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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그대로 행하되(출애굽기 12:21-28) 조회수 : 1959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12-28
  첨부파일:   20061224강단@.hwp(48K)
<본문말씀>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본문>
1. 깨달음
1) 과거의 심각성
① 깨달음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고 남이 하고 있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늦게라도 깨닫는 것은 축복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가 잘못된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런데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② 죄인 됨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죄’ 하면 대부분 과거의 윤리적인 죄나 자범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은 거의 다 윤리적인 죄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모른다. 그런데 예수믿고 은혜받고 보니까 ‘내가 죄인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③ 원수 됨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다’는 말을 모른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다는 말은 마귀의 자녀였다는 말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다녔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잘 살아 보려고 하는 것이 우상숭배하고, 제사지내고, 종교행위 하고, 점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이게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냐면 예수 믿고 은혜 받고 보니까 내가 마귀 자녀였구나! 잘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내가 골라서 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언제 이것을 깨닫게 되었는가? 예수 믿고 은혜 받고 보니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 제사 돌 앞에 가서 제사지내고 우상숭배했구나! 이것을 아는 것이다. 언제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예수 믿고 은혜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것을 안 믿는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가? 이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고 말씀이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망하지 말라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는데 그 날이 성탄절이다. 그래서 내일 성탄절 예배를 드린다. 멸망 받지 말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날이 성탄절이다. 선물 주고받는 날이 성탄절이 아니고, 우리에게 사는 길을 알게 하려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 성탄절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내주셨는가? 성경에 약속한 대로 예언한 대로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망하지 않도록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놓쳐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를 보면서 언제 애굽땅에 있던 백성들이 바로의 손에서 빠져나오고 해방 되었는가?
양을 잡아먹고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에 죽음의 사자가 전 애굽땅을 지나갔는데, 첫 아들들이 다 죽을 때에 해방되었다.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차라리 백성들의 대표자가 가서 바로왕에게 눈물로 해방시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인하여 바로가 “큰일났다! 안되겠다. 저 백성들 보내줘야 되겠다.”하면서 보내줄 것처럼 보인다. 우리 생각에는 차라리 그러한 기적을 행하면 바로가 항복하면서 보내줄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보내주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어린양의 피를 발랐는데, 우리 눈에 볼 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저와 여러분이 한 번 잘 생각해 보라.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내 힘으로 밀어붙여야지, 그게 더 설득력이 있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봐!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가? 어린양의 피 바를 때에 이 백성들이 여기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붙잡으셔야 된다.
3) 하나님의 은혜
① 무력한 인간
그런데 사람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문제 생기면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극단적 절망에 빠지던지 죽음의 그 자리에 가게 되면 내 지식, 경험, 의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 26: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 다 불러놓고 다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베드로의 진심이며 결심이다. 베드로가 한 번 장난치면서 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밤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한다. 그런데 그 때 닭이 울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도망가며 한쪽 구석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결심이 없어서 그런가? 사람이 대단한 결심과 결단을 했어도 자기 앞에 문제가 오면 자기도 모르게 엉겹결에 부인한다. 이게 우리 인간이다.
② 오직 은혜
베드로가 결심한 것이 잘못된 결심이 아니지만, 자기 앞에 위험이 닥치니까 자신이 살기에 바빠서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며 도망갔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물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볼 때, 한 풀이 다 꺽어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짖꿋게도 세 번씩이나 물어봅니까? 베드로가 알고 있다. 내 중심도 소중하고 내 결단도 소중하지만 나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내가 갖고 있는 영적문제, 실패하고 있는 상처 때문에 고통당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분명 하나님 자녀지만 물질 때문에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까? 내가 분명 하나님 자녀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무너져서 좌절할 때가 없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결심해도 하나님이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만약 내가 내 힘으로 살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면 하나님 은혜 안 받아도 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자랑하고 힘쓰고 큰소리쳤던 내 자신이 어디로 가서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되고 반복해서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정말 내 방법으로 결심으로 산다면 예수 믿고 예배드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내 힘으로 안 되어지고 내 방법으로 승리할 수 없다면 정말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된다. 예배는 내가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이 대부분 자기가 기준이요 자기가 주인이다. 그런데 인생의 처절한 실패를 맛보면 정말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야 되고 주님이 나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러분, 우리가 결심과 결단은 소중하다. 그러나 결심과 결단으로 되는 것인가?
여러분, 평상시에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으며 예배의 축복을 잘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예배를 소홀이 하다가 인생의 큰 문제가 와서 ‘내가 예배 놓쳐서 다 놓쳤구나!’ 그러면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분명한 해답을 얻어야 한다.

2. 그대로 행하되
1) 부름 받은 자
21절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불렀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왔다. 불렀는데,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축복이다.
출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렀다. 모세가 안 듣고 응답 안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니까 모세가 부족하지만 그 부름에 대답한다. 그게 모세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사울을 부른다. 그 때 사울이 대답 안 해도 되지만 그런데 대답을 한다. 대답하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요 응답의 시작이요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 주님의 부르심이 시작될 때 바뀐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9에 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축복이요 응답이요 기적인 것이다.
2) 피를 뿌려라
그래서 모세가 장로들을 불러서 본문 22절에 보니까 “너희는 우슬초에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담아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자기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양의 피’를 뿌리라고 했다.
‘피’가 바로 무슨 뜻인가? 그 아들 예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신다고 했다. ‘어린양의 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뿌리라는 것이다.
3) 집에 뿌려라
① 집에 뿌려라
그러면 어디에 뿌리라는 것인가? 집 문 좌우설주 인방에 뿌리라는 것이다. 아무데나 뿌리는 것이 아니요, 우리 가족이 살고 그 안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응답받고 축복 누리고 살아가는 그 집 문에다 뿌리라는 것이다.
②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리고 “한 사람도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시는가? 시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 집을 세우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가정을 지키셔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 있어야지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이게 바로 문제다.
사람이 서로 살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발견된다.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아, ‘내가 돕는 배필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되겠다.’ 해야 되는데,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되면 자꾸 남의 집을 쳐다본다.
하나님이 한 사람도 집 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남편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하면 나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버릇이 된다. 버릇이 되면 겉잡을 수 없게 되고 문제가 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셨다. 한 사람도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나가는 사람은 문제이다. 꼭 누구에게 유혹 당하고 하니까 꼬심을 당하니까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속에 욕구불만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 의해 만족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누구도 만족하게 해줄 사람이 없다. 문밖으로 나가면 바람나는 것이다. 바람나면 사단이 갖고 논다. 그러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준 사람 하나님이 우리가정을 세우셨다. 그래서 한 사람도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행 1장에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바를 기다리라고 했다. 한 사람도 안 떠나고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거기서 전혀 기도하기를 힘썼다.
우리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무슨 일을 하면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되어야지 혼자서 삐져 나가서 멀뚱멀뚱하고 서 있으면 사단이 ‘아이구, 요놈’ 하면서 건드리는 것이다. 집 문밖에 한 사람도 나가지 말라! 그래도 나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바람 난 사람이다.
왜 그런가? 이유가 있다. 23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집을 보호하겠다는 말이다. 27절에 보면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여러분, 반드시 구원 얻은 한 사람 때문에 가정복음화는 반드시 되게끔 되어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단 말이다. 낙심할 것도 없다. 조급할 것도 없다. 하나님이 하시게끔 되어있다.
4) 그대로 행하되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28절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대로 행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말을 듣고 가다가 잊어버린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했는데, 자기 생각을 덧붙인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꼭 삐딱한 사람은 그렇다.
그런데 은혜 받은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물러가서(자기 집에 가서) 그대로 행하되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나님 주신 말씀을 그대로 행했다고 했다.
겔 3:27에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어하는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고 했다. 여러분, 정말 듣는 사람이 있고 듣고 그것을 자기 집에 가서 행하는 사람이 있다. 듣긴 들어도 안 듣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 주님이 말씀했다.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 같다고 했다. 듣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자 같다고 했다. 주님이 이렇게 비유로 말씀했다.
이 백성들이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가?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했다고 했다. 참 축복받은 자이다.

3. 영원한 것
1) 통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을 것이 무엇인가?
21절을 다시 보면 모세가 모든 장로를 다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전달한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가 모든 장로들을 다 불러서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니까 장로들이 그 말을 다 듣는데 모세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달하는 말로 듣는다. 그러니까 장로들과 모세와 하나님과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백성들이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했다. 모든 백성이 모세에게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그대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모세와 통하고 모세와 장로들과 통하고 장로들과 그 백성들이 다 통한다.
축복중의 축복은 통하는 것이요 응답 중에 응답은 통하는 것이다. 모든 축복의 시작, 모든 응답의 시작 모든 기적의 시작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인 모세와 하나님과 통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과 통한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것을 보고 복음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다 통한다. 이러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러분, 마가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이 다 통했다. 한 사람도 불평 없이 전부 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니까 그 곳에 모여서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하는 말은 기도를 열심히 했다는 말도 되지만 하나님 말씀과 다 통하는 축복을 누렸다는 말이다.
2) 영원한 것
그런데 24절에 보니까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영원히 지키라고 했다. 무엇을 지키라는 말인가? 어린양의 피 바른 것을 지키라. 문설주에 바른 이것을 지키라는 말이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구약 성경을 보면 영원한 것을 언약이라고 말한다. 언약을 붙잡을 때 이 백성은 승리했다. 언약을 놓칠 때 마다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 되었다. 언약을 회복할 때마다 이 백성들이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정말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정말 영원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계속 들어야 될 것이고 계속 누려야 될 것이고 전해야 될 것 아닌가? 지금 여기 보니까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그 말은 너희가 계속해서 듣고 후대들에게 반복적, 지속적으로 말해주란 말이다. 왜냐?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제가 옛날에 설악산 교회에 있을 때, 수해가 나서 집을 집을 놔두고 도망나올 때, 무엇을 들고 나와야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들고 나와야 할 것이 저는 목사다 보니까 설교 준비한 것밖에 들고 나올 것이 없더라. 그래서 내가 그것을 들고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들고 나갔다가 안 나갔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무엇을 가지고 도망갈 것인가? 쌀 한가마니 메고 나올 것인가? 제가 영원한 것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서는 영원한 것은 없더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소중한 것이지만, 살아가는데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영원한 것은 아니다. 가진 것 중에 하나도 영원한 것은 없더라.
성도들 가운데서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영원한 것을 물려줘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성경 말씀대로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영원히 지킬 것이다.”고 했는데, 영원히 지킬것이 무엇인가? 제가 제 자식에게 영원히 전해줄 것이 무엇인가? 히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다. 정말 영원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구나! 사 40:8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리라.”고 했다. 정말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붙잡는 것만이 내가 사는 것이요 우리 후대가 사는 길이다.
3) 통하게 하는 자
그러면 우리는 한 시대에 정말 통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통하는 방법이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것이다. 행 2:42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그랬다. 사람들을 하나님과 통하게 하는 것이 예배드리고 말씀 듣게 하는 것이다. 예배요 말씀 듣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교제하기 힘썼다고 했다. 어떻게 교제하는 것인가? 교제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것도 교제다. 이웃끼리 찾아가는 것도 교제다. 서로 교제하면서 떡을 떼며 서로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했다. 저 분을 위해서 내가 기도해주는 것이 교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사람의 허물이 보인다. 사람은 처음에 보면 예뻐 보이는데, 같이 있을수록 그 때부터 사람이 싫증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보고 서로 도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아,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저 사람을 도우라고 하셨구나!” 그렇게 깨닫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복음 모르는 사람은 자꾸만 후벼 파기 시작한다. 그게 율법적인 눈이다. 그런데 복음적인 눈은 보면 보일수록 그것으로 하여금 매력이 있다. 보이니까 인간답다. 그래서 기도로서 저 사람을 도와야 되겠구나! 그것이 교제하는 것이다.
어떻게 기도로서. 그래서 앞으로 2007년부터 기도팀을 운영하려고 한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이름을 써놓고 하라. “아, 서로 교제해야 되겠구나! 물론 내 문제를 놓고도 기도해야 되겠지만 우리 성도의 문제를, 아픔을, 가정의 문제를, 후대의 문제, 교회의 문제를 내가 끌어안고 기도해야 되겠구나! 한달에 한 번 만이라도 이 일을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기도팀을 운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과 통하는 길은 예배하고 말씀 듣는 길이며, 성도가 교제하는 것은 기도로 중보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복된 길이 없다.

<말씀정리>
1. 축복중에 축복은 깨닫는 것이다. 은혜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축복중에 축복이다.
2. 우리는 이렇게 깨달을 때 정말 예수의 피, 어린양의 피 아니면 안 됨을 깨닫고
3. 이것을 언약으로 붙잡고 정말 나는 이 예배드리도록 말씀 듣도록 돕는 사람으로 그리고 나는 중보기도의 후원자로 사람을 살리고 돕고 세우는 사람으로 쓰임받아야 되겠다.
▶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정말 우리에게 어린양의 피, 보혈의 피 십자가의 보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을 알게 하시고, 이 말씀을 영원한 언약으로 붙잡으며 우리 자신이 계속 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 후대에게 이것을 전달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고 나 자신이 하나님과 통하는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고 우리 성도와 서로 통하는 중보기도의 사명자로 쓰임 받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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