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전도자와 교회의 식주인(로마서 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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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2-12-16 |
첨부파일: 20121216.hwp(25K) |
분류
주일 예배
제목
전도자와 교회의 식주인
성경
로마서 16:23
일시
2012년 12월 16일
장소
속초하나로교회()
033) 636 - 5811
말씀
이 길근 목사
1- 성경을 쓴 이유
1. 유일한 복음
▶ 왜? 성경은 복음만 강조할까요? 너무 할 정도로 강조하는 이유? 사실을 보면 복음 외에는 강조할 것이 없다. 평상시에는 모르는데 갑자기 저주 재앙이 오는데 해결할 길이 없다. 문제가 오면 당황하고 무너져버린다.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치지만 해결할 수가 없다. 이 땅의 저주, 재앙이 끊임없이 몰려옵니다. 어느 날 이 저주, 재앙이 내게로 옵니다. 그러나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만 강조합니다. 다 가졌는데 어느 날 허무가 밀려옵니다. 불안이 닥쳐옵니다. 인생이 방황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행복이 없다. 하나님이 없으니 내 힘으로 산다. 그러다가 한계가 온다. 그때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보호자,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이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함을 누리며 살겠는가? 사람들은 이 운명을 바꾸려고 온갖 일을 다 하지만 사단을 이길 수가 없다.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운명 사주팔자를 바꿀 수 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모릅니다. 착하게 살면 된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강조합니다.
2. 생각의 열매
▶ 생각이 참 중요하다. 생각이 바르면 말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생각이 넓은 사람은 앞뒤 좌우를 잘 본다. 그런데 생각이 좁은 사람은 자신 밖에 모른다. 아이들처럼 자기 밖에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밖에 모른다. 생각이 좁은 것이다. 만약에 생각이 이상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상한 짓만 한다. 생각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 롱펠러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습니다. 이 시인의 특징은 그 시를 보면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 행복을 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가 젊었을 때 병으로 고생하다 죽었다. 두 번째 부인을 만났는데 그 부인마저도 불이 나서 죽었다. 그 시인이 얼마나 상처가 많겠는가? 세상에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시를 쓰면 어떤 시를 쓰겠는가? 어두운 시를 쓸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고 희망을 주는 시를 쓰는 것이었다. 그 시인의 사정을 아는 어떤 기자가 물었다. 어떻데 이런 용기를 주는 시를 쓸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시인이 너무 단순한 얘기를 한다. 우리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를 보면서 난 늘 희망을 얻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봄이면 새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인생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난 늘 이것을 보면서 내 인생을 통해서 얼마든지 새싹을 맺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이 나에게 늘 교훈이 됩니다. 참 사람의 생각이 어느 쪽에 가있는가? 거기에 따라서 자신도 남도 도울 수가 있는 것이다. 내 환경이 어떻든 생각이 바르면 생각의 열매를 맺는다.
▶ 예수 믿는 것이 뭘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생명의 생각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열매도 그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생각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망의 생각 속에 있으면 사망의 열매를 맺는 것이고 생명의 생각을 갖게 되면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3. 성경을 쓴 이유
▶ 요한1서, 2서, 3서에 보면 성경을 쓴 이유가 잘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영적실체를 알리며 영적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 요1서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 14 ▶ 26 ▶ 3:8 ▶ 4:4 ▶ 4:6 ▶ 4:7 ▶ 5:4 ▶ 5:13
▶ 5:18 ▶ 롬16:20 말씀에서 말하듯이 사단은 반드시 꺾이는구나, 이미 끝난 전쟁이구나, 이미 이겼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세상을 이겼다. 믿음으로 이긴다. 이미 승리한 싸움, 영적싸움하면 승리하는구나, 문제는 영적실체를 안 믿고 겁먹고 안 싸우는 것이다.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
1. 전도자와 교회의 식주인
▶ 나와 온 교회를 돌보는 자, 가이오를 이렇게 말한다. 간첩을 돕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그 시대에 복음 전도자를 도우면 간첩을 돕는 것이 되는 시대였다. 그런데 가이오는 그 어려운 시대에 전도자를 도왔다. 교회를 도왔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하면 칭찬을 받지만 그 시대는 전도자와 교회를 도우면 큰일 나는 시대였다. 이런 핍박시대에 전도자를 돕고 교회를 도운 가이오. 복음과 전도를 위해 그 인생이 드려졌다. 많은 물질을 헌신했다. 온 교회가 가이오 때문에 큰 힘을 얻었다.
2. 복음 아는 사람
▶ 복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 전 두 종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돈 많다고 헌금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이 많은 헌금을 하고 돈 많은 사람이 헌금 안 하는 것을 보았다. 엉뚱한데 돈을 드리다 망하는 사람을 보았다. 또 시간이 없는데도 주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시간이 많은데 가치 없는데 허송세월하는데 버리는 사람을 보았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는가? 고진엽 장로라는 분이 있는데 바쁜 사람이다. 그 바쁜 사람이 어떻게든 복음 전하려고 하는 모습, 생을 드려 헌금하는 모습 정말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장로님을 정말 하나님이 하시지 않겠습니까? 재능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능이 있다고 헌신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과 전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한다. 시간 많다고 헌신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한다.
▶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
1) 생을 거는 사람
▶ 가이오는 핍박시대에 전도자와 교회를 도왔다. 생을 걸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가이오는 숨어서 도운 것이 아니다. 드러내놓고 본격적으로 도왔다. 이것이 중요하다. 생을 걸었다는 말이다. 돈 많고 많이 배운 지식인들은 문제 오면 숨는다. 복음은 인정하면서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까 숨는다. 저는 보았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 대학 총장, 군대 대장님 등 높으신 분들이 많았다. 그 훌륭한 사람들이 교회 문제 오니까 다 숨더라, 다 숨어요. 저는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성공의 자리까지 올라가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혹시 자기에게 손해가 될까봐? 숨어서 하지 드러내놓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 저게 저분들의 생리구나. 하지만 가이오는 아니었다.
몸을 사리지 않았다. 가이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날 보든 날 보든 난 전도자를 돕겠다. 모두 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데 가이오는 드러내놓고 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해서 내가 가진 물질, 명예 다 없어져도 좋다. 생을 거는 사람이었다.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
▶ 가이오는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수준 따라 비슷한 수준끼리 만난다. 수준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 부자는 부자끼리, 지위 높은 사람은 그 사람들끼리. 가난하고 수준 낮은 사람과는 절대 어울릴 수가 없다. 그런데 가이오가 교회에 갔다. 전부 가난하고 무식하고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다. 구제대상이다. 그런데 가이오는 그 교회에 들어가서 그 교회를 섬깁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자기 정서를 뛰어넘어서 돕는 것이다. 교회에 어려움이 오면 누가 나서겠는가? 교회가 힘이 없는데 가이오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의 위치에서 왕따 당하고 밀려날 수 있는데 가이오는 이 교회 사람들은 비록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복음 가진 사람들이다. 이렇게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3- 참으로 사랑하는자
1. 서원하는 사람
1) 시대를 보라
▶ 이 시대가 얼마나 심각한가? 위기 시대, 답답한 시대다. 전 세계 일어나는 사건을 보라 평안하고 즐거운 소식이 없다. 100에 99는 나쁜 소식, 불안한 소식, 염려 낙심 되는 소식들뿐이다. 우리 시대가 그렇다. 마24장 난리의 시대, 서로 대적을 하고, 마25장에 심지어 교회가 등은 있는데 기름이 없다. 모양만 있지 아무 능력이 없다. 딤후3장 무정하고 거역하고 무절재하고, 배신하고 사랑이 식어지고 이것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거기다 점점 복음은 희미해지고 가치 없는데 인생을 낭비하고 정말 시대가 어떻게 되겠는가?
▶히10:25 그런데 교회는 모이지를 않는다. 주일예배드리는 것이 힘들어졌다. 저녁예배는 거의 생각이 없다. 주일예배 겨우 나오고 수요일 저녁예배, 금요 예배 모이지를 않는다. 마가다락방 성도들은 매일 모였다. 프리메이슨 같은 단체는 매일 모인다는데 교인들은 모일 힘조차 없다. 주일날 겨우 와서는 신앙생활 잘 한다고 착각한다. 참 안타깝다. 그 중에 나도 속할지 모른다.
2) 서원하는 사람
▶ 이런 시대를 보면서 내 마음에 서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창28:20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다. 형의 미움 받아 도망가면서 하나님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돌아오게 되면 내가 돌 베게하고 잤던 여기가 성전으로 될 것이고 십일조 드리겠습니다의 서원을 한다. 야곱은 서원한데로 그 일을 한다.
삼상1:11 한나가 하나님께 나실인의 서원을 한다. 이 땅에 많은 자식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드려진 자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태의 문을 여시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실인으로 내 자식을 드리겠습니다. 서원한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사무엘이다. 그 자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역사.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복음운동 처음 시작하고 서원을 했습니다. 나는 이 복음운동 하다가 죽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서원하는 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 내가 영적으로 정말 타락하고 있구나. 내가 영으로 심각하구나 하고 하나님께 회개를 하였습니다.
▶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갚지 않는 것은 죄인데 이것을 갚지 않고 살아가고 있구나. 제 마음에 와 닿았다. 세상에 사람과의 약속도 중요한데 하나님께 서원해놓고 그것을 지킬 생각도 안 하고 더디 하면서 죄라고도 생각을 안 하고 얼마나 사단에게 속는 있는 것인가? 아 내가 속았구나. 정말 성경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서원을 거기에 올인을 했다.
2.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
1) 나를 축복하옵소서
▶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저와 성도들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장로님이 포럼을 하면서 하나님 저에게 교역자를 지키고 도울 만큼 응답하고 축복하옵소서. 그 기도 한다고 하시더라. 나는 아멘을 하였다. 그래 맞다. 정말 하나님 나에게 축복하셔서 교역자를 보호하고 돕고 교회를 보호하고 도울 만큼 축복하여 주옵소서. 정말 바른 기도 아닌가? 가이오는 핍박시대에 모든 것을 올인하여 전도자와 교회를 도왔는데 우린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 행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얼마나 가난하면 교회 안에 구제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 이때 베드로가 일꾼을 세우면서 이 말씀을 한다. 이는 여러분들이 이런 축복을 받아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말이다. 목회자가 교회 제정 때문에 염려하고 신경 쓰는 정도라면 회개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셔서 교회가 마음껏 복음 전하고 우리가 세계선교하고 해야 되는데 그냥 내 먹기 살기도 바빠서 정신없다면 이것은 회개해야 되는 일이다. 정말 하나님이 복음 주셔서 가이오처럼 쓰임 받게 하옵소서 이래야 되는데 영적감각이 다 없어져서 내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이오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 시대 하나님 앞에 자기가 받은 축복으로 목회자 섬기고 교회를 도운 것이다. 우린 적어도 이런 정도의 축복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대들이 이런 정도의 축복은 받도록 기도하고 축복해야 한다.
2) 참으로 사랑하는자
▶ 부모가 자식을 보기에 원수 같은 자식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면 그 인생을 실패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내 자식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축복하고 축복하고 더 축복하고 그래야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볼 때 가이오가 이런 축복의 사람이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사도 요한의 중심에서 자기도 모르게 축복이 나오는 것이다.
▶ 요3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도가 마음껏 축복하고 축복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복 있는 사람인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도가 축복을 쏟아부어주고
쏟아부어주고 그래야 되는것 아닙니까? 우리 자식을 볼 때 정말 축복하고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요3서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이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정말 복음적인 삶을 살았다. 내 자녀가 복음 안에서 복음 전도를 위해 쓰임을 받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다 이런 말이다. 사도 요한은 연세가 많다 그러니 가이오를 자기 아들처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도가 내 자녀가 이렇게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만큼 기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것이다. 이것이 사도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이렇게 가이오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3. 선한 것을 본받으라
1) 기쁨을 주는 사람
▶ 그러면서 부탁을 합니다. 이런 교회 안에도 이상한 사람이 꼭 있다. 사도 요한이 가이오 에게 부탁을 한다. 부탁한다는 것은 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부탁인가? 조심스러운 부탁을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 디오드레베가 있는데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잘해야 하는데 으뜸 되기를 좋아하면서 악한 말을 한다. 악한 말을 하면서 자기가 으뜸 되기를 원한다. 심지어 사도 요한을 비방한다. 으뜸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사람들을 감싸주어야 되는데 사람들을 감싸주지도 맞아들이지도 않고 맞아들이려는 사람까지도 쫓아낸다. 이것이 요3서9-11절에 말씀이다. 이것을 가이오 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이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 자이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2) 선한 것을 본받으라.
▶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 안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TV에서 이상한 목사님이 나왔다고 하더라. 그런데 교회에 잘 나오지도 않는 분인데 그것을 보고 교회가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장로님이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안타깝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부탁을 합니다.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우린 현장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 시험받고 상처받았다. 목사님 때문에 장로 때문에 누구 때문에 참 안타깝다.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붙잡히고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면 저희는 예외 입니까? 저도 붙잡히면 그렇게 이용을 당하는 것이다. 저희는 이것을 보면서 그래 성경에 그렇게 많이 말하는 사단에게 붙잡혀서 저렇게 이용당하고 있구나. 불쌍하구나. 내가 영적 싸움해야지 나는 정말 바른 길 가야하지 이렇게 결단하고 인도받으면 되는데 거기에 시험을 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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