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7 주일 강단 메시지
모세의 기도 (출애굽기 32:30-35)
<본문>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오시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여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내용>
1. 받은 은혜
1) 과거에 잡힌 사람
설악산 교회 있을 때에 도문동에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그런데 이분이 너무 생활이 어려워서 우리 성도들이 그 분을 도우려고 했다. 성도들이 힘을 합쳐서 그 집을 도우려고 했는데, 얼마나 집이 누추한지 완전히 돼지우리 같더라. 우리 성도들이 완전히 그 집을 치워주고 도배를 새로 다 해 줬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랑 같이 예배를 드려주고 너무너무 집을 깨끗하게 해 놓으니까 기분이 참 좋더라. 신앙생활 잘 하십시다. 하고 돌아왔다. 얼마 후에 제가 다시 한 번 그 집에 갔는데 집이 다시 거지집이 되었다. 원래 이 분이 거지같이 살았으니까 온갖 것을 다 집에다 갖다 놓고 살더라. 그래서 “할머니, 이렇게 하면 안돼, 도배도 다 해주고 장판도 새로 깔아주고, 부엌도 지저분한 것 다 버리고 새걸로 사줬는데, 왜 이렇게 살아?” 했더니 그 할머니가 “아니야! 아니야!” 그러면서 계속 거지같이 살더라.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집을 고쳐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뀌어야 되는데 사람이 안 바뀌니까 옛날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애굽 땅에서 종살이했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로 나왔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바라보고 살아가야 되는데, 문제가 조금 생기니까 옛날에 애굽 땅에서 봤던 것처럼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절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과거 문제가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데 과거에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새로운 축복을 다 주셨는데, 새로운 축복을 붙잡지 못하고 옛날로 돌아간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옛날로 돌아간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옛날 얘기만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것이 없고 옛날에 어떻게 했다. 그런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사단에게 붙잡힌 사람들의 특징이 그 과거를 벗어날 힘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거기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2) 새로운 피조물
①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영원한 저주 가운데 매여 살지 말라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영생을 얻으라고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흑암의 권세에 잡혀 있어서 귀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던 우리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건져주셨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이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② 새로운 생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던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너희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곧 새로운 생활을 하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떠난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 옛날에는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절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사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지금까지 과거에 매였던 그런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가 계속해서 출애굽기 말씀을 보니까 “성막을 만들어라! 그래서 너희들이 문제가 있으면 성막 앞에 나와서 그 문제를 내어 놓아라!” 그리고 “언약궤를 만들어라! 그리고 언약궤를 바라봐라!”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제 과거에 우상을 만들고 섬겼던 과거의 삶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라는 말이다. 우리 연약함을 하나님이 아시고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셨다. “번제를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드리라. 항상 양을 잡고 피를 뿌려서 번제를 드리라.” 왜냐하면 우리는 잘못하면 옛날로 돌아가 버린다. 회귀본능이 있어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쉽다. 돌아가지 않도록 아침 저녁으로 날마다 피 제사를 드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문제를 다 끝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십자가의 보혈,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3) 받은 은혜
그래서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면 우리에게는 참된 은혜와 참된 기쁨이 온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 “목사님 제가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피곤해요.” 그렇대요. 그런데 제가 운동을 해야 되겠다. 출근하면서 운동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운동하며 엑스포장과 청대산도 가고 하더니 그 무거웠던 몸이 없어지고 지금 몸이 너무너무 가뿐하다고 하더라. “목사님, 너무 운동이 너무너무 좋은거에요.” 이 집사님이 사람들에게 계속 운동하라고 청대산 가자고 엑스포장 가야 된다고 그러는 것이다. 여러분, 좋은 것은 자꾸 나눠야 됩니다.
또 하루는 물을 떠 갖고 왔더라. “목사님, 어디 약수터의 물이 너무너무 좋아요. 목사님도 물 드세요.” 저는 물을 많이 먹는 사람이기 때문에 집에 정수기를 놓는다. 떠다주는 물 가지고는 감질나가지고 안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집에 정수기를 놔서 괜찮다고 그런데 물을 먹으니까 좋잖아요. 물을 자랑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도 “거기 약수터가 좋으니까 운동하러 가서 물도 마시고 물 떠가지고 오자”고 하는 것이다. 좋으니까.
여러분, 좋은 것은 자꾸 자랑하게끔 되어 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도 좋은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권한다. 우리가 예수 믿고 은혜 받고 평안하니까 예수 자랑 할 것 아닙니까? 예수 자랑 당연히 해야 되고. 여러분, 물만 자랑하면 그 사람은 물 사람이 됩니다. 그런 육신적으로도 권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내가 좋으니까 자꾸만 권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고 내 생애를 지금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그것 자랑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자꾸 자랑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꾸 나눠줘야 한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2. 모세의 기도
1) 큰 죄를 범함
오늘 말씀에 보니까 모세가 “이 백성들이 큰 죄를 범하였다.”고 했다. 무슨 죄를 범하였는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가? 모세에게 무슨 욕을 했는가? 남을 속이고 욕한 것도 아닌데, 이 백성들이 큰 죄를 범하였다고 했다. 큰 죄가 뭡니까?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금귀고리를 빼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이 우리의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 제사를 지낸 것이다. 그것을 큰 죄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백성들이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사실은 금귀고리를 빼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을 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의 마음이 병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한 것이다. 사람이 마음에 병들면 말을 안 듣는다.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뱀이 나타나서 하와에게 말한다. “하와야 하나님이 동산에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니?” 그러니까 하와가 “하나님이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고 했어, 선악과 따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 말한다. “저 선악과 먹으면 죽지 않는다. 니 눈이 밝아져서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까봐 하나님이 그거 못 먹게 한 것이다.” 그 때 하와가 정상적이었으면 “무슨 말이냐? 선악과를 죽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다.” 그렇게 잘라야 되는데, 이미 하와의 마음이 병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뱀(사단)의 말을 신뢰한 것이다. 병든 사람의 특징이 그렇다.
잘못된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이상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 우리 아이가 정상적일 때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이 병들어버리면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 이상한 데로 빠진다. 여러분, 교인들도 마음이 병들어버리면 교인들이 권면하고 말하는 말을 안 듣는다. 제가 어쩌다가 어떤 교인이 문제가 있어서 가보면 목사님 말을 안 듣는다. 제가 다른 말 한 것이 아니다. “우리 믿음으로 살자, 정말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소원인 복음전도하면서 살자.” 그래도 이 말 안 듣는다. 그것은 목사님 말인 제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병드니까 안 들어가는 것이다. 불신앙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가지고 거기에 계속 빠져서 고통당하다가 결국은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 그게 죄 중의 죄입니다.
이 백성들이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슬픕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자기를 위해서 금신을 만들고 우상을 섬깁니다. 너무너무 슬픕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혹시 우리 성도 중에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려지고 예배가 안 되어지고 기도가 안 되어지는데 편안하다면 이미 그 마음이 병든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배와 말씀이 안 되고 은혜를 못받고 기도가 안되고 복음 전도에 관심이 없다면 슬퍼야 될 것 아닌가? 지금 모세가 한 말을 우리말로 말하면 “하나님, 제가 지금 예배가 안됩니다. 말씀이 안 들립니다. 내가 기도가 안 됩니다. 슬픕니다.” 슬퍼해야 되지 기도가 안되고 예배가 안되고 말씀이 안들리는데도 잘 먹고 잘 주무시고 꿈에 악몽도 안꾸고 그러면 문제인 것이다.
여러분, 죄가 뭡니까?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리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안되고 하나님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 안 되는 것이 죄다.
2) 하나님께로
그래서 모세가 한 일이 뭡니까?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그랬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던지 문제 해결은 하나님 손에 있다. 사람들이 문제만 생기면 자꾸만 사람을 찾아가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나를 만드시고 나를 제일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그 말은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드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우리 인간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해바라기가 아침에 동쪽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고 저녁에는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바라본다. 사람이 그 모가지를 인위적으로 비틀어도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도록 만들어졌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한 것이고 그 하나님 안에서 모든 해답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사람들이 해바라기 모가지를 비트는 것처럼 하나님을 안 바라보려고 하니까 자꾸만 모가지가 아프지...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3) 모세의 기도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 “하나님, 이 백성들이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 원컨대 생명책에 기록된 내 이름이 사라질지라도 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이 백성들이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망할지라도 이 백성을 살려주세요.” 모세가 구원받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시고 이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이게 모세의 기도이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축복받은 사람들의 기도가 달라요.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저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이 관영해서 저 성을 멸하겠다고 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저 성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악인들 때문에 의인 50명을 멸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의인 50명이 있으면 내가 그 성을 멸하겠냐?” “하나님, 거기서 5명을 감한 45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45명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하나님, 거기서 5명을 감한 40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40명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그 다음에 30명, 20명, “10명만 있어도 10명 때문에 그 성을 망하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밖에 없고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 아닙니까?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하나님,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예수를 핍박하고 복음을 방해하니까. 내 형제들 골육 친척들을 위해서 내가 저주를 받을지라도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 저 백성을 건져주세요.” 이것이 바울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래, 잘 죽어!”, “잘 망해!” 그게 정상입니까? 겔 33:11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을 그에게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며” 그랬다. 우리가족 중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해서 죄로 인한 저주로 사단에게 매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내 형제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정말 이 영혼을 붙잡고 기도해야 될 것 아닙니다. 내 이웃이 방황하고 시달리며, 눌리고 있는데 “그래, 계속 시달려봐!” 그렇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사람이며, 택함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렇다면 내 주변에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정에서 모세처럼 한 사람이 기도하면 그 가정이 다 변화되는 것을 봤어요.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정말 교회를 위해서 모세처럼 생을 걸고 기도하는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사는 것을 저는 봤어요. 이 지역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한다. 모세처럼 지역복음화를 위해서 생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 지역이 망하는 것이다. 우리 직장에 내가 일하는 현장에 생을 걸고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사람 때문에 그 직장과 현장이 사는 것이다.
4) 모세의 할 일
이렇게 기도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34절에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고 했다. 모세가 할 일이다. 이 백성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고 거기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곧 축복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 모세의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일도 모세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34절 다시 보면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사자를 앞서 보내셔서 먼저 앞서가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모세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백성을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가 할 일이다.
3. 앞장서는 사람
1) 믿음의 결단
① 믿음의 결단
우리 교회에 앞으로 중직자들이 세워지고 장로님들이 세워지고 안수 집사님, 권사님들이 세워져야 될 것인데, 뭐하는 사람들이냐? 앞장서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다. 내 힘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자를 보내셔서 일을 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 모세가 할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단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하시겠다고 했으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것, 이것이 믿음의 결단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희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떠나면 되는 것이다. 무슨 복잡할 것이 있는가? 하나님이 이미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너를 큰 민족으로 이룰 것이고, 창대케 할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축복하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다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결단만 하고 떠나면 된다. 복잡할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믿음의 결단을 한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 지역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한다. 다니엘이 결국 총리가 되니가 주변에 사람들이 옭아 맬 궁리를 하고 있는데 옭아 맬 것이 없다. 그런데 다니엘이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으니까 “아, 기도를 못하게 해야 되겠다!” 해서 왕 앞에 가서 그들이 기도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다. “만약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저 사자굴에 들어가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왕이 뭔지 모르고 허락을 한 것이다. 다니엘이 왕의 인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창문을 열고 평상시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다. 그러면 사자굴에 들어간다는 것 아닌가? 사자굴에 들어갈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다. 그래서 다니엘이 죽었습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을 막으셨고, 다니엘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사자밥이 되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약속하셨다. 그리고 책임지신다. 이미 모세에게 네 앞서 내 사자를 보낼 것을 약속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였다. 바리새인들이 마가다락방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거기 가면 감옥가고 사형당한다고 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했는가? 비록 감옥에 갈지라도 다락방에 모여서 은혜받고 힘을 얻어야 되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무너졌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무너졌습니까? 그 힘 없었던 초대교회는 250년 만에 로마를 복음화했다. 그게 성경이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요 초대교회가 이렇게 마가다락방을 위해서 기도할 때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우리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요 신분이 바뀐 하나님의 자녀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지금 결단해야 한다.
② 실행하라
결단할 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라. 어떤 분이 정서가 불안해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종이를 찢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겠는가? 남에게도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자기는 불안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고쳐보려고 정신과 병원에 갔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아마도 이 사람은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지 않았겠는가 하며 접근을 했다. 그래서 “혹시 선생님은 과거에 종이 방망이로 맞은 적이 없습니까?” 종이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없습니까? 물어봤더니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갔다. 이 의사선생님은 주변 환경을 전공한 사람이더라. 그래서 이 의사선생님이 이 분에게 묻는 것이다. “주변에 종이 공장이 없었습니까? 아니면 종이공장 가다가 어떤 상처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까?” 그랬더니 이 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하면서 약을 지어줬는데, 약을 먹어도 안 낳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다고 한다. 의사선생님이 왜 오셨어요. 하니까 “저는 이상하게 앉아있기만 하면 불안해서 종이를 찢어요. 이것 고치고 싶어서 왔어요.” 그러니까 이 의사선생님이 다른 말 하지 않고 “종이 찢지 마!” 그 이후로 종이 찢지 않았다고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쉬운 것 하면 된다. 우리가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에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이기를 폐하지 않고 모여서 예배드리면 된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날마다 하나님이 새 은혜를 주시겠다고 했다. 날마다 은혜 받는대로 혼자 기도하면 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문제 생기면 기도하면 되는데, 무슨 생각이 많은지 “이건 기도해야 되나요? 안 해야 되나요?” 하면 되는 거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면 성령 충만하면 되는 것이다. 뭘 복잡합니까? 할 수 없다는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것을 일부러 찾아서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지금 예배드리는 것이 복잡합니까? 우선순위, 예배! 하면 끝나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에게 돈 드는 일을 하라고 하면 힘들지 모르는데, 10만원씩 내세요! 하면 힘들지 모르겠는데, 예배 드리는데 돈이 듭니까? 뭐가 듭니까? 국수까지 주는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2) 살리는 사람
① 매일의 은혜
우리는 영적인 힘을 얻어야 삽니다. 이게 우리 인생입니다. 영적인 힘을 언제 얻는가? 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힘을 흡족하게 받으면 영적 힘이 우리에게 온다. 말씀이 잘 들려지고 깨달아지면 영적인 힘이 온다. 그리고 나에게 믿어지는 때가 온다. 힘이 생긴다. 말씀이 내 마음속에 성취되고 박힐 때가 온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냐? 예배 시간에 은혜 받으시고 집에 가셔서 TAPE듣고 주일 강단 말씀 다시 생각하라. 이게 계속 쌓여져서 힘이 온다. 저는 집에서 운동을 조금 한다. 우리 여기 집사님이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좀 차고 다니는데, 하체를 튼튼히 해야 되니까 그런데 목사인 제가 주일 예배 드리면서 모래주머니를 좀 차고 다닐 수 없어서 빼놓고 학생들을 강의하면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닐 수 없으니까 빼놓고 그래서 잘 안된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만 하고 있다. 그런데 평상시에 모래주머니 달고 다니면 운동이 된다. 그게 쌓여져서 힘이 오는 것 아닙니까? 갑자기 힘이 옵니까? 옛날에 어떤 어린이 만화 중에서 시금치 한번 먹으면 갑자기 힘이 생깁니까? 그게 조금씩 쌓여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씀도 조금씩 듣고 듣고 하면서 영적 힘이 오는 것이다. 그 비밀을 모르고 어떤 사람은 내가 힘이 없어서 인삼 물 좀 먹어야 되겠다. 그러면 인삼 먹으면 갑자기 힘이 생깁니까? 평상시에 이것이 쌓여져서 힘이 나는 것이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② 살리는 사람
우리는 이 영적 힘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사람이 영적 힘이 없고 여유가 없으면 사람을 살릴 힘이 없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도 말부터 안된다. 사람이 여유가 있으면 말이 여유가 생긴다. 제가 성질이 급해서 애들이 번잡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 조카 하나가 한번은 집에 왔는데 정신이 없더라. 제가 성질이 나서 “이놈의 새끼가~” 성질을 냈는데, 문제는 그 애 엄마가 봤다. 참 죽겠더만... 그 때 내가 뭐라고 했어야 되냐면 “니가 참 건강하구나! 힘이 넘치는구나!” 그랬어야 되는데. “이놈이 이렇게 번잡하게 집을 완전히 쓰레기통 만들었는데...” 그래놨으니 제가 한참동안 고생했다.
사람을 볼 때도 여유가 있으면 배가 나온 사람에게도 “뚱땡이”라고 하지 말고 “참, 풍성하고 너그럽겠다.”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또 날씬한 사람에게도 깡말랐다고 하지 말고 날씬하다. 하는 것이 살리는 말이다. 저 속도 없이 키만 덜석 커가지고... 그게 아니라 참 시원하시겠습니다. 그래야지...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야 된다. 한번만 생각하면 된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인가? 세워주는 사람인가? 이게 세계복음화와 연관이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키가 커서 문제, 작아서 문제, 뚱뚱해서 문제, 얇아서 문제, 그러면 이 세상에 아무도 남을 사람이 없다. 나도 내 마음에 안 드는데, 그래서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중심이 바르면 상대방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을 좋은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좋은 면이 보이고 안 좋은 눈으로 보면 안 좋은 면이 더 많이 드러난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울 때 하나님이 그 부모의 마음을 주관하니까 자식을 키우지 그 자식을 키우겠습니까? 제 실력으로는 제가 자식을 못 키우겠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부모의 마음을 주시고 용서할 수 있도록 마음을 주시고 해서 키우지 내 잣대로 내 자식을 못 키우겠습니다. 사람이 한 번 저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자꾸만 좋게 보이고 사람이 싫으면 싫은 것이 더 크게 보인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에 자꾸 좋은 면을 많이 봐야 되고 좋은 면만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닙니까? 어자피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우리에게 같이 있잖아요. 저를 봐도 좋은 점과 안 좋은점이 같이 있는데, 여러분이 저의 안 좋은 점만 붙들고 처다본다면 제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저 좀 좋은 쪽으로 잘 좀 봐주세요^^ 우리 목사님 좀 시원하겠다. 머리가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보셔야지, 왜 저 목사님은 머리가 없을까? 그렇게 보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또 머리가 많은 사람은 저 사람은 머리에 숲이 많이 우거져서 좋겠다고 봐야지 좋은 쪽으로 보면 문제될 것이 없어요.
3) 앞장서는 사람
① 미루는 사람
복음의 눈으로 보고 결단하고 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자꾸 이런 것들을 미룬다. 좋은 말도 그 때 해줘야 되는데 미룬다.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작품으로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생각한다. 또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대요. Yesterday 미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말 “하면 되잖아!” 그러면서 안 한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자주 인정해 주셔야 한다. 제 아내가 손님들이 오시면 좀 부담스러워 한다. 음식에 자신이 있으면 하는데, 손님이 오면 부담이 되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또 가고 나면 후회하고 그런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밥을 얻어먹고 산다. 왜냐면 저는 제 아내에게 “당신이 해준 밥이 젤 맛있어.”늘 말하는 사람이다. 평생 밥 얻어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이 저한테는 자신감이 있다. 왜냐면 어떻게 해줘도 맛있다고 하니까... 아직까진 제가 그렇게 산다. 제 노후가 든든하다. 미루지 마시고 그 때 말씀해야 된다. 요새는 이사갈 때 남편들이 주의해야 된다고 한다. 차에 안 타고 있으면 먼저 가 버린다고 한다. 차도 미리미리 타 있고 평생 밥 얻어먹고 살려고 하면 맛있다고 하고 살아야 한다. 나중에 얘기하지 말고 밥 먹은 그 때.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② 앞장서는 사람
지난 번 청년 메시지때 류 목사님이 청년들에게 예배 선동꾼이 되라, 기도의 선동꾼이 되라, 전도의 선동꾼이 되라! 말씀하셨다고 한다. 저는 ‘선동꾼’이란 말이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모할 때 이마에 빨간 띠 두르고 단결, 투쟁, “물러가라!” 이게 선동이잖아요.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보면 이 선동꾼이란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배드릴 때에 예배 영적 분위기의 선동꾼이 되어야 한다. 어느 교회는 가면 교회 오래 다닌 중직자들 장로분들이 예배 시간에 눈을 감고 예배를 드리신다. 그런데 처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보니까 장로님들이 눈을 감고 예배를 드리니까 그게 정상적인줄 알고 교회 전체가 다 눈을 감고 있다. 그것은 예배 선동꾼이 아니라 예배 방해꾼이다. 예배 영적 분위기 선동꾼은 혹시 목사님이 어려운 얘기를 한다고 할지라도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 거리고 아멘 하는 것이 웃어주는 것이 예배 영적 분위기를 확 살리는 것이다. 교회 중요한 사람일수록 예배 영적 분위기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되셔야 한다. 조금 뭔가 안 맞는다고 할지라도 아멘하고 웃어주고 교회 오셔서는 뭔가 꺼림직해도 오셨냐고 웃어주고 해야 되는데, 멀뚱하게 석가모니처럼 돌부처처럼 있어주면 되겠습니까?
예배 선동꾼이 되셔야 한다. 아멘도 하시고 집에서는 눈 감고 조용히 음악도 듣지만 예배할 때는 눈을 초롱초롱히 뜨시고 눈도 맞추고 그래야 되는 것이다. 분위기에 확 사는 것 아닙니까?
지금 모세가 이 백성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여러분 어떤 성도가 제게 찾아와서 “저는 이런 문제가 있어서 너무너무 힘듭니다.” 그러면 “그렇습니까? 그러면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 자넨 그런 문제 있나? 나는 이런 문제 있네.” 그러면서 상대방의 문제에다가 내 문제까지 덮어 씌워서 염려 팀사역 받고 염려속에 깊이 빠져 버리게 만든다.
기도 선동꾼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의 문제를 놓고 같이 기도해주고 해야 이 사람이 힘을 얻을 것 아닙니까? 문제 생겨서 찾아가면 “힘들겠네, 나는 자네보다 더 힘들어...”그런 사람들을 보고 염려 선동꾼이라고 한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고 하지 않았는가?
왜냐면 이렇게 될 때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이게 전도선동꾼이다. 우리 성도들이 모이면 차 마시고 포럼해. 하면 집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안좋은 것이다. 포럼은 약간만 하고 현장 나가서 전도하자는 방향으로 계속 나가야지. 포럼한다고 앉아있으면 포럼을 몇 시간씩 합니까? 5분만 하면 되는 것이지 현장에 가서 사람 살리러 갑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전도 선동꾼이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전도선동군이 되어야 한다. 중직자들은 늘 이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교회 앞으로 장로들 세울텐데 장로들이 이 일에 앞장서야지 교회의 작은 문제들 가지고 교회가 문제가 있대, 누가 이런 문제가 있대... 같이 거기 동참해서 교회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장로 혼자 무너지고 있다. 내가 교회 중요한 사람일수록 좋은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다.
<말씀정리>
1.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받은 은혜에 내가 누릴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 이게 우리 인생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로 정말 사람들의 문제를 놓고 중보기도하는 모세처럼 살리는 사람이다.
3. 우리는 이 일을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 쉬운 일 결단하고 빨리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앞장서서 선동꾼이 되어야 한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와 허물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전달하는 자로 쓰임받게 하시고 정말 우리 인생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중보기도의 사명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내가 할 수 있는 믿음의 결단하며 영적 힘을 얻어서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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