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일 예배
제목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
막16:14-20
일시
2013년 1월 27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 길근 목사
1-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
1. 깨달은자의 응답
▶ 기도수첩에 보면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말씀을 깨닫는 영적 눈이 어두워서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내고 불신앙만 하다가 불신자보다 못한 삶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강단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으로 여겨졌고 이 교회가 하나님이 나를 위한 교회구나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내게 답을 주시고 말씀으로 나를 치유를 받으면서 세상 그 어떤 사람의 말씀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어느 날 성도들은 목회자의 보호자요 동역자요 식주인이요 이 세 가지 중에 꼭 한 가지는 응답을 받으세요, 이 집사님은 나는 이 세 가지를 같이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언약인 사61: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사59: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깨달아 진다는 것이 응답이고 축복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자세히 보라
▶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진리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었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바 되었다. 사도요한의 고백이다. 자세히 보면 문제가 뭔지 답이 뭔지가 보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대충 본다. 그런가봐 이미 아는 얘기야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을 떠난 곳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떠나니 사단에게 잡혀서 불신앙하는 것이다. 모든 원인이 결국은 불신앙이다. 자세히 보면 인생 문제의 유일한 해답을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니면 죄 문제 해결 안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권세가 아니면 사단의 권세를 깰 수가 없구나. 이것을
자세히 보니까 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저런 문제가 오는데 그 문제의 원인이 뭔지를 모른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까 해답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을 대충 사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규모 있고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처절히 망했다. 왜? 인가? 자기들 나름대로 잘 한다고 했는데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다. 다 좋았는데 인격, 삶, 열심, 성경 다 좋았는데 성경이 말하는 한 가지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처절히 망하고 유대인은 2000년 동안 유리방황하였다. 문제의 원인을 자세히 보면 답은 하나 밖에 없다. 하나님 만나지 못해서 우리 인생은 망하는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사단에게 잡혀 끌려 다니는 것이 망한 것이다.
들었는데 보기도 했는데 자세히 안 보니까 다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바 되어서 그리스도가 나에게 체험되어서 확인되어서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3.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근본적으로 예수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지배 받고 인도를 받느냐다. 이것이 인생이다. 신분이 바뀌고 권세가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런데 다 놓친다.
기도수첩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데 통나무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뛰어 내리기로 마음먹었는데 통나무에 몇 마리가 남았느냐? 네 마리가 뛰어 내리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한 마리요 했다. 아빠 말하길 아니다. 다섯 마리다. 마음만 먹었지 안 뛰어 내렸다.
마음만 먹고 행동에 안 옮기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는데 성령이 계시면 권세가 있다. 권세 사용해야지 하면 아무 힘이 없다. 권세를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나를 속이는 흑암 세력을 꺾어 버려야 한다. 불신앙을 가져다주는 흑암을 꺾어야 한다. 꺾어야지 기도 해야지 하면서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가 그렇다.
2-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1. 찾아오신 주님
▶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셨다. 믿음이 없음과 마음이 완악함을 꾸짖으셨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었을까요? 왜? 이 제자들이 너무 중요한 사람들인데 자기 수준에 메여서 자기 경험에 메여서 자기 생각에 메여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다. 그러니 답답한 것이다 그러니 꾸짖는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살다가 죽을 존재가 아니다. 그 말이다. 너희는 세계복음화 할 존재인데 너희 생각에 메여가지고 수준에 메여서 그렇게 살면 되겠냐? 책망하신 것이다.
모세가 나이 80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다. 애굽 땅에 가서 네 백성들을 건져내라고 하셨는데 모세가 나는 나이가 많습니다. 나는 말을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네 인생이 그렇게 살 존재가 아니다. 너는 애굽에 60만 민족을 살릴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살고 있느냐 그 말이다. 이 제자들은 세계와 로마 복음화 할 사람인데 자기 수준에 메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망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내 인생이 이렇게 대충 살다가 죽을 인생이 아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 예수님 책망하신 것이다.
2. 믿는 자
▶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요, 흑암을 꺾을 수 있는 이름이요,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믿는 사람이다. 이 땅의 문제가 뭔가 그리스도를 자기 수준으로 알고 있다. 혹시 우리 성도들이 내 수준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 내가 못하면 그리스도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다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우린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가 아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이 시대 전도자로 부르셨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이름 앞에는 모든 저주와 재앙이 꺽이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 흑암을 꺾이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다. 내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자꾸 내 실력 내 힘으로 생각을 한다. 그리스도는 내 수준과 상관없다. 얼마나 우리 뇌,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모른다. 그리스도의 깊이와 넓이를 모른다. 내 생각으로 딱 굳어져 있다. 그 틀 안에 그리스도를 가두어 놓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만 배는 크신 분이시다. 사단이 얼마나 우리 체질, 기질을 나쁜 습관을 드려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게 자꾸 한계를 만들어 놓았다.
창3:15의 여인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사단의 머리를 박살낸 사실을 믿어야 한다. 내가 뭘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영원히 저주 받을 우리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 다녔던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어느 날 그리스도를 듣는 순간에 여기서 해방 받았다. 그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다.
3. 믿는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1) 귀신을 쫓아 냅니다
▶ 이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표적이 따른다고 했다.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쫓겨나야 한다. 이게 사람 속에 들어가 주인 노릇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서운 꿈을 한 번만 꾸어도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이 귀신이 보이고 들리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이 귀신은 더러운 귀신이다. 악한 귀신이다. 이 귀신이 꼭 논에 가면 있는 거머리 같다. 이 거머리가 딱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데 때려야 떨어진다. 아무리 뭐 해도 안 떨어진다. 딱 때려야 떨어진다. 귀신은 꼭 거머리와 같다. 이건 때려야 한다. 때리면 도망간다.
2) 새 방언을 말합니다
▶ 방언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속에 은혜 속에 사랑 속에 축복 속에 있으면 제일 먼저 말이 바뀐다. 생각도 말도 기도도 다 바뀐다. 내가 행복하고 기쁘면 그 말이 나오고 내 속에 불안이 가득하면 불안한 말이 나온다. 내 속에 미움과 상처가 가득하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 고 했다. 말을 잘해야 한다. 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을 하면 쓸데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말이 축복의 말, 믿음의 말을 선포하면 그것이 씨가 되어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말의 힘이 있다. 정말 축복해야 한다. 자녀를 축복하라. 말이 씨가 된다. 시장 사람들은 말이 거칠다. 죽일 놈에 시끼, 염병한 놈, 자빠져 죽을 시끼, 그래서 자빠져 죽은 사람 많았다. 말이 씨가 된다. 영적상태에서 말이 나온다. 성령 충만하면 은혜의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은혜를 못 받으면 자꾸 짜증나는 말을 한다.
3) 뱀을 집어 올립니다
▶ 무당이 시퍼런 작두에서 춤을 추고, 귀신 들린 점쟁이가 과거를 알아맞힌다. 그것을 보면서 대단하네. 귀신이 역사하네. 말을 하면서 정작 내 생각 속에 습관 속에 가정 속에 파고들어 내 삶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이 사단의 속임수를 잘 모른다. 창3장에 사단이 역사하니까 아담과 하와의 부부 관계가 서로 멀어졌다. 끊어졌다. 사단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둘 밖에 없는 형제를 쳐서 죽인다. 이것이 창3장이다. 지금도 창3장의 문제를 일으킨 사단은 한 가정에 들어오면 사랑이 식어지고 부모와 자식이 멀어지고 자식과 자식이 서로 이간질을 시키고 이것이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역사인데 이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부모 원망하고 하나님 원망하고 핑계대고 다 속는 것이다. 이것을 몰라서 그 후대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고 타락하고 이것이 세상의 문제이다. 지금도 사단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 그래서 그 뱀을 집어 올려 박살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품지 못하게 하고 기도 못하게 하는 이것을 꺾어 버려야 한다.
4) 해를 받지 않습니다
▶ 도처에 해가 가득하다. 불신앙을 가져다주는 것이 가득하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분과 권세가 있다. 아무 문제없는 것이다.
5) 손을 얹습니다
▶ 이 손이 어떤 손인가? 주님의 손으로 쓰임 받는 것이다. 내 손이 가는 곳마다. 사람을 치유하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워지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그런 손이 되는 것이다.
이 손 들어서 기도하게 되고 이 손 들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다.
3- 따르는 표적으로
1. 영원한 이름
▶ 나에게 찾아 오셔서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사는 존재가 아니구나. 믿는 자들에게 표적을 주시는 그 이름이 어떤 이름인가? 이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 되어져야 한다.
김소월의 초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요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요 떨어져 나가 앉아 산에 나는 그대 이름을 부른다.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요. 이런 시를 써서 보내면 대부분 사람들은 깜빡 죽는다. 인간도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면 흐뭇한데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해도 사람이다. 어느 날 그 이름이 나를 낙심시키고 괴롭힙니다. 그런데 나를 하나님 만나게 하시고 죄 문제 해결하시고 마귀 멸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은 영원히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2. 각인 전쟁
▶ 그래서 지금 이세상은 각인전쟁이다. 무엇으로 각인을 하는가. 그것이 인생이다. 어느 스님이 매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천 번 외운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린 뭐하고 있나. 제 모습을 보니 한심했습니다. 복음도 아닌데 천 번씩이나 외우니 귀신이 역사하지 않겠는가? 그럼 우리에게 무엇이 각인이 되어야 하는가? 어릴 때 각인 된 것이 평생을 간다. 정말 주님이 그리스도 되심이 각인되어야 한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 자가 맞는데 그 그리스도가 나에게 만왕의 왕 되신 사실이 믿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각인되어야 한다. 사람은 각인된 데로 영향을 받고 그대로 산다. 사무엘은 나실 인이 각인되어 살았다. 사람이 잘못된 것이 각인 되면 인생이 비참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언약기도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복음도 아닌데 그 사람은 나무아미타불을 천 번씩이나 하는데 정말 주님이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 고백을 안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다 이 고백을 안 한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겠는가? 각인되지 않으면 사실 내 것 아니다. 각인 된 것만이 내 것이다.
3. 소망 있는 사람
1) 쓰임 받는 사람
▶ 막16:9에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첫 번째로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귀신들린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수 없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무시, 멸시 당한다. 귀신들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본인도 모른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데 끌려 다닌다. 어떤 여자는 옷을 다 벗는다. 집을 나가 미친 여자처럼 돌아다닌다. 이런 사람이다. 일곱 귀신들린 여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해결책이 없다.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만났다. 예수님이 명령하시니 그렇게 끌고 다니고 망하게 했던 귀신이 떠나갔다. 그 기쁨 자유를 말할 수 없다. 이런 여인 앞에 귀신이 있고 없고 말하면 속상할 것이다. 그 귀신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이 여인을 주님이 이 여인을 사용하셨다. 사람들은 귀신 들린 저 여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이 여인을 사용하셨다.
2) 소망 있는 사람
▶ 소망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반대로 소망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특징이 만날 과거 옛날 얘기만 한다. 저 여자 일곱 귀신 들려서 미쳤어 어떻게 예수 믿고 교회에 왔을까? 그건 소망 없는 인생이다. 그가 과거에 귀신들려 시달렸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치유 받고 은혜 받아 증인으로 쓰임을 받는다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 소망 없는 사람은 과거에 메여서 과거 얘기만 한다. 사람이 어떻고 자기가 어떻고 내가 과거에 어떠했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다. 미래에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을지 모른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 내 수준으로 기준으로 평가를 하면 안 된다. 우리가 무슨 하나님이라고 내 수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찬양해야지 옛날 얘기만 하고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의롭다는데 누가 나를 정죄하는가? 누구도 정죄할 자가 없다.
4. 따르는 표적으로
▶ 20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이 제자들이 지금 책망 받은 제자들이다. 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현장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역사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증언되었다. 표적이 목표가 아니다. 과정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 표적을 주시는가? 말씀을 간증하라고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이 목적이 아니다. 그 성공 통해서 그리스도를 간증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요셉의 인생은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이다. 총리가 되어서 애급의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표적을 주신 이유다. 다윗의 왕은 목적이 아니다. 과정이다. 언약궤 모실 성전이 목적이다.
증거가 목적이 아니다 이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이 건강이 증거가 아니다. 과정이다. 이 건강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표적이고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흑암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흑암과 싸워야 한다. 자꾸 나에게 불신앙을 주는 흑암을 꺾어야 한다. 나를 드러내게 하는 흑암을 꺾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