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평안의 복음의 신
성경
엡6:14-16
일시
2014년 3월 30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질그릇에 보배를
1. 어려서부터
▶ 지난 주 아동부 예배를 보니까 한 아이가 나와서 복음소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도 보니까 또 한 아이가 나와서 복음소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이 복음소식을 이렇게 하려면 많이 연습을 하고 나왔을 겁니다.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어릴 때 뭐가 들어가면 평생을 갑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TV, 스마트 폰, 인터넷 게임 이런 문화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아이들이 복음 소식을 계속 듣고 또 암송하고 연습해서 이것을 하고 있는 겁니다. 복음 소식이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각인 되고 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두고두고 알게 될 겁니다. 오후 예배에 우리 렘넌트들이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냥 하는 것하고 마음이 담겨서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마음에 담겨서 우러나오는 겁니다. 얼마나 예쁘고 귀한지 참 감사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영적인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믿음이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영적이고 믿음이 있는 아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될까 기대가 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적인 일에 눈이 열려있고 믿음으로 서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저들을 축복하실까 기대가 됩니다. 렘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어릴 때부터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건 영원한 축복입니다. 민32:14 보라 너희는 너희의 열조를 계대하여 일어난 죄인의 종류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말입니다. 민32:24 너희는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 입에서 낸 대로 행하라 어릴 때부터 영적인 것을 심어라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영적인 일에 믿음이 있고 자라는 사람하고 어릴 때부터 세상 적이고 불순종하고 불신앙으로 자라는 아이하고 인생은 같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 적이고 육신적이고 불순종하고 불신앙하는 아이로 자라면 그 인생은 참 비참합니다. 힘듭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 갖고 믿음 안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에게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 이게 이게 내 인생이고 내 미래입니다.
2. 질그릇에 보배를
▶ 우리 인간은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아무 일 없다고 누구에게 말 한마디 듣고 잠을 못 잡니다. 그 정도로 질그릇처럼 연약합니다.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데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럽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과 생각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면 좋은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질그릇 같은 나에게 무엇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까? 사람이 그 마음과 생각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 그것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담겨진 것이 어느 날 나옵니다. 내가 읽고 듣고 보고 생각하고 관심 있는 것이 내 마음에 담깁니다. 이게 계속 담겨져서 무의식 잠재의식에 담겨지는 겁니다. 이게 영혼속에 담기는 겁니다. 그게 내 인생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 같은 나에게 보배되신 그리스도가 담겨야 합니다. 어떤 집에 아버지가 술을 드십니다. 그런데 술을 먹으면 부인을 욕하고 때리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욕하고 때리고 그러는 겁니다. 애가 너무 너무 힘듭니다. 술만 먹으로 그러는 겁니다. 술만 먹으면 집이 전쟁터입니다. 아이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절대 아빠처럼 안 살거야 절대. 술 먹고 욕하고 때리고 이렇게 안 살 거야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을 합니다. 성장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자기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겁니다. 아이가 본게 그겁니다. 들은 것이 그겁니다. 그게 어느 날 무의식 잠재의식 영혼속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렇게 싫었던 아버지 모습이 자기에게 온 겁니다. 정말 무서운 겁니다. 초등학교에 어떤 아이가 모든 여자를 다 죽이겠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를 버리고 간 겁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 아이를 키웁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미움으로 바뀐 겁니다. 그래서 아이의 가슴에는 무엇이 새겨졌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미움으로 바뀌어 모든 여자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커서 엄마 같은 여자는 다 죽일 거야 그러는 겁니다. 이 아이가 커서 어떻게 되겠냐 끔찍합니다. 아이에게 뭐가 담겼냐? 그겁니다. 왜? 우리가 강단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교회에서 복음소식을 계속 하자고 합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담겨진 이것이 예수 믿어도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속에 담겨있던 상처가 그 체질이 그 습관이 사상이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가만히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옛날로 돌아가는 겁니다. 내 속에 담겨있던 상처가 그 체질이 그 습관이 사상을 사단이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이 내 속에 각인되고 뿌리내리지 않으면 내 속에 들어있는 것이 어느 날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부모의 모습이 나에게 담겨져 있습니다. 부모의 좋은 모습이 나에게 담겨져 있다면 참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그 어머니의 잘못된 것이 나에게 담겨져 있다 그거 자기 생각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입니다.
3. 유일한 해답
▶ 복음소식에 왜 내 것이 되어야 합니까? 정말 내가 질그릇이란 것이 인정이 되면 복음 아니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나에게 있는 상처와 악습이 복음 아니면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복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의 후손되신 그리스도가 사단을 꺾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40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 합니다. 80년 동안 살아오던 모세가 깨달았습니다. 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희생 제사를 드려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동족이 400년 동안 종살이 하는 이유가 이것을 놓쳤구나! 그래서 노예가 되었구나 한 맺힌 겁니다. 그래서 피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면 피제사를 자손대대로 전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좀 살만하니까 놓쳐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갑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깨닫습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깨닫는 순간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면 후대에게 전해야 할 것 아닙니까? 또 살만하니까 놓쳐버렸습니다. 로마에 속국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깨닫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이 복음을 깨닫고 다 회복이 되었는데 또 놓쳤습니다. 전 세계가 다 믿습니다. 국교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1500년이 지나 갑니다. 완전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때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 인간이 공을 세우고 선하고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그 중세 아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그리고 500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경을 놓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지금 복음이 있냐? 정말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누리냐? 복음이 뭐냐?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해보세요 구구 절절 말합니다. 모른다는 말입니다. 복음이 뭡니까? 복음은 그리스도입니다. 롬1:2-4에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것을 모라서 인생이 실패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인데 몰라서 방황을 합니다. 그리스도 이름 앞에만 사단이 꺾이는 겁니다. 그리스도 이름앞에만 저주가 해결 됩니다. 지옥 배경이 바뀝니다. 그런데 자꾸만 엉뚱한 소리 합니다. 그래서 정말 인간이 질그릇 같은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싸움해야 합니다.
2- 평안의 복음의 신
1. 그런즉 서서
▶ 그런즉 서서, 서라고 했습니다. 내 힘으로 되고 내 지식으로 되고 내 결심으로 된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질그릇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럼 그 삶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진다고 하니까 베드로는 절대 안 떠납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떠날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힘이 없거든요, 그 밤에 꾸벅 꾸벅 졸았습니다. 영적으로 힘 없는 사람의 특징이 졸아요. 계속,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붙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갔습니다. 내 힘으로 내 결심으로 안 된다는 겁니다. 훗날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아마 베드로가 이랬을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 고백하고도 이렇게 당했지 않냐 나를 봐라 나도 당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단과 싸워야 한다. 말이야.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때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실패했다 말이야 한 맺힌 고백 아니겠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이 늘 가만히 자빠져 누워있기를 원하겠습니까? 자녀가 일어서서 승리자로 살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려분이 일어서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2. 진리의 허리띠
▶ 평상시는 허리띠 안 해도 됩니다. 밖에서 일을 하려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합니다. 영적싸움의 현장에서 진리의 허리띠를 딱 메야 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내 노력으로 안 됩니다. 내 선행으로 안 됩니다. 우리의 과학, 종교, 철학으로 안 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매라. 이 땅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거 내것 아닙니다. 돈도 권력도 명에도 건강도 사라집니다. 내것이 아닙니다. 잠시 사용할 뿐이지. 내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만 영원합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진리의 허리띠를 매야 합니다.
3. 의의 호심경
▶ 의의 흉배 곧 갑옷. 가슴을 보호하는 겁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겁니다.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인생이 무너집니다. 마음의 병이 우울증, 정신병입니다. 지금 이 땅에 가장 많은 것이 우울증, 정신병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니까.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겁니다. 정신병, 우울증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겁니다. 못 다스립니다. 그래서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불신앙은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사단이 내 마음에 집어 넣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내 모든 저주와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저주 죄를 깨끗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으로 가슴을 채워야 합니다.
4. 평안의 복음의 신
▶ 정말 내가 질그릇 같은 존재라면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내가 신을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것. 선물로 주신 것. 복음=그리스도입니다. 그냥 아멘으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 다 만들어 놓고 준비해 놓고 신어라 했습니다. 아멘 하면 됩니다. 안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음은 공짜입니다. 아멘으로 받으면 내 것 되는데 그것을 안 합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했습니다. 믿고 아멘 하면 됩니다.
5. 믿음의 방패
▶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끝냈습니다. 요19:30에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저주를 해결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시고 부활하사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이거 들면 승리합니다. 그런데 사단이 의심, 불신앙을 계속 쏘아대는 겁니다. 창3장 이후부터 아담과 하와를 속인 그 방법 그대로 하나님 말씀을 안 믿도록 속이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 믿도록 속이는 겁니다. 여러 가지 말로 환경으로 계속 속이는 겁니다. 믿음의 방패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 해결하셨습니다.
6. 악한자의 불화살
▶ 악한 자가 불화살을 쏴가지고 결국 예배를 빼앗아 갑니다. 마4:8-9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천하만국주면서 내게 절하라 합니다. 이 말은 마귀가 눈에 보이는 것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배를 빼앗아 가는 겁니다.
3-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라
1. 말씀의 흐름
1) 예배의 축복
▶ 내가 질그릇 같은 존재라면 예배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예배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예배의 축복 누리지 못하면 구원은 바뀌지 않지만 구원의 감사, 감격이 없습니다. 그냥 다니는 겁니다. 종교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를 실패할 수 있느냐? 목사 사모. 남편이거든요. 목사 자식, 장로, 중직자 자녀, 습관이라 많이 알고 익숙하거든요. 그러니 예배를 가장 놓치기 쉬운 겁니다. 마귀가 하는 짓이 예배를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점점 없어집니다. 그러면서 그 영혼은 황패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옛 습관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영적문제가 덮칩니다. 심각합니다.
2) 말씀의 흐름
▶ 그러니까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흐름을 타지 못합니다. 예배가 형식이니까. 습관이니까. 문화라. 그러니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적용하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말씀의 흐름이 끊어집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짐승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이 말씀을 어떻게 성취하시고 어떻게 말씀 따라 인도하시는지 체험하고 살아야 하는데 이거 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예배에 인생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2. 기도의 축복
1) 기도의 상태
▶ 말씀을 붙잡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전에 기도 상태가 중요합니다. 만약 내가 낙심하고 있고, 좌절하고 있고, 원망하고 있으면 기도 절대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 강의를 갔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숙소로 왔습니다. 편안하게 TV를 틀었습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도 보고 싶은 겁니다. 여기 틀고 저기 틀고 하니까,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아차,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제 영적인 상태를 봤습니다. 내 영적상태가 심심하거든요. 심심하니까 재미있는 것 찾느라. 계속 채널을 돌리는 겁니다. 뉴스, 스포츠, 드라마도 보고 틀어봤자 그게 그건데 계속 트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TV를 안 봅니다. 저를 점검하는 겁니다. 혼자 있을 때 그게 나의 진정한 영적 상태입니다. 아무도 안 봅니다. 나 혼자 있는 그 시간에 심심해서 뭘 할지 몰라서 그것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게 내 영적인 상태였습니다. 강단에서 메시지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내 모습이 그렇게 보여졌습니다. 만약 계속 그런 상태가 나에게 유지된다면 난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중적인 삶을 살겠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에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시간에 내가 하나님과 깊은 1:1 관계를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이렇게 혼자 시간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게 내 영적상태잖아요. 그게 기도 상태입니다. 사람 앞에서 기도하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은 기도 상태입니다. 내 마음에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없는 시간에 아 오랜만이다. 감시가 없구나. 하면서 TV 틀고, 게임하고 이게 계속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상태가 어두워지면 구원에 대한 감사, 감격이 없어집니다. 재미는 있어도 행복은 없다 말입니다. 편안할지는 몰라도 진정한 평안은 없습니다. 이게 쌓여져서 인생이 무너지는 겁니다.
2) 기도의 축복
▶ 내 영적상태가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당연히 나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가 영적상태가 된 사람이 어려운 문제가 오면 완전히 기도속으로 올인 하겠죠. 그러니까 문제가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영적상태가 무너진 사람, 기도 상태가 안 되는 사람은 어려운 문제가 오면 불신앙에 사로잡혀서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며 먼저 내 영적상태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를 완전히 기도의 상태로 바꾸셔야 합니다.
3.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라
▶ 나를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내 생각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세상에 권력 앞에 돈 앞에 무릎 꿇고 힘 앞에 무릎 꿇는데 딱 그리스도 앞에만 무릎을 못 꿇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장 절에 가면 돌 부처 앞에 정성 스럽게 무릎을 꿇습니다. 이상합니다. 빌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다니엘은 죽는 줄 알고도 하루 세 번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 했습니다.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창3장에 아담과 하와가 사단에게 속은 이후부터 인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안 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뻣뻣한 자는 이미 망한 사람입니다. 이게 어릴 때부터 무릎 꿇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무릎을 안 꿇습니다.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사단에게 완전히 당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이 사로 잡힌 겁니다. 두 주 전에 대구 장로 수련회에서 예원교회 정명주 장로님의 간증을 보았습니다. 속아서 사업이 망하고 미국에 갔습니다. 밑바닥 생활을 합니다. 연말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하나님 제가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 새롭게 하나님께 무릎 꿇을 것을 결단합니다. 무조건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세수하고 사도신경하고 찬송 몇곡을 하고 강단 말씀 정리해서 기도하기 시작한 겁니다. 1시간 두시간 또 일하면서도 계속 한 겁니다. 얼마나 했던지 찬송가 보지 않고 몇 곡을 합니다. 자신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그렇게 2년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이제 한국으로 가라.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겨우 비행기표 사고 300불 밖에는 없는 겁니다. 마지막 부인과 아들하고 앉아서 찬송을 했습니다. 620장. 눈물로 찬송을 하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2년을 기도 했는데 옛날 잃어버렸던 회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하나님 은혜로,망하기 전보다 5배더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변함없이 그 기도를 합니다. 지금 기도 제목은 정말 내 인생 복음과 전도 위해서 교회 위해서 렘넌트 위해서 목사님, 성전 위해서 기도 하는 겁니다. 참 영적인 사람이 있다. 참 믿음의 사람이 있다. 기도의 사람이 있다. 참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있구나, 믿음의 불씨를 살리는 사람이 있구나, 한 번뿐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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