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무릎을 꿇고 비노니
성경
엡3:14-16
일시
2013년 9월 8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길근 목사
1- 영원한 것
1. 왜 환란을 허락하실까
▶ 시편 139편에 보면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 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우리가 일어서고 앉고 생각하고 말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에게 어려움도 있고 환란도 있냐 그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환란과 어려움을 구원받은 성도에게 허락하셨을까요?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롬5:3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환란이 어떻게 즐거움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데로 감기몸살만 걸려도 참 힘든데 환란과 어려움이 왔는데 즐거워한다? 이것을 쉬운 얘기가 아니고 어려운 겁니다. 내가 환란과 어려움이 왔는데 이것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보통 환란과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합니까? 왜? 이런 어려움이 왔지? 왜? 이런 문제가 왔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려움에 힘이 드니까 낙심해버리고, 어떤 사람은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자신을 점검해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도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아 내가 바르게 살아야겠구나 하면서 자신을 점검하고 바르게살기를 결심하고 점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필요한 겁니다. 당연히 어려움이 왔으면 왜? 이런 어려움이 왔을까? 생각을 해야겠지요? 잘못했다면 회개해야 할 것이고 또 바르게살기를 결단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 일을 허락하셨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환란을 허락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정말로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겠구나! 이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환란을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환란이 환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정말로 그리스도만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환란이 왔을 때 불신자는 다른 길을 찾아서 막 방황을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환란이 왔을 때 어떻게 하냐? 회개하고 바르게살기를 각오도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2. 영원한 것
▶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 그 전도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어떤 환란과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영원한 것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히11장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얘기하면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계속 이 말이 나옵니다. 무엇을 보았다는 겁니까? 없어질 것을 보지 않고 영원한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그 영원한 것들을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잠깐 나에게 오는 이 환란 어려움이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본 사람들은 인생이 달라집니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영원한 것을 보았습니다. 영원한 것을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열매가 믿음입니다. 영원한 것이 보이지 않는데 내가 믿어야겠다. 이게 됩니까? 정말 영원한 세계를 보고 영원한 것을 본 사람은 당연히 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막 믿어야지 이것하고 영원한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어려움이 왔다. 그것이 별 큰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막 믿으려고 하면 결국은 무너집니다. 수4:24이하에 보면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 여호수아의 고백입니다.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영원한 것을 본 여호수아의 고백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영원한 그리스도를 딱 붙잡으면 우리에게 오는 환란 어려움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보이면 조그만 환경 앞에서도 자빠집니다.
3. 하나님의 시간표
1) 한 번 죽는 것
▶ 우리 김란영 장로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피부로 느끼지 못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친데 정한 것인데 하나님이 정해 놓은 건데 정해진 건데 사람들은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너무 나하고 멉니다. 마5: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우리 인간은 내 머리털 하나 희개 하거나 검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지금 얼마나 발달된 사회인데 머리털 하나 희개 하거나 검게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머리털 하나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겁니다. 하물며 내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 합니까?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겁니다.
2) 하나님의 시간표
▶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시간표가 있습니다. 전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고 때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우리는 정말 인생의 시간표를 안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 정말 참되고 영원한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영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것을 붙잡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그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가는 겁니다.
2- 무릎을 꿇고 비노니
1. 이름을 주신 아버지
▶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이름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왜? 그럽니까? 그리스도 이름으로 만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굉장히 착각을 합니다. 우리 인간이 노력해서 쟁취해서 뭘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착각을 합니까? 우리 인간이 경건해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유대인 바리새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최고의 선물, 가장 영원한 이름,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주셔서 구원받게 하셨고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이름 붙잡고 사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승리하도록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라는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꺾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기 때문에 그 이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눅10장에 보면 70인 제자들이 기뻐서 돌아왔습니다. 현장에 가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니까 귀신들이 떠났습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항복하고 소리 지르고 그러니 제자들이 얼마나 기쁩니까? 너무 기뻐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이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해칠 자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 이름 때문에 해칠 자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그리스도 그런데 그 이름 사용을 안 합니다. 마12장에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사용해야 합니다. 주일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부르라고 했는데 어떤 아이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계속 부르니까 증거가 일어났습니다. 희한한 것은 성령인도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많이 부릅니다. 그런데 성령인도 못 받는 사람의 특징이 하루 종일 그리스도 이름 한 번을 안 부릅니다. 희한 합니다. 누구에게 잡힌 겁니까?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만 사단을 벌벌 떱니다. 그리스도 이름 앞에서만 사단은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그리스도 이름을 안 부릅니다. 얼마나 영이 혼란해졌는지 그리스도 이름을 선명하게 못 부릅니다. 참 이상합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참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준다고 하면 서울까지도 가는데 영원한 이름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집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밥 먹으면서도 부를 수 있는 그리스도 이름을 안 부릅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부르라는데 이것을 안 부릅니다. 아는 사람은 너무 쉬운데 모르는 사람은 죽어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영적비밀, 여러분 실험을 하세요. 정말 안 믿어지면 실험을 해 보세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시험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힘든 것도 아닙니다. 실험을 해보세요. 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합니다.
2. 무릎을 꿇고 비노니
▶ 여러분 무릎을 언제 꿇습니까? 우리가 잘 못하면 무릎을 꿇습니다. 잘못했다는 외적인 표현이 무릎을 꿇는 겁니다. 그 마음에서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언제 무릎을 꿇습니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 힘으로 막 뛰어 다닙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의 한계가 와 버리면 무릎 꿇습니다. 하나님 앞에 더럭 무릎 꿇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세상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어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주 받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부모에게 무릎 꿇을 줄 모르면 이 아이는 사회생활 못 합니다. 내 아이가 부모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 사회생활에서 절대 낙오자가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신앙생활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머리털 하나도 희게 검게 할 수 없는 인생이 뭐 잘났다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겁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 합니다. 바리새인은 내가 얼마나 선한 일을 하고 내가 뭘 하고 우스운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자기 기도한다고 여호와여 부르짖고 응답 받은 거죠 사람들이 다 보았으니까 주님은 이렇게 얘기 합니다. 응답 받으라. 세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나는 정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손 하나 까딱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무릎을 꿇고 비나니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줄을 뻔히 알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무릎을 꿇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으로 말미암아
1)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풍성합니다. 사람이 주는 것은 아무리 받아도 부족합니다.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만족이 안 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새 옷 새신 발 신어도 며칠이 갑니까. 처음에는 아끼지만 그것도 오래 못 갑니다. 채워도 한이 없고 부족합니다. 세상에는 풍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것만이 풍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성령으로 말미암아
▶ 그래서 이 축복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하신 겁니다.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신다. 우리가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것은 관리할 줄 알고 주의 할 줄을 아는데 영적인 것은 소홀하다 이것을 참 인도를 못 받는 겁니다. 밥을 한 끼 굶어도 안 되는데 꼭 밥을 먹어야지 합니다. 운동도 적당히 하고 삶도 관리 해야지 합니다. 그런데 영적 관리는? 눈에 안 보이니까? 어떤 의미에서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이것을 아주 소홀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 소홀이 하고, 기도생활 안 되고, 말씀도 안 읽고, 찬양 안 하죠?, 복음 전도 생각 없죠? 그러면 어느 날 영적으로 황패해 집니다. 어느 날 보면 불신자와 똑같습니다. 생각이나 말이나 똑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 관리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불신자 보다 못 합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다. 그러니 교회가 바가지로 욕을 얻어먹는 겁니다. 왜 그러는 겁니까? 물론 그 사람이 잘못했다면 끝나는 거지만 영적 관리가 전혀 안되어 그럽니다. 아무리 못나고 못된 사람도 영적 관리가 되면 사람이 바뀝니다. 변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신앙생활 잘해도 자기 영적 관리 안 되면 이상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욕먹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고후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육신의 삶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사람은 끊임없이 은혜 속으로 성령 속으로 끊임없이 복음화 됩니다. 비밀입니다.
3- 내 평생에 가는 길
1. 네 눈물을 안다
▶ 사도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딤후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슬퍼서 눈물 흘릴 때가 있습니다. 회개할 때도 눈물을 흘립니다. 기뻐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동정의 눈물도 흘립니다. 인간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정확히 말하면 정신병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눈물이 있습니다. 슬프면, 감사하면, 회개할 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은 사명의 눈물, 소명의 눈물입니다. 사명의 한이 맺힌 눈물입니다.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소명의 눈물입니다. 우리는 감정의 눈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전도자의 사명, 가문을 살릴 사명, 교회를 살릴 사명, 현장을 살릴 사명 이 눈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 눈물이 바로 나의 소명의 눈물로 바뀌어야 합니다.
2. 내 평생에 가는 길
1) 유언의 말
▶ 사람이 참 평소가 좋습니다. 어떤 마을에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따뜻하고 편안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둘이 친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천 하셨습니다. 장례식에 가서 두 가지를 놀랬습니다. 하나는 그 할아버지가 코카콜라 회장이셨습니다. 그런데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기에게 찾아와 따뜻한 말로 힘이 되어준 자기에게 자신의 주식 5%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말을 해준 사람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재산을 남겼다고 합니다. 김란영 장로님도 유언을 하셨습니다. 명확하고 정확한 유언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유언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2) 내 평생에 가는 길
▶ 오늘 찬송413장은 스텝포드라는 사람이 만든 겁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무디 교회에 모델적인 중직자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죽고 시카고에 불이 나고 재산을 잃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서 고향으로 배를 타고 가는데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자식들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다행히 부인만 살았습니다. 인생이 어떤 때는 문제 환란이 갑자기 밀어 닥칩니다. 그래서 마음을 잡고 집으로 가는데 선장이 말합니다. 이곳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저에게 있습니까? 눈물을 흘리는데 부인이 손을 잡고 우리 아이들이 없어진 게 아니잖아요. 잠시 헤어져있는 거잖아요 하나님 나라 갔다는 말입니다. 그 때 성령의 역사로 스텝포드 마음속에 믿음이 와서 머릿속에 생각을 적을 것이 오늘 부른 찬송413장입니다.
3. 영광의 찬송
▶ 정말 하나님의 사람은 극한 상황 속에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말로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지 모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24시 찬양이 문제 환란에서 찬양이 우리 입술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빌1: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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