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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금송아지(출애굽기 32:1-6) 조회수 : 2110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7-09-25
  첨부파일:   20070923 주일강단메시지.hwp(37K)
20070923 주일 강단 메시지
금송아지 (출애굽기 32:1-6)

<본문>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내용>
1. 영적존재
1) 일반인이 모르는 것
제가 아는 목사님이 건강검진을 받는 중에 위내시경 검사를 했다. 지금은 의술이 많이 발달되어서 위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위암의 종양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위암의 종양이 있는데 그것을 떼어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사선생님이 하는 얘기가 “이게 혹시 악성 같으면 조직검사를 해서 암인지 아닌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다행이 암이 아니어서 수술도 안 하고 아무 이상 없이 암종양을 떼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종양들을 가만 놔 두면 점점 자라서 암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술의 발달로 초기에 이러한 진단을 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지역지역에다 신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라고 했다. 일반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왜냐면 국민의식이니까, 그리고 그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니까. 협조를 해야 되지 않겠나?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신사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볼 때는 기독교인들이 외곬수고 말을 안듣는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기독교 학교도 폐쇄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학교는 폐쇄를 당하는 학교도 있고 속으로는 아니지만 겉으로는 국민의식으로 절하면서 학교를 살린 사람들도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며 반대했지만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교회를 유지해야 될 것 아니냐? 예배드리고 설교해야 될 것 아니냐? 그래서 국민의식으로 절 한 사람들도 있었고 소수긴 하지만 주기철목사님을 비롯한 일부 목사와 성도들은 감옥에 갔다. “나는 신사에 절 안한다.”그것 때문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받아 거기서 죽기도 했다.
이게 일반인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신사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는 것이 뭐가 큰 문제입니까? 그런데 우리 몸안에 용종이라는 조그마한 것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서 암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일본 사람들이 신사를 지어놓고 절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서 바른 사람들은 끝까지 이것을 반대하고 어떤 사람들은 순교하고 그렇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왜 저럴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왜곬수 아니야?” 귀신을 섬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2) 영적존재
우리 인간만이 영적존재이다. 서울로 이사가신 우신영집사님의 집에서 예쁜 강아지를 길렀다고 한다. 지금 큰 딸인 아라의 나이가 23인데 어릴 때부터 애완용 강아지를 갔다 길렀다. 그러니까 개의 나이가 23이라는 얘기다. 개는 오래 살아도 20년을 사는데 그 개는 20년을 더 산다. 사람으로 말하면 100세정도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제가 거기가서 말씀운동을 하는데 아무리 그 집에 있는 개를 예뻐해도 우리 집사님이나 애들이 그 강아지보고 “개님, 개님...” 그렇게 안 하더라고요. 왜 그렇습니까? 짐승은 영혼이 없다. 그런 짐승에게 나이 많다고 “~님” 그런다면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회사를 다닌다면 “사장님, 사장님.”그래야지 “사장, 사장”그러면 그건 바른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다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 그래야지 “목사...”그러는 것 자체가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개는 “개님~” 그래야 되고, 오래되고 새끼 많이 낳은 돼지에게는 “돼지님~” 그래야 되는데 실컷 부려먹고 잡아먹고 그렇게 합니까?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오래된 나무를 보고 “고목님~”이라고 안하는데 나무는 인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오래된 나무를 보면 거기에 뭐가 있지 않겠나 생각해서 절한다. 또 큰 돌 있으면 거기에 가서 절한다. 이상하죠? 그게 우리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어떤 나라는 소도 섬기고, 개도 섬기고 그런다고 한다. 태국은 개가 상팔자라고 한다. 절간마다 개가 누워있다고 한다. 우리는 잡아다가 보신탕 해먹을텐데, 또 어느 나라는 소를 섬긴다고 한다. 소가 길을 맘대로 다닌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축복을 우리 인간에게만 주셨다. 이것을 모르고 피조물등을 섬기는 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고 망하는 길 아닙니까? 짐승을 섬기고, 돌이나 나무를 섬기는 나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소를 섬기는 나라가 잘 된 나라입니까? 자기 자신도 후대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많이 복잡해진다.
3) 구원 받은 자
① 하나님의 해답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셨다. 창세기 3장에 분명히 눈에 안 보이지만 실재하는 존재인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속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는 날 우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 이렇게 속이는 것 아닙니까? 그 이후부터 모든 문제가 오게 되었다. 영원히 망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이 뱀의 머리를 밟겠다고 말씀하셨다. 여인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구원 받았는데 애굽에 가서 처음에는 손님대접 잘 받다가 나중에는 430년 동안 노예생활하게 된다. 노예가 무엇인가?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노예가 되었다고 하면 내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인데 내 자식도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 자식이 장가가서 또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도 노예가 되는 것이다. 빠져나올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빠져나왔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서 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빠져나온다고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그 사실을 믿고 따를 때 애굽에서 빠져 나왔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해방시킨다는 말이다. 이게 하나님의 해답이다.
② 영접의 축복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해답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접한다는 것은 문을 연다는 것인데, 아무나 문을 열면 됩니까? 저나 집사람이 집에 있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계시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아무에게도 문 열어주지 마세요.”그런 얘기를 한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어머니가 습관이 되어서 누가 아파트 벨 누르면 “누구세요?” 하고 보고 아는 사람이면 문 열어준다. 모르는 사람에게 문 열어주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무것이나 무조건 영접하면 안 된다. 창세기 3:15의 주인공인 그리스도, 출애굽기 3:18의 주인공인 그리스도 정말 우리를 하나님 만나게 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신 그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운명, 사주, 팔자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것이 영접이다.
③ 구원받은 자
우리가 영접이 되어지면 그것을 보고 구원 받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완전히 해방받았다는 말이다.
구원은 내 힘으로 받을 수 없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나를 건져주셔야만 한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집 앞에 큰 강이 있는데 제방을 막아서 물이 떨어진다. 물이 굉장히 깊다. 그런데 제가 어릴 때 그 곳에서 점프하고 놀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수영할 생각이 없어서 지나가는데 어떤 친구가 저를 밀어버렸다. 갑자기 그러니까 제가 당황했다. 또 물도 뱅뱅돌고. 수영복도 안 입고 왔다. 제가 물 먹었죠, 그런데 매년 여름마다 여기에서 몇 명 죽었다. 이 생각이 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지금도 그 분이 누군지 모르는데 초등학교 선배인데 어디서 줄을 갖고와서 줄을 던져 주더라. 그래서 그 줄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보고 구원이라고 한다.
내가 선행을 열심히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건져 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이다.

2. 금송아지
1) 우리를 위하여
① 인도할 신
이런 축복을 받았는데 모르면 당한다. 32장에 보면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십계명을 받고 있는 장면인데 백성들이 생각할 때 모세가 내려와야 할 시간표에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가 왜 안내려올까? 이런 생각을 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포럼이 중요하다. 백성들이 서로 ‘왜 모세가 왜 안내려올까?’ 우리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 어디 갔을까?’, 애들이 앉아서 ‘우리 아버지 지금 어디 갔을까?’ 그런 것 처럼... 그런데 지금 모세가 산에 등산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서 말씀을 받으러 갔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금 모세와 말씀을 하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될 텐데 백성들이여 모세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모세 대신에 우리를 위해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왜 이런 얘기를 했겠습니까? 백성들 가운데 염려가 들어온 것이다. 모세가 안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냐? 어떻게 먹고 사냐? 광야에서 어디로 가냐? 이렇게 사람들이 염려가 생기기 시작하면 분별력(판단력)이 없어진다. 그러다보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지 않겠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이런 생각을 한 사람 두 사람 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퍼진 것이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왜 그렇습니까? 이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어떤 자를 삼킬 자(표적)로 삼습니까? 염려 잔뜩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사단의 표적이 된다. 그리고 오만 때만 것을 다 염려하고 있으니까 사단이 심방하다가 불신앙에 잡히고, 그런데 사람이 불신앙이 생기면 주님 바라봐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자기와 같이 염려하고 불신앙하는 동지들을 규합해서 패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몰려다니며 아론에게 “우리 다 죽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듭시다!” 그런 것이다.
② 잘못된 진단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이들이 진단을 잘못했다. 1절에 보면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백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냈는데 모세가 애굽땅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여러분, 문제를 바로 진단하면 거기에 바른 해답이 있다. 그런데 문제를 잘못 진단해버리면 다 안된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문제가 뭔지 문제를 정확하게 봐야 되는데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답만 쓸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까 문제를 낼 때 아리까리하게 낸다. 그래야 학생들이 100점을 안 맞지. 다 100점 맞으면 어떻게 합니까? 성적을 내야 되는데, 그래서 정확하게 안 읽으면 함정에 빠져서 틀리도록 하는 것이다. 제가 상당히 함정을 파놓고 문제를 내거든요. 쉽게 읽어서 문제에 대한 답을 쓰면 분명히 안된다. 문제를 정확히 봐야 진단을 정확히 하고 거기에 대한 해답이 나오거든요. 책을 안 봤거나, 혹은 문제를 정확히 진단 안 했거나 그래서 애들이 시험점수가 안 나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똑같다. 이 백성들이 왜 이렇게 실패를 했냐? 문제가 뭔지를 정확하게 진단을 못하는 것이다. 지금 모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불신앙이 문제지 않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모세는 하나님과 말씀하고 있는데 문제를 진단 못하니까 온갖 염려와 불신앙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사단에게 속는 것 아닙니까?
2) 잘못된 헌신
그렇게 백성들이 와서 아우성을 치니까 아론이 뭐라고 말합니까? “여러분, 금 귀고리를 빼갖고 오시오.” 그런 것이다. 성경에 보니까 귀에 꽂았던 귀고리를 다 가져왔다고 했다.
사단이 역사하면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어지는지 모른다. 만약에 제가 성도들에게 “집에 중요한 것, 값나가는 것 다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목사님 왜 저래 우리가 십일조하고 그러면 됐지 뭐하러 갖고 오래? 그럴거에요. “여러분 집에 있는 금반지, 금 목걸이 다 갖고오세요” 그러면 집에 가면서 ‘우리 목사님 드디어 좀 이상이 왔구나’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사단이 역사하면 이 사람들이 한 사람도 불평하는 사람 없이 다 갖고 왔어요.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자들이 치장하는데 관심 있다. 금 귀걸이 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치장하는데 관심을 가졌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 반납을 한 것이다. 내가 이제는 몸치장 안하고 생얼로 살겠다는 말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그렇게 결단하고 갖고 온다. 사단이 역사하면 지 죽는줄 모르고 다 갖다 바친다. 지금도 이상한데(돌, 나무)에 다 갖다 바치고 왜 그렇습니까?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다. 다 망해서 그때야 안다.
3) 송아지 형상
그래서 한 것이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고는 백성들이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해낸 신이다.”고 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 버렸는가?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하나님은 아예 생각도 안 나고, 모세도 생각 안 나고, 우리가 금 귀고리 내어서 만든 저 송아지가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해 낸 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단에게 한번 속기 시작하면 이렇게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애굽 땅에 있을 때 송아지 신이 있었다. 그게 풍요의 신인데 백성들이 그것을 노예생활 하면서 보았다. 그러다가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와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으니까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그래서 무엇을 보느냐가 참 중요하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인생이다. 늘 우상만 쳐다보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가 버렸다. 430년동안 노예생활 하면서 애굽 땅에서 그 섬기던 우상을 많이 보고 자라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가 버리는 것이다.
4) 백성들의 기쁨
그러면서 6절에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났다고 했다. 왜 여기에서 일찍 일어났다고 했을까? 원래 이 사람들은 늦잠 꾸러기인가봐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주무시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 날 따라 일찍 일어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는 말이다.
꼭 우리가 소풍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처럼, 옛날에는 추석이 되면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들떠가지고 옷도 새것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런 것 처럼 백성들이 흥분이 되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뛰놀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은 망하는 것 아닙니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백성들이 자기 금귀고리 다 빼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서 그 앞에 제사를 지내고 너무너무 좋다고 기쁘다. 그게 망하는 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잠시 잠깐동안 행복한데 결국은 망하는 길입니다.
여기 혹시 마약을 해보신 분 있습니까? 저는 마약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요, 듣는 얘기로는 마약은 하기 시작하면 평상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최고 기쁨보다 적어도 10-100배 기쁨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기쁘다 좋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은 중독되고 망하는 길이잖아요. 이 백성들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3, 영원한 진리
1) 문제의 근원
① 심부름 하는 사람
그러면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잘 알아야 한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 백성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뭐냐면 모세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 것이다. 모세는 자기 생각대로 이 백성들에게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즉, 모세를 통해서 받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생각이 안 나고 모세만 생각이 난 것이다. 하나님이 애굽땅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는데, 결국은 백성들이 진단을 잘못 한 것 아닙니까?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참 늘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 제가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고 성도들에게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해준다는 것 때문에 성도들이 저를 사랑해주시고 미안할 정도로 저를 도와주시고 하는데 감사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이런 사람 하나도 없겠지만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이야~’ 그런 사람은 병원에 좀 가셔서 진단을 받으셔야 한다. 저는 하나님의 심부름 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일 뿐이지 제가 하나님이다! 하면 저도 여러분도 망하는 것이다. 지금 말씀의 이 백성들이 착각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달해주는 쓰임받는 아주 귀중한 사람인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모세만 자꾸만 처다보게 되었다.
여인중에 가장 하나님 앞에 가장 귀중히 쓰임받은 사람이 누굽니까? 제가 볼 때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을 마리아가 낳았네 하며 마리아를 계속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것은 망하는 것이다. 지금 성당을 가 보십시오. 예수는 항상 아무 힘 없는 아기 예수, 마리아는 아주 예쁘고 팔등신으로 해 놓아서 얼굴도 예쁘고 자애롭고 어느성당 가든지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게 망하는 길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지 마리아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마리아만 드러내고 예수를 놓쳐 버리면 결국엔 망하는 길이다. 우리는 진단을 잘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존귀해야 되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백성들이 자꾸만 모세를 쳐다보다 보니까 하나님이 안 보이는 거요.
② 중간 지도자
그러면 이 백성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세가 있을 때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그 기간 동안에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시간표 따라 많은 중간 지도자들이 세워져야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강단을 통해서 한 주간 받은 말씀을 받지만 또 우리는 평일에 말씀을 받아야 한다. 왜냐면 우리 인간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계속 말씀을 들어야만 산다. 그래서 중간 사역자들 지도자들이 많이 있어서 평상시에도 말씀을 계속 들어야 산다. 중간 사역자들이 교회 안에 많이 세워져야만이 우리 성도들 다 같이 힘을 얻고 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 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예배 몇 주만 빠지면 거의 불신자수준과 똑같다. 예배가 조금 안 되어지면 구원받은 것은 변함 없는데 수준은 완전 불신자수준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은혜를 못받아 버리면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도리어 “야, 좀 믿어!” 그렇게 말한다. 온갖 염려 다 뒤집어쓰고 앉아있다. 왜? 말씀을 못 듣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이 지역 복음화 해야 될 교회기 때문에 중간 지도자들이 많이 세워져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중직자들을 세울 것인데 왜 중직자들을 세울 것입니까? 말씀운동 때문에 우리는 현장을 사역해야 될 일꾼이 많이 세워져야 되는데 왜 그렇습니까? 말씀운동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안 듣고 이 말씀을 안 전달하면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이 백성들은 왜 이렇게 전락해 버렸습니까? 모세가 없는 동안에 모세를 대신해서 말씀을 전달할 사람이 없었다. 모세도 이것을 놓치고 제자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오게 되었다.
③ 복음 뿌리
그래서 이 백성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복음 체질이 아닌 것이다. 옛 체질이 남아 있으니까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못받다 보니까 복음이 깊이 뿌리내리기 이전에 옛 체질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는가? 언약궤 덮개를 만들라고 하시는가? 왜 이 성막 앞에서 하루에 두 번씩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어지더라. 우리는 말씀을 반복해서 듣지 않으면 절대 복음 뿌리가 안 내려지는 것이다.
사람은 이상하게 듣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말씀듣고 은혜 받으면 우리도 모르게 은혜 생활이 되어진다. 그런데 불신앙의 말 계속 들으면 불신앙이 체질이 되어진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을 기를 때도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조심해야 된다. 애들을 막 구박해서 기를 때와 애를 칭찬해주면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 하고 애들이 들은 대로 되는 것이다. 우리가 왜 후대들을 위해서 선교관을 세우자는 것입니까? 교육기관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우리 후대들이 어릴 때부터 복음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여기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떤 면에서 소망이 없다. 구원은 받았지만 금방 옛날로 돌아가 버린다. 왜냐면 워낙 오랫동안 과거의 것이 체질이 되어져서 우리가 그렇다면 우리 후대들도 그렇게 되면 되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정말 복음체질 되도록 해놓고 하늘나라 가야지 안해놓고 하나님나라 가면 되겠냐 그 말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이것 때문에 생을 걸고 기도하시고 있는 것들 하나님 앞에 내놓고 그렇게 가세요. 후대들이 복음체질 되어야 가정이 살고 가문이 살고 기업이 살고 민족이 사는 것이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망합니까? 신문에 보니까 복음이 없어서 그런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요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복음이 없으면 사람이 짐승수준과 같다. 우리가 복음뿌리 안 내리면 우리도 똑같다. 우리는 누구를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안다면 어릴 때부터 우리 후대들에게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2) 사단의 전략
사단은 백성들을 속여서 아론도 속인다. 그 때 아론이 “무슨 일이냐! 우리가 우상을 만들면 되겠냐!” 이렇게 해야 되는데 백성들이 워낙 떼거리로 몰려와서 만들자고 하니까 겁이 덜컥 나니까 “그래, 그래, 만들자...” 그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하나로교회 성도들이 다 떼거리로 몰려와서 “와, 합시다.” 하면 제가 겁 먹어서 될 것 아닙니까? 못된 짓, 떼거리로 몰려오는 것은 안 좋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셨는지 정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너무 악한 존재인 사단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우상의 심각함을 모르게 속인다. 왜 그렇습니까? 우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귀신 섬기고 귀신 불러들이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몰랐다가 후에 깨달아서 내가 지금까지 자랑했던 것(공부 많이 했던 것, 좋은 가문에서 있던 것, 성공했던 것) 다 배설물로 여겼다. 이렇게 되어야만 사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리스도만이 최고구나! 이게 되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오직 그리스도 되어지면 교회 산다. 우리교회 중직자들이 오직예수 그러면 산다. 우리성도들 중에 정말 오직 예수 그러면 가정이 살고 그 후대가 산다. 사단이 이것 모르게 만들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삐지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낙심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험하게 만들고 인생을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다.
3) 통하는 사람
① 영원한 진리
그래서 영원한 진리는 복음 말고는 없다. 내가 가장 옳다. 그런 것이 지나간 것이다. 제가 악기를 못 다룬다. 제가 영락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악기 하나라도 다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금방 배울수 있는 기타를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집사님 한 분이 기타 공장을 하는 분인데 그 분에 제게 좋은 기타라며 저를 갖다 주셨어요. 그런데 좋은 기타라며 칠 줄 알아야지 제가 기타를 배워야지 하며 종로에 있는 기타학원에서 시간 나는대로 기타를 배웠는데 숙제를 주면서 그것을 하라는 것이다.
제가 교회에서 할 수 없으니까 집에서 연습을 하는데 돈내고 기타학원에 다니면서 연습을 하는데 제 아내가 “어떻게 전도사님이 되어 가지고 무슨 기타를 치냐?”는 거에요. 또 어떤 전도사님은 그래가지고 기타를 가지고 찬송을 해야지 클래식, 유행가를 치면 되겠냐? 그 말이요. 제가 영향을 잘 받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기타를 잘 못친다. 그런데 저 양반의 말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복음만이 영원한 진리다. 사람의 말은 참고하면 된다. 그 당시에 제가 기타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악기를 다루도록 가르쳤다.
그 때는 왜 그랬냐면 당당한 사람이 기타를 치면 좋은데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기타를 쳤다. 저희 집 사람이 제가 좀 이상해질까봐서 저를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돕는 베필로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잘못된 길로 안 가도록 막은 것이죠. 고맙고 감사한데 못 배운 것은 늘 이게 있어요.
여러분, 복음 아닌 것 외에는 다 지나가는 것이다. 지금 성도들이 여자분들은 거의 파마를 하고 교회에 오는데, 초창기에 교회는 파마는 죄라고 그랬다. 또 옛날에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는 술먹은 사람은 전부다 교회에 안 들여보내 주었다. 술먹은 사람 다 추려내어서 나가! 그러면 여기에 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건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른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뿐이다. 지나가는 것 붙잡고 생명 걸 필요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생명 걸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고, 내 수준으로 안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② 살리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너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살리는 길을 가르쳐줘야 한다. 추석이 되었으니까 우리 가족들 제사 지냅시다! 그렇게 풍습인데 다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 안 하잖아요. 왜 안합니까? 귀신 불러들이는 것이니까. 그러면 우리가 그런 얘기 하면 가족들로부터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아요. 그러나 그것이 귀신 불러들이는 것인데 우리가 할 이유가 없잖아요. 잘 설명할 필요가 있고, 기도하며 헌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것 안 해도 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배하면 되잖아요.
제가 우리 외삼촌들이 아직도 예수를 안 믿어서 제사를 지내는데, 옛날에는 우리 옆집에 살았어요. 그런데 제삿날만 되면 형제들이 오셔서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12시에 제사를 지내고 꼭 1시만 되면 집에서 난리가 나서 싸우고 잠을 못자겠더라. 저는 오랬동안 봤어요. 그런데 그 분들에게 아직도 복음 전하면 못알아듣더라고요. “너는 목사니까 그렇지!” 그게 망하는 길인데.
우리는 정말 혹시 오해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귀신은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다. 귀신은 우리를 이간질 하게 하고 망하게 한다. 우리 집안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사만 지내면 분쟁이 일어났다. 제사를 1년에 20번씩 지냈다. 우리는 정말 이게 망하는 길인 줄 알고 생명을 걸고 사명을 걸고 기도하고 이런 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 가정과 가문과 후대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말씀정리>
1. 사람은 영적존재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2. 정말 진단을 잘못하면 그것이 망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잘못된 일에 인생을 헌신하며 투자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만 영원한 진리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진리되신 그리스도 붙잡고 정말 이 땅에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에 저와 여러분의 삶이 쓰임받을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잘못된 일에 헌신하지 않고 생명 살리는 일에 우리 인생이 쓰임 받도록 복 주심을 감사합니다.
영원한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고 우리 자신이 완전 복음 체질 사상 되어져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데 우리 생애가 쓰임 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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