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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녹취 - 종교와 복음 (사도행전 10 : 44- 48) 조회수 : 1444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9-09-06
  첨부파일:   종교와 복음 - 090906.hwp(23K)
♠ 성경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1. 영직인 사실
1) 종교생활 한 3주전에 서울에 계신 어떤 목사님이 전화가 왔다. 다름이 아니라 목사님 형님 되시는 분이 속초에 살면서 신앙생활 하시는데 목사님이 지금 속초에 세분 선교사님과 잠깐 왔는데 형님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목사님은 속초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된 분인데 목사님은 애가 타서 형님에게 꼭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니 형님은 별로 관심이 없더라. 자기도 성경 공부도 하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뭘 그러냐고 하더라. 또 세분 선교사님들이 돌아가면서 본인들이 정말 복음의 풍성한 비밀을 잘 몰라서 선교 현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형님 되시는 분이 꼭 복음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형님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고, 우리 죄 문제 해결 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린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잘 모르더라. 그래서 복음을 설명하고 그분 손을 잡고 세분 선교사님과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다. 제가 시간이 바쁘니까 김동호 전도사님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말씀을 나누라고 하고 헤어졌다. 후에 전도사님이 그 형님 댁에 찾아갔더니 "다 아니까 안 오셔도 된다." 했다고 한다. 참 안타깝다.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초등학교 학생이 졸업할 때 되면 다 아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중학교 들어가면 제일 모른다. 한 생명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귀한 것이 없다. 한 영혼이 복음 받으면 그 영혼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역사 베드로가 시몬의 집에 머물면서 기도하는 중에 천사가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고넬료의 집에 갈 것을 말한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천사가 활동했다. 이게 사도행전 10장의 얘기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가 사실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기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기도하지 않는다. 왜냐? 영적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영직인 사실 베드로가 교넬료의 집에 가서 화평의 복음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 그리스도, 마귀의 일을 멸한 그리스도를 전파했는데 그 집에 성령이 역사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배할 때 주의 사자가 역사하고, 사단의 세력이 꺾인다면 예배는 드릴수록 축복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적사실을 모르면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이다. 영적사실 모르면 신앙생활만큼 따분한 것이 없다.

2. 우리와 같은 성령
1) 복 있는 사람
① 듣는 자리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갔을 때 고넬료가 자기 친척 친구들을 다 모아놓고 말씀 듣기를 기다렸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는 것은 축복이다. 말씀 듣는 그 자리에 성령이 역사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축복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예배하고 있는 이 자리가 축복의 자리이다. 그 당시 마가다락방에 모이면 핍박받고 이단이라 생각했지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축복된 사람이다.
② 듣는 사람 베드로가 화평의 복음과 마귀에게 눌린 자가 그리스도로 치유 받고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할 때 고넬료 집에 모인 모든 사람이 말씀을 받았다. 고넬료 집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베드로가 전한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아무리 축복된 자리에 있어도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있다.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이 말씀을 들을 지어다." 말씀하고 있다.
2) 성령의 내려오심 44절에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것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 겨울에 눈이 내립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리는 것을 보고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과 종교의 차이이다. 복음은 위로부터 하나님이 거져 주시는 것이다. 눈을 내가 내리게 만드는 것이 종교이다. 눈을 만들어서 내가 뿌리려고 하는 것이 종교이다. 복음은 위에서 하나님이 거져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한다. 종교는 눈을 내가 만들어서 내가 뿌려서 덮어쓰려고 하는 것이다. 복음과 종교가 이해가 되냐? 복음은 하나님이 거져 주시는 것이다.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시니. 이게 복음이다. 내가 어떻게 해서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다. 45절에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성령을 받아야지 받아야지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은 위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는 내가 성령을 뒤집어쓰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차이이다. 성령이 내려오신다.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게 복음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는 것이다.
3) 우리와 같은 성령
① 무너지는 장벽 베드로와 함께 간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내림을 보고 자기들의 선입견 편견이 무너지는 것이다.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다 장벽이 있고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주장, 기준이 있어서 모든 것을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복음은 모든 주장과 기준을 초월한다. 할례 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내림을 보고 놀랐다. 왜냐?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그동안 가진 편견과 선입견 기준이 있었다. 만약에 나에게 아직 선입견과 편견이 남아 있다면 아직 복음을 덜 누리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이념과 사상도 초월한다.
② 우리와 같은 성령 47절에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 리요" 이 말은 마가다락방에서 기도 할 때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고넬료의 집에 모인 모든 이방 사람에게도 똑같이 임했다는 말이다. 사랑은 국경도 초월할 만큼 힘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랑보다 몇 만 배나 더 능력과 힘이 있다. 또한 부모의 사랑도 대단하다. 모든 사람이 포기해도 부모는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그러나 복음은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3. 종교와 복음
1) 가장 중요한 것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가구가 많다해도 죽으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는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다.
2) 종교와 복음
① 좋은 소식 복음을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다. 이 땅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창3장에 잡혀 있다. 죄의 노예요 사단의 노예다.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메여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인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셨다. 그래서 기쁜 소식이다. 이 땅에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방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다 산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노예 생활 하고 있다.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잡혀서 끌려 다니고 있다. 노예는 아무리 똑똑하고 착하고 열심이어도 노예다. 그런데 피 제사 드리는 날 400년 동안의 애굽에서 노예 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근본적으로 고독하다. 그런데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영원히 천국 갈 때까지 내 삶을 보장하는 그 방법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처럼 기쁜 소식이 없다. 가족이 아무리 많고 친구가 많아도 사람은 근본적인 문제를 만나면 혼자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 하는 이름이 그리스도다. 영원히 내 영에 함께 하시는 이름 그리스도. 이게 복음이다.
② 생명의 일 고넬료가 구제와 선행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온 유대 백성에게 칭송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생명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종교도 나름대로 축복이 있다. 나름대로 마음에 위로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수는 있다. 지금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이 없다면 결국에는 마귀의 종 죄의 종이고 지옥에 간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이유는 멸망 받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보내주신 것이다. 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케 하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요20:31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고." 고넬료는 그 시대 훌륭하고 좋고 성공하고 바른 사람이고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또 자기 자신도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에게 생명이 없다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3) 말씀 운동의 이유
① 베드로의 사역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 하나님이 고넬료를 택하셔서 베드로를 붙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한 사역이 뭐냐? 그 시대 신앙생활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도 철저하다. 그렇게 신앙생활 잘한다는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예수가 누군지 몰랐다는 말이다. 베드로가 한 일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부활한 예수. 그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고 죄 문제 해결 되고 마귀의 일을 멸한다. 이것을 말한 것이다. 무식한 베드로가 그 말을 하는데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다.
② 말씀 운동의 사역 48절에 보니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다 세례 받으면 됐을 텐데 왜?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했을까? 정말 베드로가 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있으면서 베드로 가슴속에 있던 한. 그리스도를 고백했지만 실패하고 부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 그리고 마가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에 대해, 또 핍박 중에 복음을 선포했더니 3000명의 제자가 돌아오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앉은 자가 일어나고 그 모든 일을 얘기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넬료가 생명에 더 깊은 뿌리 내리고 풍성히 복음을 누릴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생명 받은 사람을 그대로 나두면 안 된다. 정말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 아닌 것을 치유해주고 종교적인 부분을 복음의 눈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고넬료가 로마 복음화 할 수 있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돕는 것이다. 고넬료 집에서 브리스가 집에서 루디아 집에서 이 일을 한 것이다. 이게 마가다락방 운동이다. 이 운동이 고넬료의 집에서 계속 확산되고 고넬료의 집에서 같이 들었던 사람들이 자기 집에 돌아가서도 이 운동을 했을 것이다. 이게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성도님들 온 가정의 집에서 말씀 운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일에 쓰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살고, 후대가 사는 것이고, 가정이 사는 것이고 우리 교회가 사는 것이다. 날로 날로 그리스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더 알아져야 한다. 그래서 이 풍성함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 돼야 한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 정리
분명히 기도할 때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말씀 운동할 때 눈에 안 보이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정말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기도하게 되고 말씀운동하고 예배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 성령이 내려오고 성령을 부어주신다. 그래서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이념 사상을 뛰어 넘는 것이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는 생명의 차이이다. 영원한 차이이다. 그래서 생명 운동 말씀 운동이 우리 각 가정에서 일어나고 확산 되야 할 줄 믿습니다.

♠ 기 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된 날 주의 전에서 말씀 듣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분명히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사실이 일어나고, 우리가 예배할 때 말씀 운동 할 때 분명히 성령이 역사함을 믿습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게 해주시고 거기에서 말씀운동 할 때 성령이 내려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와 똑같은 동일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복 주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 운동 복음 운동 제자 운동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가정이 살고 후대가 살고 지역이 살고 교회가 사는 것을 알아 이 일에 헌신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이 복을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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