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경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1. 말씀에 붙잡힌 사람
1) 주안에 있는 사람
예수 잘 믿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보니 내 인생 이유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예수님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역에 불량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을 보면서 자기 자식 같아서 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 부인이 불량소년에게 예수님이 누구 인지 설명했는데 이 소년이 너무 열 받아서 큰 슬레이트를 들어서 부인을 쳤다. 병원에 갔더니 척추 뼈가 부러져서 불구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부인이 내가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왜 이런 일을 당했을까?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온 것이다. 자기를 불구자가 되게 한 불량소년에 대한 미움과 원한이 맺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병원에 한 흑인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는데 찬송을 흥얼흥얼하는 것이다. 그 부인이 누워있으면서 몸도 아프고 마음도 괴로운데 그 흑인 아주머니가 찬송을 흥얼거리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당신은 청소부 주제에 무엇이 그리 좋아서 흥얼흥얼 거리냐?”고 하니 흑인 아주머니가 답하길“저는 가난하고 어려워서 청소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감사해서 내 속에 넘쳐나기 때문에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말하는 것이다. 흑인 청소부가 떠난 뒤 부인에게 그 말이 계속 생각이 난 것이다. 그 밤에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주 안에 있고 분명히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인데 왜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사람이 원망스러울까?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 370장이다.
정말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딴 근심이 있습니까?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 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이 이 내용이다. 정말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축복을 회복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원치 않는 일들이 답답한 일들이 일어난다.
2) 하나님 앞으로
사람이 살다보면 병에 걸릴 수 있다. 병이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병이 지나가길 바라며 버티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는데 심각한 병은 빨리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육신이 그럴진대 우리 인생에 문제가 오면 정말 어디로 가야 하냐? 나를 지으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정상이다. 자꾸 다른 곳에 가서 찾으려 하면 인생이 고통스럽고 고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고 하나님께만 참 해답이 있다. 이것이 믿음이다.
3) 믿음의 법칙
① 믿음의 역사
믿는 믿음에 따라서 역사가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불신앙이 가득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흑암에게 당한다. 믿음은 영적인 과학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내 모든 문제를 해결 하셨구나! 예수님께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 해결 하셨고 해결 하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믿음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난다. 불신앙도 사실은 믿음이기에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녀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고 아무리 바르게 깨끗이 살아도 해결 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해결 하셨고, 눈에 보이지 않게 나와 우리 가정과 후대를 무너뜨리고 끊임없는 저주와 재앙을 가져다주는 흑암의 세력을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해결 하셨다. 이것을 믿으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② 믿음의 법칙
그래서 믿음은 법칙이 있다. 믿음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들을 때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 문제 해결 하셨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고, 사단의 세력을 꺾으신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상에 불신앙이 없다. 사람이 무엇을 들어서 그 들은 것이 마음에 새겨진 것이 믿음이다. 그 들은 것이 마음에 심겨지고 뿌리 내리게 되면 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이다. 사람이 땅에 무엇을 심느냐? 그 심는 것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농사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다. 내 마음 판에 무엇을 심느냐? 그 심는 것에 열매를 맺는 것이 믿음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먹어라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다. 창3장에 보면 어느 날 뱀이 하와에게 나타나 얘기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되고 절대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리려 하는 사단의 말이 마음에 심겨진 것이다. 그리고 선악과를 보니 너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마음 판에서 없어지고 사단의 말이 심겨진 것이다. 그것을 먹어도 절대 죽지 않는다.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된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선악과가 너무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보여 따 먹은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사람이 무엇이 심어지느냐? 이것이 믿음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지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단의 말이 심겨지면 어찌 할 수 없이 사단의 종이 되는 것이다.
2. 확산되는 말씀 운동
1) 예수는 그리스도
① 말씀에 붙들린 사람
사도행전 18:5절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고 했다. 우리 인생을 점검해 보면 내가 무엇에 붙잡혔느냐?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됐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에 잡혀 있으면 불신앙의 삶이 된다. 참 안타깝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다. 저와 우리 성도들이 바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길 소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우리가 무엇에 붙들려야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에 붙들린 사람을 참 많이 본다. 노름 하는 사람을 보면 노름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왜냐? 노름에 잡혀서 그렇다. 무엇에 잡혀있느냐가? 인생이다. 우리는 무엇에 잡혀야 하는가? 우리 후대들이 참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게임에 잡힌 애들도 있다. 그러니 게임을 밤새워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점술과 무속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귀신에게 붙들려서 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이 붙들려 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길 축원합니다.
② 예수는 그리스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니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가 그리스도 됨을 밝히 증거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밝히 증거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자랑할 수밖에 없다.
2) 각인된 사상
그런데 6절에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바울의 말을 듣고 대적하고 비방하는 일이 일어났다. 바울이 다른 말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예수가 메시야 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데 이 사람들이 대적하고 비방했다. 유대인들에게 각인된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각인된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회당에서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면 구원을 받는 다고 배운 것이다. 유대인만 선민이다. 그러다 보니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임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 과거에 바울도 그랬다. 바울도 이 사상이 각인이 되어서 마가다락방 교회를 없애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장 앞장선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우리는 혹시 내가 지금까지 배운 사상 지식 때문에 복음을 받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3) 하나님의 역사
① 확산되는 말씀 운동
그래서 이제 바울이 유대인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도 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가서 성경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 됨을 계속 설명한 것이다. 디도 유스도 집에서 말씀 운동을 하는데 회당장이 복음을 받고 고린도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② 하나님의 역사
한 가정에서 말씀 운동을 하면 가정에 역사하는 모든 저주, 재앙과 흑암이 꺾이고 그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 한 가정에서 말씀 운동하면 반드시 다른 지역에 말씀 운동이 확산되게 돼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복음 운동은 막히지 않는다. 물도 막으면 막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어디론가 흘러간다. 복음도 같다. 막는 다고 막히는 게 아니다. 생명 운동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막으면 막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디도 유스도 집에서 복음 운동을 하는데 유대인인 회당장이 복음을 받고 고린도 지방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게 되었다. 생명 운동은 막히는 법이 없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어떻게 역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3. 간격을 찾아내라
1) 영적 생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는데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평상시에 자기 규례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울의 영적 생활이다. 유대인들이 하는 일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바울도 유대인이고 복음을 받은 후에도 계속 이것을 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니까 말씀에 붙들리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영적 생활이 중요하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영적 생활이다. 영적 생활이 쌓여지는 어느 시간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것이다. 엡6:19“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이것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기도 부탁한 내용이다. 저와 여러분이 평상시 이런 영적 생활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사2:25절에 보면 다윗의 영적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이것을 다윗은 늘 확인하고 있었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생활 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영적 생활이 되어지는 축복을 응답으로 누리시길 바랍니다.
2) 깊은 뿌리
그러면서 바울에게 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만났을 때 왜 예수는 그리스도라 말했을까? 바울 가슴속에 깊이 뿌리 막힌 것 때문이다. 자기가 회당에서 배운 것이 세상과 성공의 발판이 되었지만 복음을 막았던 그가. 나는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겠다. 이것이 바울에게 깊은 뿌리가 내린 것이다. 사람이 뿌리가 깊이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으면 결국엔 무너진다. 사람이 한번 잘못된 습관이 뿌리 내리면 고치기 쉽지 않다. 이해해주고 기다려 주고 본인은 도전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습관이 되어있고, 운동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지만 습관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잘 안 된다. 바울에게 깊이 뿌리내린 것이 무엇인가? 십자가 밖에 없다. 이것이 바울에게 한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깊이 뿌리 내려야 할 것이 십자가 이다. 우리 인생이 십자가 외에는 소망이 없다. 이것이 뿌리가 내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이 희미해서 자꾸 다른 것 하려고 한다.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나의 것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3) 간격을 찾아내라
① 나의 현장
그런데 나의 가정, 내가 일하는 곳을 보면 현장에서 정말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내 현장을 잘 봐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이곳에 살게 하셨으면 이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나를 가정을 이루게 하신 계획이 있고, 학생이라면 그곳에 대한 계획이 있고, 일을 하게 하셨으면 일하는 곳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② 간격을 찾아내라
그래서 내 현장을 놓고 하나님의 소원을 보게 되면 간격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간격이 있는 것을 알고 도전하는 것이 기도다. 나와 실제는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좁히는 것이 바로 기도다. 예를 든다면 아브라함 조카 롯을 떠나보낸 이후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아브라함이 한 일이 여호와 앞에 단을 쌓고 계속 기도 속으로 들어갔을 때 가병 318명을 주실 만큼 축복 하셨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는데 이 때 다니엘은 늘 하던 데로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이것이 간격을 좁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도 믿음의 사람이 기도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자가 활동해야 간격이 좁혀지는 것이다. 에스더가 전 백성이 죽음의 위기 앞에 있을 때 약속 붙잡고 생을 거는 기도 속으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바꾸시고 하만의 궤계를 들어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났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축복을 꼭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간격을 좁히는 길이 바로 기도다. 습관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을 두고 기도해야 한다. 경제문제, 건강문제, 생업문제 생을 두고 기도해야 한다.
♠ 말씀 정리
분명히 우리는 주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에게 인생의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 앞에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분명한 것은 말씀 운동을 누구도 막을 자가 없다. 말씀은 생명 운동이기 때문에 복음 운동은 누구도 막을 자가 없다. 반드시 말씀은 확산되게 돼있다. 한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돼있다. 걱정 할 것이 없다. 우리에게 있는 간격은 평상시에 영적 생활이 되어 지고 우리 속에 깊이 십자가의 복음이 뿌리내리고 기도 속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된 날 예배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인생의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운동을 하라고 하셨는데 말씀 운동을 할 때 일어나는 역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있는 간격을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상시 영적 생활이 되어 지게 하시고 십자가 복음에 깊은 뿌리 내려서 간격을 좁히는 기도 속에서 승리하는 증인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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