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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네 손을 들어서(출애굽기 10:21-29) 조회수 : 2153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12-04
  첨부파일:   20061203 주일 강단 메시지.hwp(74K)
20061203 주일 강단 메시지
네 손을 들어서(출애굽기 10:21-29)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설교본문>
1. 은혜받은 사람
1) 불규칙한 변화
물리학 이론 중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풍선에 바람을 넣고 풍선을 날리면 풍선이 위로도 가고 옆으로도 가는데, 풍선이 밑으로 내려가는 법은 없다. 자녀들을 길러볼 때도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감기도 걸리고, 설사도 하고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볼 수 있다.
2) 생명의 축복
그렇다면 영적세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지면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생명의 역사로 우리는 자라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처음부터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 처음부터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인데 성령인도만 받은 것이 아니라 불신앙하고 염려도 하고 못된 짓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복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역사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베드로가 계속 주님 따라 가면서 사람낚는 어부가 됬어야 하는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엄청난 깨달음을 하나님 은혜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모습이 혈기 때문에 무너지고 중요한 시기에 잠자고 있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갔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인생은 끝장났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사도행전에 보니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다 보니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그것 때문에 베드로가 감옥에 가서 종교 재판을 받는다. 오늘날 말하면 이단이고, 다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마라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서 한 얘기가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했다. 베드로의 생애를 보면 실패도 하고 낙심도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가기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난 왜 이렇게 성령 인도를 못받을까? 왜 이렇게 불신앙하고 자빠지고 넘어질까? 카오스 이론과 같이 불규칙 속에서 하나님이 성장시키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말씀 받고 ‘아멘!’ 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다. 베드로가 보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붙잡고 계속 승리의 길을 갔어야 되지 않는데, 그렇지 않고 많이 자빠지고 넘어지고 혼란이 왔다. 베드로도 혼란이 왔고 아브라함도 혼란이 왔다. 성도들이 혹시 뭐가 안 된다고 혼란이 온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러한 과정을 겪는다. ‘왜 나만 안될까?’ 그런데 알고 보면 어느 날 우리 인생을 보면 되어지게 되어 있다. 꼭 깨달아야 된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절대로 우리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여러 가지 불신앙도 하고 상처도 받고 무너지기도 하는데, 절대 망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 분명한 질서가 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지역 복음화 하실 것이고 민족복음화 세계 복음화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열심히 했더니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3) 은혜 받은 사람
① 예배 성공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은혜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예배에 성공하고 있다. 예배시간이 너무 기쁘고 예배시간이 너무 즐겁고 예배시간이 너무 좋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은혜 받은 사람이고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 가정과 교회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예배에 승리하면서 계속해서 믿음이 자라면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가정을 세우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교회의 소중함을 알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섬길까 생각이 되어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정을 세우게 된다. 주부들이 예배에 승리하면 가정생활에 충실해진다. 예배가 되어지면 그렇다. 그러나 예배가 안 되어지면 인생의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예배가 되어지고 은혜 생활이 되어지면 가정의 가치를 알게되어, 가정을 섬기게 된다. 이것이 예배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만약,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가정을 파괴시킨다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 너무너무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연적으로 가정을 섬기게끔 되어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 교회다. 교회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고 기쁜 것이다. 은혜를 못 받으면 교회 오는 것이 싫어진다. 교회가 머나먼 당신처럼 보여진다. 은혜를 못 받으면 부모와 자식간에도 대화가 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가정 안에서도 대화가 되어진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두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도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그랬다. 가정이요 교회다. 예배에 성공되어지는 것이다.
② 기도 성공
또 하나 나타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하는 것이 기쁘고 평안하고 기도 자체가 감사다. 그것이 은혜 받은 사람 축복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모든 종교는 다 기도를 한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점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한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한다. 그런데 다른 종교는 약속 없이 자기 소원만 가지고 기도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두 종류의 기도가 있다. 너무너무 어려우니까 “살려주세요!”하는 기도가 있다. 의지 할 데가 없으니까
임마누엘 교회의 이성훈 목사가 젊었을 때 너무너무 가난해서 추울 때 방이 냉방이라서 “하나님, 연탄 좀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니 연탄 100장이 들어왔더라, 또 어느 날은 먹을 것이 없어서 “쌀 좀 주세요...”하고 기도했더니 쌀을 줬다고 했다.
물론, 없으니까 달라고 하는 기도는 좋은 기도지만 그렇게 썩 좋은 기도는 아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평상시 기도다. 평상시 기도가 즐겁고 평안하고 좋고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복 받은 사람이다. 평상시에도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너무 소중하다 귀하다 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다. 평상시엔 부모생각도 안 하다가 어려움 당하니까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하셨구나! 느끼는 것은 나쁠 것도 없지만 그렇게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 성도들이 평상시 기도가 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평상시도 정시기도가 되어지고 나의 모든 일에 잘 되어지는데도 기도가 되어지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이다. 다윗은 왕인데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고 다윗은 왕인데 내가 왕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했다. 내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 주세요!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만, 평상시에 늘 기도가 되어지는 사람은 분명히 축복받은 사람이요 은혜받은 사람이다. 저와 여러분이 예배가 되어지고 기도가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네 손을 들어서
1) 네 손을 들어서
2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여기 보면 모세가 기도를 하는데, 모세가 무조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했다. ‘너는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라!’ 그랬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모세가 하늘을 향해서 손을 들었어요.
우리 성도들 가운데 만약 ‘내가 손을 들어야 되겠다.’ 해서 무조건 손을 드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 이상한 사람이다. 정신 이상자 아니면 귀신에게 홀린자이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라! 할 때 손을 들고 하나님이 지팡이를 들라고 할 때 지팡이를 든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라!’ 고 할 때 모세가 손을 든 것이다. 그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세상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어리석은 사람은 연말 또는 연초에 어디에 가서 ‘2007년은 어떻게 살까요?’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해라! 하면 그 말을 붙들고 산다. 그런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귀신의 말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한 가지는 배울 것이 있다. 그 말을 언약으로 붙잡는다. 나중에는 망할지라도 언약으로 붙잡는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언약으로 붙잡아야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아야 한다.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말씀대로 되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 말씀대로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아야 한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모세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 집에 하인이 있었는데, 중풍병으로 고생을한다. 백부장이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서 “예수님, 저희 하인 하나가 중풍병으로 고생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백부장을 보시고 그래, 내가 너희 집에 가서 고쳐주마 말씀한다. 그런데 그 백부장이 “예수님이 저희 집에 오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말씀만 주십시오. 말씀만 주시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본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 백부장이 말씀의 능력을 안다. 말씀에 대한 확신이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축복받은 사람이다. 모세가 자기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라 그러니까 네 손을 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늘을 향해서 네 발가락을 들어라 하면은 발가락을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것이니까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손을 들었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꼭 우리는 이 축복을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2) 흑암과 광명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냐? 애굽의 온 땅에는 흑암이 가득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은 곳은 어둠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은 광명이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없는 현장은 지금도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흑암이다. 그러나 말씀이 들어가면 광명이 비춘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과거에는 흑암의 나라에 잡혀 있다가 생명의 빛이 비취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광명의 빛이 우리에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히 잘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흑암이다. 하나님의 말씀 들어간 곳은 광명이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은 다 무너지게 된다. 우리 가정도 왜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임하는가? 말씀이 안 들어가서 그렇다. 말씀이 들어가게 되면 가정이 바뀐다. 하나님의 역사다. 누가 잘못되었는가? 그 사람에게 말씀이 안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말씀이 들어가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래서 말씀이 들어간 곳에는 광명이, 말씀이 임하지 않은 곳에는 흑암이 있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왜 우리가 말씀을 받고 말씀운동을 하는가? 우리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흑암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말씀으로만 해결되는 것이다. 꼭 이것을 알아야 된다. 우리 가정에 왜 흑암이 꺽이지 않습니까? 말씀이 완전히 사상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들어가는 곳은 광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된다. 과거에는 우리가 흑암의 나라에 잡혀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광명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밝은 곳에서 살겠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뀐다. 하나님의 역사다.
3) 사람의 관심
① 바로의 관심
그리고 24절에 보니까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여기 바로의 관심이 나타난다. 흑암이 있으니까 모세를 불러서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가서 예배 드리라 하면서 소와 양은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의 관심이 무엇인가?
지금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재앙과 저주가 임했을 때 ‘하나님을 몰라서 이런 문제가 계속 왔구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지금 기껏 생각하는 것이 ‘가라! 대신에 소와 양은 놔두고 가라!’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밖에 관심이 없다.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바로왕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한지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없다. 소와 양, 바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소와 양이 아니다. 자기 가정과 나라에 저주와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붙잡는 것이 소와 양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땅의 문제가 소와 양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인생의 근본문제인데, 먹고 사는데 밖에 관심이 없다. 우리에게 먹고 사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바로가 사람이 죽어가면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바라봐야지, 죽어가면서 소, 양 붙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일 모래 죽어가면서도 붙드는 것이 집문서 붙들고 있고 그런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지금 바로에게 이런 문제가 오는데 해결책이 없다. 계속해서 붙드는 것이 소와 양을 붙드는 것이다.
② 모세의 관심
그런데 모세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26절에 보니까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모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는 소양은 안 된다고 하는데, 모세는 소양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모세와 바로가 싸우는 것은 소와 양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모세는 소양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와 양을 가지고 여호와를 섬기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정말 경제의 축복을 받아야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모세를 보면 생축도 다 가져가겠다. 왜? 그 중에 취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 우리에게 왜 이런 것이 필요하냐? 하나님을 섬겨야 되기 때문에... 이게 모세의 관심이다. 정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은혜를 많이 주셨다. 우리가 왜 건강해야 되는 이유가 복음운동에 있음을 알야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해야 되는 이유가 복음운동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와 여러분이 축복 받야야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똑같이 바로와 모세가 소와 양 때문에 붙잡고 싸우고 있는데, 바로는 소와 양 자체에 목적이 있고, 모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다. 외형적으로는 똑같지만 내용이 다르고 본질이 다르다. 축복받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요. 늘 세상것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불신자들만 하는 것이 아닌가?
4) 희생의 번제물
그래서 지금 모세는 이것을 가지고 희생의 번제물을 드리겠다고 한다. 곧 피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왜 피제사를 드리려 하는가? 지금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피제사 외에는 없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피제사밖에는 없다. 사단이 꺽이는 방법은 피제사 밖에는 없다. 430년 동안 종살이 한 것도 피의 제사를 몰라서 그렇다. 이것을 해결하는 이름이 희생제사다. 그래서 모세가 희생의 번제물을 드리겠다. 이게 사는 길이다. 왜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언약 붙잡아야 됩니까?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꼭 우리는 붙잡아야 한다. 모세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깨닫게 하신 것이다. 모세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3. 풍성한 인생
1) 풍성한 인생
① 모진 인생
모세 인생과 바로의 인생을 보라. 바로는 모진 인생을 살아간다. 바로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모진 인생을 살아간다. 그 이유가 바로가 잘못된 생각이 딱 그에게 잡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의 인생은 계속해서 강퍅해진다. 바로의 인생은 다 가졌는데 생각 하나가 비뚤어지니까 모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얼마나 강퍅한지 모른다. 말씀이 안 들어간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건강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건강을 타고난 사람들이 건강하고, 후천적으로 적당한 운동과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건강체질로 태어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약한 체질로 태어난다.
그런데 후천적으로 자기 몸에 맞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좋은 음식을 하면 상당히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건강한 몸을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먹는 음식을 나쁘게 먹으면 어느 날 건강이 상해지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모르는데, 워낙 건강체질이었는데 계속 나쁜 음식만 먹으면 그것이 쌓여져서 어느 날 건강이 무너진다. 육신적으로 그렇다.
하물며 영적인 것은 어떤가? 비뚤어진 것이 계속 들어가면 영적으로 강퍅해진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영적으로 강퍅해진다. 사람들이 복음을 계속해서 들으면 영적으로 풍성해진다. 그런데 쓸데없는 말을 많이 들으면 영적으로 빈약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 아닙니까? 바로가 그 많은 일을 당하면서도 강퍅함을 버릴 수 없다보니 모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모든 축복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데도 망하게 된다.
② 풍성한 인생
그런데 모세는 나이 80에, 가난하고 세상 적으로 실패했다. 바로와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인생은 풍성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모세가 지금까지는 그렇게 나이 먹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니까 모세의 인생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모세의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요 4:14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계속해서 받으면 목마르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아간다.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풍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물질 문제만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만 강퍅하게 쓰임 받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바로처럼 강퍅하게 쓰임 받아야 되겠냐 하는 것이다. 모세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따라가고 ‘손들라!’고 하니까 손들고, ‘지팡이로 쳐라!’ 하니까 쳤다. 그러면 모세가 망했냐? 절대 망하지 않았다. 모세의 삶은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살았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은혜가 지속적으로 임할 줄 믿습니다.
만약, 모세가 노력을 해서 승리의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따라가지 못한다. 제가 모세와 비교해보니까 제 생각에 제가 훨씬 나은 것 같다(교만하다는 말이 아님). 모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는데, 못 가겠다고 발뺌한다. 하나님이 안 되겠으니까 엉덩이를 발로 찬 것 아닙니까? 그래도 안 되서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억지로 간 것이다. 제가 아무리 봐도 저와 여러분이 분명히 모세보다는 난 것 같다. 그러면 모세에게 임한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히 임하는 것이다. 이 축복을 꼭 누리셔야 되요.
2) 완전한 축복
① 오직 예수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오직 예수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신비한 것이 사라지면서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았다. 무슨 말인가? 모세와 엘리야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다. 오직 예수만 남았다는 말이다. 정말 이 땅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에게 천국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을 여셨다. 예수 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자가 없다. 우리가 어떤 못된 사람들처럼 오직예수! 하면서 못된 짓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외에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단의 문제가 해결 안 된다. 가문의 저주 재앙이 해결이 안된다. 그래서 오직 예수인 것이다.
② 복음의 능력
그러면 이 오직 예수된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는 이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우리가 흑암의 나라에 있었지만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 버린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내 과거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신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마귀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으신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서 부르셨는데, 그 인생을 하나님이 바꾸셨다. 모세의 인생도 바꾸신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 복음의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그 능력이 똑같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한 일이 가서 희생제사 말하는데, 430년 동안 노예생활 한 것이 청산되어버렸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복음만 제대로 전달되면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우리가 착하게 살기 때문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능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감사할 것 밖에 없다. 저희 집은 술로 망한 가문이다. 양반 가문인데, 술 먹고 다 죽었다. 그런데 복음 받고 제 인생이 바뀌었다. 만약, 제가 복음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말한 것처럼 내 인생을 바꾸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3) 하나님의 소원
우리는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나를 살리신 하나님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내가 복음 없었으면 망해서 죽었을텐데, 하나님 은혜로 내가 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나와 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가?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것 말하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내가 죽어가야 마땅한데,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그 일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세워주고 키워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무디라는 사람이 구두 수선공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복음을 받고 은혜 받아서 자기 동네 있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변화가 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계속 이 일을 하다가 무디가 100만명을 살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방법이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이 구두 수선공인데, 결국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다. 우리는 이 사실 꼭 기억해야 된다.
지금 모세의 한 일은 그렇게 사람들이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기게 된다. 가서 백성들에게 희생제사 드려라 이것만 말하게 되는데, 430년간 노예생활이 끝나게 된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이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희생제사를 말해서 노예생활 하는 사람들을 살려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모세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제사만 가서 전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살린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꼭 저와 여러분이 이 축복을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왜? 함께 하기 위해서 부르셔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려고 했다고 막 3:13-15에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님이 왜 우리를 원해서 부르셨냐? 함께하기 위해서 이 축복을 누리고 전도도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려고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축복을 꼭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말씀정리>
1. 은혜받은 사람들이 되어지는 것은 어떤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예배와 기도가 되어진다. 내가 은혜받고 있는지 아닌지는 예배가 되어지는지 아닌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2. 모세는 네 손을 들어 그랬다.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우스운 인생이 된다.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일을 하셨다. 우리는 모세가 우리보다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데, 모세는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끔 되어 있다. 하나님의 소원을 가슴에 품게 되어 있다. 그게 나를 살리신 하나님 나를 죄악 가운데서 건지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밖에 없다. 그게 하나님의 소원이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풍성히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은혜 주셔서 예배와 기도에 승리하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것처럼 우리에게 이 은혜와 축복을 주셔서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증인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인생이 말씀 안에 잘 다스려져서 하나님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증거 하는 복음전도자로 내 주변에 흑암과 혼돈과 공허 가운데 빠진 사람을 살리는 일에, 세우는 일에 우리 생애가 쓰임 받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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