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1. 하나님의 위로
1) 하나님 앞에서
① 신앙생활
신앙생활에는 중요한 두 원리가 있다. 신앙생활은 성도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예배드리는 것처럼 모여서 예배드리고 또 기도회로 모여서 남전도회 여전도회로 모여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또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위해 헌신도 봉사도 더불어서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기도 하고 사랑하며 신앙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 본의 아니게 신앙생활 하면서 상처받기도 낙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힘을 얻고 은혜를 받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이다. 성도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②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신앙의 다른 한 가지 요소는 하나님 앞에서 혼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공부를 하는데 혼자 있을 때 스케줄을 가지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공부가 되는 친구들이다. 바로 신앙생활은 같이 예배를 드린다. 심야기도 새벽기도 모여서 같이 한다. 그런데 나 혼자 있을 때 말씀 보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나 혼자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같이 하는 것과 나 혼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서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되어지면 같이 하는 것은 되는데 나 혼자 서는 안 되어지고 또 어떤 사람은 혼자 하는 것만 좋고 같이 하는 것이 불편한 것도 문제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혼자서도 깊이 할 수 있지만 같이 더불어서 하는 것이고, 같이 더불어서 할 수 있지만 혼자서 하나님 앞에서 깊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쌓여져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원리를 잘 알고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2) 우리의 싸움
그래서 결국 우리의 싸움이 무엇이냐? 유치하게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영적 대상이 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마12:28절 이하에 보면“강한자를 결박한 이후에야 그 집에 있는 것을 늑탈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를 은혜 생활, 예배 생활, 기도 생활, 하지 못하게 속이는 흑암과 싸워야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을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싸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사람은 누구다 다 과거의 상처 아픔이 있다. 이런 과거의 상처 아픔을 타고 불신앙 염려 걱정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것과 싸워야 한다. 결국 우리는 흑암의 세력을 꺾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위로
이것이 이해가 되어도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고 문제다. 그래서 마5:4절에 보면“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하나님이 주는 힘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안 되어진다면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 애통한다는 것은 정말 답답해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다. 우리 과거의 상처 체질 여러 가지 때문에 안 되어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만 복음의 사람은 애통한 것을 기도로 연결해야 한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정말 하나님의 위로 받기를 바란다. 내가 안 되는 문제 고질적인 문제 해결 안 되는 것에 대해 낙심하고 실망하지 말고 정말 애통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시기 바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해결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 낙심하지 마라.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이 사실을 붙잡길 바란다.
2. 너희 때문에
1) 세 가지 질문
① 율법에 대하여
오늘 로마서 2:17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중요한 질문 세 가지를 한다. 유대인들은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은 잘한다.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킨다. 우린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까지 말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고 강조하는데 정말 양심적으로 율법을 다 지키느냐? 질문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말 거짓말 하고 있지 않느냐?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음란한 생각 하지 않느냐?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하면서 성전에 있는 것 훔쳐가지 않느냐? 너희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율법 때문에 결국 예수를 믿지 않는 것 아니냐? 결국 그리스도를 모르고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다는 그 말이다.
② 할례에 대하여
두 번째 질문은 할례에 대해서다. 유대인들은 할레를 받아야지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고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할례는 언약 백성 구원 받은 자의 표인데 너희가 할레를 자랑하는데 정말 구원의 축복 구원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는 율법을 잘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지 구원 받는 다고 하는데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지금도 흑암을 꺾고 천사가 동원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구원의 축복을 아느냐? 이것도 모르면서 할례 받았다고 자랑하느냐? 이런 말이다.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의 양심에 질문하는 것이다. 정말 구원의 축복도 모르면서 할레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바른 것이냐는 것이다.
③ 참 유대인에 대하여
세 번째 질문은 참 유대인? 너희들이 유대인인데 표면적 유대인이냐? 이면적 유대인이냐? 유대인은 분명히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고 유대인의 조상이 아브라함인데 복의 근원의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너희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복을 받고 있느냐? 복음을 받고 있느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느냐? 그런데 너희들은 참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저 이방인들은 이방인이라서 구원 받지 못할 백성이라고 정죄하고 있지 않느냐?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본질 세 가지를 질문 하고 있다.
2) 자신을 가르치라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한다. 21절에 보면“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너희들은 스스로 선생이고 가르치는 자라고 하면서 너희 자신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남에 대해 쉽게 말하면서 나 자신은 안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남을 실컷 가르쳐 놓고 자신이 안 되면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점검표를 만들어서 점검해 보았다. 점검을 하지 않으면 되는 줄 착각하고 안 되는 부분을 모르고 지나친다.
3) 너희 때문에
그리고 24절에 보면“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유대인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독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안되면 조상 탓, 이사를 잘못한 탓 내 탓은 없고 남의 탓만 한다. 그러나 사실은 내 탓이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은 없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문제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상처 받는 사람이 심각한 문제다. 같은 음식을 먹고 어떤 사람은 탈나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음식을 탓하면 되겠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탈이 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3. 저주를 축복의 발판으로
1) 각인된 사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셨다. 바울이 얼마나 복음이 각인된 사람인가 하면 롬1:16절에 보면“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과거에 복음을 부끄러워했다는 말이다. 죄 문제 해결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 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렇게 바울에게 각인이 된 것이다.
제가 이번 한 주간에 고라의 자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고라는 똑똑한 사람인데 자꾸 불신앙과 원망이 들어와서 250명과 함께 모세를 대적하다 하나님께 불타 죽었다. 그런데 민26:11절에 보면“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했더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고라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함께 모세를 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라의 자손들이 아버지가 한 일 하나님을 대적하면 저렇게 처절하게 망한다는 것이 각인이 되었다. 여러분 시편을 보면 고라 자손의 시가 11편이 나온다. 그 11편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성전 중심 하나는 찬양 중심이다. 시84편이 고라 자손의 시다. 시84:1-2절에 보면“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시84:10절에 보면“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고라 자손이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다는 고백이다. 역대상19:17절 이하에 보면 고라의 자손이 성전 문지기 직분을 감당하는데 아주 중요한 직분이라고 했다. 대상9:27:26절에 보면“중요한 직분이라 했다.”성전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고라의 자손이었다. 완전히 망해야할 후손들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천대까지 망하는데 웬 은혜로 성전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다.
2) 저주를 축복의 발판으로
① 성전 중심
성전은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냐? 그리스도 중심 언약 중심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정말 이 땅의 문제가 그리스도가 없어서 망하는 것인데 죄 문제를 그리스도 밖에 해결할 수 없다. 사단의 세력을 꺾는 이름이 그리스도 밖에 없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도 그리스도 밖에 없다. 고라 자손들이 우리 조상은 망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 주셔서 성전의 중요한 일들을 감당하는 그리스도 언약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직분에 대한 감사가 고라 자손의 시에 베어 나온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깨달았느냐? 고전2:2절에 보면 과거에는 내가 율법을 지키고 유대인처럼 살았지만“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② 찬양 중심
두 번째 고라의 자손은 찬양 중심으로 살았다. 고라가 왜 망했냐? 자기도 모르고 원망과 불평이 들어와서 하나님이 세운 종 모세에게 대적하다 죽었다. 고라의 자손들은 이것을 보았다. 그래서 평생 원망 불평하지 않고 그러한 일이 있더라도 찬양 중심으로 살았다. 어느 정도 고라의 자손들이 찬양 중심으로 살았냐면 시47편은 고라 자손의 시인데 1절에 보면“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48:1절에 보면“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고라 자손이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했다. 조상 고라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해서 결국 망했지만 후대들은 그들의 입술에서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 했다. 복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불평하게 되면 불신앙이 들어오고 영혼이 황폐해져서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영혼에서 감사와 찬양이 나오면 영육 간에 복을 받는 일이다.
3) 각인된 가문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가 그 배경을 보면 역대상6:31절 이하에 보면 언약궤가 평안할 때 다윗이 찬양하는 사람을 세웠는데 바로 고라의 자손들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역대하20장에 보면 유다왕 여호사밧에게 연합군이 쳐들어 와서 두려워 겁이 났다. 여호사밧 왕이 온 백성에게 이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할 때 역대하20:19절 이하에 보면“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하니라.”한 나라를 살린 찬양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찬양 할 때 옥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저와 여러분이 한 생애 살아가면서 저주를 축복의 발판으로 바꾸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 길은 우리의 성전 중심 그리스도 언약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입술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기도했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든 기도로 바꾸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바울에게는 이것이 각인이 되었느냐면 엡3:8절에 보면“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고라의 자손은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니지만 그런데 이 고라의 자손들이 시편을 11편 썼고 고라의 자손 때문에 한 민족이 살고 성전의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편견이나 차별을 하지 않으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영적인 축복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나는 내 후대들에게 영적 축복을 전달하는 복음의 명문 가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택함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축복을 저주로 전락시켰다. 그래도 그 중에 몇 사람은 저주 받을 자리에서 은혜 받고 축복의 발판으로 그 인생이 바뀌었고 후대들이 살아났다. 우리 인생이 이런 축복을 누려야할 줄 믿습니다. 구약시대 귀하게 쓰임 받았던 사무엘의 조상이 바로 고라이다. 역대상6:34-37절까지 보면 고라의 후손에서 사무엘이 나왔다. 시88편이 고라 자손의 시이다. 1절에 보면“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우리 가문과 조상이 어떠했든지 나부터 오늘부터 내 구원의 하나님께 주야로 부르짖는 축복의 가문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 정리
정말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길은 내 모든 문제 고통스런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하나님 앞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이 때 참된 위로가 나온다.
두 번째 결국 문제는 나 때문이다. 나를 복음화 시키는 것이 모든 것이다. 나를 살리면 나 때문에 모든 것이 살아난다. 우리는 소중한 인생 저주 받을 인생으로 살지 않고 축복의 발판으로 우리 후대와 앞으로 오고 오는 사람들의 증인으로 쓰임 받아야할 줄 믿습니다.
♠ 기 도
하나님 감사 합니다. 복된 날 주의 전에서 예배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 중에는 과거를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과거를 내어놓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축복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저주스런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 중에 축복의 조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주 받은 조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와 상관없음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제 정말 성막 중심 찬양 중심으로 살 때 저주가 축복의 발판으로 바뀌는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 후대를 통해서 사무엘 같은 사람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축복의 가문을 세우고 축복의 발판이 되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