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5 주일 강단 메시지
말씀과 같더라(출애굽기 7:14-22)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 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너는 하숫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펴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에와 나무 그릇에와 돌 그릇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하수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 생각의 축복
1) 의존적 존재
① 듣는자의 축복
창세기 41장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이 하루는 꿈을 꿨는데, 아주 아름답고 살찐 일곱 소가 풀을 뜯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따가 꿈을 꾸니까 삐쩍 마른 일곱 소가 나타나서 살찌고 아름다운 소를 잡아먹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바로가 고민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나라의 꿈을 해몽하는 박사와 술객들을 불러서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이 무슨 징조냐?” 이렇게 묻는데, 박사와 술객들이 꿈을 해석을 못합니다. 그래서 왕이 마음이 많이 상하고 근심이 되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 관원장이 임금님에게 얘기합니다. “임금님, 제가 옛날에 감옥에 갇혔을 때 이러한 꿈을 꾸었는데 꿈을 해결해 준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만나면 아마 임금님의 문제가 해결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를 했어요. 그러니까 바로 왕이 그 젊은 청년을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요셉입니다.
요셉이 임금님의 꿈을 듣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임금님, 이것은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실 일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 7년 동안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풍년이 든 다음에 7년 동안 기근이 들어서 큰 흉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없앨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는 아주 지혜롭고 총명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이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우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했어요.
임금이 요셉의 말을 듣고 보니까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 일은 네가 해라!.” 그래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자기도 살았고 기근으로 전 백성이 다 죽었어야 되는데, 그 백성들을 다 살렸어요. 참 복있는 왕이죠.
시대가 많이 흘러서. 애굽에 바로라는 왕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했어요. 너는 바로에게 가서 말을 전해라. 내 백성이 광야에 와서 희생 제사를 드릴 것인데, 바로 네가 이 일을 행하라. 놓아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은 바로 자신이 죽고 자신과 애굽에 있는 첫 아들이 다 죽고 짐승의 첫 새끼까지도 죽는 그런 비극과 저주도 일어났습니다.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말을 잘 들으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할 수 없어요. 우리가 여행을 하다가 보면 좋은 안내자를 만나면 축복입니다. 좋은 안내자를 만나면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주 이상한 안내자를 만나면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도 실컷 하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말을 계속 듣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면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왜 그러냐면 사람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들음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셔서 죄와 사단과 지옥권세를 멸하시는 분이구나! 이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② 의존적 존재
사람은 스스로 살 수 없어요. 다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도움 안 받고 사는 분 있습니까?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고 여행하시는 분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되요.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요. 우리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스스로 나 혼자 아무 도움 안 받고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은 굉장히 교만한 존재이고 결국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해요. 그럼 어떤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인생의 주인 되셔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이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해요. 우리 미래를 천국까지 보장하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된단 말이에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는’ 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옛날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회 다니다가 시험 받고 낙심하고 무너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못 들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한 주간동안 답답하고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을 들으면 우리가 힘을 얻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 그 말입니다. 내 생애를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나와 함께 하세요. 내 인생의 주인이 그리스도라 그 말이에요.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불신앙이 무너지고 믿음이 생겨요.
그러면 정말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계 3:20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주님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예수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입으로 시인할 때 우리가 구원을 받잖아요.
그러면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과거에 어두움 속에 매여서 살았어요. 그래서 우상숭배하고 제사지내고 굿하고 미신믿고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린 운명에 매여서 사는 존재가 아닌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 신분이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버려졌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우리가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신학교에 일본 선교사님이 한 분 와서 공부하시는데요. 이 선교사님은 자식이 여덟입니다. 4명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4명은 보육원(어린이집)에 맡기고 있어요.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사역을 하고 저녁이 되면, 보육원에 가서 4명을 태우고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오는거요.
하루는 저녁먹이고 씻기고 잠을 자는데, 세 보니까 하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부인과 얘기하다 보니까 보육원에서 하나를 안 데리고 온거요. 그런데 보육원에서 집까지 한 2km 정도가 된답니다. 애가 엄마 아빠가 없는데, 다행히 혼자서 걸어왔대요. 그런데 선교사님이 얼마나 마음이 안타깝고 그랬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뭐 여덟이나 되는데, 하나쯤 없어도 문제가 되겠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선교사님의 생명이 심겨진 아이 하나 때문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고 아이 하나 찾아야지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며 하나님은 나 한 생명을 너무 너무 소중히 여긴다. 여러분 혹시 자식이 많다고 해서 하나쯤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 있습니까? 아니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꼭 알아야 되요. 부모가 자식이 여럿이면, ‘아이고, 나 하나정도야...’ 아니오. 여러 명의 자식 중에서 그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온 힘을 다 쏟잖아요. 하나님의 생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심겨져 있습니다. 구원 얻는 하나님의 생명은 절대 부끄러움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구원받은 우리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생각이 바뀌어요. 과거에는 우리가 죄인인지를 몰랐어요. 남에게 나쁜 짓, 도둑질 안하고 피해를 안 주고 살았다면 자기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말씀을 듣고 은혜를 지속해서 받으며 살다 보니까 야, 정말 내가 죄인 중의 괴수였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나님을 안 믿고 내 마음대로 살았구나! 그것이 죄 인줄 알게 되었단 말이에요.
여러분, 지금 사람들에게 “당신들 죄인입니다.” 그러면 알아듣습니까? “내가 당신보다 착한데 왜 나더러 죄인이라고 합니까?”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뭡니까 하나님 안 믿고 내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내가 원치 않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고 조상 대대로 지은 죄가 나에게 와 있는 것이고 우상숭배 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다 보니까 “그렇구나! 이것이 죄였구나! 내가 이렇게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인데, 이것이 조상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인 줄 착각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잖아요. 그래, 나는 하나님 은혜 아니고는 살 수 없구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 죄 중의 죄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에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지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요. 내 과거에 그것이 다 좋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길이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요. 그래서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고 정말 지나간 그것에 매이지 말라 그 말이요. 우리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새롭게 일하시는 것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요.
과거에는 내 기준, 방법, 고집대로 살았잖아요. 그런데도 내가 아무리 고집스럽게 내 방법대로 살아도 나에게 숨겨져 있는 영적 문제는 해결 못하잖아요. 나를 괴롭히고 있는 내 마음에 숨겨져 있는 깊은 문제들은 치유를 받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말씀을 듣고 내가 계속해서 은혜를 받다 보니까 내가 말씀을 계속해서 듣지 못하면 나에게 있는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는 구나! 나에게 숨겨진 이 영적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깨달아지면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정에서도 문제가 일어나게 되고 직장 안에서도 일이 일어나게 되고요.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일어나게 되잖아요. 이 때가 되어지면 생각이 바른 사람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까? 내가 이런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런데 꼭 생각이 이상한 사람은 그 때부터 영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셨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가정 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쓰임 받아야 되겠구나! 내가 교회 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쓰임 받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우리 가족 간에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지는 거요.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래, 될대로 되라!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모른다.” 이렇게 되어 버리는 거요. 그래서 그 인생이 결국 망하는 인생으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서나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생각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말씀과 같더라
1) 양극화 현상
① 바로의 마음
14절에 보니까 바로의 마음이 완강해서 백성 보내기를 거절 하는 도다. 이렇게 말씀이 나오고 22절에 보면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서 그들을 듣기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여기에서 완강하다는 말은 미련하다 고집이 세다는 말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아주 미련하도록 고집이 센 거요. 고집 센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미련하게 고집 센 사람처럼 힘든 사람이 없잖아요. 우리가 정말 오직 복음만 붙들고 살겠다. 그런 고집은 좋은 고집이잖아요. 그런데 망할 줄 모르면서, 아주 미련하게 고집을 피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는 죽어도 제사를 지내고 나는 죽어도 우상숭배 하겠다는 것은 망하는 길이잖아요. 지금 바로가 그런 모습이죠. 마음이 완강해졌어요.
그리고 강퍅해졌다는 말은 마음이 꼬부라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 마음이 꼬부라지면 모든 것이 꼬부라지게 보여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세요. 그 마음이 꼬부라진 사람들은 마음이 펴져야지 꼬부라져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꼬부라지게 보여요. 마음도, 말도, 행동도, 모든 것이 그렇게 보여요. 지금 바로의 마음이 그렇단 말이죠.
② 모세의 마음
반면, 모세는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행합니다. 그럼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가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를 때, “하나님, 제 나이가 80인데, 나 가진 것도 없고 말도 못하는데요.” 원래 모세가 그랬잖아요. 원래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면 “할렐루야! 아멘,” 하고 갔어야 되는데, 모세는 그렇지 못했어요. 여기 하나로 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할렐루야! 아멘!” 하고 순종하고 갈 사람도 있지만 모세처럼 아이구, 나는 못 가겠는데요, 말도 못하는데요, 나이도 많은데요, 가진 것도 없는데요. 별말 다 할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쳤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이렇게 명하는 대로 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 바로의 마음과 모세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무슨 단어가 생각 났나면 완전 양극화 현상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잘 한번 보면 계속 충성하는 사람은 계속 충성하고, 은혜 받을 사람은 은혜 받는 쪽으로, 계속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 충만 속으로 계속 성령인도 받는 사람은 성령인도 받는 쪽으로, 계속 복음 전하는 사람은 복음 전하고 계속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계속 헌신하고 충성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로처럼 계속 망할 짓을 하고 있어요. 꼭 불신앙하고 원망하고 계속해서 귀신 섬기고 세상 풍습에 매여서 살고요. 근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며 산다니까요. 이게 완전 양극화 현상이요.
여러분, 한번 잘 보세요. 하나로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은혜로 말씀을 잘 듣잖아요. 어떤 사람은 말씀을 사모해서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말씀을 안 들어요. 어떻게 합니까? 데려다가 귀를 열고 집어넣으면 말씀이 들어갑니까? 마음이 완강해져서 못 들어요. 자기가 안 듣겠다면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은 말씀듣는 자리에 있어서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 속에서 강해지고 시험 당하는 사람은 계속 시험 당하고 거 참 이상하죠. 양극화 현상,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죠.
사람은 믿음대로 되어집니다. 이 마음이 한 번 꼬부라지고 어리석은 고집에 사로잡히면 아무 말도 안 들려요. 그런데 조금만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받으면 들리기 시작해요. 믿음으로 살게 되어있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죠.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2) 모세의 지팡이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15절에 보면 “너는 바로에게 가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너는 하숫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이 종이를 들고 가라면 종이 들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빈손 들고 가라고 했으면 빈손 들고 가면 되요. 그런데 하나님이 빈손 들고 가라고 했는데, 모세가 하나님, 제가 지팡이 들고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 불신앙이요. 하나님이 모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지팡이기 때문에, 너는 지팡이를 들고 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데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팡이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셨어요. 저와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셨으면 누구도 막을 자가 없어요. 하나님이 안 되게 하는데 되게 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지팡이를 들고 가라고 합니다. 모세가 그 말씀을 따라서 지팡이를 들고 가서 역사가 일어났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 안 듣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것은 자기 생각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자기 속에 제한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6절에 보면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지금 나를 섬긴다고 했죠?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백성들이 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희생제사의 비밀을 잃어버리니까 노예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희생제사를 회복하라. 그 말이요.
3) 나를 섬길 것
① 나를 섬길 것
그러면 희생제사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피제사를 말하죠. 피제사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피흘리신 그 피를 말합니다.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단에게 매여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 백성으로 하여금 나를 섬기게 하라. ‘나를 섬기는 방법’이 뭡니까? 희생 제사를 드리게 하라. 그 말이요.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희생 제사를 드리게 하라고 그랬어요. 그 비밀을 모르니까 죄와 허물로 그 영이 죽었잖아요. 이 비밀을 모르니까 세상 풍습에 매여서 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피 제사 희생 제사의 비밀을 깨달으니까 완전히 바로에게서 노예생활 하던 신분이 완전히 빠져나올 뿐 아니라, 모세에게 말씀한 것처럼 이제 바로 앞에서 신이 되게 하는 신분과 권세가 임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희생 제사,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이것을 지금 말씀하는 거요.
② 언약의 씨
그러면 모세가 전하는 모든 말은 바로 언약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는 말은 전부 성취가 되요.
사람이 말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제가 그저께 텔레비전을 보니까 우리나라에 노숙자 문제가 심각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노숙자가 된 것도 불행하지만 청소년 중에서도 노숙자가 상당히 많다는 거죠. 그런데 한 기자가 한 노숙자 청소년에게 물어봤어요. “왜 노숙자가 됬냐?” 그랬더니 한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어느 날 집에서 조금 잘못했더니, 그 부모가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집나가라!” 그랬데요. 그러니까 그 자식이 욱! 하는 김에 집을 나와서 집에 들어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너는 내 자식 아니다!” 그랬으니까...
물론 부모가 그 자식을 망하라고 해서 집나가라고 했겠습니까? 그 아이가 조금 잘못 했으니까 혼내려고 홧김에 말을 했겠죠. 그러면 그 아이가 말을 듣고 ‘내가 부모님 마음을 속상하게 해서 부모님이 조금 과하게 말했구나! 용서해달라고 해야 되겠다.’ 하면 될 텐데 욱! 하는 마음에 ‘좋다, 한 번 해보자!’ 하고 나가 버리는거요. 그래서 노숙자가 되었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아, 그렇구나! 물론 특별한 케이스지만 그 아이의 평생에 한이되는 말이 ‘너는 내 자식 아니다. 집 나가라!’ 그 말에 얽어 매여서 잠 6장 2절 말씀 보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다.”고 되어 있어요.
사람이 말이라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으면 성령충만하면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합니다. 내가 행복하면 은혜를 끼치는 좋은 말을 합니다. 응답받고 있으면 응답받는 말을 합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면 감사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축복을 못 받으면 이상해져요. 어떤 사람은 예수 믿어도 ‘아, 미치겠다.’, ‘죽겠다.’, ‘망하겠네...’ 우리가 복음가진 사람은 말도 선별할 줄 알아야 되요. 우리가 예수 앞에 미치면 몰라도 미칠 일이 뭐가 있습니까? 미치면 좋습니까? 또 망할 일 있습니까? 자식들에게도 “이놈의 망할 놈의 새끼야!” 이것은 별로 좋은 말이 아니오. 그런데 이게 후대들에게는 가슴에 박히는 거요.
우리가 자꾸만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나에게 쌓인 짜증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참 평안하고 기쁘고 감사한 말을 자꾸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바뀌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이 갑니다. 가정에서도 한 번 보세요. 가정에서도 남편이 일 갔다 와서 성질이 나서 자기 부인에게 밥이 이게 뭐야! 자기 부인에게 그러면 ‘그러냐고’ 넘어가면 되는데, 부인도 화가 나서 성질 풀데 없으니까 자식에게 가서 “야, 공부 똑바로 해!” 가정이 완전히 살벌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웬만한 일은 가정에 가져가면 안 되요. 거기에서 털어 버려야지 그래서 가정불화가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이 말한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이 자기가 싫으면 내가 싫으니까 다른 사람을 싫어합니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도 마음에 안 듭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남편이고, 자식이고 아내고 다 마음에 안 들어요. 내가 싫으면 다 싫습니다. 그런데 내가 기쁘고 감사하고 좋으면 상대편의 얼굴에 점이 있어도 그 점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느껴져요. 사람은 자기 마음의 표현이 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생각을 잘 해야 되요. 생각을 조금만 잘하고 말을 하면 그것이 응답이요. 축복입니다.
사람이 자꾸만 불신앙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면 사단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복음 전하면 성령이 역사하세요. 그럼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이 조금 내가 싫고 답답한 일 있어도 내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복음 전하는데 관심 가지면 성령이 역사하신다니까요. 어둠이 싹 물러가는 겁니다. 꼭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되요. 그래서 언약의 씨 말이 중요해요. “말로 우리는 천냥 빛도 값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늘 언약의 말, 믿음의 말을 선포하는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3. 한 사람의 축복
1) 영적싸움
우리는 그러면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모세가 할 일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살려내는 일이잖아요. 그럼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살려내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바로가 꺽어져야만이 애굽에 있는 백성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했잖아요. “강한 자를 결박한 이후에야 그 집에 있는 세간을 늑탈하겠다.”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도 관념치 아니하였더라.” 그런 말을 했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바로가 얼마나 완강한지 눈 하나도 깜짝 안 해요. 이건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요 10:10 말씀처럼 사단이 하는 짓은 도적질하고 망하게 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만약 우리 가정에 먹을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어간다면 부모가 물을 구해서 아이들에게 주려고 할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백성들이 먹을 물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바로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정말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방황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살릴 사람은 복음 전하는 사람밖에 없어요. 그러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 전하지 못하게 하는 흑암세력을 꺽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이 복음을 안 듣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사단이 그들을 붙잡고 있고, 이 세상신이 그들을 혼미케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게 하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본질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지금 모세로 하여금 아론에게 명하라고 그랬어요. 아론은 모세의 형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더러 명령하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론이 그 명령대로 행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론이 배알이 없습니까? 동생 말에 순종하게... 아론이 복음을 알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는 구나!”
저는 이것을 보면서 교회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목사를 비롯하여 온 성도가 말씀을 듣고 힘을 얻는 곳입니다. 지금 목사인 저도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성도들도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하면 내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내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같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되요. 그래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는 대로 지금 사람들이 바로에게 잡혀서 노예생활 하는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을 하는거요. 이게 교횝니다. 이 일을 지속할 사람을 제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말씀에 은혜 받고 힘을 얻어서 제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쓰임 받는거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웠어요.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사단이 얼마나 이런 교회가 이런 일 못하게 방해하는지. 제가 설악산 교회에 있을 때 무엇이 마음이 아팠냐면 교회가 외딴곳에 있으니까 차가 있는 사람은 그냥 차 타고 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차가 없는 사람은 교회차를 타고 와야 된단 말이에요. 교회차를 타고 와야 되는데, 교회 차타는 것이 쉽지 않아요. 운전 하는 사람이 시간을 정해놓으면 차타는 사람이 장소에 나와서 기다리는데, 어떨때는 운전하는 사람이 조금 늦게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데 성질이 나는 거요. 예배에 오긴 왔는데, 예배 시간에 분이 안 풀려서 은혜를 못 받는 거요. 교회 분위기가 성도 한 사람만 은혜 못 받아도 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거요. 신경전이 벌어지고 그러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차가 있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차가 없는 사람은 비참하잖아요. 서로 그런 마음을 헤아리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실갱이를 하는거요. 사실은 복음운동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예배당을 얻을 때, 기준이 있었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편안히 걸어올 수 있는 거리, 이것을 생각했어요. 그게 원칙이었어요. 그래서 저희 교회가 교동에 있다가 이 쪽에 올 때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1분 걸립니다. 제 걸음으로는 30초 걸립니다. 그리고 저 쪽에서는 건너면 신호 안 걸리면 1분 30초 걸립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차 운행 때문에 너무너무 속상한 일이 많아서 참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일이 없지만, 어쩌다가 보면 속상한 일이 있어요.
차 없는 사람은 차 때문에 속상하고 또 차 운행하는 사람은 제가 한번은 중직자랑 얘기를 하는데, 차 운행, 우리가 할 테니까 목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 목사가 제일 편한 사람이 부교역자입니다. 오늘은 맹목사님, 김동우 전도사님보고 운전하라고 하면 중직자가 귀한 부교역자들에게 부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중직자가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우리 귀한 부교역자들에게 차운행 시키지 마세요.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셔야 되는데 부교역자들에게 부담가게 우리가 운행하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안아주고 싶더라니까요.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교회 차운행을 바꾸기로 했어요. 몇 분에게 부탁했더니 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고 다 하겠다. 웬만하면 버스 정류장까지 1분 걸리니까 버스타고 다니시고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부득이한 분들은 교회차를 타세요. 웬만하면 교회차 안 타는 것이 좋은 거요. 점점 가면 갈수록 차운행 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좋은거요. 새벽기도같은 것은 차 없는 사람들은 안 되니까 운행 해줘야 되지만, 평상시는 시내버스 타면 금방 가는데, 차 기다리고 그럴 필요 없잖아요. 또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시험받고 그럴 것 하나도 없어요. 정말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초점 맞추고 여기에 생을 걸고 살아가는 거요. 그게 가장 바른 거잖아요. 우리가 별로 아무것도 아닌것, 차 때문에, 어떤 사람은 국수가 어떻다고 시비걸면 우리 수준이 부끄러운 것 아닙니까? 우린 정말 부끄러운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 어느 목사님이 그러셨대요. 교사들과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여름성경학교 끝나고 어떤 분이 선생님들께 수고 했다고 수박을 사오셨대요. 그래서 교사들이 마침 피곤하니까 수박을 잘라먹었어요. 그런데 한 분이 무엇을 하다 보니까 조금 늦게 왔대요. 그래서 수박 한 쪽을 못 얻어먹었어요.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수박 안 남겨 놓았다고 시험 들어서 내가 그 말 듣고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그 선생님 위해서 수박 한 통 사다주면 되지... 다른 교회 얘기요.
교회는 복음 전하고 제자세우는 곳입니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이해하면 되요. 고후 2:11에 보면 “우리로 사단에 속지 않도록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도다.” 그랬어요. 사단이 복음전하지 못하도록 다른 일을 자꾸만 일으켜서 복음 전하는데 관심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정말 사단에 속으면 안돼요. 혹시 차가 왔다가 지나가면 ‘아, 그랬나보다.’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운행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혹시 우리 하나로교회 성도들 가운데 그런 성도들 있다면 앞으로 하나님이 아마 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차를 사는 복, 그러면 문제될 것 없잖아요. 혹시 그것 때문에 속상하다면 하나님, 차를 주세요! 하고 기도하세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에 초점 맞추고 제자 세우는 일에 초점 맞추고 생을 드려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이 그런 것입니다.
3) 한 사람의 축복
마지막으로 정말 우리 인간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고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롬 11:3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 바로 12:1에 “그러므로 너희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드린다는 말이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잖아요. 나이도 많고 가진 것도 없는데, “하나님, 저는 가진 것도 없고 나이도 많고 말도 못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쓰시면 명한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헌신하고 결단했을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다 살아났습니다. 한 사람이 믿음의 결단을 하면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한나가 결혼했는데, 자식이 없어요. 자식없는 한나의 설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식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이 응답을 안해줬어요. 어느 날, 한나에게 깨닫게 했어요. 자식들은 많은데, 하나님 앞에 드릴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자식을 주시면, 내 아들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사람이 사무엘이에요.
사무엘 한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블레셋과 전쟁이 끝났고요. 우상 숭배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운동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한 민족이 살아났어요. 그러니까 한 여인의 기도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여인의 기도로 말미암아 전 민족이 살아났어요. 우리는 한 사람이 기도로 결단하고 마음에 소원하고 헌신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윗은 목동(양 똥 치우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어요. 다윗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안 믿는거요. 그러니까 골리앗이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해도 누구하나 나와서 대적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 살아계심을 내가 보이겠다.”
여러분, 한 사람이 생을 걸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거하겠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잘 짓고 잘 먹고 사는데, 다윗은 왕 되었음에도 생각이 “우리는 잘 먹고 좋은 집에서 사는데, 언약궤는 있을 곳이 없어서 내가 성전을 지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일을 하셨어요. 저와 여러분 중에 한 사람이 깃발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결단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삽니다. 교회가 살고 지역이 살아납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정리>
1. 하나님의 생명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생명이 통합니다.
2. 지금 이 땅은 양극화 현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길로 불신앙하는 사람은 계속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3. 교회의 본질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영적 싸움을 하고 제자 세우고 이 일에 저와 여러분이 한 사람으로 깃발 드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하나님과 통하는 생각을 갖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는 믿음 속에 은혜 속에 강하게 하시고 교회의 본질인 복음 전하기 위해 영적 싸움 하게 하시고 복음 전할 뿐만 아니라 제자로 우리 생애가 쓰임받는 한 사람의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 살리고 교회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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