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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능히 하실 이 조회수 : 1154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9-22
  첨부파일:   20130922.hwp(64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능히 하실 이
성경
엡3:20-21
일시
2013년 9월 22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중요한 이유
1. 본질적인 것
▶ 어떤 분이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했는데 회사가 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깨달았습니다. 아 이 회사가 우리 때문에 망했구나! 우리가 일을 더 잘했더라면 이 회사가 망했겠냐? 참 사장님은 얼마나 힘들겠냐? 우리는 새로운 회사 찾아서 먹고 살면 되는데 사장님은 참 힘들겠다. 그래서 이 분이 직장이 없으니까 일용직 노동일을 하게 된 겁니다. 과거에 직장에 있을 때는 요령을 피우고 일했는데 인생에 쓴 맛을 보고 난 뒤에는 비록 일용직이지만 어느 집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한 겁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 사람을 보니까 괜찮거든요. 다른 사람은 눈치 보며 하는데 이 사람은 정말 최선을 다하거든요. 원래 주는 돈 보다 더 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연락처를 받아서 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직접 부르는 겁니다. 그렇게 일용직 일을 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 분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호떡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도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잘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러니 입소문이 나서 돈을 조금씩 벌기 시작한 겁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소문이 나서 대학에서 생활 강사로 초빙을 해서 강의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본질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본질은 놓치면 부수적인 것으로 싸우고 합니다.
2. 중요한 이유
1) 하나님의 계획
▶ 행7장에 보면 스데반이 복음전하고 돌에 맞아 죽습니다. 많은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으니 망했구나! 생각을 합니다. 죽으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은 복음의 사람이고 전도자입니다. 그가 죽을 때에 하나님의 계획이 없었겠습니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는데 똑같이 중직자로 쓰임 받았던 빌립이 하나님의 은혜 중에 아무도 가지 않는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그리스도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 와서 예배드리고 가는데 은혜를 받지 못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정확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행9장에 가서는 욥바 지역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 제자 시몬이라는 제자가 말씀 운동을 하고 고넬료라는 사람이 돌아옵니다. 행9장에는 다메섹에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있는데 핍박 중에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생을 걸고 기도합니다.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 붙잡으러 가는 사울이 회개하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12장에 가서는 사도들을 죽인 헤롯. 베드로도 죽이려고 함.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생을 걸고 기도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죽어도 좋다 하고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한 겁니다. 그때 헤롯이 충이 먹어 죽습니다. 이런 전도자의 죽음 속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집니다. 가만히 있었던 중직 자들이 일어나고 지역 지역에 말씀 운동이 일어나서 흑암이 꺾이고 숨겨진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를 토마스 선교사라고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전도도 못했습니다. 한국 땅에 오자마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국이 현재 세계 2번째 선교국입니다. 대단하지도 않은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선교 강국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주기철 목사님이 죽은 다음에 끝났냐? 아닙니다. 정말 전도자의 죽음 속에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습니다.
2) 중요한 이유
▶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내 인생 달려갈 길 복음 전하다가 끝나는 날 우린 하나님 나라 가는 겁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본질입니다. 이 끝을 모르면 인생이 허무하고요, 이 끝을 모르면 인생이 방황 합니다. 한 번 밖에 살지 않는 소중한 인생을 방황하는 것처럼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없습니다. 인생을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닌데 안타깝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불행과 어려움은 중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급속도로 흑암 문화에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지금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떠나서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식, 하나님 없는 학문, 하나님 없는 문화, 하나님 없는 모든 것 때문에 이 땅에 문제가 계속 옵니다. 일본 사람들은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은 친절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참 좋은 국민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얼마나 불안 합니까? 저와 같이 있는 목사님이 얼마 전 일본 사역을 갔는데 가니까 식사를 하러 가는데 일본은 거의 밖에 나가서 사 먹습니다. 그런데 먹을 때마다 선교사님이 이것은 방사능과는 상관없는 음식입니다 라는 겁니다. 자기는 의식이 없는데 선교사님은 그것을 계속 강조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에 대한 불안이 늘 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착하고 잘 사는데 왜? 이런 문제가 계속 올까요? 재앙 아니고 뭡니까? 괜히 우리나라까지 일본의 방사능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일본이 왜? 그럽니까? 마을 마다 신사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우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 한 집 걸러 한 집마다 정신병자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많다는 겁니다.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말입니다. 참 우리 인생에 절대 적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사단의 세력을 누구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지옥의 권세에서 빠져나올 자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일본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하고 착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 운동하는 사람과 교회를 핍박하고, 이단 누명을 씌웁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이 유대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후손들이 2000년 동안 유리방황 했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파라다이스가 아닙니다. 점점 재앙이, 점점 재난이, 점점 저주가 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 영적인 싸움
1) 복음이 복음 되는 순간
▶ 그래서 복음 운동, 그리스도 운동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잘 보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불구하고 정말 이 사단이 얼마나 끈질긴지 나를 공격하고 있고 지금도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을 합니다. 복음 가진 사람은 사단이 예외로 둡니까? 우리 구원을 못 뺏어 갑니다. 그런데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대적 마귀, 복음 가진 목사님도 넘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나빠서 입니까? 아닙니다. 사단의 정체를 너무 얕잡아 봅니다. 그러면 보음 가진 목사님도 넘어지는데 중직 자들은 예외입니까? 우리 과거의 상처 과거의 모든 것을 사단이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복음위해 귀하게 쓰임 받았는데 자신이 과거 상처를 사단이 공격하니까 딱 넘어집니다. 우리는 사단의 얼마나 교묘하게 끈질기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으면 각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이 만큼 하면 괜찮겠지? 그 순간 무너지는 겁니다. 이 만큼 복음이면 되었지? 그 순간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상처, 자기 과거, 이거 조금만 지나면 옛날로 돌아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하면 응답이 없고 뭐가 안 되고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신앙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래서 정말 복음이 나에게 복음 되는 순간 아 왜? 내가 바보처럼 그랬지? 내가 옛날에도 속았는데 왜? 또 속았지? 정신이 바짝 드는 겁니다. 내가 분명히 하나님 자녀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었지?
2) 영적인 싸움
▶ 그래서 정말 사실적인 영적싸움을 해야 합니다. 영적싸움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뭘 하려고 해도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음위해 헌신 하고 싶은데 내가 능력이 없어.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력이 없는 겁니다. 이것을 무능이라고 합니다. 이것 분명히 싸워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고 싶은데 가난해, 가난이 내 대에서 잠시 가난하면 되는데 대대손손 가난해 이게 저주입니다. 싸워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이 잠시 아플 수 있는데 평생 아픈 겁니다. 질병 이거 싸워야 합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고 영적인 부분도 약해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들어있는 악습이 고질적입니다. 예수 믿어도 하나님 자녀 되어도 그럽니다. 명절 때가 되면 사단이 역사해서 옛 체질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악습이 뿌리가 아직 뽑히지 않아서입니다. 놀음에 술에 못 된 짓에 성질내는 사람은 성질내고 완전히 열래 행사입니다. 어릴 적에 저희 집 앞뒤로 외삼촌들이 사셨는데 명절이 되면 음식 만들고 제하고 잘 먹고 또 싸웁니다. 술 먹고 싸워서 밤새 잠 못 자고 그럽니다. 꼭 제사 지낸 다음에 그리고 밤에 그럽니다. 이것 싸워야 합니다. 귀신이 떠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그러니 백전백패입니다. 얼마나 당하면 깨달을 까요? 그렇게 당해도 못 깨닫습니다. 한 번 당해도 깨닫는 사람이 있고 매년 당해도 못 깨닫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 싸움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 일을 말하셨을까요? 우리에게 각인 된 것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왜?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날마다 모였을까요?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머리로는 압니다. 무능, 가난, 영적문제, 질병, 악습, 불신앙, 없어져야 하는데 머리로는 압니다. 실제가 안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실제는 거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과거가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가 발판이 아니고 거기에 메야 있습니다. 빠져나왔다고 입으로는 말하는데 실제는 메여 있습니다. 생각이 메여 있습니다. 삶이 메여 있습니다.

2- 능히 하실 이
1. 역사하시는 능력
▶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으로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던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해도 죄와 허물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 많아도 진실하고 착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 겁니다.
2. 능히 하실 이
▶ 그런데 그 분이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 믿어도 자기 수준, 자기 경험으로 하나님은 제한합니다. 내가 못하니까 하나님이 하실 수 있겠어?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하지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하나님이 마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못합니다. 내가 내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뭡니까? 밥 먹이는 것 밖에는 못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자식에게 믿음도 못 심습니다. 내가 아무리 자식을 믿음으로 키우려고 해도 잘 됩니까? 하나님 역사하셔야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만이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꾸 내 수준으로 내 지식으로 내 경험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봐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3. 영광이 대대로
1) 교회 안에서
▶ 그래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구원받은 자란 말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아닌 이제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 안입니다.
2) 영광이 대대로
▶ 하나님께 세세영원토록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1. 연약 코드
▶ 기도수첩을 보면 언약코드라는 내용이 지난주에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내게 돌아온다. 내 말이 내 굴레가 되는 겁니다. 우리의 말에 하나님이 언제나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담긴 말인가? 아니면 힘들었던 자기 자신을 토로한 불신앙의 말인가? 내가 지금 뱉은 말이 당신의 언약 코드가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베드로의 언약 코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완전 그리스도. 이것이 하나님과 중심이 통한 겁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말씀이 임했고 성령 충만 받아서 하나님 말씀을 전달 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최고의 사역이 무엇일까? 내게 임한 그리스도를 증명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울의 언약코드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가이사 앞에 서도 서슴지 않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던 사람인데 그곳에서 그리스도 만났다. 그 그리스도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이것 증거 합니다. 그게 바울의 언약코드입니다. 우린 내 능력 경험 열정을 믿지 말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자녀 정체성을 확인하는 말을 해야 한다. 믿음의 말은 반드시 믿음의 열 마을 가져온다. 이것이 언약코드의 내용입니다.
2.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
1) 지혜로운 입술
▶ 얼마 전 중직자 편지에 보니까 더 귀한 것은 지혜로운 입술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피아노로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연주를 잘해서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있다. 그러면서 말에도 향기가 나는 말이 있고 악취가 나는 말이 있다. 한 방송국에서 실험을 했는데 밥 두 개를 담고 하나는 고맙습니다. 또 하나는 짜증나는 써 놓고 한 쪽은 좋은 말을, 또 한 쪽은 나쁜 말을 했는데 결과를 보니 좋은 말 쪽의 밥은 하얀 곰팡이가 또 다른 쪽은 악취 나는 검은 곰팡이가 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방송국 사람들이 말의 중요성을 알고 말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말, 지혜로운 말, 사람들이 말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2)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감사의 말을 하고, 사람 살리는 말을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하고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 그것이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또 나에게 맡겨진 직분 이것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면 이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나에게 맡겨진 물질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재능도 주시고 시간도 주셨는데 이 재능과 시간을 하나님 원하시는 기쁜 일에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최고의 영광을 돌리고 현장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질문하고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생하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생각하는 인생하고 다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 다윗의 인생을 보면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고백을 합니다. 어느 가정에 갔더니 식탁에 항상 빈자리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집에 간 사람들이 이 자리는 누구 자립니까? 물으니 이 자리는 주님이 앉으실 자립니다. 그러는 겁니다. 상징이죠. 어느 교회는 구역 예배를 드리면 빈 방석으로 하나 둔 답니다. 주님이 계신 자리라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정에 주인이 주님이십니다. 이 의식을 늘 하며 삽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데도 이 사업장에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이 고백을 합니다. 주님이 항상 내 앞에 계십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계시고, 사업장에도 주님이 항상 내 옆에 계시고, 이것을 늘 의식하고 사는 사람하고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이 왜? 함부로 말 할까요? 주님이 내 옆에서 듣는다고 생각안하니까 함부로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 왜? 함부로 행동할까요? 주님이 내 옆에서 계시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겁니다. 못된 짓을 하는 것은 주님이 내 옆에 계시는데 주님이 안 본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윗의 인생은 늘 그 하나님이 내 앞에 그러니까 아침에 기도가 되고 밤에 기도가 되고 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다윗의 인생입니다. 그의 인생 마무리에도 하나님 주신 모든 것 성전 짓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다 드리고 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것이 다윗의 인생입니다. 우리 신앙의 출발이 하나님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바른 겁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서다 보면 상처도 받고 오해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만 가장 완전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 앞에 사람 앞에 그러면 나도 모르게 오해되고 상처받고 낙심하고 실패합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 서야하고 우리 성도도 하나님 앞에 이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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