정한 행복, 감사, 평안이 있는 겁니다.
2- 여호와로 말미암아
1. 아담과 하와
▶ 오늘 창4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실은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을 벗겨서 말려서 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서로 핑계되었던 아담과 하와가 가죽 옷을 입고 보니까. 서로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단에게 속아서 인생이 이렇게 되었구나! 정말 나의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구나! 그러니 서로가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하나님 은혜로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깨진 인간관계도 회복되는 겁니다.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득남하였다
1) 여호와로 말미암아
▶ 하와이 고백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가 득남하였다. 내가 낳았다. 이게 옛날 하와입니다. 아담에게서 낳았다. 이게 옛날 하와입니다. 그런 하와가 바뀌었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겁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겁니다.
2) 득남하였다
▶ 얻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 우리가 잘나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여호와고 말미암아 득남하였습니다.
3. 가인과 아벨
▶ 그래서 낳은 아들이 가인은 얻었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얻었다. 기쁨이 충만하다. 그런데 둘째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이라는 말은 허무, 공허하다. 이때는 첫 아들을 낳을 때는 기쁘다. 감사하다. 이런 의미였다면 둘째는 인생은 공허하구나! 완전히 극과 극이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 인생이 여자의 후손 아니면 절대 안 되다. 이겁니다. 우리 인생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던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사람이 뭔가 성취하면 그 기쁨 속에 빠집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은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입니다. 이것을 아담과 하와는 깨달은 겁니다.
3- 기도 체질
1. 복을 아는 사람
1) 인생의 주인
▶ 다윗의 고백입니다. 대상16: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다윗의 인생입니다. 그 다윗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크게 돌려라. 나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라. 신약 시대에 바울은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들의 깨달음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2) 복을 아는 사람
▶ 그래서 내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찬송가 285장을 불렀습니다.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 새 사람이 되었으니…….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정말 우리에게 복을 아는 축복이 임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성도 한 분이 저에게 목사님 제게 문제가 있어요. 저는 큰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무슨 문제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복음에 대한 감격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차원이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참 감사하죠. 아프리카 잠비아라는 나라가 있는데 선교사님의 보고에 의하면 선교현장에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열악하니까 아이들이 학교를 오는데 20리에서 40리를 걸어서 오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새벽같이 학교에 옵니다. 배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시간씩 걸어서 왔다가 갑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복을 모르면 인생이 늘 불평하고 사는 겁니다. 얼마 전에 죽은 스티븐 잡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죠. 이 사람이 병들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그 돈 많은 사람이요. 내가 침대는 돈으로 살 수 있고 운전수도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당연히 생각하는 먹는 것을 못 먹고, 대 소변을 못 보고 호흡을 내 힘으로 못 하고, 잠을 못 자고 전부 기계에 메달려서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겁니다. 기계로 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당연한 것을 나는 못하고 있구나! 고백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전도자의 삶을 살고 이게 인생에서 당연해야 하는데 예배가 힘들고 찬양이 힘들고 껄끄럽고 억지가 되고 그럼 이건 영적으로 병든 것 아닌가! 정말 복을 아는 사람은 우리가 오늘도 예배 속에 있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고 주님을 찬양 할 수 있고 내 인생이 전도를 생각한다면 분명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이 복 없는 사람입니다.
2. 아버지의 약속
▶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ㄲ 있으리라. 목사님 사택에 과일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꼬마들이 몰래 과일을 땄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 들렸습니다. 얘들이 성경에 도둑놈들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꼬마들이 과일을 따다가 잡혀서 왔는데 하나님 말씀을 생각한 겁니다. 주님의 약속이 뭡니까?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한다. 내가 네 속에 들어가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한다. 너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 그게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땅에 모든 지도자는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다윗에게 이런 축복을 주셨습니다. 삼하7: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높여주셨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말씀을 붙잡으세요.
3. 기도체질
▶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 자기 생각대로 사람 따라서 세상에 메여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성도가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뜻이 있어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정치를 하니까 자기가 교인이지만 절에도 가고 합니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찾아 오셔서 기도를 해 주십니다. 주지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기도를 하니까 이 분이 아멘 한 겁니다. 그러니까 주지 스님이 목탁을 크게 치시며 큰 목소리고 염불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할렐루야 한 겁니다. 그때부터 주지 스님이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관세음 아멘, 나무타불 아멘 이렇게 된 겁니다. 참 우리가 영적 힘을 회복하는 길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을 때 성령이 역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저런 걱정된 일들이 일어나도 그 일을 가지고 기도로 바꾸면 그 일속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속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육신적인 먹을 것, 입을 것 구하지 말고 먼저 구할 것을 말합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또 제자들을 불러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받은 자들에게 가장 강조 하신 것이 기도입니다. 그럼 기도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기적도 많이 보고 예수님과도 가장 친합니다. 그런데 실패합니다. 주님이 감람산에서 베드로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가슴에 한으로 받았을 겁니다. 한 맺힌 기도가 되었을 겁니다. 베드로가 기도체질이 되니까, 제구시 기도시간에 이게 베드로의 인생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기도체질이 된 겁니다. 구원은 하나님 은혜로 단번에 됩니다. 그러나 기도체질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체질이라는 것은 지속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문제는 지속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많은 사람이 기도하다 낙심합니다. 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기도 체질은 다 압니다. 문제는 하다가 맙니다. 이게 체질 되려면 지속하고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는 겁니다. 사단이 구원 받은 자에게 속이는 것이 기도체질 못 되게 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시간 없게 하는 것이 사단이 속이는 겁니다. 나의 하루를 생각해 보세요. 멍하게 있는 시간이 있다? 그건 속는 시간입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근심하고 있다? 그건 속는 시간입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일에 잡담하고 있다? 그건 사단에게 속는 시간입니다. 멍하니 TV 보면서 입 벌리고 있다? 그건 속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영적으로는 더욱 황폐해지는 겁니다. 아무 힘이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바쁜 중에도 말씀 붙잡고 어찌하던지 기도 속에 나를 잡아 놓고 어찌하던지 주님 찬양하는 중심을 가지면 나도 모르게 체질되는 겁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체질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찌하던지 우린 오늘 주님 안에 있습니다. 이게 행복, 축복, 감사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복을 아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체질 되어서 성령인도 받는 축복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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