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경
엡6:23-24
일시
2014년 6월 15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통하는 사람
1. 서로 위로하라
▶ 지난 금요일 기도수첩에 보면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런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서로가 위로할 때 그 가정은 평안하고 포근해집니다. 내가 속한 단체가 위로하는 분위기가 되면 사람들이 힘이 나고 행복해 합니다. 자식들 중에서도 부모를 위로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럼 그 자식 때문에 부모가 참 힘을 얻습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위로하면 자식이 평온하죠. 이 땅에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나 예외 없이 위로가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끌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을 돌로 치리이까? 이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고 돌을 다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정죄하고 비난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아는데 정죄와 비난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정죄하고 비난해서 문제가 해결 된 적이 없습니다. 정죄하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끝없이 깊은 수렁에 빠집니다. 사람을 비난하면 바뀔 줄 아는데 아닙니다. 점점 상처가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우리 인생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을 향해서 비난하고 정죄하면 해결이 되냐?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20:19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갑니다. 제자들은 어떤 상태였냐면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꼭꼭 걸어 잠갔습니다. 불안하고 무섭다는 뜻이죠.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들을 책망한 것이 아니고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믿는 하나님 자녀에게는 부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 말로 위로하라 그랬습니다. 부활이 있다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죽은 자들에도 부활의 소망이 있고, 어느 날 죽을 자인 우리에게도 부활이 보장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로할 때 어떤 말로 위로를 할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보장되어 있다. 이 말로 위로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말로 위로 하라 했습니다. 위로라는 것은 말로도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위로 중에 위로는 같이 있어주는 겁니다. 슬픔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만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것만큼 힘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잠시 잠깐입니다. 내가 어려움 당하는데 부모가 함께 해주면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나와 함께 합니까? 잠시 잠깐 함께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위로의 말은 뭡니까? 주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은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셔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고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너희는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몬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중직 자들이 받을 축복입니다. 성도들을 위로하고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 인생이 잘못하면 남 비난하고 정죄하고 삽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사람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인생이 된 다면 그것처럼 가치 있고 복 있는 인생이 없습니다.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인생을 점검해야 합니다.
2. 증인을 찾습니다
▶ 이 땅에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행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사람들이 마가다락방 성도들에게 새 술이 취했다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변했다는 겁니다. 옛날에 내가 아니다 말입니다. 안양 동부 교회에 김동권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학기 한 번씩 오셔서 설교를 하시는데 오실 때 마다 똑같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술로 망한 인생입니다. 회사 퇴근하면 술집으로 12까지 술 퍼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겁니다. 늘 그러니까 월급을 같다 줄 돈이 없죠. 그러고 사는 겁니다. 늘 술만 마시고, 자기 행복이 없죠. 그러니 집에 와서 부인한테 어떻게 하겠습니까? 뻔 하죠.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기 인생이 짐승 같은 인생.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나니까 그렇게 좋았다 합니다. 그래서 회사 끝나고 술집으로 가던 발길이 교회로 향한 겁니다. 퇴근하면 교회 와서 쉬기도 하고, 성경 보고, 찬송 하고, 기도 하고 너무 좋더라는 겁니다. 12되면 또 집에 가고, 부인이 늘 12시에 오니까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겁니다. 부인한테 얘기해도 안 믿는 거죠. 또 돌아가지. 안 믿는 겁니다. 남편의 말에 권위가 없는 그런 인생이죠. 그런 인생이었는데 1.2년 지나고 보니까 진짜 변한 거죠. 그때부터 부인이 마음에 문이 열린 거죠. 사람이 변하는 것처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증인이죠. 악습이 다 떠난 거죠. 지금 이 시대는 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을 찾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말을 잘 한다, 설교는 잘 하네 합니다. 증인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이번에 본부에서 집중훈련을 시켜주는데 제가 느끼는 것은 간증하는 분들이 평범한데 정말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된 겁니다. 증인이라는 겁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복음의 능력을 확인한 증인.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증인입니다. 바로 당신이 증인되는 것.
3.나의 복음
1) 통하는 이름
▶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 통합니다.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표시가 있었습니다. 물고기 표시.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 아들이시오. 구원자다. 그 말입니다. 예수 믿는 표시를 낼 수 없는 시대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서 다 통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이름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수용이 되고 처음 만난 사람도 형제구나! 통하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정말 그리스도면 통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도 이론도 배경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통하는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2) 나의 복음
▶ 그리스도가 나의 복음의 되어야 합니다. 들은 복음, 지식 복음 말고 나의 복음의 되어야 합니다. 정말 만왕의 왕이 되셔서 마귀 권세 깨뜨려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하신 그 그리스도. 대 제사장 되셔서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죄를 해결하신 그 그리스도. 더 이상 인생 방황 하지 않고 천국까지 내 길 인도하시는 참 선지자. 그 그리스도가 그 복음이 나에게 적용되는 복음. 이게 나에게 확인되고 체험되는 복음. 그런데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이 복음을 지식으로는 아는데 이게 나에게 적용이 안 되고, 확인되고 체험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인생이 문제 오면 넘어 집니다. 체험이 없고 확인이 없으니까 내 인생에 전환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정말 바뀌고 체험되고 확인 된 것이 없으니까 그냥 지식이라. 지식은 소중하나 아무 힘이 없습니다. 체험된 것, 확인된 것, 적용된 것 그게 나에게 힘입니다.
2- 변함없는 사랑
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랬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출발이고 모든 기초고 모든 원인이냐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시작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냐 말입니다. 믿음의 출발도 예수 그리스도냐? 말입니다.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 부터냐? 말입니다. 정말 우리의 응답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응답이냐는 겁니다. 확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겁니까? 내 자아로 부터입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여러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 가지고 교회 다니면 결국 무너집니다. 그 동기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목적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무너집니다. 바꿔야 합니다.
2. 변함없는 사랑
▶ 이 땅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난 변하지 않습니까? 내 감정이 얼마나 자주 변합니까? 내 의지가 내 결심이 얼마나 많이 변합니까? 변하지 않는 것이 정말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변하지 않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부모도 변하죠.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신도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셨는데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불신앙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택하셨는데 실수하고 연약했는데 버리셨나요. 이 땅에 변함없는 사랑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겁니다. 사람 바라보고 뭐 바라보면 언젠가 그것 때문에 무너집니다.
3. 은혜가 있을지어다
1) 축복의 사람
▶ 분명히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힘듭니다. 내가 축복을 받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쉽습니다. 마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평안 받기 합당하다면 빌어준 평안이 임할 것이다. 만약 평안 받기 합당하지 않다면 네가 빈 평안이 너에게 돌아온다. 그랬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평안을 빌고 축복을 빌 때 그 사람이 받을 만한 합당한 사람이면 그에게 임할 것이고 그런 사람이 아니면 빌었던 평안이 너에게 돌아온다 그 말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남을 축복하고 평안을 빕니다. 그런데 율법적인 사람은 남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정죄 받고 심판받을 사람이라면 그게 임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겁니다. 어리석인 짓입니다. 머리는 멍청해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축복하고 평안하면 그게 나에게 돌아옵니다. 남을 비난하면 나에게 돌아옵니다. 자신이 쏟은 것 자신이 거두고, 자신이 베푼 것 자신이 거둔다. 자기가 해놓고 왜? 이러냐. 그럽니다. 자신이 베풀면 어느 날 그것이 돌아옵니다. 내가 저주와 비난을 쏟아 놓으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정말 복음 깨달은 사람은 축복을 빕니다.
2) 은혜가 있을지어다
▶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축복권이 있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영적인 파장이 있습니다. 세상에 말도 영향력이 있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하는데 영적파장이 없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할 때 거기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계속 축복하면서 기도하세요. 부모에게 주신 축복 권을 사용하여 자식을 축복하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런데 희한하죠. 자식을 조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놈아. 이 망할 놈아. 이 뒤질놈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자손들이 말대로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삽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참 어리석은 겁니다. 자신의 기준에 안 맞는다고 그러는 겁니다.
3- 견딜 수 없는 사람
1. 사탄의 공격
1) 질문하라
▶ 신앙생활에서 질문하는 것은 인도를 잘 받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께 질문을 잘 하면 기도제목이 선명해 집니다. 정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가?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예수는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 자가 맞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고 나는 하나님 자녀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내 인생 주인이시고 나는 내 인생에 청지기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나는 구원 받은 자가 맞는가? 나에게 이 구원의 축복이 사실인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을 안 하니까 그냥 듣고 그래 예수님 살아계셔 예수님이 그리스도야 살아계신 하나님이지 실제 문제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는 겁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내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자인가? 하나님 앞에 질문해보세요. 그럼 분명 하나님이 나에게 답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 없이 그냥 멍 하고 사는 겁니다. 정말 내 인생 주인이 그리스도인가? 질문해 보면 나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2) 사탄의 공격
▶ 분명 사단이 존재합니다. 그럼 누굴 공격하겠습니까? 불신자는 자기 자식이니까 마귀가 살살 도와줍니다. 불신자도 잘 되는 사람 많습니다. 그거 도와줘서 그럽니다. 사단의 공격 대상자는 믿는 사람입니다. 불신자를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사단은 누굴 공격하기 위해 불을 켜고 있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 말하자. 오직 그리스도 전하자. 이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예수 대충 믿는 것은 사단이 공격도 안 합니다. 내가 사단이라면 누굴 공격할까요? 어 저 사람이 복음 깨닫고 복음 전하려고 하네. 그럼 마귀는 저거 어떻게 막지 고민합니다. 방법을 생각합니다. 구원만 받고 교회는 대충 다녀야지 복음 깨닫고 복음 전하면 안 돼 하며 공격합니다. 복음 전하지 않는 교회는 공격도 안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전하자 하면 사단이 발악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너희를 이기지 못하리라. 그랬습니다. 사단은 결박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강한 자를 결박한 이후에야 그랬습니다. 세상은 사단을 싸움에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종교인들은 사단을 싸움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전도자만이 사단을 싸움의 대상으로 아는 겁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2. 바꿀 것
▶ 사단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사단의 활동을 모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합니다. 육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시험합니다. 명예심을 건드립니다. 세상 것 다 주겠다 시험합니다. 그리고 딱 하나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고 합니다. 사단은 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 가지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단이 싸움의 대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속는 겁니다. 사단을 싸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속는다 이 말입니다. 적을 알아야 이기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을 보여 주셨고 적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는데 적을 모르니까 싸움을 못 하는 겁니다. 그러니 주인이 자기입니다. 자기감정, 자기 이익, 자기 목적 교회 다녀도 세상 사람과 같습니다. 몸만 다니는 거지. 바뀌지 않아서입니다. 주인이 자기입니다. 주인이 자기이니 마귀에게 100% 당하는 겁니다. 주인이 누구냐?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초대받은 손님은 손님일 뿐 책임이 없습니다. 주인만 책임을 집니다. 왜? 사울 왕에게는 악신이 들어가고,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들어갔을까요?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인이 하나님이니 마귀가 건드릴 수가 없는 겁니다. 요셉의 주인이 누굽니까? 노예가 되어 이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나를 인도하는 길이다. 이것이 보이는 겁니다. 주인이 분명히 바뀐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마가다락방에 갈 수 없습니다. 주인이 바뀐 사람은 인생이 달라집니다. 누가 참 성공자일까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성공자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자리에 있다면 그게 성공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자리, 내가 원하는 자리 말고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성공입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과 다릅니다.
3. 견딜 수 없는 사람
▶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화가 있다는 말은 복음 전하지 않으면 벌 받는 다는 말이 아니고 복음 전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는 전도자가 없어서입니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언제 답답하여 견딜 수 없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바른 길로 잘 가면 축복인데 엉뚱한 길로 망하는 길로 가면 답답하죠. 그런 말입니다. 승리의 길 축복의 길이 있는데 엉뚱한 길로 가고 있으면 답답하죠. 저의 어머니는 시골 분이 십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동생들이 올 때 마다 철자도 틀린 기도문을 써서 줍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꼭 다락방 교회를 나가라고 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시간이 지난 뒤 동생들이 다 다락방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음속에 견딜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자식들이니까 이 메시지를 듣고 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무식한 분입니다. 배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있습니다. 자식이니까요. 정말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살아 그럽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하고 속이 불탑니다. 저렇게 가면 안 되는데 바른 길로 가야 하는데 축복의 길은 이 길인데 아닙니까? 그냥 아무 교회나 다녀 그럽니까? 그럴 수 없죠. 내가 정말 복음의 가치를 알았다면 가슴이 불타죠. 마음이 불타죠. 왜? 복음소식을 해야 합니까? 복음이 내 것 돼야 하니까요. 왜? 3오늘을 합니까? 한 번뿐인 내 인생이 그래도 전도와 상관있는 삶을 한 번 살아야죠. 인생 귀찮다고 안하면 되겠습니까? 귀찮다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장가도 안 가고, 자식도 막 키웁니까? 귀찮고 힘들어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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