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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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믿는 것과 아는 일 조회수 : 136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1-03
  첨부파일:   20131103.hwp(64K)
1- 무릎 꿇는 사람
1. 두 가지 일
▶ 세상에는 두 종루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마귀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알던 모르던 마귀를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길이 있고 육신의 길을 향해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가는 길에도 두 길이 있습니다. 복음의 길이 있고 종교의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이 있고 좁은 길이 있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복음 가진 사람 중에도 성령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신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살리러 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도 모르게 남을 죽이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을 잘 세워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일 마다 가정을 허물어뜨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어찌하든지 세워 나가는 사람이 있고 자가도 모르게 교회를 허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비슷하다. 이런 종교가 있고 오직 그리스도 말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 있는가 하면 망하는 길이 있고요, 불행을 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잘 알아야 승리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잘 알아야 성령인도를 받습니다. 우리는 교회 흐름을 잘 알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복 있는 자리에 있구나! 이것을 사실적인 알게 됩니다.
2. 하나님의 계획
▶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 교회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우연히 이 땅에 왔다가 그냥 밥 먹고 살다가 하나님 나라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 이 지역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있는 가정, 또 교회,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거잖습니까? 이 부분에 대한 질문도 고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없으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데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겁니다. 음식 하나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몸에 좋은 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몸에 좋을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몸에 나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늘 내가 좋아하니까 그 음식을 자주 먹는데 그게 내 몸을 좋게 한다면 참 좋겠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내 몸을 안 좋게 한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니까 그 음식을 자꾸 먹습니다. 어느 날 그 증상이 나타납니다.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불신앙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계획 불신앙이 쌓여서 처음에는 모르지만 결국은 그 불신앙이 나를 사로잡고 나에게 각인이 됩니다. 이게 나 자신도 알게 되고 하나님도 아시고 사단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실컷 교회 다니고도 무너지는 겁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을 다 붙잡았습니다. 정말 이 땅에 필요한 것이 뭐냐? 그리스도구나! 우리가 붙잡을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구나! 나는 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다가 그리스도를 전하고 내가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돈 버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서구나! 그 계획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도 언약을 붙잡고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뭔지 분명하기 때문에 강단 말씀 붙잡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떡을 떼며 교제하기를 힘쓰고 결국 마음을 같이해서 오로지 기도 속에 들어 간 겁니다. 거기에 기사와 표적이 임하고 성도들의 마음이 열려서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날마다 구원 얻는 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사람이 자기에 대한 계획을 모르면 거의 대부분 옛날의 상처 그 과거에 사로 잡혀서 살아갑니다. 과거에 구원 받기 이전에 모습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교회만 다니는 거지. 구원받기 이전에 생각, 체질 그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무슨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참 기쁨과 행복이 솟아나면 여기에서 나도 모르게 세라톤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이 시대 이 교회 안에서 이렇게 신앙생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니까 자기도 모르게 불신앙하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그러니 몸 안에서 내 몸을 상하게 하는 아드레날린이 나와서 계속 자기를 육신적으로도 힘들게 만들고 육신적으로도 힘이 없는 겁니다.
3. 무릎 꿇는 사람
1)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 그래서 사람이 누구에게서 배웠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좋은 것을 본적이 없으면 좋은 것이 뭔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본적이 있어야 아 좋구나! 하는데 늘 나쁜 것만 보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좋은 것은 생각이 안 나고 나쁜 것만 생각이 나는 겁니다. 마가 다락방 성도들은 누구에게서 배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40일 동안 감람산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의 엄청난 영적 비밀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사모하는 겁니다. 영적세계를 배운 적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 밖에는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자녀 교육을 힘을 씁니다. 왜? 그럽니까? 어찌 하든지 내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살고 가장 바른 인도를 받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 아닙니까. 그런데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이상하게 됩니다. 배운 것이 없으니까 인사할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할 줄도 모르고 그러니 사회의 짐이 되는 겁니다. 만약 가정에서 가정교육이 안 된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한다면 직장 생활을 제대로 못 합니다. 부모가 어릴 적부터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잔소리도 하고 어떤 때는 책망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복종하게 하고 순종하게 만들고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래야만 자라서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 생활을 할 때 그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 갑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교육을 못 받으면 자기감정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직장에서 언제든지 사표내고 한 직장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럽니까? 참을 수가 없으니까 못 참는 겁니다. 자기 성질나는 대로 사는 겁니다. 그럼 자기 성질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어느 직장에서 있게 하겠습니까? 사장님의 눈 밖에 나고 동료들에게도 어느 날 잘리는 겁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천덕꾸러기, 사회에서도 천덕꾸러기. 그러면서 자기 고집이 셉니다. 어디 가서 뭘 하겠습니까? 함부로 하고, 교육을 못 받아서입니다. 세상도 이런데 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교육받지 못하고 그러면 말씀 들을 힘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인도 말씀의 순종 이런 것들이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붙잡고 같이 기도 속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면 사도들의 말씀을 마음에 받고 그것을 붙잡고 기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안 되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례하고 가정과 교회에서 똑같이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 문제 일으키는 사람들은 목사 말 안 듣습니다. 지 멋대로 입니다. 지 고집대로 절대 장로님 말 안 듣고 지 멋대로 합니다. 권위에 복종할 줄도 모르고 권위를 인정할 줄도 모르고 그런 사람은 사회생활이 안 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배웠냐가 중요합니다.
2) 무릎 꿇는 사람
▶ 바른 교육이 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다윗이 왕입니다. 왕인 다윗의 고백을 보면 내가 왕이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시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 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다윗은 자기가 왕인데 의시대고 과장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육신적으로 왕이지만 나의 왕은 하나님 밖에는 없다. 그래서 날마다 왕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 시대를 잘 보세요. 사람들이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시대가 왔습니다. 권위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조롱하는 시대, 사람의 권위를 무시하는 시대, 왜? 그럽니까? 창3장에 사단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고 말씀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사단의 종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함부로 대하고 무례하고 예의가 없고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르니까 그러는 겁니다. 절대 성령인도를 못 받습니다. 우린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릎 꿇는 겁니다. 하나님이 벌 주실까봐 벌벌 떠는 것은 신앙 아닙니다. 부모가 무서워서 무릎 꿇는 것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에 고맙고 감사해서 스스로 무릎 꿇는 것이 효도입니다. 하나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신앙입니다. 참 세상이 험악해졌습니다. 사람에서 함부로 성질내고 욕하고 거칠고 이거 분명 사단에게 무릎 꿇고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예의가 바르고 겸손하고 친절합니다. 자기 삶이 다 무너져 버린 사람일수록 함부로 합니다. 말만 합니다. 영적인 힘, 은혜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사람은 사람도 귀하게 여깁니다. 섬길 줄 압니다.
2- 믿는 것과 아는 일
1. 온전한 사람
1) 믿는 것과 아는 일
▶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요, 그리스도는 흑암을 꺾어 버리고 죄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되면 분명히 나에게 그 믿음이 체험이 나에게 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체험이 와서 내 인생이 바뀌고 나를 변화시키고 내 삶과 행동이 바뀌는 겁니다.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는 겁니다. 그런데 믿는 다고만 했지 아는 것이 없는 겁니다. 안다는 것은 체험한다는 겁니다. 영국의 한 마을에 유명한 박사님이 어셔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하느냐?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 강의를 했는데 어떤 허리가 구부러진 한 노인이 일어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저는 십 년 전에 먹고 살 것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식이 8인 과부로 세상에서 버려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기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8남매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사상이 박사님께 해준 것이 뭡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니 훌륭한 박사님이 그 노인에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지식일 뿐이지 아무 힘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내가 구원받은 축복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이것이 나에게 지식이 아니고 삶이 되고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2) 온전한 사람
▶ 온전한 사람은 성숙하다 말입니다. 어른이 되었다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모든 문제 해결자인데 이것이 나에게 체험되고 내 삶에서 남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말입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저 사람에게 필요하다. 말입니다. 내게 있는 것 준수 없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없는데 어떻게 줍니까? 내게 있는 것을 준수 있어야 이것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 정말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이 체험되어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3. 요동하지 않게
1) 어린 아이
▶ 어린 아이는 갓난아이를 말합니다. 온전한 것에 반대입니다. 어린 아이는 변덕이 심합니다. 잘 속습니다. 감정 변화가 심합니다. 눈앞에 것 밖에 모릅니다. 자기중심입니다. 오해가 많습니다.
2) 요동하지 않게
▶ 여기에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파도가 칠 때 물이 흔들입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어린 아이 같이 사람들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를 버리고 장성한 자의 축복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3- 언약의 바통
1. 이제부터
▶ 새로 시작하라 그 말입니다. 내 과거가 어찌했던지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라 말입니다. 바울은 예수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만나서 새로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복음 전하는 교회를 없애려고 인생을 올인 했던 그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나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으로 살리고 가는 곳마다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 후대를 살리는 일 시작했습니다. 이게 자기 규례였습니다. 자기 습관이었습니다. 네 과거에 메여서 상처에 메여서 악습에 메여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다락방 성도들은 그들은 과거 그리스도 앞에 다 내려놓고 딱 한 가지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하나님 나라 성령 충만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서 기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처, 과거가 많습니다. 얼마나 속았습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이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이 과거가 해결이 안 돼서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인데 끝났는데 또 붙잡고 또 붙잡고 그러는 겁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의 출발입니다.
2.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십니까? 어린아이를 버린 사람. 사람의 속임수에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온갖 교훈에 풍조에 밀려서 요동하는 사람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육신적인 세상적인 사람을 쓰신 적인 없습니다. 요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천 명 먹인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 남았습니다. 백성들은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안되면 먹고 살 걱정 없으니까. 예수님이 산으로 피했습니다. 백성들은 찾습니다. 산에서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은 기적을 본 것이 아니고 떡을 배불리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찾았다. 그러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너희 조상들을 봐라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다 죽었다. 내 살, 내 피를 먹으로 영생을 한다. 그 말씀 하시면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생명의 말씀을 먹어라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무릎을 꿇지도 않고 무릎을 꿇을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영의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이 시대에 이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를 알고 내 인생이유를 알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 이 사람을 하나님을 쓰십니다. 하나님과 방향이 안 맞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실컷 살았는데 인생을 헛수고 한 겁니다.
3. 언약의 바톤
1) 한 사람의 시작
▶ 1858년 미국 보스턴에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구둣방에 일하는 소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년이 복음을 받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소년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20년이 지난 뒤 그 소년은 미국 대부 흥을 일으킨 무디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구두 닦으면서 복음 전한 사람이 킴벌리라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20년 뒤에 대부 흥을 일으키는 무디가 되었습니다. 영국에 가서 무디가 전도 집회를 했는데 메이어라는 사람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복음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무대의 절친한 친구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메이어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채프만이라는 사람이 또 복음을 받고 채프만도 나도 메이어처럼 복음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복음 전합니다. 많은 사람 중에 메이저리그 선수 한 명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이 선수를 통해 빌리. 썬 데이라는 사람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사람이 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안 받는 겁니다. 그런데 12살 소년 하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열매가 없는 거죠. 아이 한 명. 그런데 12살 소년이 성장해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복음을 많이 전했던 빌리그래함입니다. 킴빌이라는 사람이 무디에게 복음 전한 역사가 빌리. 그래함에게 갔습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겁니다. 복음 전하는 한 사람인가? 아닌가? 이것이 관건입니다. 우린 생각은 하는데 시작은 안 합니다.
2) 언약의 바통
▶ 어느 자리에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바리새 교회와 마가다락방 교회가 있습니다. 마가다락방 교회가 붙잡고 있는 것이 뭡니까? 여인의 후손 그리스도.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리스도 언약을 잡았습니다. 이 언약을 붙잡은 마가다락방 교회를 통해서 결국 복음이 확산 되었습니다. 어마한 바리새 교회를 통한 것이 아닙니다. 힘없는 마가다락방 교회를 통해서 언약이 전달되었습니다. 1500년 후 교회가 복음을 놓칩니다. 황제가 교회를 나옵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됩니다. 황제가 교회를 나옵니다. 믿음은 아닙니다. 이때 마딘 루터가 나와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종교가 아니다 교권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믿음이다. 그런데 이단이라 정죄를 받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루터를 살립니다. 그렇게 복음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500년이 가까워진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충만 이게 점점 약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말하고, 오직 그리스도 전하고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우린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감격하고 그리스도께 소망 두고 살아가는 사람. 오직 그리스도 말하는 제자, 오직 그리스도 말하는 교회 세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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