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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사모하는 사람 조회수 : 127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6-28
  첨부파일:   20150628.hwp(29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사모하는 사람

성경

딤후4:6-8

일시

2015628

장소

속초하나로교회(www.hanarochurch.or.kr)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재창조의 흐름

지난 주간에 한 의료인을 만났는데 감기에는 약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감기약이 많이 있는데 왜 없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건 감기약이 아니라는 겁니다. 감기약이 아니고 감기로 인한 증상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겁니다. 기침을 하면 기침을 멈추는, 콧물이 나면 콧물이 멈추는, 열이 나면 열이 내리게 하는 그런 약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감기약이 아니고 감기 증상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겁니다. 증상만 치료하는 약이라는 겁니다. 현대 의학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감기를 치료하는 약이 없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선하게 열심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냐!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마귀의 자녀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지옥 백성입니다.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해도 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신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만이 우릴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린 사단에게 메여서 공중권세 잡을 자에게 끌려 다니고 있었잖아요? 여기서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아니고 마귀의 머리를 깨뜨려 버리시고 우릴 거기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죄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죄의 저주를 완벽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죄의 저주에서 완벽하게 건져내셨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는 내가 조금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사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신분을 바꾸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분이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저는 살아오면서 저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자랄 때 보니까 부모님 몰래 내가 숨어서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왜 제가 숨어서 할까요? 부모님이 보면 안 되니까요. 떳떳하지 않은 거죠! 제가 깨달았습니다. 내가 완전히 흑암에 잡혀 있었구나! 내가 숨어서 부모님 모르게 뭘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사단이 모릅니까? 그래서 숨어서 무슨 짓을 할 때 처음에는 부모님께 들킬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무뎌지는 겁니다. 점점 담대해지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들통 나는 겁니다. 그때는 예수도 안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영적으로 참 어두웠구나! 저는 이렇게 부모 몰래 못 된 짓을 할 때 제 영적 상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절대 하나님과 안 통합니다. 뭔가 내 이익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정확하게 보니까 내가 주인인 겁니다. 통치를 안 받는 겁니다. 다윗이 시16: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주님이 항상 내 앞에 계신다. 내 앞에 계셔요. 내 오른편에 늘 계셔요. 이게 다윗의 영적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24시간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알고 계시구나! 이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분이 나의 주인, 나의 왕이시구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불신자는 하나님 의식 안 합니다. 예수 믿어도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안 믿으면 하나님이 안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속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더 잘 압니다.

성령 충만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꼭 닫고 숨어있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구원받은 사람들, 제자들에게 성령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그 성도들을 감람산에 불러 모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우리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린 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세상이 알 수 없는 영적인 힘입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주님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오직 그 약속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 날 불같은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이 역사하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 내가 이런 축복을 받았구나! 그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힘이 왔습니다. 감동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같은 경우는 어마 어마한 종교재판에서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죽음이 상관없었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 잘못하면 부모님이 손바닥 때린 것이 채찍질입니까? 이건 살이 떨어지는 채찍질입니다. 이런 채찍에 맞으면서 이제는 예수 이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이름으로 인해 능욕을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도리어 예수 이름 증거 하다 채찍에 맞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못 말리는 겁니다. 감당 못합니다. 죽겠다는데요. 성령의 역사 속에 들어간 겁니다. 낙심하거나 교만하거나 그런 감정이 다 없어진 겁니다.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 사단을 꺾으신 그리스도, 죄의 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만나게 하신 그리스도, 그 분만 자랑하고 높이고 자랑했습니다. 이게 성령 충만 입니다.

재창조의 흐름

그래서 시대마다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 흐름에 있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전도의 흐름, 영적인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전도의 흐름을 막은 사람들입니다. 참 그들은 굉장히 착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인데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많은 유대인들은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잘못된다는 것 알면서도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바른 것 알면서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방관자. 그들은 실패자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그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그 흐름 속에 있다 보니까. 핍박도 받았습니다. 고난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공자일까요? 여기에 답을 내야 합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질 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이간질 시키는 사단에 종노릇하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 자기는 깨끗하다고 하면서 방해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간질 시키고 거기에 오해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은혜 못 받게 하고 불신앙, 불순종하고 이런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한 시대 전도자의 흐름 속에 복음의 흐름 속에 영적 흐름 속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흐름 속에 교회를 살리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고 축복이구나! 이것을 알 때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11: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냐?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그 명령,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하나도 행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흐름 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실수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자는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흐름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흐름 속에 있는 겁니다.

2- 사모하는 사람

나의 떠날 시각

전제는 나를 드려서, 짐승을 드려서 짐승의 피를 다 쏟고 그 남은 살을 불로 태우는 그런 제사가 전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어떤 고백이냐? 내 인생을 주님 앞에 다 드리고 이제 마지막 내 육체까지 드리는 시간이 가까웠다는 겁니다. 끝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천년만년 삽니까? 복음 잘 전한 바울이 끝 날을 알았습니다. 이 땅에서 지혜로운 것은 인생에 시간표를 아는 겁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어느 날 내 생명이 끝나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겁니까? 이게 중요합니다. 분명 주위에 나와 같이 있었던 분 중에 먼저 하나님 나라 간 분이 계십니다. 제가 장례 예배 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나도 이 자리에 있다. 그날이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알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떠날 시간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1) 나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래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왜 우리 주님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까? 왜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 싸움하라고요. 그럼 어떤 싸움을 해야 합니까?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자꾸 주인 되려고 하는 내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악습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싸우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겁니다.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싸워야 합니다. 불신앙 하는 것, 이게 죄입니다. 내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 이것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인정 안 하는 겁니다. 그게 죄입니다. 그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 싸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입니다. 단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겁니다. 승리는 내 것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구세주의 보혈로써 승리는 내 것일세. 내 것일세. 승리만은 구세주의 보혈로써 항상 이기네!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승리합니다. 반드시 싸우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리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이 뭐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게 나에 달려갈 길입니다. 나를 사단에 손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죄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시는 은혜의 복음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이게 나의 달려갈 길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이렇게 하고 자신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내 믿음을 지켰으니, 다른 사람은 살리고 자기는 죽었다. 어리석은 겁니다. 나를 그리스도 앞에 세워야 됩니다.

3. 사모하는 사람

1) 나를 위한 의의 면류관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제 나를 위한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있다. 반드시 보장된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갔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예배하셨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있는 축복입니다.

2) 사모하는 사람

그런데 바울이 어떤 고백합니까?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내게만 이것이 임한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이 이렇게 인도 받고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축복이 와 있다는 겁니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이 면류관을 알고 믿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달려갈 길을 다 간 사람에게 나에게 있는 의의 면류관이 예배된 것처럼 모든 성도에게 이 축복이 예배되어 있다는 겁니다. 40편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정말 이 은혜를 사모하면 여기에 우리의 마음도 중심도 정성도 시간도 물질도 인생이 담기는 겁니다.

3- 쓰임 받는 사람

생명의 주인

오늘 찬송가 484장을 불렀습니다. 금주 저의 찬송입니다. 내 마음에 소망 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나 함께 하소서, 4절에 보면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에 기쁨을 주옵소서. 어떤 고난이 와도 마음에 소망 되소서. 이 소망이 우리의 소망되기를 바랍니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이 은혜가 임하는 겁니다. 저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가복음 9장이 마음에 왔습니다. 9장에 보면 말을 못하게 귀신 들린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귀신의 역사로 말을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이 아이를 잡습니다. 그럼 넘어지고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간질 증상이 일어납니다. 귀신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물에도 던지고 불에도 던지고 그럽니다. 끌려가는 거죠. 그런데 안 죽었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힘들까요. 이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예수님 제자들에게 와서 고쳐 달러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부모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불쌍히 여겨 도와주소서. 예수님께 간청을 하는 겁니다. 이때 막9:23에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아이에게 붙은 귀신을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낳았습니다. 이를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안 되고 예수님은 됩니까? 그러니까 9: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 기도 외에는 없다. 그 말입니다. 귀신이 아무리 이 아이를 붙잡고 죽이려고 해도 생명의 주인의 손에서 뺏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누구냐? 12장에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내일 사형 당합니다. 그런데 그 밤에 잠이 얼마나 깊이 들었는지요.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저는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베드로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인데 너희들이 나를 죽인다고 죽느냐! 그리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 가는데 뭐가 문제냐! 감당 못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시다.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라

얼마 전에 우리 신학교에 대구 초대교회에 조인주 장로님이 오셨는데 그 분이 간증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개척을 하는데 어른이 자신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가게 절반을 나누어 교회를 하게 된 겁니다. 교인이 없으니까 예배당 운영과 목사님 사례도 혼자 다 드린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주도하에 모든 것이 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업이 잘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사업이 안 되는 겁니다. 내 사업이 잘 돼야 교회도 목사님 사례도 드리는데 그런데 사업이 안 되니 얼마나 힘듭니까? 이렇게 예배드리는데 인상을 쓰고 눌려 있으니까, 목사님 강단에서 망할 것 같으면 망해버려라. 그러니까 너무 속이 상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교회가 뭐고 이제 끝이다. 그런데 그때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내가 돈이 주인이었구나! 돈이 우상이었구나! 내가 다 돈으로 했구나! 돈은 하나님 손에 있는 건데.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청지기인데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까 자기 주위에 많은 교인들이 있는데 꼭 자기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주인 되서 자기 돈으로 헌신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가 간증하면서 은혜 받고 치유 받고 변화되더랍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태영아를 맡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신은 시집도 안 간 처녀인데요. 하나님 음성으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태영아를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자기 집을 내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를 낳은 엄마들을 자기 집에 오게 했습니다. 그렇게 태영아를 한 겁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세워야 합니다. 저는 그 장로님을 보면서 주인이 분명하구나! 목사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겁니다. 자기주장도 안 합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헌금 제일 많이 하는데 100% 순종합니다.

쓰임 받는 사람

지난 수요일 기도수첩에 보면 다윗과 바르실래가 나옵니다. 다윗이 어느 날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을 갑니다. 이때 세 종류의 사람이 나왔습니다. 다윗이 도망 하니까 이제 끝났구나! 다윗을 저주하고 그를 배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눈치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바르실래였습니다. 그가 삼하17:28절에 보면 다윗을 위해서 침상, 대야, 그릇, 먹을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다 바르실래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윗이 돌아가는데 바르실래가 경호를 합니다. 다윗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래서 나와 함께 왕궁에 가자. 그런데 바르실래가 삼하19:35절에 보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다윗을 도운 일등공신인데 왕궁에 가서 일 좀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참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가슴속에 바르실래가 얼마나 깊이 담겨 있었냐? 왕상2:7절에 다윗의 유언입니다.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그 아들들을 챙겨라. 네가 밥 먹을 때 네 상에서 같이 먹게 하라. 이게 다윗의 유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내가 있다. 이게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돕는 것이 축복입니다.

교회 중심

금요일 기도수첩에 보면 교회 살리는 집중 훈련이었습니다. 본문이 행2:43:47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교회가 나에게 어떤 곳이냐? 이게 그 사람의 신앙입니다. 정말 사단을 꺾어버리시고 죄의 저주를 해결하시고 우릴 새롭고 산길로 가게 하신 곳이 교회입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좋아하면 거기에 관심도 갖고 투자도 하고 그것 때문에 행복해하고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가 너무 마음에 품어집니다. 시간도 아깝지 않고 물질도 아깝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좋아하면 교회가 소중하고 교회 중심으로 삽니다.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겁니다. 교회 모이기를 싫어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면 거기에 많은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고 더 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힘듭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내 삶의 중심이 교회가 되는 날 모든 문제 끝납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정말 미래의 재앙을 막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담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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