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중보자 그리스도
성경
딤전2:5-7
일시
2014년 9월 28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하나님의 성전
1. 맞서 싸우는 사람
▶ 인도에 56세된 한 여성이 숲속을 가다가 표범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에게는 낫이 한 자루 있었습니다. 표범이 달려드는 순간 그 낫으로 표범의 공격에 맞섰습니다. 그렇게 30분을 표범과 싸웠습니다. 기적적으로 표범은 죽고 그 분을 살아났습니다. 표범이 달려드는 순간 아 나는 죽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다 난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연약한 여인이 낫 한 자루로 표범과 맞서 싸운 겁니다. 그런데 싸우다 보니까 표범은 죽고 자신은 살은 겁니다.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된 되었죠.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갑자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사람들은 겁먹고 포기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고 젊지도 않은 사람인데 낫 하나 가지고 표범과 싸워 이긴 겁니다. 기적 같은 일이죠. 세상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기면 겁먹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2. 하나님의 성전
▶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교회 다니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누가 계시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구원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임금님이 계신 곳은 왕궁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도 임금님이 계시면 왕궁입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호화롭고 찬란한 집이라도 거지가 살면 거지의 집입니다. 아무리 그릇이 좋아도 그 그릇에 쓰레기가 담기면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 그릇이죠. 사람들이 볼 때 별 볼일 없고 대단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 그릇에 보배가 담기면 그 그릇은 보배담긴 그릇입니다. 우리 인간은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은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겁니다.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릴 죄와 저주에서 해방시키시고 더 이상 인생을 방황 하지 않고 낭비하지 않고 천국 갈 때 까지 내 인생을 가장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것을 사실로 누리면 사람이 여유가 생깁니다.
3. 배려하는 사람
▶ 해질녘에 농부가 일을 마치고 교회 종소리가 들립니다.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그림이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밀레라는 사람의 만종이라는 작품입니다. 밀레는 세계적인 화가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그림을 그렸는데 팔리지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친구가 찾아와서 자네 그림이 좋다고 누가 선금을 주면서 사오라고 했네. 그래서 자네 그림이 가져가야겠네. 그래서 돈을 주고 밀레 그림을 가지고 간 겁니다.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그림이 팔리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 내 그림이 이제 팔리는 구나 소망도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데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이 하나하나 팔리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자기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친구 집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겁니다. 처음에 사간 그림도 있는 겁니다. 이때 밀레가 생각했습니다. 이 친구가 너무 귀한 친구구나! 내가 어려울 때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면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 사려 깊은 친구구나 그 마음에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나의 적은 배려로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면 이처럼 복 된 것이 없습니다. 내의 작은 배려로 후대들이 살아납니다. 내가 이웃에게 조금만 배려를 베풀면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정말 교회를 위하여 조금만 마음을 쏟고 헌신하면 교회가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배려할 힘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왜 문제가 일어 나냐? 배려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도 왜 문제가 일어 나냐? 배려할 힘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왜? 문제가 일어납니까? 배려할 힘이 없는 겁니다. 다 나만 나만 나를 안 알아주고 내가 어떻고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는 힘들어지고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는 겁니다. 우리에게 배려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살아나고 가정이 힘을 얻고 후대가 살고 우리 교회가 살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나 때문에 살아나는 축복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2- 중보자 그리스도
1. 모든 사람을 위하여
1) 중보자 그리스도
▶ 중보가가 그리스도다. 그럼 관계가 깨져버렸다는 겁니다. 그럼 누가 이 관계를 깼습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습니다. 여기에 사단이 역사한 겁니다. 관계가 깨진 것은 물론 사람이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배후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과 관계를 깨버리고 사단은 지금도 사람과 사람을 이간질 시키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아무리 어떤 방법, 어떤 선행, 종교 철학 과학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중보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하나님 만나는 중보자 그리스도.
2) 모든 사람을 위하여
▶ 그런데 이 축복은 누구에게 주셨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멸망 받지 말고 영생 얻으라고, 내가 온 것은 양으로 말미암아 생명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차별이 없고 구별도 없습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하나님은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생을 사람 취급 안 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 기생 라합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그 기생 라합이 예수님의 족보를 이룬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만 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꼬치꼬치 캐서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공직자들 청문회 하는 것 보면 무섭습니다. 우리를 청문회 한다면 내가 어떻게 교회를 들고 있겠습니까? 교회니까 이렇게 사는 거지.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기생 라합도 예수님 족보에 들어갑니다. 세리 이 사람은 매국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마태라는 제자가 나옵니다. 바울은 핍박자입니다. 그 핍박자도 사도로 쓰임을 받습니다.
2. 대속물
▶ 성경에 보면 지역 선입견이 있습니다. 남 유다 북 유다가 있는데 얼마나 지역 차별이 많은지 모릅니다. 북쪽이 나사렛입니다. 그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자라게 하셨을까요? 그 중보자 그리스도를 대속 물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다 전가 시킨 겁니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죄를 지으면 제사를 지냈습니다. 짐승의 피를 흘려서 이게 네가 지은 죄다. 그러면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 번에 이루셨다.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다 말입니다. 공덕이 아니고 주님이 하셨습니다.
3. 부름 받은 이유
▶ 그래서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전파자로 세우고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 내가 부름 받은 이유는 바로 나 같이 핍박 자였던 나를 왜 부르셨나? 아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 전하라고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택한 그릇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 부르신 이유를 모르면 인생이 별 가치가 없는 겁니다. 마귀에 손아귀에 있던 나를 거기서 해방시키셨구나! 그 죄의 저주로 죽어야 되는데 거기서 건져주셨구나! 인생의 길을 몰라서 방황하면 허무하게 살던 나를 거기서 빠져 나오게 하셔서 천국까지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구나! 그 그리스도 말하라고 나를 부르셨다. 그것을 천명이라고 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허무하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모르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냥 밥만 먹고 살다 죽는 인생이죠. 가치 없는 인생이죠. 이 일을 내가 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세우셨다.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나를 택했다. 주님이 나를 원해서 택하셨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창세전에 나를 택하셨다. 누가 나를 불렀나? 이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무엇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바로 나를 부르신 그리스도 자랑하라고. 내 인격과 내 실력과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인생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보장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천국까지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무슨 인생의 기쁨이 있겠습니까?
4. 세움을 입은 것
▶ 저희 이모가 있습니다. 옛날에 이모부가 맨날 술만 먹고 하니까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없죠. 그래서 아이를 데려다 길렀습니다. 그 뒤에 남자 아이를 데려다 길렀습니다. 지금 이모가 80이 넘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효도를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말하십니다. 너희 이모는 아이도 없었는데 아이들을 데려다 길렀는데 특별히 잘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효도를 한다는 겁니다. 참 내가 낳은 자식도 불효를 하는데 데려다 길렀는데 효도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후대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복 된 것인가? 물론 후대 때문에 덕을 보겠다는 것은 아니죠. 한 아이의 인생이 이모 때문에 된 것 아닙니까? 이모가 기르지 않았다면 한 아이의 인생이 어찌되었을까? 끔찍한 겁니다.
2) 미래를 위하여
▶ 우리가 정말 미래를 위한 다면 정말 뭘 해야 합니까? 지금 우리가 후대를 놓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투자하는 것은 그 아이 미래, 우리 미래와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부모든지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맡겨진 후대 키우기를 원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네 사랑합니다. 그럼 네 후대를 먹이라. 왜 우리가 가정 미션 홈을 놓고 기도해야 하냐?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맡겨진 후대 키워내야 합니다. 금요 기도회를 인도하는데 우리 교회에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기분이 좋은 겁니다. 저한테 평소 인사도 안 하는데 저한테 와서 얘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집에 와서 집사람한테 물었습니다. 아이가 참 좋아졌네! 알고 보니 이 아이가 금요일에 저희 교회 성도님 집에 가서 자는 날인 겁니다. 가서 말씀도 듣고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하루 같이 생활을 하는 겁니다. 아이 기분이 너무 좋은 겁니다. 이렇게 후대 살리는 일을 합니다.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후대를 놓고 적은 사역하는 것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지난여름 성경 학교 때 교사들이 아이들을 하루 함께 데리고 지내면서 이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겁니다. 가정 미션 홈 정말 중요합니다.
3- 방향 맞추는 자
1. 미래를 위하여
1) 영적 지도자
▶ 3주 전에 오산 동부 교회 류치영 목사께 신학교 기도회 부탁을 했습니다. 류목사님이 와서 예배를 인도하고 신학생 전체 식사와 떡을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식사 대접을 했습니까? 물으니까 교회 진 장로님이 계신데 그 분이 대접을 한 것이라 합니다. 그 부인은 전도에 완전히 올인 해야 하기 때문에 신학교에 들어 왔다는 겁니다. 참 목사님도 귀하고 그 장로님도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많다고 하는 것이 아니죠. 그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죠. 다음 주가 신학교 주일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기도하는 중에 신학교 홍보하는 것을 만들어야 해서 렘넌트 신학교란 뭐냐 글을 쓰라고 해서 제가 썼습니다. 신학교는 이 시대에 최고 영적 지도자인 세계 복음화에 쓰임 받을 영적 지도자를 찾고 세우는 곳이 신학교입니다. 영적 지도 한 명이 나오면 나라가 살고 시대가 살아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무엘 같은 지도자 한 명이 나오니까 사무엘이 사는 날 전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살아나고 미스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영적 지도자 한 명이 나오니까 그 땅에 평화가 임했습니다. 엘리야 같은 한 명이 나오니까 850명 우상이 꺾였습니다. 그 우상은 시대의 재앙을 가져오는데 시대의 재앙을 막았다는 말입니다. 엘리사 같은 영적 지도자가 나오니까 이스라엘 왕이 아버지여 그랬습니다. 영적 지도자 한 명이 임금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 선교의 미래는 어떤 영적 지도자가 나오는가에 달렸습니다. 바로 신학교는 그런 영적 지도자를 찾고 세우는 겁니다. 민족 복음화에 가장 빠른 길이 올바른 목회자 세우는 겁니다. 세계 복음화에 지름길이 하나님 원하시는 선교사 파송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지나가고 성경적 전도(복음 운동, 다락방 운동)가 당대에 끝나지 않도록 전도 신학을 정립해서 후대 전달할 신학자들을 세우는 것이 신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문제는 목사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담고 기도하고 헌금하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의 기쁨
1) 마음의 준비
▶ 사람이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 이게 인생이구나! 말과 행동은 결국 마음이 반영되는 겁니다.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럼 내 마음에 무엇을 담아야 하냐. 이것이 내가 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무엇이 담기느냐가 인생입니다. 내 마음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 담고 내 마음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담고,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담고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복음 소식을 계속 해야 합니까? 우린 나도 모르게 조금만 문제 생기면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럽니까? 원 뿌리가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원 뿌리가 하나님 떠나고 죄 짓고 사단에게 속고 결국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그게 원 뿌리입니다. 거기서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모르는데 문제 생기면 창세기 3장으로 갑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절대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 대적하고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축복에는 관심이 없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은 소중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영적 축복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배 할 때기도 할 때 찬양 할 때 전도 할 때 일어나는 영적인 일은 눈에 안 보이니까 관심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조금만 은혜 놓치면 TV 보고 신문 보고 세상일 하고 사람들과 수다 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데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은 아깝거든요. 아무 가치도 없는 일에 인생 다 투자하고 물질 다 투자하면서 헌금하는 것은 아깝거든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정말 축복이고 행복인데 그건 관심이 없고 어떻게 사람과 잘 지낼까 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왜 그럽니까? 은혜를 못 받으면 나도 모르게 창세기3장으로 돌아갑니다.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사상이 담겨서 된 겁니다. 사람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공산주의 사상이 담겨서 그럽니다. 이슬람 사람들이 왜 자살 폭탄 테러하고 살인하고 그럴까요? 그 사상이 담겨져서 그럽니다. 뭐가 담겨 있느냐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불신앙이 담기고 불순종이 담기면 예수 믿어도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왜 복음 소식을 담아야 합니까? 나도 모르게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계속 담고 주님의 사랑을 계속 담고 주님의 주신 소망을 담고 그러면서 내 인생이 각인 되는 겁니다. 결국 각인 되는 것이 납니다. 내 마음에 그릇에 뭐가 담겨야 되는가? 그게 나입니다.
2) 주님의 기쁨
▶ 나주님에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이런 찬양을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정말 주님이 내게 원하는 한 가지가 뭐냐 정말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사도 바울이 빌4:1에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도 도왔고 마게도냐 에서도 로마 감옥 갈 때도 끝까지 도왔던 빌립보 교인들 변함없이 끝까지 도왔던 빌립보 교인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그게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도 복 된 것입니다. 살전2:20에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보면서 나의 기쁨이다. 이게 바울의 마음입니다. 빌레몬서 1:20절에는 기쁨을 얻게 하고, 정말 우리 인생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내 인생이 정말 교회의 기쁨이 되고 내 인생이 목회자의 기쁨이 되고 성도들의 기쁨이 된 다면 그것처럼 복 있는 것이 없습니다.
3. 방향 맞추는 자
▶ 하나님과 방향 맞추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울타리를 주셨습니다. 육신의 울타리로 가정을 주셨고 영적 울타리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가? 내 인생이 교회와 방향이 맞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성경에 바리새인들이 참 착하고 성실합니다. 하나님도 잘 믿습니다. 그런데 망했습니다. 왜 망했습니까? 선민의식 때문에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했는데 선민의식 때문에 망한 겁니다. 유대인들이 왜 망했습니까? 율법주의, 자기들은 바르고 성실하니까 정죄하고 잘라낸 겁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왜 축복받았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수준도 삶도 비교가 안 됩니다. 배운 것, 가난 배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축복 받고 로마 복음화 했습니까?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버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러면 그 말씀을 붙잡고 그들이 한 일이 뭡니까? 마가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강단의 말씀을 따른 거죠.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내 힘으로 살아야지 가 아닙니다. 40일 동안 은혜 충만이 받고 내 힘으로 살아야지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아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기다리라.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이것을 알고 모였습니다. 방향이 맞은 겁니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과 방향을 맞출 것인가? 나는 어떻게 말씀과 방향을 맞출 것인가? 나는 어떻게 강단과 방향을 맞출 것인가? 이게 중요합니다. 수준 인격과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과 방향이 맞나? 교회와 방향이 맞나? 강단과 방향이 맞는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인도를 받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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