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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생명나무의 길 조회수 : 1147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08-07
  첨부파일:   20160807.hwp(64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생명나무의 길

성경

3:22-24

일시

201687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죄인인 인간

1. 기도하는 사람

어머니가 일찍 소천하시고 새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정치적 변화 때문에 재산을 잃어버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16살 때부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매일 항구를 돌아다녀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부둣가에서 잡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힘드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모여서 서로 주인 욕하고 술 먹고 지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은 하루 일을 마치고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면서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되었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 질문을 하면서 1시간 두 시간씩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선박 왕이 된 오나시스입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늘 질문을 했습니다. 왜 우리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왜 형들은 나를 이렇게 괴롭히고 미워할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래서 그가 얻은 답이 내 형편은 이것이 사실이고 어려움인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현실을 인정하고 낙심하고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있는 모든 슬픔을 아픔을 기도로, 나에게 있는 모든 어려움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완전히 기도의 사람, 성령 인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 살면서 어려운 일, 답답한 일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사람과 싸워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인도를 받습니다. 증인이 됩니다. 이런 축복을 반드시 누려야 합니다.

2. 같은 시대 사람들

한번 사는 인생인데 귀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 오바댜와 엘리야 이 사람들은 같은 시대 사람들입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섬깁니다. 그 시대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합니다. 엘리야는 우상 선지자들과 싸우고 나라를 살리는 영적싸움을 합니다. 오바댜는 엘리야를 섬기며 선지자 100명을 숨기며 살립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은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서 선지자들은 죽이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의 선지자를 섬깁니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시대 영적 싸움하는 자로, 오바댜는 확실한 제자로 선지자 100명을 살리고 이 분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바댜는 중직자의 모델로 엘리야는 전도자의 모델로 아합과 이세벨은 망하는 자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전쟁터에서 활에 맞아 죽고, 이세벨은 부하들이 창밖으로 던져서 몸이 부서져 죽습니다. 왕하10:7절에 아합의 아들 70명이 모두 목이 잘려서 죽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저와 성도들은 복음과 후대와 교회를 위해 쓰임 받는 복된 인생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3. 죄인인 인간

똑같은 사람인데 사람이 다릅니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한 사람은 자기가 죄인 것을 아는 죄인, 또 하나는 자기가 죄인인데 모르는 죄인 이 두 종류밖에 없다. 그런데 죄인이지만 내가 죄인이구나! 이 사람은 희망이 있고 죄인인데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 옳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회개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고 죄를 감추는 사람들은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십계명을 가르치면서 우린 인간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랬더니 한 성도가 목사님, 십계명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십일 계명도 있습니다. 그게 뭐냐? 안 들키면 됩니다. 그러니까 또 한 성도가 십이 계명도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들키면 닭발 내 놔라. 세상의 가르침이죠. 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죄를 인정할 때 회개하고 회개할 때 죄 사함을 받습니다.

4. 구원의 은혜

지난주에 한 성도를 만났는데 이런 고백을 하는 겁니다. 제가 멸망 중에 망한 인생이었는데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보니까 너무 감사해고 감격스럽다고 하시는 겁니다. 우린 구원받은 감사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말이요. 그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요. 그리스도가 죄의 저주를 해결하셨고 지옥 권세를 해결하셨다는 것이 믿어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반석 같은 축복, 누구도 뺏어갈 수 없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천국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이게 우리가 구원받은 자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죄인이고 망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가죽 옷을 지어서 입혀주셨습니다. 이게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2- 생명나무의 길

1. 생명나무 열매

1) 선악을 아는 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저주 재앙이 왔습니다. 그럼 생명나무 열매는 뭡니까? 2:9절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두 개가 있었습니다.

2) 생명나무 열매

생명나무는 볼 때 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겁니다. 생명의 근원이 창조주 하나님이구나! 기억하고 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라. 그래서 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한 축복과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은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 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영원한 축복이 보장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는 영원한 멸망이 그에게 있는 겁니다.

2. 그를 내보내어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게 저주이고 벌입니다.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3. 생명나무의 길

그래서 생명나무의 길을 올 수 있도록 막아버렸습니다. 인간을 영원한 저주 가운데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고,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생명나무의 길은 하나님이 막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신 길이 아니면 올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며 살수밖에 없는 겁니다.

4.지키게 하시니라

마귀에 잡혀서 고통당하며 살다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라. 인간은 죄의 저주 때문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지 않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3- 두 종류의 사람

1. 죄 있는 자들아

1) 죄의 문제

죄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는데 이 죄가 뭐냐? 사람들은 죄를 모릅니다. 죄는 가장 소중한 관계를 다 깨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깨버린 겁니다. 죄의 결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쫓아내셨습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요. 또 부부 관계가 깨졌습니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게 창3장의 죄를 범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완전히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기 때문에 오는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죠. 사람과 관계가 깨지죠. 결국 사단에게 붙잡힌 겁니다. 지금 이것을 몰라서 사람들이 방황하고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 땅이 하나님 없어서 고통당하면서 사단에게 끌려 다니며 살다가 사단이 가야할 마귀가 갇힐 지옥으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죄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2) 죄 있는 자들아

오늘 찬송가 528장을 택했습니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하나님 없는 인생은 방황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사람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죄책감에 눌려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메시지가 뭡니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첫 번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이 말은 마귀에게 완전 잡혀있다. 죄의 저주에 잡혀있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다 마귀에게 잡혀있는 겁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2:37절에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탄식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정말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구약 시대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 말은 번제를 드리는데 자기가 깨끗한 짐승을 데리고 성전에 갑니다. 자기가 그 짐승을 죽여야 합니다. 그 피를 흘립니다. 거기에다 손을 얹습니다. 내 죄가 이 짐승에게 전가된다. 이것을 또 자기가 각을 떠서 번제를 드립니다. 이것이 죄 사함 받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된다는 겁니다. 죄를 짓고 덮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으면 우리 죄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랬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구약처럼 번제를 드려야 되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죄는 회개하고 인정해야 되는 겁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는 겁니다. 9:4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박해한 것을 인정하게 하는 겁니다. 바울로 하여금 깨닫게 한 겁니다. 인정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겁니다. 성도님 가게에서 종업원이 퇴근할 때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왜 가져갔냐? 그랬더니 한 분은 죄송합니다. 생각이 없었네요. 조금 있어서 가져가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회개를 하는데 한 사람은 뭐 그까지 것 좀 가져갔다고 그럽니까! 그랬다는 겁니다. 도리어 화를 내는 겁니다. 그 사람은 결국 같이 할 수 없죠.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변병하고 대들고 이건 잘못된 겁니다. 회개를 돌아서는 겁니다. 죄를 회개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는 잘못된 겁니다. 고전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구원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육신은 망합니다.

2. 복된 사람

그래서 복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갱신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단에게 잡힌 사람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갱신하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잡히면 이해가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자기가 잘못하고도 남에게 탓을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실수 할 수 있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인정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고 꼬니까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가 참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실수했구나!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기분 나빠도 해결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실수를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세리 신분이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웅성거리는 겁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구나! 더 힘이 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키가 너무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인들이 웃는 겁니다. 목사님은 삭개오를 설명한다는 것이 니고데모로 설명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죄송하다고 하면서 삭개오가 니고데모야 내려와! 거기 내 자리야 그런 겁니다. 성도들은 은혜를 받았고 목사님은 실수를 인정해서 좋았습니다. 실수도 인정하고 용사하고 그게 복된 사람입니다.

3. 믿음의 부모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의 영향을 준다는 것이 복 있는 겁니다. 가장 믿음의 영향을 주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또 교사들입니다.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굉장한 어려움 당했을 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부모가 믿음의 부모요, 후대에게 믿음을 심는 부모라면 복 있는 부모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 그 후대에게 기도를 심었겠죠. 믿음의 언약가진 요게벳 그 아들 모세에게 피 언약을 심었겠죠. 이게 평생 갑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이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록펠러 머리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서 꼭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생 예배 승리해라, 일생 목사님을 기쁘게 해라, 일생 헌금 가장 많이 해라. 일생 맡겨진 일에 충성해라. 왜 그렇게 엄마가 얘기했을까요? 이게 사는 길이요,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 어머니가 하나님 나라 갈 때 열 가지 유언을 했습니다. 훗날 많은 분들이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습니까? 그때 록펠러의 고백입니다. 내 엄마 엘리자의 신앙 유산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엄마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살면서 후대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의 심는다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4. 두 종류의 사람

저는 말씀을 보면서 두 종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15:37에 마가라는 청년 한 사람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고 헤어집니다. 그러면 마가라는 사람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바나바는 조카니까 데려가려하고 바울은 안 데려가려했다. 싸움할 만큼. 그런데 딤후4:11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세상 사람들은 한번 의가 상하면 평생 안 볼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바울이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은 상처가 있지만 훗날에 바울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로 가장 유익한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는데 실패 속에서 더 실패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발판이 되어 더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다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맞이하는 고넬료는 무릎을 꿇고 말씀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갔다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 안 받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 인도를 세밀히 받는 사람이 있고 자기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인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기준대로 사는 겁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기생 라합이 왔다면 우리 교인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볼까?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남자 홀리며 살았던 사람 또 어떤 남자를 홀릴까? 그러나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참 귀한 사람이구나! 저 사람이 과거에는 기생이었지만 어떻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을까? 참 귀하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제가 아는 일본 선교사님이 있는데 교회 성전을 지었습니다. 목사님이 현장에서 전도하다가 술집 하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 여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복음 받고 인생을 돌아보며 자기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돈을 모아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사람을 내 기준으로 내 수준으로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성령인도를 못 받는 겁니다. 인생이 내 기준 내 수준 아닌 성령인도 받는 사람 살리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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