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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힘써 지켜라(엡4:1-3) 조회수 : 125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0-06
  첨부파일:   20131006.hwp(31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힘써 지켜라
성경
엡4:1-3
일시
2013년 10월 6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은혜와 행함
1. 좋아하는 사람
▶ 지난주에 저의 신학교에 장로님 한 분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인 권사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은 목사님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는 겁니다. 너무 좋아 한다는 겁니다. 목사님이 너무 좋으니까 신앙생활이 되는 겁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장로님이 참 순수하시고 주님을 사랑하시는구나! 목사님이 좋다는 말은 주님이 좋다는 말이고, 은혜 생활이 된다는 말이고, 영적상태가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런 마음이 내게 가득하면 영적으로 힘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이 섭섭하고 서운하고 그러면 문제가 와 있는 겁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볼 때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너무 고마워! 너무 귀한 분이야. 또 부모가 자식을 볼 때 너무 사랑스럽구나. 그러면 그 가정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를 볼 때 답답하다. 또 부모가 자식을 볼 때 심란하구나! 그러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데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좋고 선생님이 너무 좋고 그러면 그 아이는 틀림없이 모범생입니다. 공부 잘 합니다. 그런데 학교가기 너무 싫고 선생님이 너무 싫으면 문제가 와 있는 겁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그 사람이 축복의 사람이죠. 다윗이 시21: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내가 왕 된 것이 즐겁고 기쁜 것이 아니고 정말 내가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주의 구원으로 크게 즐거워한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상태입니다.
2. 영적 규모
▶ 사람이 살아가는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규모가 참 중요합니다. 규모가 되어져있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집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속상하다고 직장을 안 나간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은 밤새 잠도 못자고 집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정시에 출근하여 정해진 일 하고 퇴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회생활에 승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실패하는 사람은 집에 일이 있다고 애가 아프다고 자꾸 빠집니다. 그럼 직장에서 눈에 벗어납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퇴출 1호가 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영적인 일도 비슷합니다. 다윗에게 큰 일 작은 일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에 늘 기도하고 시17: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항상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규모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도망 다니는데도 새벽에 늘 기도하고 밤에 늘 기도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가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늘 확인하며 사는 겁니다. 그것이 다윗의 규모입니다. 신앙생활에 영적규모는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 있다고 예배 빠지고 그런 사람은 영적생활이 안 되는 겁니다. 어떤 때는 속상한 일도 있고 아픈 일도 있고 그런데 예배 생활에 승리하고 기도 생활에 승리하고 영적생활이 되는 겁니다.
3. 은혜와 행함
▶ 성경은 복음을 두 가지로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데 그 복음의 삶은 행위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단의 권세를 꺾으신 그리스도가 은혜로 나에게 믿어지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의 축복이 반드시 옵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따라 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따라 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권세 주신 것은 뭐라고 하는 겁니까? 행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 은혜와 행함은 같이 가는 겁니다. 이스라엘에서 옛날에 이런 일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안식일을 안 지켰다고 부모가 아이를 혼내고 때리다가 아이가 죽었습니다. 잘못된 겁니다. 그런데 여론은 부모가 자식을 때린 것은 잘못됐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 아이에 대해서 채벌을 가한 것은 당연하다. 그 나라 분위기가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너무 과한 거죠. 잘 보세요. 우리가 은혜만을 강조하면 사람이 방종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은혜는 말하지 않고 행함만 강조하게 되면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은혜 받은 사람은 반드시 행함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맞는 생각 말, 행동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열매로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고 은혜를 받으면 당연히 헌신하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사랑을 크게 받으면 받을수록 효도가 나오는 겁니다. 당연히 학생이 학교에 입학하면 당연히 학교 생활하는 겁니다. 그것이 행함입니다. 은혜와 행함은 별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같이 가는 겁니다.
2- 힘써 지켜라
1. 사람의 그릇
1) 사람의 그릇
▶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내 인생 주인 되시면 주님이 주인 되신 삶이 나옵니다. 그것이 그릇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응답 받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축복 받을 사람이구나! 이것은 그릇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그릇이 안됐구나! 사람에게 말을 해 줄 수 없지만 그릇이 보입니다. 저 사람은 그릇이 크구나. 저 사람은 그릇이 작구나. 그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힘듭니다. 그러나 느낍니다.
2) 합당하게 행할 것
▶ 구원받은 사람에게 합당하게 행할 것이 무엇인가? 다섯 가지를 설명합니다. 모든 겸손으로 겸손이라는 말은 교만과 고집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고집이 센 사람은 절대 겸손하지 않습니다. 고집이 센 것은 복음에 합당한 그릇이 아닙니다. 교만한 것은 복음에 합당한 그릇이 아닙니다. 사단에게 그 생각이 잡혀 있기 때문에 교만한 것이고 고집이 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필요 없는 겁니다. 하나님 필요 없고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살겠다. 그것이 고집이고 교만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 은혜 아니면 못 삽니다. 그래서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두 번째는 온유하다. 이 온유라는 말은 원래는 야생마인데 이 야생마가 길들여진 상태가 온유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내가 내 인생 주인이었습니다. 내 감정대로 내 경험대로 내 지식대로 내 방법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말씀에 길들여진 것 이것이 온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도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기준대로 자기 방법대로 그것은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길들여져서 인도를 받는 겁니다. 야생마가 힘이 셉니다. 그런데 힘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 힘이 잘 길들여져서 가장 복음에 합당한 일에 헌신하는 겁니다. 그래서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감정을 못 다스립니다.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으니까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겁니다. 모세 같은 경우는 나이 40세 때 자기 민족을 때리는 애굽 인을 죽입니다. 감정을 절제 못해서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에 길들여지는 겁니다. 나이 80세 하나님 앞에 부름 받고 그가 길들여진 사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의 대표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습니다. 그 백성을 다 이끌어 갑니다. 왜요? 40년 동안 말씀에 길들여진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에 길들여진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성경은 보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반대는 조급함입니다. 말세 현상 중에 현상이 조급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것을 못 기다리는 겁니다. 그것이 성령의 사람이 아닌 겁니다. 이 땅의 문제는 조급해서 일어납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맙니다. 조금 헌신하다가 맙니다. 그거 영적문제입니다. 모세는 40년 기다렸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기다립니다. 사람을 볼 때도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분들 에게 모성애를 주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모성애를 주시니까 기다리는 구나.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영적문제입니다. 엄마들은 다 기다립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속 붙잡고 기도 속에 있는 것, 복된 겁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복 있는 겁니다. 네 번째는 사랑가운데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고 무관심입니다. 사람이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 합니다. 관심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미워합니다.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될 대로 되라. 그것은 사랑 없는 겁니다.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말든지. 사랑이 식은 겁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을 때는 미워합니다. 포기해 버리면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랑하면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이 예뻐집니다. 어릴 때 사는 동네에 아는 누님이 계신데 얼굴에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점을 놀리는데 그 누님을 좋아하는 형님은 그 점을 복점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눈이 달라지고 말도 달라집니다. 어딘가 예뻐집니다. 사랑하면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싫은 겁니다. 원수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식으면 밖으로 돕니다. 같이 있는 것이 싫으니까 밖으로 도는 겁니다. 참 사랑가운데 있다 그랬습니다. 다섯 번째는 서로 용납하고 이것은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용납하지 못하면 정죄하고 비판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열매가 용납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이것이 합당한 삶입니다. 복음가진 사람의 그릇입니다.
2. 평안의 매는 줄
▶ 매는 줄은 묶었다는 겁니다. 뭘 묶었습니까? 하나님이 가정을 묶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라는 것을 묶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려고 만든 제도입니다. 하나님이 창세기에 보면 가정이라는 제도를 우리에게 복 주려고 주셨습니다. 은혜 생활하고 신앙생활 유지 하도록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 졌습니다. 교회라는 제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창3장에 문제가 뭡니까? 하나님 메어놓은 줄,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줄. 그것을 사단은 깨뜨리게 합니다. 속입니다. 그것 깨뜨리고 나오면 훨씬 좋다고 사단은 말합니다. 자유롭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그 줄을 벗어납니다. 그때부터 인생 문제가 왔습니다. 가정도 그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끊임없이 그 가정을 깨려고 합니다. 가정 밖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겁니다. 가정 밖에서 무슨 행복이 있는가 말입니다. 자기 남편과 아내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떠나서 남의 여자, 남자를 쳐다보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냐 말입니다. 아닙니다. 거기에 뭐가 있는 것처럼 사단이 속이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 속임에 따라갑니다. 가정을 깨고 어딜 가면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개정안에 하나님이 평안의 메는 줄 그 안에 축복이 있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꼭 사단은 교회밖에 뭐 꼭 교회 나가야 돼? 꼭 예배드려야 돼? 꼭 교회에 메여 있어야 돼? 사단에게 속는 겁니다. 하나님이 메어 놓은 줄입니다. 사단은 어떤 방법을 쓰던 이것을 깨려고 합니다. 하나님 떠나서 행복이 있습니까? 가정을 떠나서 행복이 있습니까? 교회 떠나서 행복이 있습니까?
3. 성령의 하나되게
▶ 그래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셨다. 성령의 사역은 하나 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성도와 성도를, 교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사단이 하는 짓은 하나님과 관계를 깨버리고, 성도 간의 관계를 깨버리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깨버리고, 부부 관계를 깨버리고, 사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져 버리니까 뼈 중에 뼈, 살 중에 살 사이인 아담과 하와 사이가 깨져 버립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형제인데 형제 사이에 사단이 역사하니까 형이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계속해서 하나 되게 하시는데 사단은 분리시키는 겁니다. 섭섭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고 이간질 시킵니다.
4. 힘써 지켜라
▶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지켜야 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 함부로 하는데 그 부모 자식이 정상 관계가 됩니까?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식이 부모를 존경할 줄 알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줄 알고 이래야만 가정이 되고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 됩니다. 저는 부모 자식 간에 원수 된 사람 많이 봤습니다. 자식이 원수인 사람, 부모가 원수인 사람이 많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물론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가정에 들어가 잘 보세요. 부모가 자식을 막 함부로 하고 욕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악이 바치는 겁니다. 어릴 때는 모르는데 성장하면 원수 갚는 겁니다. 이게 서로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나이 들었는데 아내가 발로 차고 멸시 천대 하더라고요 젊었을 때 너무 힘들게 해서 원수라고 합니다. 밥도 안 줍니다. 그러니까 밥도 못 얻어먹을 일을 하고 산겁니다. 자기가 함부로 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목사를 지키고 목사가 성도를 지키고 성도가 성도를 지키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3- 마가 다락방 성도들
1. 잘 들으라.
▶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흘려버립니다.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나오는 겁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선생님 말씀을 잘 귀담아 듣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은 말씀을 잘 듣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딱 담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다 흘려버립니다. 성령인도 받는 사람은 말씀을 마음에 담습니다.
2. 강한자를 결박하라
1) 깨어 기도하라
▶ 우리 주님이 하신 기도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밤새면서 기도 했습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힘쓰고 애쓰면서 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기도하라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느냐.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좋은 것을 주신다. 그래서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악한 재판장에게 밤낮으로 억울함을 얘기 했던 과부를 악한 재판장이 들어주었다. 예수님이 비유입니다.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끝까지 기도하겠냐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하다가 말아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오니까 있으니까 기도하라는 겁니다. 9월 기도수첩에 보면 조경원 이라는 렘넌트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빠는 교회에서 드럼을 엄마는 피아노를 칩니다. 처음부터 이런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경원이가 6살 때 아빠가 복음을 안 받고 있으니까 식사 때 기도를 하는 겁니다. 아빠가 그 기도를 듣고 아빠가 돈 벌어서 밥 주는데 왜 하나님께 기도해 하고 혼내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셨어요.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경원이가 아빠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한 겁니다. 6살인데 어느 날은 전도 책을 가지고 아빠한테 전도를 하는 겁니다. 지옥그림 보여 주면서 아빠 예수 안 믿으면 지옥에 가 예수 믿어야 해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 은혜가 임해서 6살 아이를 통해서 그 아빠 엄마 누나 동생 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경원이가 기도하기 시작한지 1년 만에 온 가족이 다 나오게 된 겁니다. 이런 복된 가정이 된 겁니다. 이런 어린 아이도 깨어서 기도하는데 이런 아이의 기도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시는데
2) 강한자를 결박하라
▶ 강한자를 결박해야 합니다. 주의하세요. 베드로가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사단과 상관없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한 베드로에게 사단이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강한 자를 결박하라고 했습니다. 강한 자를 결박해야만 그 속에 있는 것을 늑탈한다. 마12:28-29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귀신을 꺾는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우는 사자라고 했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싸우지 않으면 속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어느 날 후회합니다. 실패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난. 무능, 질병, 영적문제, 악습, 불신앙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난의 저주는 예수 이름으로 꺾일지어다. 예수 이름 불러서 꺾어야 합니다. 영적싸움 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에 파고드는 사단의 세력을, 불신앙의 세력을, 불순종의 세력을 예수 이름으로 꺾어야 합니다.
3. 마가 다락방 성도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
▶ 내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잘 봐야 합니다. 다윗은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 있지 않는다. 내가 죄를 안 졌는데 죄인들이 길에 서 있어요. 그거 저주입니다. 내가 지금 정말 악한 일을 안 했는데 악한 자의 꾀를 따르고 있는 겁니다. 속고 있는 겁니다. 나는 사실 그렇지 않은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서 있는 겁니다. 그게 오만한 겁니다. 기도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다는 말입니다. 정말 내가 예배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다락방은 24시 기도하는 단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 예배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 전도하는 자리에 있다면 축복입니다. 응답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성령인도를 못 받으니까.
2) 마가 다락방 성도들
▶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이 힘 쓴 것이 있습니다. 약속을 붙잡고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하는데 행1:14 나타난 응답이 행2장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각 사람위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응답입니다. 행2:41-42에 보면 말씀을 잘 듣고 붙잡고 오로지 기도에 힘씁니다. 이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강단 말씀 잡고 같이 기도에 힘썼는데 역사가 일어나고 성도들이 마음 문을 열어 가진 것을 통용했다. 행2:46-47 보면 날마다 한 일이 있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분리입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손가락질을 받는다? 안타까운 겁니다. 복음 아닙니다. 불신자도 그렇게 안 합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가난하고 연약하고 배운 것도 없고,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붙잡고 마음을 같이해서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는데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건강, 시간, 물질,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미래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 사람의 미래입니다. 가치 없는데 타락하는데 쓰면 미래는 뻔합니다. 그 소중한 돈을 복음 전도 위해 아낌없이 드리는 사람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간을 타락하는데 쓰는 사람하고 정말 가치 있는데 투자하는 사람하고, 복음 전하는 영적인 부분에 투자하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돈과 시간을 미래를 위해 투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돈과 시간을 아무 가치 없는 곳에 낭비 합니다. 복음의 사람은 영적인 일에 투자합니다. 복음과 교회에 투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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