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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녹취 - 믿음으로 살리라(롬1:16-17) 조회수 : 144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1-02-06
  첨부파일:   20110206 - 믿음으로 살리라.hwp(24K)
♠ 성 경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 기쁜 소식
1) 유연한 사람
유연한 사람의 뇌에는 관절하고 관계가 있다고 한다. 뇌의 경로인 스파인이라는 경로가 있는데 이것이 관절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관절이 부드러운 사람이 뇌가 유연하다고 한다. 반대로 관절이 뻣뻣한 사람은 뇌도 경직이 되어서 활동이 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운동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익이 있지만 특별히 관절이 유연해 진다는 것이다. 관절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관절을 부드럽게 하면 건강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뇌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뇌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것이 현대의학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연결시켜 보면 사람이 복음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생각이 굉장히 유연해 진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하면 생각이 경직되어서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복음 받고 누리면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유연해져서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한다. 생각이 경직되면 다른 사람 오해하면 끝까지 오해하고 상처 한번 받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뇌가 경직된 상태이다.
2) 마음의 축복
① 되는 사람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의 차이가 한 가지 있다. 안 되는 사람 특징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 바뀌지가 않는다. 고착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결혼을 했는데 혼자 살던 때처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서로 맞추어서 살아야 되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를 가도 마찬가지다. 되는 사람은 나를 바꿀 줄 알고 안 되는 사람은 바꾸질 못한다. 신앙 생활도 똑같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내가 바뀐다. 신앙생활이 안 되는 사람 특징은 성경을 바꾸려하고 하나님도 바꾸려한다. 그런데 정말 신앙생활이 되어 지고 성령 인도 받는 사람은 나를 자꾸 바꾼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옛날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결국 이것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② 마음의 축복
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절대적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하면 안 된다. 나를 말씀 앞에 비추어 바꾸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내가 과거에 우상 숭배하고 제사했다면 바꿔야하는 것이다. 되는 사람의 특징이 나를 바꾸는 것이다. 신앙생활 잘하고 인도를 잘 받는 사람은 갱신을 잘한다.
3) 큰 기쁨의 좋은 소식
① 기쁜 소식
우리가 흔히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다. 맞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기쁜 소식인가? 살다가 병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나았다면 기쁜 소식이다. 또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는데 도움을 받고 하나님이 축복 주셔서 경제가 회복된 것도 물론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②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10-11절에“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그리스도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바로 그리스도다. 왜 그리스도냐?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구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바로 그 분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키시는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어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마귀의 일을 꺾을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의 소식이 뭐냐?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다.


2. 믿음으로 믿음에
1) 나의 자랑
① 참 복음 받은 사람
오늘 말씀에 보면 참 복음 받은 사람의 고백이 나온다. 정말 이 땅에 기쁜 소식이 많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복음을 받은 사람의 고백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창3장에 잡혀서 자기도 모르게 저주와 진노 속에 끌려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것을 모르니까 사람들이 네피림 시대가 되어서 귀신섬기고 우상을 섬기며 타락한 삶을 살아간다.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최선을 다해 사는데 어느 날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 지식 보화가 있음을 깨달은 사람의 고백이다. 그 사람이 누구냐? 바로 바울이다.
② 나의 자랑
이 바울의 고백이“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이 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이 고백을 하는 바울은 복음 깨닫고 복음 받고 세상 적으로 보면 망한 사람이다. 복음 받고 성공해야 하는데 처절히 망한 사람이 바울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는데 자기 동족으로부터 핍박받고 배척받고 이단의 괴수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쇠사슬에 매였다. 창3장에 잡혀있던 날 구원하신 예수 복음 전하는 것 부끄럽지 않다. 내가 이단 누명 쓰고 감옥에 가고 쇠사슬에 묶여있지만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세상의 자랑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가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이 뭐냐?“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복음 전하는 전도자의 대열 속에 있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이것이 바울의 자랑이다. 저와 우리 성도들에게 바울이 자랑했던 자랑의 증인이 되길 바란다. 다윗 같은 사람은 평생에 자랑이 한 가지 있었다. 왕 되었다고 자랑한 적이 없다. 다윗의 자랑은 성전 지을 준비를 했다는 이것 하나 외에는 없다. 노아 평생의 자랑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것 하나 밖에 없다. 저는 우리 성도들과 함께 정말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축복을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자랑이다.
2) 하나님의 능력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 병 고침 받고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축복과 기적을 가져다주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님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하나님의 능력 중에 능력은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다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중 능력은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3) 믿음으로 믿음에
바울은 17절에 보면“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믿음으로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믿음으로 믿음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이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이제 열심히 살고 충성하고 봉사해야 한다. 맞지만 완전한 답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데 이제 모든 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보고 믿음의 바탕을 보고 헌신 충성 봉사하는 것도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제가 처음의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신앙생활 할수록 더 풍성해져야지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고 목사 일을 한다면 저주 중 저주다. 진짜 저주가 무엇인가? 우리 성도님들이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날이 갈수록 더해져야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면 저주다. 병드는 것이 저주인가? 사업이 망하는 것이 저주인가? 진짜 저주는 영적으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저주다.


3. 믿음으로 살리라
1) 복음과 종교
지금 바울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믿음으로 구원 받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기독교와 천주교와 유대교가 갈라지는 말하자면 종교개혁이 잃어나는 큰 분수령이었다. 종교는 선한 것이고 좋은 것이다. 만약 이 땅에 종교가 없다면 사회가 무법천지가 되고 질서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종교가 해결 못하는 것이 있다. 복음 아니고는 해결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빠진 원죄를 어떤 종교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것이 종교의 한계다. 또 종교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사단의 세력을 해결할 수 없다. 사단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 모르게 하고 저주와 재앙으로 끌고 가는 장본인이다. 종교는 사단의 세력을 이길 수도 없고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사단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 영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우상 숭배가 증가 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를 주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주셨다. 우리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바로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성경에 보면 창3:15절에 인간이 사단에게 속자마자 바로 복음을 주셨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롬5:8절에 보면“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자기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하셨다.”이것이 복음이다.
2) 믿음으로 살리라
그래서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고백을 했다. 이게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가장 핵심이 된다. 중세시대 천주교는 우리 인간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것이 맞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구원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중세교회였다.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다 가르치고 잘 가르쳤지만 한 가지를 덧붙여서 가르쳤다.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것이 맞지만 우리 인간이 구원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큰 문제를 야기했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계기이다. 예를 들어 죄를 지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다 이루었다고 했다. 히9:12절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다고 나온다. 우리 죄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해 놓으신 것이다. 그런데 중세교회는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예수님이 죄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맞지만 우리가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논리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쉽게 금방 알아듣는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죄 값을 갚으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이 대신 다 지셨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이해가 쉬우려면 천주교 식으로 하면 쉽다.
또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 영혼이 떠나갈 때 천국에 가던지 지옥에 가는데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것을 가르쳐서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고 헌금해서 하나님의 기준에 차는 날 연옥에 있던 영혼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얼마나 이해가 쉬운지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삶을 살았던지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 조금도 의심이 없다. 결국 이렇게 되니까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 즉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성인이고 성인은 이 땅에 살면서 구원 받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다. 적은 차이지만 끝에 가서는 완전히 다른 우상숭배하고 종교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해결하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세력을 꺾으신 믿음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신 믿음가지고 사는 것이다. 이 믿음을 놓쳐 버리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지만 종교 생활하게 된다. 중세교회 사람들처럼 말이다. 유대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 다고 가르친다. 율법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것이지만 유대교는 율법을 100%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이 사람들은 음식도 제대로 안 먹는다. 랍비가 허락한 음식만 먹는다. 사서 고생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도 원치 않게 율법이 우상이 되었다.
3) 영혼의 상태
① 계산할 수 없는 은혜
여기서 무엇을 깨닫는가? 우리가 받은 축복은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다. 엡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거저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은 계산할 수 없다. 주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선물이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기쁜데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기분이 별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가격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이 구원의 축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원의 축복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2천년 교회 역사는 복음과 종교와의 싸움이다. 우리가 무엇을 했고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② 영혼의 상태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내 영혼의 상태가 여기에 대한 참된 감사가 있는 사람은 달라지는 것이다. 시141:8절에 보면 다윗이 이런 기도를 했다.“내 영혼을 빈궁한 데로 버려두지 마옵소서.”다윗은 늘 찬송하고 기도했던 믿음의 사람인데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빈궁한 곳에 처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영혼을 빈궁한데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기도한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정말 구원에 대한 참된 감사와 감격이 있는가? 똑같은 사람인데 어쩔 때는 너무 인정 없고 매몰차고 싸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때 나는 평안하고 여유가 있고 풍성하다. 이 때 나의 영혼 상태가 어떠한가? 내가 말씀을 통해 은혜를 흡족하게 받고 임마누엘을 사실적으로 누리면서 나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시고 전도자의 삶속에 있게 하신 하나님 감사하다. 이럴 때 내 영혼의 상태가 평안하고 여유가 있어진다. 그런데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내 영혼에 메말라서 얼음장 같이 차가워져서 싸늘해진다. 그 상태가 지속되니까 생각이 사로잡히고 그런 말과 행동이 나온다.
우리 영혼의 상태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차갑고 싸늘하다면 영혼에 큰 문제가 와 있는 것이다. 다시금 영혼의 상태가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하길 바란다. 영혼의 상태가 풍성해지면 복음과 전도를 놓고 헌신하게 되고 영혼과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소망 가운데 인내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영혼의 상태가 차갑고 싸늘해지면 교회가 멀고 헌신은 나와 상관없어 지고 기다리질 못한다.

♠ 말씀 정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기쁨의 소식은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더 깊은 믿음으로 복음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복음으로 그게 종교 개혁을 이어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산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늘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서 영혼의 상태가 풍성해져서 복음과 전도를 놓고 헌신하고 복음과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수고하고 정말 소망가지고 인내하고 인도 받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 기 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된 날 주의 전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복 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복음의 축복 우리가 누리게 하시고 다윗이 누렸던 그 영혼의 풍성한 상태 우리의 상태가 되어 지도록 주님 복을 주옵소서.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가정이 살고 후대가 살고 교회와 현장이 살아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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