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 | 조회수 : 114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5-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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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일 예배 |
제목 |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 |
성경 |
디도서 1:1-4 |
일시 |
2015년 8월 2일 |
장소 |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
말씀 |
이길근 목사 |
1- 재창조의 시작
▶ 싱가포르에 정지태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선교사님이 현지에서 오직 예수만 그리스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릴 구원하신 분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단을 꺾으신 왕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이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이 꼴통이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왜 예수만 길이냐? 지금 과학도 있고 종교도 있고 철학도 있는데 꼭 예수만이 길이냐? 그래서 꼴통이라고 놀린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인간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되어지면 결국 인간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축복을 받으며 살아야 되는데 애굽에 노예가 됩니다. 애굽에 노예가 된 이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위해서 무슨 일을 안 했겠습니까? 온갖 몸부림을 다 칩니다.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럼 해결이 됩니까? 그렇게 부르짖고 열심히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산다고 애굽에서 빠져 나왔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단의 종이 된 겁니다. 바로는 사단을 상징합니다. 거기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못 빠져 나옵니다. 이게 성경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죄를 지었는데 회개를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회개하면 죄 용서 받는 거지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죄의 뿌리가 해결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착각을 합니다. 언제 애굽에 있는 백성들이 빠져 나왔냐? 피 제사 드릴 때 바로의 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겁니다. 언제 우리 인생의 죄의 문제가 해결 받았냐? 우리가 회개 했다고 후회 했다고 잘못했다고 용서 빌었다고 죄가 해결 받았냐?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가 해결 된 겁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만나려고 발버둥 친다고 하나님을 만나냐? 그게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제사장들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 많은 양을 잡고 피를 흘리고 선지자를 보내서 그 많은 말씀을 하셨냐? 말입니다. 바로 사단을 꺾으신 왕이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이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시다.
하나님의 나라
▶ 그걸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누렸던 구약의 대표적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는 시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지금 다윗은 좋은 상태에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사울 왕이 3천 군대를 풀어서 다윗을 잡으려고 하는 상태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이게 그리스도 누리는 사람의 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붙잡고 살았던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지고 그리스도 안에 다 있구나! 이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뭐가 있는지 발견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고 응답이 있고 축복이 있고 천국이 있고 성령인도와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나에게 누구냐? 는 겁니다. 그 그리스도가 나에게 주인이냐? 나에 왕이냐? 이것이 확인 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자기감정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통치를 받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
▶ 사도 바울은 엡3:19에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냉정하게 질문을 하면서 인도를 받아 보세요. 저와 여러분이 본 것이 많습니까? 보지 못한 것이 많습니까? 사람들은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아는 것이 많습니까? 모르는 것이 많습니까?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 다 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배운 것이 다 입니까? 공부 좀 많이 한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내가 좀 배웠어 내가 좀 알아 도대체 어느 정도 아는 겁니까?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양심적으로 서게 되는 정말 하나님이 나에 주인 되셔야 하고 왕이 되셔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아는 것이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수십 년 목회를 하지만 어느 날 성경을 보면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계속적으로 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기도 제목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몇 날이 못 되어 아버지 약속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베드로 수준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가다락방 수준으로 안 됩니다. 우리 수준으로 됩니까? 주님이 너무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압니다. 내 수준으로 안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 충만 받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옛날에게는 예수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가 그 종교 재판에서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그게 자기 겁니까? 성령이 충만하니까 이 고백이 이 담대함이 나오는 겁니다.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니까 죽어도 좋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 성령 충만이 임해야 합니다. 내 인격을 내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령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재창조의 시작
▶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인데 이제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분명히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았는데 안 되는 겁니다. 힘이 없는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인생입니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창13:18에 마므레 상수리 숲속에 들어가서 거기 거주하면서 여호와를 위해 재단을 쌓았더라. 예배 드렸다 그 말입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상상도 못하는 가병 318명을 주셨습니다. 우린 자꾸 내 수준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아브라함이 자기 수준으로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재단을 쌓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가병 318명을 주셨고 조카 롯을 살렸고, 야곱은 엄마 그늘 속에 늘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형을 피해 도망을 갔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도망가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렇게 되니까 야곱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 벧엘에서 재단을 쌓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다시 돌아올 때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것에 십에 일을 드리겠습니다. 이곳이 성전이 되게 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80된 노인 모세, 자기 방법으로 안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출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구원 받았지만 자기 수준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새로 시작할 때 하나님의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
내가 사도된 것은
1) 종과 사도
▶ 누구의 종이냐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다. 과거에는 마귀의 종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내 인생이 마귀의 종으로 끌려 다닌다면 비참한 겁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아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다. 그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사도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것만 해도 너무 감사 감격스러운데 그리스도를 대신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도라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신분입니다. 내가 누구냐? 나는 마귀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대신 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나입니다.
2) 내가 사도된 것은
▶ 바울이 내가 사도된 것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사도가 되었냐? 내가 왜 구원받았냐?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너는 복의 근원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부르실 때부터 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부를 때 너는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이다. 말했습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택한 이유. 목적, 이것을 알아야 성령인도를 받습니다.
2. 내게 맡기신 것
1)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
▶ 그래서 그 약속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겁니다. 속초에 보면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춘천 속초 고속화 철도를 빨리 해줘라. 왜 안 해주냐? 이겁니다. 약속했으면 해야지 왜 못합니까? 힘이 없고 돈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이 한 약속은 끝까지 지켜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 우리가 힘이 없습니다. 약속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히6:14-15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히 6: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약속이 안 지켜지는 것을 많이 봐와서 나도 모르게 불신앙에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딱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약속한데로 약속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길 바랍니다.
2) 내게 맡기신 것
▶ 그런데 이 축복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그럼 바울은 내가 누군지 압니다. 과거에 우상 숭배하고 율법주의자로 복음을 막았던 자인데 나에게 이 약속을 맡기셨다는 겁니다. 참 감사하죠. 저와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닌데 과거에 우상 섬기고 귀신 섬기고 하나님도 모르고 살았던 우릴 하나님이 부르셔서 복음 전도 이것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왕이 명령을 하면 어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은 천명입니다. 어명이 중요합니까? 천명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천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한 영혼이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소중하게 보시는 겁니다. 이것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3. 네게 있을지어다
1) 같은 믿음을 따라
▶ 그리고 디도에게 같은 믿음을 따라, 믿음의 색깔이 같다. 영적 흐름이 같다. 이겁니다. 성령인도의 방향이 같다. 사명이 같다. 이 말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도는 같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디도가 이렇게 자기와 같은 믿음이었다는 겁니다.
2) 네게 있을지어다
▶ 디도에게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내가 축복하고 있다. 이 말은 먼저 내가 축복 받은 사람이다. 이게 전제되어 있는 겁니다. 영적 상태가 내가 축복할 상태가 된 겁니다. 그런데 내가 혹시 그런 상태가 아니라도 내가 계속 축복하면 그 상태로 올라가는 겁니다. 이게 영적인 일입니다. 주변에 내가 축복할 사람이 많다면 그 사람은 응답의 사람이고 성령 인도 받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군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120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 땅에 먹을 것이 없어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바로 왕에게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창47:10절에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 야곱은 가난한 시골 노인인데 축복을 하는 겁니다. 야곱은 자기 정체성을 알았습니다. 내가 육신적으로는 나이 들고 가난하지만 나에게 축복권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왕을 축복하는 겁니다. 신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이게 모세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3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절대 이길 수 없다. 더 중요한 것,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었다.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인다. 축복권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성도들에겐 축복 권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복된 자인가!
3- 새로운 시작
나의 참 아들
▶ 지난주에 윤국환 성도 심방을 갔습니다. 암 말기여서 가족들이 왔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아들은 집안이 어려워서 학교 갈 형편이 안 돼서 기술 고등학교를 가고 또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젊은데 공군 상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얼마나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지요. 또 딸은 공부를 잘해서 이화여대 합격을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강릉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습니다. 지금 과테말라에 사는데 사업을 잘해서 돈을 잘 법니다. 부모님 아파트도 사주고 생활비로 1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윤국환 성도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부모가 잘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고 딱 하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잘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부모가 잘해주면 효도하고 못해주면 잘 안 해주고 그러는데 아이들이 바르게 자란 겁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보고 내 참 아들이다. 이럽니다. 복음 때문에.
나를 살려라
▶ 그렇다면 우린 나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것을 잘 봐야 합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수동성 의존증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어린아이 같은 병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엄마한테 달라붙고 그럽니다. 자기가 독차지해야 하고 자기한테만 해줘야 합니다. 굉장히 엄마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닙니다. 독차지 하는 겁니다. 이게 수동성 의존증입니다. 그런데 성장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도 배려하고 아빠도 배려하고 형제도 배려하고 이렇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자기 밖에 모릅니다. 어린 아이 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병입니다. 예수 믿어도 내 마음대로 내 감정대로 살겠다. 그거 꼭 수동성 의존증 같은 정신병입니다. 사단이 누굴 공격 하겠습니까? 불신자가 아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나를 하나님 앞에 드릴 줄 모르면 인생 실패합니다. 나 밖에 모르는 수동성 의존증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영적 생활에서 실패합니다. 사단에게 100전 100패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 찬양한다, 기도한다, 헌금한다, 이건 수동성 의존증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는 사람은 늘 자기 밖에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드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고, 기도고, 찬양이고, 예물입니다.
새로운 시작
▶ 지난 화요일에 기도수첩을 보는데 엘리야가 기도제목인데 왕상19:7절에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엘리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그들은 다 쓸어버린 사람입니다. 대단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이 우상 숭배하는데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겁이 나서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제일 남쪽 끝인 브엘세바까지 도망합니다. 거기서 하루 길 더 숲으로 들어갑니다. 끝까지 도망한 겁니다. 거기서 나를 죽여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끝났구먼! 이럴 겁니다. 그리고 엘리야 자기 자신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한심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서 그를 어루만지고 일어나 먹어라. 하나님이 설득하는 겁니다. 빨리 먹고 힘내. 이게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크고 깊고 높구나! 비참하고 초라한 엘리야를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가셔서 그를 설득하시고 위로하시고 어루만져주시고 먹으라고 격려하시는 겁니다.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이세벨 왕비가 죽이겠다고 해서 죽는 겁니까? 안 죽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낙심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 할 수 있습니다. 좌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구원받은 자를 한 번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끌까지 찾아오셔서 그를 세우셔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십니다. 물을 주시고 떡을 주셔서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거기서 7천 제자를 찾아라, 엘리사를 찾아라. 아람 왕을 바꿔라. 엘리야의 이전 사역보다 더 큰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릴 이렇게 사용하십니다.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나를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은 더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오늘 찬송 615장을 불렀습니다. 그 큰일을 행하신 주께 영광, 이 세상을 사랑하시러 오셨네! 우리 주를 위해 죽으셔서 저 영원한 생명 문 여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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