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서로 할 일
성경
사9:6-7
일시
2013년 12월 29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자세히 보라
1. 사람의 얼굴
▶ 관상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 천재 관상가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람의 운명은 얼굴의 생김새에 따라서 정해졌다. 라는 전재를 가지고 영화가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현대 인상 전문가들은 이런 전통적인 관상론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람이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는데도 얼굴형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죠.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 링컨이 말했습니다. 인상학자들에 말에 의하면 사람의 인상은 한 30%는 타고 난 답니다. 그런데 70%는 후천적으로 형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상학자나 성형외과 의사들 얘기를 들으면 사람이 웃고 찡그리고 울 때 얼굴 근육에 40개가 쓰인다는 겁니다. 이 움직임이 계속 반복이 되면서 형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주로 표정이 밝다는 겁니다. 늘 밝게 사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유형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얼굴이 찡그리고 얼굴이 화나있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웃으면 웃는 상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전문가들은 사람의 마음이 심리적 안정이 돼서 평안함을 유지할 때 얼굴상이 가장 좋게 형성된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이 개인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늘 마음이 평안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즉 성령 충만하게 되면 그 얼굴이 평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얼굴에 풍겨 나오는 것이 온유하고 너그럽고 그럽니다. 반대로 늘 화내고 신경질 내면 그 얼굴상이 그렇게 형성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왜? 우거지상을 하고 있냐? 라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 사람 마귀상이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얼굴은 우리의 삶, 우리 신앙생활의 표현이 됩니다.
2. 똑 같은 일
▶ 그래서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경험하는데 이 똑같은 일을 경험하면서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똑같은 일을 경험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붙잡고 이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모든 일에 예배 우선, 예배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없으니까 예배 속으로 들어가서 은혜를 사모하고 영적 힘을 얻고 그리고 24시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24시 기도 속에서 힘을 얻도록 발버둥 치고 그 은혜를 사모하고 그런 사람이 있죠!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낙심하고 좌절하고 예배 그 까짓것 필요 없어, 기도 해봐도 안 돼! 이러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보면 어떤 성도는 아 저 분이 저런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믿음으로 살까! 참 귀하다 이런 사람을 자주 봅니다.
자녀를 기를 때도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의 마음에 흡족하게 기쁘게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부모가 늘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한 이런 아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더 바르게 성숙해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엄마 괜찮아! 다시 할게요. 이런 아이입니다. 부모가 정말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내가 부모님을 위해서 일을 하여 도와야겠구나! 이런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부모 원망하고 사람들 원망하고 짜증내고 인생을 실패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아이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래서 내가 잘해야 갰구나! 내가 새롭게 도전해야 갰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내가 은혜 받고 은혜 속에서 힘을 얻어서 내가 정말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고 증인되어야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이건 하나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3. 자세히 보라
1) 어려운 시대
▶ 시대는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성경은 분명히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발전해 가는데 영적으로는 더 어두워집니다. 세상은 더 풍요로운데 사람들은 급속도로 타락하고 마음이 병듭니다. UN사무총장 반기문 총장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건물은 높아졌는데 인격은 더 좁아졌다. 전문가들은 많아 졌는데 문제는 더 많아졌다. 문명이 발달해서 달나라까지도 갔다 왔지만 이웃관계는 더 멀어졌다는 겁니다. 공기 정화기가 발달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됐다는 겁니다. 그럼 왜? 사람들이 허무해지고 왜? 이렇게 타락하고 어두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하나님 떠나서 그럽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까?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영적인 고통 가운데 시달립니다. 자기 자신이 행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것을 채워도 채워도 자기 속에 있는 허무를 해결할 길이 없는 겁니다.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시달이고 병이 들어서 드러난 것이 뭡니까? 거칠어지고 무자비해지고 결국 삶이 악해지고 날카로워집니다. 진짜 이 문제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주인 되셔야 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에 주인 되셔야 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교회에 주인 되셔야 합니다. 이것 아니면 해결 안 됩니다. 내가 노력을 안 해 봤습니까? 안 되거든요. 정말 나에게 하나님 나라 임해야 하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이 가정을 다스려야 하고 하나님이 내 자녀를 다스려야 평안이 오는 겁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되냐 말입니다.
2) 자세히 보라
▶ 그래서 자세히 봐야 합니다. 어떻게 행할 것인가? 자세히 봐야 합니다. 엡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무슨 말입니까?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마시는 술만 말합니까? 물론 이 세상에 문제가 술 때문에 오는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온갖 세상 것에 취해가지고 온갖 육신적인 것에 취해가지고 성령 충만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적인 것은 그렇게 발달하고 지혜가 있는데 영적인 일에는 더 둔해지고 관심이 없고, 세상의 글은 그렇게 많이 아는데 영적으로는 아이라. 그래서 뭘 마실까? 뭘 먹을까? 뭘 입을까? 그것 밖에 모릅니다. 어떤 큰 재벌의 사모님이 백화점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백화점을 팔았으면 하는데 회장 사모님이 안 판답니다. 왜냐 자기 쇼핑해야 하니까. 자기 백화점 없으면 쇼핑 못 합니까? 그래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구나! 지금 세상 사람들이요 교회를 다녀도 예배 우습게 알고요. 기도 안 믿거든요 그러니까 기도 안 하는 겁니다. 얼마나 얼마나 기도를 안 믿으면 기도 안 하는 겁니다. 기도 안 하고 자기 힘을 사는 겁니다. 얼마나 세상에 취하면 예배는 그냥 형식적이라. 그러니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정말 예배에 올인하고 찬양하고 기도 속에서 영적인 힘을 얻으면 세상을 이깁니다. 그런데 그 힘이 없으니까 세상에 눌려서 사는 겁니다. 우리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께서 알게 하시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성령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 내가 과거에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았구나! 이게 죄구나! 깨달아 집니다. 하나님 없이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살겠다. 그게 죄죠. 못 된 짓 한 것만 죕니까? 하나님 필요 없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 가운데 은혜 가운데 들어가면 얼마나 내가 죄인인가? 드러납니다. 내 방법대로 내 힘으로 내 수준으로 내 기준으로 그게 죄입니다. 내 기준으로 사니까 율법주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처럼 남 정죄나 하고 남 힘이나 빼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가. 그런데 성령의 역사 속에 들어가면 내가 정말 죄인이었구나!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았던 것이 회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왜? 그랬을까? 사단에게 생각이 잡혔구나! 내 생각이 사단에게 완전히 잡혀서 내 힘으로 살려고 했구나! 이게 깨달아 집니다. 내가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 다녔잖아요. 이게 보여 집니다. 그래서 사단의 머리를 그리스도께서 깨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길을 몰라서 늘 방황했잖아요. 이것 해볼까? 저것 해볼까? 그러고 살았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헛된 길이었다는 겁니다. 정말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그렇구나! 내가 정말 오랫동안 방황을 했구나! 내가 길을 못 찾아서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내 인생에 주인이신데 내가 주인인 것처럼 살았구나. 이것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가 되고 난 오직 그리스도 붙잡아 갰구나. 깨달아 지는 겁니다. 이 축복을 꼭 찾아 누려야 합니다.
2- 서로 할 일
1. 너희는 서로
▶ 서로 서로 할 일이 있고 서로 서로 버릴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 서로 할 일을 잘 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고 믿음이고 서로 서로 버릴 것을 잘 버리는 것이 성령 충만 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아닙니다. 가정도, 세상도, 교회도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런데 사단이 역사하면 모든 것이 혼자입니다. 가정도 혼자, 사회도, 교회도 혼자 자기 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게 사단에게 속는 겁니다.
2. 서로 할 일
1) 함께 버리고
▶ 함께 버려야 할 것은 뭡니까? 악덕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과 모든 악의를 버리고 이게 뭡니까? 사단에 통로가 됐던 것입니다. 사단의 통로가 되니까 노하고 분내고 떠들고 떠든다는 것은 남에 말이나 하고 다닌다는 겁니다. 뭐든지 훼방하고 남을 헐뜯고 왜? 그럴까요? 사단에게 생각이 잡히니까 그러죠. 사단에게 이용당하니까 그렇죠. 절대 자기 자신이 행복하면 남을 불행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불행하니까 자기가 힘드니까 그것으로 하나님 은혜 속에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께 힘을 얻어서 치유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남을 괴롭히는 겁니다. 자기가 응답받고 은혜 속에 있는데 남을 괴롭힙니까. 그럴 수가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럼 내가 이런 것을 버려야지 한다고 버려집니까? 내가 정말 성령 충만 은혜를 회복해야 버려지는 거죠.
2) 서로 할 일
▶ 서로 할 일이 뭐냐? 서로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고 여유가 생깁니다. 내가 응답받고 내가 축복을 받고 내가 잘 되면 남을 괴롭힙니까? 아닙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면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기고 친절해지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럽니다. 왜? 내가 화가 나고 분이 나고 그럽니까? 내게 응답이 없어서 그럽니다. 내 문제 해결 안 되면 내 상처 치유가 안 되면 남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내가 성령 충만하다 은혜 속에 있고 말씀 붙잡고 말씀 속에서 말씀 성취의 응답을 받고 이렇게 되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기쁘잖아요. 그럼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3.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바른 사람들은 백지장도 맞들면 낳다. 이런 속담처럼 이 부모가 힘이 들어 하는데 자식이 위로의 말 한마디 해도 얼마나 힘이 납니까? 부모가 너무 힘들게 들어 왔는데 자식이 빗자루 들어와서 청소 해주면 참 기쁘죠.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말만 하고 방해하고 이거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안하고 말이나 하면서 방해나 하고 그런 사람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주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용서함같이 하라 그 말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7: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 잘못을 용서하겠다. 남을 용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축복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자신은 잘못 안 합니까? 그러면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뭐라 하고 참 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 인간은 실수 할 수 있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용서 하셨습니다.
3- 나를 세우라
1. 유일한 이름
▶ 제가 지난주에 서울을 다녀왔는데 가고 있는데 제 처제가 전화가 왔습니다. 사촌 동생이 암으로 병원에 있는데 의식이 없고 며칠 안 남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갔더니 그 동생이 의식이 없는 겁니다. 작은 어머니가 깨워보려고 하는데 안 되는 겁니다. 집사람이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하면서 붙들었습니다. 어떻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 가야 할 것 아닙니까? 몇 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불렀는데 눈이 조금 떠지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아냐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겁니다. 의식이 있다는 말이죠. 그때 복음을 전하고 영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소천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동생이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에 와서 집도 하나 사고 살만해졌습니다. 살만해졌는데 암이 온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가게 되었는데 정말 이 사람한테 필요한 것이 뭘까? 마지막에 필요한 것이 뭘까? 엄마가 필요합니까? 아내가 돈이 필요합니까?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밖에는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없더군요. 그래 정말 우리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말입니다. 우리도 어느 날 가는데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 마지막을 붙잡고 가야할 이름이 뭔가? 저희 집사람이 그러는 겁니다. 너 마지막으로 예수 이름 붙잡고 가야돼!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잖아요! 엄마도 아내도 자식도 다 주님이 보호하니까 주님께 맡기고 너는 이제 하나님 나라 가야 되잖아. 그러니까 예수 이름 붙잡고 가야해. 그것 밖에는 없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저와 여러분이 절박하게 붙잡아야 하는 이름이 뭡니까?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대단한 것을 붙잡아야 되는 줄 압니다. 이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살 때 육신이 있을 때 그런 게 조금 필요하지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2. 감사의 축복
1) 거두어들임
▶ 그래서 우린 이 땅에 살면서 정말 해야 할 것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하지 않는 게 성령인도고 성령 충만 입니다. 우리가 가장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말입니다. 우리는 평생 수많은 말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이 말을 반드시 거두어들입니다. 내 말을 내가 거두어들입니다. 정말 내가 해야 할 말을 해서 그 말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겁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가지고 그 저주를 먹고 사는 겁니다. 말을 뿌리면 뿌리는 데로 거둡니다. 어느 시골 학교에서 한 아이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래 희망을 얘기하는데 그 아이의 집은 채소 장사하는 집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장군, 사장, 얘기를 하는데 그 아이는 채소 장사라고 말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웃고 비웃는데 그때 선생님이 말을 합니다. 그래 너 채소 장사 훌륭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채소 장사가 되라. 그런 겁니다. 얼마나 마음에 위로를 받습니까. 세월이 지나 한 사업가가 그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업가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사람이 말 한 마디해서도 마음이 달라집니다. 우린 해야 될 일이 뭔가 찾아서 이거 우린 생을 걸고 해야 되고요.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뭔가 이것 찾아서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2) 감사의 축복
▶ 그래서 사람은 어떤 물에 첫 발을 담그느냐가 중요합니다. 첫 마디를 감사로 시작하면 자꾸 감사는 커집니다. 그런데 첫 마디가 불평으로 시작하고 원망으로 시작하면 이상하게 불평은 더 커지고 원망도 더 커집니다. 감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생각에서 옵니다. 내가 받아야 할 것 보다 더 크다면 감사가 나옵니다. 내가 이정도 받으면 안 되는데 더 많이 받으면 감사하죠. 그런데 내가 이 만큼 받아야 되는데 더 조금 받았다. 그럼 감사가 안 나옵니다. 사실 내가 한 일이 뭐가 대단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해주신 일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만 찾아서 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신 그 분.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에 채찍과 압제가의 막대기에 꽉 잡혀 살던 나를 주께서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어버리시고 나를 영원한 저주 가운데 지옥가운데 가야 되는데 거기서 건지신 그리스도. 생각해 보면 감사밖에 안 나오죠. 거기에 뭔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까. 그건 저주 받을 인생이죠.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썼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괜히 기분이 나쁘더랍니다. 신문을 보니까 더 기분이 나쁜 겁니다. TV에서 보니까 기분이 나쁜 겁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데요. 그런데 그 다음날에는 무슨 생각이 드냐면 아침에 우유를 먹는데 참 고소하고 맛있다 이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유 배달원이 이렇게 가져다 줘서 내가 이렇게 먹는구나 하니까 기분이 좋아 지는 겁니다. 출근을 하는데 버스를 타면서 이 추운 날 버스를 타고 가니 행복하다 이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를 생각해 보니까 너무 행복 하더 랍니다. 사람이 감사 할 것을 찾으면 한없는 감사가 나오고요. 불평 할 것을 찾으면 한 없이 불평할 것이 나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한 해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늘 분별해야 합니다.
3. 보배 같은 사람
1) 나를 세우라
▶ 그래서 결국 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기 위해서 십자가를 끌고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뒤를 따르면서 울었습니다. 이때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사람들은 지금 자기 영적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남이 어떻다 그럽니다. 남 때문에 시험들이고 남 때문에 상처 받고 낙심하고 지금 나를 봐야 합니다. 내가 예배가 안 되고 기도가 안 되고 내가 성령 충만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가 왔는데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이 어떻다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헌금 할 수 있다.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헌금 할 수 없다. 그건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전 제가 하나님 앞에 복음 위해 헌신 할 수 있다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복음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건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난 내 인생을 통해서 내 주변 사람을 정말 조금이라도 위로 할 수 있고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 남을 기쁘게도 위로도 못한다면 그것은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헌금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데 그것이 저주인지도 모르는 겁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정말 내가 복음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드릴 수 없고, 헌신할 수도 없다면 저주가 아니고 뭐겠냐 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자식들이 정말 복음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내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드릴 수 있도록 이렇게 축복된 삶을 살아야 복 된 거지. 내 자녀들이 세상에 거침이 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그런데 남이 어떻고 저렇고 얼마나 불쌍한 겁니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정말 나를 봐야 합니다.
2) 보배 같은 사람
▶ 그래서 주님이 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까?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면 절대 안 됩니다. 살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셔야 합니까? 우리는 천사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야 합니까? 그 성령의 위로하심과 성령의 힘이 아니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까? 영적싸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인생이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 참 보배 같다. 이것이 복 있는 인생입니다. 참 저 분은 우리 교회에 꼭 있어야지! 저 분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 저 분은 우리 직장에 꼭 있어야지! 이 사람이 보배입니다. 내 자식이지만 보배로운 자식이 있죠. 하나님 보실 때도 보배다. 사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데 이 보배롭고 존귀한 인생을 아무 가치 없는데 세상 적이고 육신적이고 마시고 이런데 만 온통 쏟는다면 그것은 보배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나를 택하셔서 구원받게 하셨는데 이 복음이 흐르는데 내 인생을 헌신하고 내 소중한 것을 드리고 여기에 충성하고 이게 복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다 버리고 산다. 그건 아닙니다. 하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정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입술이 있는가 하면 불신앙하고 원망하고 불신앙을 심는 말을 보배로운 것이 아닙니다.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게 보배로운 겁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정말 사랑으로 은혜 가운데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직분자입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는 보배로운 일을 하라고 주신 겁니다. 나 같이 부족한 자에게 이 직분을 주셨는데 이 직분을 어떻게 잘 감당할까? 그게 보배로운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족함을 아십니다. 연약함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족하지만 이 일을 하라고. 교회를 세우라고 그런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