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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푯대를 향하여 조회수 : 145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07-20
  첨부파일:   20140720.hwp(28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푯대를 향하여
성경
빌3:13-14
일시
2014년 7월 20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말씀
이길근 목사


1- 성령의 바람
1. 가장 어려운 문제
1) 믿음의 축복
▶ 지난 주 중직자 편지에 보면 시골 교회 한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시골 교회에 아주 가난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분들은 너무 가난해서 방 한 칸에서 살고 있고 한 달에 전기세 전화세 만원으로 사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입당 할 때 그 노부부가 백만 원을 헌금 했습니다. 크고 작은게 문제 아니고 마음을 다해서 중심으로 드린 겁니다. 그러면서 더 많이 헌금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에 장례를 위해서 돈 모아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서 죽으면 이렇게 장례를 치러 달라고 장례비용을 목사님께 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런 부탁을 받으면서 마음이 울컥했다는 겁니다. 그 노부부가 가난하지만 자기 전 재산을 맡겼습니다. 아! 저 분들이 나를 이렇게 신뢰하구나 기쁘고 감사한 겁니다. 세상에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또 내가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노부부가 그 가난한 분들이 평생 모은 것을 목사님께 부탁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목회를 잘 하고 있구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들이 너무 귀하다는 겁니다. 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어느 날 평민 복장으로 시골 여관에 가서 잠을 자는 겁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었는데 돈을 안 가져 온 겁니다. 또 부관도 지갑을 안 가져 온 겁니다. 그래서 주인한테 말을 한 겁니다. 내가 한 시간 후에 돈을 가져 올 테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데 주인이 막무가내 인 겁니다. 그때 옆에 있던 심부름 하던 청년이 주인한테 얘기하는 겁니다. 저분을 보니까 믿을 만하니까 한 시간 후에 돈을 가져온 다는데 믿어 주는 게 어떻겠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은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안 되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을 주인한테 준 겁니다. 그때서야 나폴레옹이 간 겁니다. 한 시간 후에 부관이 찾아 온 겁니다. 그 청년에게 밥값을 주고 주인을 불러서 여관이 얼마냐? 4만 프랑입니다.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럼 내가 살 테니 팔아라. 그래서 그 여관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을 불러서 이 여관을 너에게 준다. 그런 갑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편지를 주었습니다. 네가 나를 믿어줘서 나는 행복했다. 그 값으로 이 여관을 너에게 준다. 이런 얘기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그 노부부가 목사님을 믿어 줬을 때 목사님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노부부가 목사님을 믿고 전 재산을 맡긴 것처럼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야! 그런데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서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또 나폴레옹을 믿어 준 심부름 하는 청년은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이 땅을 살면서 사람을 믿을 수 없을 때가 많은데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어려움 당할 때가 많잖아요.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는데 우리로 하여금 멸망의 자리에 살지 않도록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마귀를 섬기고 죄의 저주 가운에 고통당하고 하나님을 모르니까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생을 더 이상 망하지 않도록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는데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모든 저주와 재앙을 해결 하셨는데 그 그리스도를 믿지 못해서 인생이 불안하고 염려 가운데 사는 경우가 참 많은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성령이 역사하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믿을 때 역사하십니다. 그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에게 믿음이 옵니다. 그 믿음이 오면 내 인생을 그 분에게 맡길 수 있는 겁니다.
2) 가장 어려운 문제
▶ 어제 핵심 메시지를 보면 류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6.25가 일어나서 너무 가난해서 피난민 촌에서 살았던 것 힘들었죠.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나이 13세살 때 아버지 돌아가신 것 힘들었지만 그것이 어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가난도 아니고 아버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뭐가 나를 가장 어렵게 했냐?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말씀 합니다. 그런데 교회 와서 보니까 눈치 상으로 하나님을 잘 안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아주 무식하고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는 할머니를 가만히 보니까 이 분은 하나님을 정말 믿는 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까 이 노인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꾸 교회에 오게 된다는 겁니다. 정말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인데 이 사람을 통해서 전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라고 깨달아 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또 자기 이모들은 예수님을 다 믿는데 유독 이모 한 분이 안 믿는 겁니다. 이 분을 늘 점치고 굿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을 병에 걸린 겁니다. 어느 날 그 집에 갔는데 엄마를 물어 보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 집회 가셨다고 했는데 그럼 나도 데려가지 말하는 겁니다. 나 좀 데리고 집회가면 좋겠는데 그래서 엄마한테 당장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그 다음 날 이모를 데리고 집회를 간 겁니다. 그런데 집회를 갔는데 그 이모가 나아버린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정말 하나님 살아 계신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는데 우리 이모를 보니까 하나님 살아계신 것 아니냐 말이야. 몇 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그 분들 공통점이 뭐냐 그 분들이 다 무식하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고지 곧 데로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는 뭔가 많은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뭔가 내가 들을 것이 많아서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난도질 하고 있지 않냐 말이야 뭐가 좀 있는 것 가지고 그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재고 있는 것이 아니냐 말이야!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로 믿었을까요? 아니면 자기들 기준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다 끝났다. 사실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냐.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고백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이 은혜가 임해야 되지 않냐?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안 믿으면 하나님은 홍해도 가르고 요단도 가르고 여리고도 무너뜨리고 홍해 안 갈라져도 믿어야 할 것 아닙니까? 얼마나 안 믿고 불신앙에 빠져 있는지? 참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한 사람의 기도
▶ 기도수첩에 보면 한 사람의 기도 한나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이니까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아들 달라고 기도를 한 겁니다. 나는 믿는데 왜 아들이 없습니까? 은근히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신앙 원망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나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자식을 줄 이유가 있겠냐? 이 땅에 많은 자식들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드려진 자식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기도를 바꾼 겁니다. 하나님 저에게 자식을 주시면 정말 이 땅을 살 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릴 나실 인으로 아들을 바치겠습니다. 기도 한 겁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어렵게 낳은 자식 자기가 끼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원한데로 때가 돼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풍성히 드려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모든 축복이 그 아들에게 다 갔습니다. 사무엘이 하는 말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미스바 운동이 사무엘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 전쟁이 그쳤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이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이런 일을 지금도 이룰 수 있는 것 아니냐! 얼마나 사무엘을 축복하셨던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집니다. 정말 부모의 기도로 자라 난 아이. 하나님이 그 아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만방에 드러내는 축복을 사모해야 할 것 아닙니까?
3. 성령의 바람
▶ 우리 성도들이 지나가는 말 한 마디를 새겨듣습니다. 이대영 집사님이 지난주에 찬양 인도를 하는데 상율 이와 세진이가 나와서 같이 찬양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상율이가 막대 사탕을 빨아 먹다가 세진 이한테 먹으라고 주는 겁니다. 그러니 세진이도 빨아 먹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한 겁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사탕을 주다니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명언 중에 명언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니까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수용하고 이게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정에 일어난다면 가정의 문제가 싹 사라지는 겁니다. 가정에서도 모든 문제가 내 건데 나 알아주지 않는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바람이 불면 상율이 세진이 같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아무 문제없죠. 다가다락방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행6장에 가서 교회가 성장 하다 보니 일이 많아 졌습니다. 구제하고 선행하고 좀 많이 받은 사람은 좋다고 하고 덜 받은 사람은 서운해서 갈등 원망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정말 우리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 해야겠구나! 오순절에 성령의 바람이 분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면 원망 없어집니다. 불편이 없어집니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수용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버리면 상처 난 마음도 용서 할 수 없는 마음도 원망도 불평도 다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가정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바랍니다. 후대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끝나는 겁니다.
2- 푯대를 향하여
1. 오직 한 일
1) 잊어버리고
▶ 이때 바울의 나이가 75세 라고 합니다. 바울이 지나 간일은 다 잊어버리고 그랬습니다. 나이가 75세면 과거에 매입니다. 그런데 그 과거를 잊어버리고 바울의 과거는 어땠습니까?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 받고 나서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자랑스러운 것도 있었는데 거기에 메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과거 때문에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성령인도 못 받는 겁니다. 우리는 과거에 메에 있을 이유도 없고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때문에 열등감도 우월 의식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는 나의 발판이고 과거는 전도의 문이고 그런 겁니다.
2) 잡으려고
▶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운동선수를 잘 보면 축구 선수가 잘 하면 박수를 칩니다. 대단하다 그럼 우쭐 합니까? 또 실수 했다고 주눅 듭니까? 아닙니다. 경기 끌날 때까지 관중들이 칭찬하면 힘나지만 조롱하면 힘 빠지지만 상관없이 뛰는 겁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서 사람들의 환호에 의해서 사람들의 무시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길을 포기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에 것을 잡으려고 가는 겁니다.
2. 푯대를 향하여
▶ 푯대 그리스도 우리가 일심으로 전심으로 지속해야 할 푯대가 있다는 겁니다. 푯대가 선명한 사람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모든 것이고 충만하기 때문에 이것 붙잡고 있는 사람은 사람이 이런들 저런들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정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이름이요, 완전한 이름이요. 모든 것이라고 분명히 믿는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 문제가 사단의 문제인데 이 사단을 꺾어버린 그리스도, 이 땅의 문제가 저주의 문제인데 저주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이 땅의 문제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인데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이것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조롱한다고 가던 길을 멈춰 버리고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우쭐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 송구영신 예배에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푯대를 향하여 바라보면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3. 달려가노라
▶ 사람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하고 그 일에 올인 한 사람은 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습니다. 남에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한가한 사람입니다. 할 일 없는 사람입니다. 바쁜 사람들은 남에 말 할 시간도, 쓸데없는 말 할 시간도 없습니다. 왜 남의 말을 막 하고 다닙니까? 한가해서 그럽니다. 자기 일에 바쁘고 내 인생 가야 할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런데 신경 쓸 여가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께 일심 전심 지속하는 축복 꼭 누리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나이 80세에 피 제사 비밀을 다시 붙잡았습니다. 이것을 붙잡고 누가 뭐라든지 상관이 없는 겁니다. 120세 까지 모세는 달려갔습니다. 다른 것 한 적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언약을 잡고 복음 전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그 길까지 곁을 볼 겨를이 없고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언약 붙잡고 거꾸로 못 박힐 때까지 달려갔습니다. 로마의 핍박, 누명 상관이 없는 겁니다.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정말 이 땅의 문제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이것 붙잡고 살았습니다. 이 대열 속에 있는 겁니다.
4. 부름의 상
▶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 이 복음을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소자에게 대접한 것은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한 적은 헌신이라도 헛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고 복음을 위해서 물질을 드리고 복음을 위해서 중심을 드리고 헛되지 않습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많은 사람들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려면 누군가가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 헌신할 때별과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의 기쁨 속에 너를 있게 하겠다. 사도 바울은 인생 마지막 유언에서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린 이 땅에 살면서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축복도 따라 오지만 눈에 안 보이는 하늘의 부름의 상이 준비되어 있는 겁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복음에 유익한 일이라면 교회가 유익한 일이라면 헌신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3- 존귀한 사람
1. 영적 문제
1) 사람의 변화
▶ 성경에 보면 대표적인 임금 두 명이 나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입니다. 그런데 처음과 나중이 너무 차이가 납니다. 삼상9:2절에 보면 준수했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호감이 가는 얼굴입니다. 키도 머리 하나가 더 큰 멋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겸손합니다. 모든 부분이 뛰어나고 겸손한 멋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훗날 귀신에 사로 잡혀서 갈등에 사로잡힙니다. 불신앙에 잡히니까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 됩니다. 너무 추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습니까? 막내 다윗은 목동입니다. 왕이 될 대상에 포함도 되지 않습니다. 별로 기대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기름을 붓습니다. 용모가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면 시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의 늘 고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겁니다.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사람이 똑같은 사람인데 불신앙에 잡히면 사람이 추해집니다. 그런데 부족해도 늘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인도를 받으면 날이 갈수록 멋있어 집니다. 귀해 집니다. 어떤 사람은 불신앙에 잡히면 옛날 상태로 돌아갑니다. 얼마나 추하고, 민망스럽고 그럽니다. 아이들도 어떤 때는 천사 같은데 떼를 쓰기 시작하면 완전 창3장입니다. 아이들도 성령 충만 하면 천사입니다. 영적 힘을 얻고 성령인도를 받으면 새로워집니다.
2) 영적 문제
▶ 지난 목요일에 강릉에 집중훈련에 조은수 목사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이 분은 모태 신앙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영적 문제가 와서 아버지는 치매에 걸리고, 동생은 귀신 들리고, 이혼하고 자기는 인생 완전 무너지고 이게 뭐냐! 그 일을 통해서 이게 영적 문제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 언약 잡고 변화되니까 그 가정이 변화되어 복음운동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술을 15명을 먹는 친구를 만나서 다시 복음 설명 했는데 복음이 딱 부딪힌 겁니다. 거기에 데려 온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술 생각도 안 나고 말씀 듣고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 네 문제가 술 문제가 아니고 바로 영적 문제다. 얘기 했습니다. 지난주에 여자 한 분을 만났는데 술을 1리터를 마신 다는 겁니다. 교회 다니고 말씀 운동하는 사람인데 그렇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계모에 늘 술 먹고, 자기도 힘드니까 술 먹고, 결혼해서 사는데 남편이 너무 힘들게 해서 술 안 먹으면 살 수 없고, 술이 각인 되고 체질 돼서 안 먹으면 못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영적 문제다. 술이 문제가 아니고 영적 문제다. 이 목사님이 하는 얘기입니다. 정말 내 가정의 문제가 중독의 문제가 술 문제가 마약의 문제가 영적 문제로 보이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가정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알고 보니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영적 문제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셨구나! 그래서 도리어 감사가 되었다. 한이 맺혀서 내가 하는 사역이 중독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영적 문제 이 부분에 눈이 열려야 하는데 영적 문제라는 것이 발견되면 그리스도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이 답을 얻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
▶ 고후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수록 생각이 바뀝니다. 말도 행동도 바뀝니다. 그럼 내 자신이 행복하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저 사람 예수 믿고 달라졌네! 이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못 된 짓을 자꾸 하게 되면 예수 믿는 게 저 모양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허물 많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알고부터 내 삶이 조금씩 바뀌고 이렇게 되면 예수 믿는 게 뭐 있네! 이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나이 75세 노인 바울이 과거에 잡혀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나는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 멋있는 인생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이게 가야할 길입니다.
3. 존귀한 사람
▶ 사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시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나님은 나를 존귀한 자로 부르셨습니다. 사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존귀한 자는 나를 아니까 어떻게 하면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할까? 그렇게 살아갑니다. 복 있는 자가 맞는다면 복 있는 일을 합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 존귀한 사람은 나를 항상 복 된 자리에 있게 합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 믿고 타락하고 방탕하고 인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죽으로 만듭니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하는데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완전히 밟아 버립니다. 존귀한 사람이면 자기 관리 합니다. 가치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삽니다. 나는 존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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