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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긍휼을 입은 사람 조회수 : 1226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2-08
  첨부파일:   20150208.hwp(26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긍휼을 입은 사람
성경
딤후1:15-18
일시
2015년 2월 8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살리는 사람
1. 암적 존재
▶ 제 주변에 암으로 소천하신 분이 몇 분계시고 지금도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몇 분계십니다. 얼마 전에도 제 신학교 동기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암으로 돌아가셨냐? 물어보았더니 하는 얘기가 목회 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돌아가셨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암에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 중에 스트레스도 원인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암으로 고생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 친척들이 같이 고통당합니다. 그런데 암이라는 것이 뭐냐? 변형된 세포라는 겁니다. 정상적인 것이 아닌 거죠. 통제를 안 받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세포가 암세포입니다. 그래서 암적 존재라고 합니다.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차이점이 있는데 정상 세포는 자기 고유에 기능이 있고 자기 고유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암 세포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정상 세포는 위, 간 등 자기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암 세포는 아무데나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암이 전이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상 세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위에 있다면 위를 위해서 일합니다. 그런데 암 세포는 자기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겁니다. 결국 몸의 기능이 마비되고 결국 몸이 죽고 결국 암 세포도 죽습니다. 암적 존재. 사회에서도 저 사람 참 문제가 많다면 암적 존재라고 합니다. 성경으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겁니다.
2. 살리는 사람
1) 말의 힘
▶ 지난 주간에 제가 교회 카톡에 이런 내용을 보냈습니다. 말의 힘.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겁니다. 밥을 두 군데로 나누어서 하나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좋아, 예뻐, 다른 한 곳은 싫어 못 생겼어 미워, 이렇게 계속 밥에게 4주간 말을 한 겁니다. 그런데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 좋은 말을 한 곳에는 하얗고 예쁜 곰팡이가 피고 나쁜 말을 한 곳에는 시커멓고 냄새나는 곰팡이가 핀 겁니다. 생명도 없는 밥인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 말의 힘이 이런 영향이 간다는 겁니다. 또 이런 실험을 했는데 열두 명의 젊은 사람들을 데리고 실험을 한 겁니다. 노인을 모셔 놓고 노인을 연상시키는 글을 짜 맞추는 겁니다. 또 한 곳은 청년을 놓고 청년을 연상시키는 글을 짜 맞추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일어났냐? 노인을 연상시키는 글을 정리하고 돌아갈 때와 청년을 보고 돌아갔을 때의 걸음걸이를 측정한 겁니다. 평균적으로 노인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걸음걸이가 느리고 청년을 보고 걸아 가는 걸음걸이는 빠른 겁니다. 그게 뭐냐? 사람이 어떤 것을 보고 그것을 생각하면 거기에 영향을 받는 다는 겁니다. 거기에 걸음걸이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 주님을 찬송한다. 기도한다. 이것은 응답은 나중 일이고 내게 얼마나 큰 영적인 파장을 일이키냐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이때 오는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내게 오는 영적인 파장은 얼마나 크냐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 훈련을 하면서 매일 말씀을 듣는데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게 영적으로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생각했습니다.
2) 살리는 사람
▶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말을 합니다. 어떤 말은 도움이 되는 말,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말이 있고 불신앙의 말, 믿음의 말이 있습니다. 산업선교 메시지에서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류목사님 어머니가 가게를 했었는데 교인들이 자주 와서 하는 말을 잘 보면 교회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 목사님이 장로님이 권사님 집사님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 등 와서 하는 말이 남의 얘기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유익도 없고 믿음 주는 얘기도 아닌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불평, 불신앙의 말을 하고 간다는 겁니다. 험담하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면 자꾸 말리셨다고 합니다. 오해를 풀어 주려고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자기 어머니는 그리스도 밖에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그때 어머니가 하신 역할이 참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과 모였을 때 성도와 모였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믿음의 말을 하고 은혜를 끼치는 말만 해도 이게 사람을 살리는 겁니다. 내가 하는 말 때문에 사람이 위로를 받고 내가 하는 말 때문에 사람이 힘을 얻고 소망을 갖는 다면 이것처럼 복 된 말이 없습니다.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참 말이 중요합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사람을 살리고 힘을 얻습니다. 세상에서도 좋은 일을 한 사람의 말을 하면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 사람은 나와 상관이 없지만 좋습니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겁니다.
3. 성령 인도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인도를 받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를 왔다면 하나님이 강단을 통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듣고 받고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까? 어떻게 인도를 받을까? 인도를 받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듣는데 그 강단과 나와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 와서 자기도 모르게 소외감을 느낍니다. 왜 그러냐? 앉아는 있는데 말씀을 안 듣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겁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는 사람은 가정이 점점 멀어집니다. 지 멋대로 하니까요. 교회에서도 목사님의 훌륭함과 상관없이 강단을 따라 사는 사람은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안 듣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인도를 못 받죠. 제가 신학교에서 사역을 하는데 사무처장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무슨 일을 하던지 저한테 물어 봅니다. 저와 똑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던 보고를 합니다. 그 분이 성령인도를 받는 방법입니다. 10년 넘게 한 번도 부딪힌 일이 없습니다. 늘 상의하니까요. 보고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어떤 일을 제가 부탁을 하면 이 분은 어떻게 하던지 이 일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러면 그 분 중심을 아니까 너무 고맙고 감사하죠. 같이 일 하면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러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번에 신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는 학생이 있습니다. 점수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면접관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그 학생은 신학교 가면 안 됩니다. 그런 겁니다. 이유가 사람은 똑똑하고 사역도 잘 하는데 목사님 말씀을 전혀 안 듣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면접관이 목사님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 면접을 하는데 다 좋은데 말씀을 안 듣고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6명 면접관 만장일치고 불합격 처리를 했습니다. 자기가 잘한다고 멋대로 하는 사람은 절대 성령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가서 쓰임을 받습니까? 특히 목회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냐는 겁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내 인생 주인이시고 왕 되시면 성령 인도를 받는 거죠. 그런데 인도 못 받는 사람은 자기 멋대로 합니다.
2- 긍휼을 입은 사람
1. 나를 버린 이 일
▶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을 떠난 사람들이죠. 왜 바울을 버렸을까요? 나쁜 사람이었나요? 못된 사람이었나요? 아닙니다. 분명히 이 분들은 똑똑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성령인도를 못 받는 사람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를 발견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보다 뭔가 더 좋은 것이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 보다 뭔가 자기가 유익되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따라가면 자기 목적과 자기 동기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따라가면 손해 볼 것 같거든요. 그리스도 따라가면 불리할 것 같거든요. 한 마디로 그리스도가 나에게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이 안 됐기 때문에 결국 이 분들이 떠난 겁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2. 긍휼을 입은 사람
▶그런데 여기 오네시보로가 나오는데 어떤 일을 했냐? 성경에 보면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그럽니다. 그러면 오네시보로는 착한 사람인가?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시대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여론과 핍박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았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 감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가서 자주 격려해 주고 바울이 쇄 사슬에 메인 것이 자랑스럽고 이 분을 도와주는 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복음에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이익 따라서 자기 동기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가 되고 내 인생 주인 되고 나는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지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오는 겁니다.
3. 긍휼을 입게 하소서
1) 많이 봉사한 것
▶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에 바울이 있을 때에도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많이 도왔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서 눈물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 바울을 많이 도움 준 사람 중에 오네시보로가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변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전도자를 돕고 그런 겁니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2) 긍휼을 입게 하소서
▶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행해서 이렇게 말 합니다. 오네시보로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입게 하소서 지금 바울이 오네시보로를 생각하면서 마음에 행복한 가운데 축복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딤후4: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지만 지금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 오네시보로 집에 네가 문안해라. 전도자의 가슴에 이렇게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축복이 그냥 쏟아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 생각나면 기도가 절절히 나오는 사람입니다. 이게 얼마나 복 된 사람입니까? 네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 자식이 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내가 자식이 5명인데 다 소중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 간절히 축복이 되는 그런 자식이 있고 다 소중한 자식이지만 가슴 아파서 기도가 되는 자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까 그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자식이 축복된 자식입니까? 어떤 자식이 제대로 인도 받는 자식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데 전도자가 볼 때 전도자의 가슴속에 축복이 쏟아지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전도자 가슴에 안타까움 가운데 기도가 되는 사람이 있다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전도자의 가슴에 축복이 쏟아지는 이 은혜가 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정상이지.
3- 네가 잘 아느니라
1. 나 같은 죄인
▶ 나는 어떤 사람이었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창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를 떠났습니다. 왜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보다 마귀의 말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떠났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이 왜 바울을 떠났습니까? 복음 보다 다른 것이 더 소중하니까 떠났습니다. 보니까 내가 그랬잖아요. 내가 하나님 보다 세상이 더 좋아서 살았던 게 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자기들이 손해 볼까봐 다 도망갔습니다. 그 제자들이 하나고 빠짐없이 다 도망갔습니다. 갈릴리의 볼품없는 사람들을 주님이 불러서 제자삼아서 3년 동안 같이 하며 가르쳤건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다 도망갔다는 말입니다. 그럼 세상사람 같으면 그런 사람들 상종도 안 하죠.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 찾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은 완전히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고 예수 이름 없애려 하고 예수 전하는 교회 없애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런 죄인을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주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흑암의 나라에 잡혀 있었던 나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내가 어두움 가운데 있었는데 나를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우린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교만한 자 아니었습니까? 내가 왕이고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이야 이렇게 살았던 자 아닙니까? 나도 똑같이 부겔로와 허모게네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사람이 누굽니까? 다윗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험이 없습니까? 다윗은 삼하11장에 보면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그 남편도 죽인 사람입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이런 사람이 왕입니다. 삼하24장에 보면 다윗이 또 그런 일을 합니다. 백성들의 인구를 조사해라.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보자. 그러자 충성된 신하가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겁니다. 그래도 인구 조사를 합니다. 불신앙이죠. 그래서 백성 7만 명이 염병으로 죽습니다. 이것 보세요. 이게 이 땅에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사단에 메여서 못 된 짓을 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 이 땅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사람을 찾으려면 실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비추어보면 양심에 비추어보면 이 땅에 그리스도 필요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좋은 면, 안 좋은 면, 드러난 면, 숨겨진 면이 있습니다. 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세계적인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그 분도 실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수를 보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록펠러도 허물이 있겠죠. 그런데 그 허물로 그 사람 전체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영적 상태가 문제입니다. 자기 기준에 뭐가 안 맞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생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겁니다. 정말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2. 지금 네가 어디 있느냐
1) 네가 잘 아느니라
▶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나를 버린 사람도 있고 나를 찾아온 사람도 있다. 네가 알잖느냐? 이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돕는 자도 있고 떠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기도 속에 축복 속에 있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선과 악이 멀지않고 내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7: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내 마음은 정말 선한 것을 원하는데 다른 한 법이 있어 자꾸 나를 악하게 한다. 이게 인간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 안에는 악이 있고 선이 있는 겁니다. 절대적 악, 절대적 선이 없습니다. 그건 사람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이상한 사람이 되었어요. 저 사람이 악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좋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게 인간이라. 그래서 성령의 역사 속에 사로잡히면 선한 것이 나를 지배하고 나에게 사단이 역사하고 불신앙이 들어와 버리면 어느 날 악한 일이 나에게서 나오는 겁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잖아요. 내가 이럴 수가 있을까? 불신앙에 잡히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을 알면 이상할 것도 없고 상처받을 것도 없습니다. 참된 소망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으면 성령 충만하면 사람이 양 같이 변해 버립니다. 그런데 너무 너무 좋은 사람인데 불신앙에 잡히면 이상하게 변해 버립니다. 삐지고 성질내고 잡혀서 그럽니다.
2) 지금 네가 어디 있느냐
▶ 그래서 네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적 상태를 묻는 겁니다. 다윗은 시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내가 어느 길에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사람은 선과 악이 있는데 내가 어디에 있느냐 말입니다. 이게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시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훈련 받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 일을 들었던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예수살렘을 떠나지 말라, 내게 들은 바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느냐? 정말 내 인생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내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합니까? 내가 연약하고 허물 많고 부족하지만 말씀 듣는 자리, 은혜 받는 자리, 성령 인도 받는 자리에 있다면 그는 축복된 사람입니다. 대단하고 똑똑한데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원치 않는 자리에 있게 되면 불신앙에 흘러 가버립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훌륭합니까? 그런데 그들이 복음 막는 자리에 있어 망한 겁니다. 하나님과 방향 맞추고 그 하나님의 인도 따라 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찬양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늘 이 자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 깨닫고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축복의 대열에 서야 합니다.
3. 시험을 넘어서라
▶ 이것을 알면 시험을 넘어섭니다. 이 땅에는 시험되는 일이 많습니다. 행5장에 교회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헌금 때문에 시험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재산 절반을 헌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속여서 죽었습니다. 시험 거리 아닙니까? 그런데 성도들이 시험받았습니까? 행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랬습니다. 교회가 시험 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성도들은 한 사람도 시험 들지 않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믿는 자가 더 많아 졌습니다. 시험 준 사람보다 시험 받은 사람한테 더 문제가 있습니다. 행6장에 보면 교회가 성장하면서 가난한 과부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 과부들을 돕는 일 때문에 불평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가 또 시험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일 때문에 교회가 갱신하고 행6장 7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그랬습니다. 교회 이런 저런 일에 시험 든 사람이 없고 오히려 전도의 문이 되었습니다. 꼭 시험 드는 사람 특징이 이것 때문에, 누구 때문에 아닙니다. 자기 영적 상태 때문입니다. 그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는 것을 못 보니까 당하는 겁니다. 다윗은 그 가슴에 시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은 다윗이지만 그러나 나는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험 들 일이 없죠. 시험들이 많지만 상관없는 겁니다. 이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살리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정말 긍휼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자신을 사람을 양심적으로 알면 시험들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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