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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부르심의 소망(엡1:17-18) 조회수 : 1290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5-05
  첨부파일:   20130505.hwp(27K)
분류
주일 예배
제목
기도할 때에
성경
엡1:17-19
일시
2013년 5월 5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 길근 목사


1- 두 세계의 싸움
1. 감각의 문제
▶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한 남학생이 수업 시간에 나가서 같은 반 여 학생을 불러내어 성폭행하고 죽이고 나서 태연하게 강의실에 들어가서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경찰들이 여자를 죽이 이 사람을 잡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전혀 태연하게 강의실에 와서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의 감각이 완전히 마비가 된 겁니다. 정신병자입니다. 사람이 감각의 문제가 와 버리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을 하고 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욕을 듣는 사람, 맞는 사람이 어떤 고통과 어떤 자괴감과 어떤 슬픔이 있을지를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아닌 나무를 패듯이 사람을 패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정상이 아니고 정신병자입니다.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 중에 사람의 마음이 무정해지고 사람이 사나워집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사단에게 그 영혼이 잡혀서 그 감각이 마비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기계처럼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하고 열정을 품기도 하고 그런 감정을 소유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는 절망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너무 기분 좋은 일 앞에서는 그 감정이 복받쳐서 그 기쁨을 표시하는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뭐냐? 이성적으로 머리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감정이 살아납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잘 표현하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오면 벌써 감정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보호하심과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머리로 이해되지만 감정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서 예배드리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구나 라는 것을 서로 느끼고 서로 교감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서로가 영적인 감정으로 교류하고 공유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하는 그 뜨거운 사랑이 회복되어지는 것이 정상이고 성도를 볼 때에 그리스 도안에서 한 가족이구나! 너무나 소중한 존재구나! 이 감정이 드러나야 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헌신도 봉사도 충성도 있는 겁니다. 오늘 예배 하면서 혹시라도 무뎌졌다면 감정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 영적 세계
1) 사단의 실제
▶ 사단이 역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눈에 보이면 막아지는데 이것이 눈에 안 보입니다. 눈에 안 보여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창3장에 아담과 하와에게 사단이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사단이다. 그러면서 나타났으면 아담과 하와가 그래 저거 사단이다 영적 싸움해야지 할 텐데. 사단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단을 무슨 뿔 달린 귀신처럼 해 놓고 요것이 사단이다.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속는 가장 정상적인 뱀에게 들어가서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성경 말씀을 안 믿는다. 뱀에 들어간 사단이 어떻게 속입니까? 먼저 하나님에 대한 불평하는 마음을 심습니다.
의심을 심습니다. 그때 사단이 하는 짓이 결코 죽지 않는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렇게 속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속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하니까 여기서 사람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잘 보면 사단이 뿔 달린 귀신처럼 나타나서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속입니까? 사람이 쾌락에 빠지고 타락한 사람의 특징을 잘 보십시오. 타락하게 되면 거기에 무슨 큰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고 거기에 뭐가 숨겨진 것처럼 자꾸 속입니다. 그래 이 시간만 잠깐 타락하면 돼! 누가 보겠어. 알겠어? 내가 숨어서 하는 짓을 누가 보겠어? 거기서 희열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 번 타락하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기쁨이 있을까요? 절대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허무합니다. 아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이게 아닌데. 그 순간부터 잡힙니다. 그 순간부터 그 속에 계속 빠집니다.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쾌락이 그럴 듯 하게 보이잖아요? 기쁨을 주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 속에 빠져들어 가면 끝납니다. 완전히 잡히는 겁니다.
2) 성령의 실제
▶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의 역사를 말씀 하셨을까요? 우리 인간은 굉장히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 앞에서는 한 없이 무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지을 만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 지혜가 있는 아담 하와가 사단에게 한 순간 잡혀 버리니까 완전히 무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굉장히 대단해 보이지만 문제 앞에는 너무 허술합니다. 무능합니다. 얼마나 연약하냐?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이 다스리지 못할 만큼 연약합니다. 내 마음 내가 다스린다. 정말 교만한 말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너희에게 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 성령이 주신 힘이 아니면 우리에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문제를 해결 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단이 얼마나 교묘한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세상신이 그의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라고 했다.
3. 두 나라의 싸움
▶ 그래서 이 땅의 싸움은 두 나라의 싸움이다. 사단의 세상 임금 되서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얼마나 사단이 힘이 있냐?
마4장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님을 시험할 만큼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속이려고 합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사단이 하는 짓은 세상적인 것을 주면서 영적인 것을 무지하게 만들고 영적인 것을 빼앗아가는 존재가 사단입니다. 그래서 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으니까 영적인 사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게 하셨다. 영적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악한 것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들이 너희 발아래 상하게 되리라. 밟히게 된다. 그 말입니다.
2- 부르심의 소망
1. 지혜와 계시의 영
▶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일 길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겁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2. 부르심의 소망
▶ 그래서 그 분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엡1: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밝혀 주신 겁니다. 창3장에 사단의 유혹을 받은 인간의 마음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육신의 눈을 밝은데 영적인 눈은 어둡거든요. 그런데 나에게 영적인 눈이 열리면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 정말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지금까지 사단에게 잡혀서 끌려 다니고 있었구나.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내 힘으로 살겠다고 착각하면 살았구나.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자체가 소망입니다. 이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구나. 전에는 긍휼을 받은 자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가 되었구나. 전에는 외인 이었는데 하나님의 자녀구나. 전에는 이방인이었는데 이제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3. 풍성한 은혜
1) 영광스러운 기업
▶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영광스러운 기업이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그러면서 주신 축복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기업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축복을 주셨다. 영광스러운 기업을 주셨다.
2) 풍성한 은혜
▶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망했던 아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의 더러워진 옷을 다 벗기도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기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아들을 위해서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하나님의 넓으신 크신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큰 사랑이 있다 말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풍성한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3- 참 눈물
1. 새싹을 키우는 사람
▶ 이 풍성한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농사하시는 분들이 봄이 되면 싹을 심습니다. 연약한 새싹을 농부는 잘 보살핍니다. 미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 새싹이 자라면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을지를 보고 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새싹이 지금은 어리고 연약하고 미약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추수할까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새싹을 보호하는데 생을 다 거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어리석은 농부라면 이 새싹을 왜 힘이 없어 하면 발로 밟아 버리고 빨리 안자란다고 뽑아내고 하겠죠? 그것은 어리석은 농부입니다. 그러면 가을에 아무것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 사역자의 마음,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어린 아이만 새싹이 아닙니다. 새신자도, 병든 자도, 영적 문제에 시달리는 자도, 가난한 사람도 새싹입니다. 사람들은 힘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가난한 저게 뭘 하겠어? 지금 영적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보고 저게 뭐야. 병든 사람을 보고 저거 별 볼일 업구만. 그것을 밟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느 날 자라서 큰 열매 맺듯이 병든 자가 치유 받으면 생을 드리는 겁니다. 영적 문제로 시달렸던 사람이 치유 받으면 그는 증인이 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음 받고 치유 받으면 인생 전체 전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겁니다. 새싹을 잘 돌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새싹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내 것을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새싹이 자라고 치유 받고 새싹이 변화되어 지고 이것이 보람이고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병든 사람이 치유 받으면 영적으로 시달렸던 사람이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 받아지면 연약한 자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되면 생을 거는 제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새싹을 잘 돌보는 지혜로운 농부, 사역자, 새싹을 잘 돌보는 부모,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어떤 사람도 새싹일 수 있습니다. 새싹을 밟아 버리고 함부로 하면 그 인생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새싹을 너무 소중합니다.
2. 성경적 훈계지
▶ 부모가 자식을 잘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마음도 자신이 다스릴 수 없듯이 자식의 마음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2만 명 교인이 모이는 새들백 교회의 목사님입니다. 긍정의 삶, 목적이 이루는 삶, 등의 베스트셀러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주는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 자식이 한 명 있는데 그 자식이 우울증 환자다. 그 아들이 인터넷으로 총을 구입하고 자신의 목에 총을 쏴 자살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 아버지가 그 훌륭한 목사님인데 그 아들은 우울증으로 정신 문제로 시달리다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아버지의 명성과 상관없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 누가 자식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계몽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교육을 시켜서 인간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성경과는 정반대 의견입니다. 우리 인간의 교육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교육 방법으로 인간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창3장 아래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굉장히 착각합니다.아이가 선하다고요! 정말 아이가 선합니까? 아닙니다. 절대 선하지 않습니다. 창3장 가운데 태어난 아기는 반드시 구원 받아야 하고요. 반드시 영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교육으로 된다. 큰 착각입니다. 다윗이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땅에 어떤 사람도 죄가 운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 죄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게 꺾어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71: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어릴 때부터 와 있는 것입니다. 막9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귀신들인 아이가 나옵니다. 귀신이 늘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왔다 나갔다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겁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히면 그 순간에 거품을 물고, 그리고 이를 갈구요. 얼굴이 새파랗게 되고, 귀신에게 잡힐 때 그렇습니다. 귀신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물에도 끌 고가고 불에도 끌고 가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얼마나 부모가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다가 예수님 제자들이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니까 막9:21절에 보면 어린 아이 때부터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귀신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귀신의 역사다 그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이것이 가정의 문제를 일으키고 어릴 적부터 성장해서 들어왔던 상처가 사회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부분이 치유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3. 참 눈물
1) 영적 체험
▶ 지금 사람들이 자식을 교육시키면서 세상의 온갖 체험을 다 시키는데 딱 하나만 모릅니다. 영적인 체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 지식을 가득하고 세상 것을 많이 아는데 영적인 것만 모릅니다. 미국에 가장 영향력을 준 사람이 무드입니다. 무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무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겠습니까? 갑자가 아버지가 그렇게 되니까 7남매가 어떻게 삽니까? 주위에서 고아원에 애들을 보내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무대 어머니가 이 아이들을 내가 믿음으로 키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기도하면서 아이를 키우겠습니다. 생각하고 어릴 때부터 무대 어머니가 믿음을 심었습니다. 기도시키고 기도 체험하고 영적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무대는 주일학교 때 영적 체험을 합니다. 주일학교 때 기도 체험을 합니다. 그 가난한 무디 가정,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그 가정에 얼마나 문제가 많겠는가? 어릴 적부터 기도 체험하고 영적 체험하니까 험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체험시켜야 할까요? 정말 영적체험 시켜야 합니다. 기도 체험 시켜야 합니다. 어릴 때 들어가면 이 아이는 평생에 승리합니다. 어릴 때 오만 세상적인 것만 가득 들어가고 영적인 부분이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성장해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 위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어른들이 살던 시대와는 다릅니다.
2) 참 눈물
▶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지금 이 시대는 눈물이 마른 시대입니다. 눈물이 없는 시대입니다. 정말 자기 자신과 후대들을 위해서 우리 주님은 울라고 했는데 눈물이 말랐습니다. 감정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 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것이 없습니다. 왜? 우리 집에는 이런 영적 문제가 많을까? 이것 깨닫는 것이 눈물입니다. 왜? 나에게 있는 악습은 끊어지지 않을까? 이것 깨닫는 것이 눈물입니다. 왜? 우리 집은 대대로 가난한가? 내가 정말 실력을 키워야 갰구나. 이것 깨닫는 것이 눈물입니다. 왜 지금 교회는 힘을 잃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 받고 있나? 나라도 정말 복음 전해야겠다. 이것이 눈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물 흘리면 무능한 사람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차임 눈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황하20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었습니다. 앗수르 군사 18만5천 명이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다 죽여서 대승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었습니다.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벽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 합니다.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하나님을 향해서 통곡의 눈물을 흘릴 때, 문제가 오는데 어떻게 되겠지? 지나갑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생을 드리는 그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냐 그 말입니다. 막16:17-18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안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에서 축복을 받고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땅의 축복은커녕 세상 사람보다 더 망하고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눈물 흘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가난과 무능과 질병과 가문의 영적문제와 악습과 불신앙은 꺾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해서 날 괴롭힌다면 하나님 앞에 생을 걸고 통곡하며 싸워야 합니다. 가난의 저주는 예수 이름으로 떠나 갈 지어다. 영적문제, 악습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 받을 지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습은 예수 이름으로 떠날지어다. 가문에 역사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 불신앙은 예수 이름으로 떠날지어다. 참 눈물 흘리며 영적싸움 해야 한다. 그래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늘 내 문제에 걸려서 또 걸리고 또 걸리고 이거 하나님 소원 아닙니다. 이 영적 저주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여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우리 후대들이 영적체험을 하고 그들의 현장에서 문제 왔을 때 영적 도전하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인도 받는 것, 우리 후대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후대가 아무 힘이 없어서 부모가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부모의 도움 받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들로 나약한 자로 키우면 되겠습니까? 어떤 현장에서든지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서 도전하고 인도받고 승리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먼저 부모가 이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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