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홈  >  메시지  >  강단녹취
  제  목 : 하나님의 지팡이 (출애굽기 4:18-26) 조회수 : 2105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9-21
  첨부파일:   20060917 주일 강단 메시지.hwp(31K)
20060917 주일 강단 메시지
하나님의 지팡이(출애굽기 4:18-26)

<출애굽기 4:18-26>
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도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네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본문>
1. 하나님의 생명
1) 하나님의 생명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교회 생활을 했던 한 장로님 글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어린 시절에 자기와 같이 교회를 다녔을 때 자기 기억에 주일에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대요. 그리고 이분은 참 똑똑해서 교회들이 연합으로 웅변대회를 했을 때, 그 지역에 웅변대회를 나가면 항상 1등을 했대요. 그러니까 참 똑똑한 분이죠.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동화나 구연대회를 많이 했는데,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구연동화를 했는데,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이 잘했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대구사범을 들어가면서부터 교회가 멀어져서 신앙생활을 안했다는 거죠.
그런데 다음에 무슨 글이 있냐면,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한국에 왔었을 때, 고 박정희 대통령께 예수 믿으라고 권했답니다. 그랬더니 “앞으로 생각해보겠다.” 그렇게 하셨다는 거죠. 그런데 얼마 후 CCC 총재인 김준곤 목사님이 구미지역에 집회를 가셔서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이 구미지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자랐는데, 이 어른이 신앙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참 안타깝다. 이런 메시지를 하신 것이 국민일보에 나왔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는데, 안타깝게도 이 어른이 생명을 몰랐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교회를 10여년을 다녔는데, 한번도 생명을 못 들었다면 생명을 전했는데 본인이 안 받아들였다면 할 말이 없지만, 10여년 동안을 교회를 다니시고 똑똑해서 웅변대회를 갈 때마다 1등을 도맡아 하시고,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다윗과 골리앗 얘기를 아주 그럴 듯 하게 구연동화로 잘 하시는데, 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안 믿고 살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하나님이 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냐? 멸망받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이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멸망 받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다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안 믿는다는 말이죠. 이런 죄 가운데 태어나서 눈에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 사단에게 매여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은 어느 날 생명이 끝나는 날 지옥 가는거요. 이게 멸망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멸망받지 말고 예수 이름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 그 말이죠. 그러면 죽어서 천국가라는 말이냐? 물론 그 말도 맞지만, 멸망 받지 말고 하나님 자녀 되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고 승리하며 풍성한 삶을 살다가 천국가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가 누구입니까? 성경은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 독생자 예수는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 그 말이요. 그 말은 바로 예수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분이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원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이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해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건과 선행과 노력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그랬지, 우리의 경건으로, 선행으로, 결심으로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그 말이요. 그래서 이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구나! 이것을 내 마음에 믿고 인격적으로 그 예수님을 내가 믿는 것을 보고 영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요.
그럼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성경은 분명 말씀하고 있어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른다고 했어요. 아들을 믿는 자,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다는 그 말입니다. 이 아들을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버리는 거요. 그런데 이 아들(예수)를 안 믿는 자는 죽어서 어떻게 되는 것은 나중 일이고 지금 이미 하나님의 진노가 와 있는 거요. 그 진노가 뭡니까? 망하는 겁니까? 그 진노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숭배하고 귀신숭배하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고 세상 풍습에 따라 살아가는 거요. 그러다가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가는 거요. 이게 하나님의 진노에요.
2) 가장 중요한 사람
① 가장 중요한 사람
그러면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인생이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사는 거요.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되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졌어요. 내가 뭐 똑똑하냐? 훌륭하냐? 하는 것은 우리의 기준입니다. 얼마나 건강하냐? 돈을 많이 가졌냐? 얼마나 성공했냐? 하는 것은 우리의 기준입니다. 물론 나쁠 것은 없죠. 그러나 아무리 자식이 잘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성공했어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무 가치도 없어요. 우리 성도들 중에 저는 배운 것도 없는데요, 가진 것도 없는데요, 인격이 훌륭하지도 않은데요. 그래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요.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 말이요. 이것은 내 인격과 수준과는 상관없어요. 그래서 내가 나를 볼 때 우리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허물밖에 더 있습니까? 제가 저를 볼 때도,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탄식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이 저를 볼 때 ‘아이고, 내가 저 목사 안 도와주면 저사람 되겠나?’ 안타까울 때 많지 않아요?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거지 제가 저를 볼 때도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보는 수준이요. 우리가 보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땐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보배롭고 존귀한 자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되요. 하나님이 나에게 자식을 줬는데, 그 자식을 보는 눈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볼 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떻게 그렇게 못났는지 생각지 몰라도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그 자식이 가장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는 내가 얼마나 훌륭하고 똑똑하냐? 잘났냐? 공부 많이 했냐? 많이 가졌냐? 얼마나 인격이 똑똑하냐? 하나님의 생명이 있냐? 없냐? 그 말이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볼 때에,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무 관심이 없어요. 우린 이걸 봐야 되요. 내가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요. “목사님, 그럼 우리가 교만하란 말입니까?” 이 말이 아니요.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이런 눈을 봐야 되요. 이게 믿음이요. 내가 나를 보는 것은 현상이잖아요. 하나님은 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택하셨습니다.
사람을 우리가 볼 때도, 내 기준으로 볼 땐, 답답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하나님 은혜 아니면 열불이 나서 못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제가 성질이 급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느긋한 사람과 제가 살아요. 그럼 내가 제 성격대로 한다면 하루에도 제 성질 때문에 몇 번은 쓰러져야 되요. 혹시 성질 급한 사람은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도 있고 그 사람에게도 있기 때문에 소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다려주고, 여유가 있고 양보하고 참는 것이지, 내 수준으로 보면 뭐가 남아남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남아남습니까? 나는 남아납니까? 그건 남는 법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를 보고 성도를 봐야 되요. 내가 나를 볼 때는 아무 볼 품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 보실 때는 나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에게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기쁨이 나에게 있어요. 왜요?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② 복의 근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아.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거다. 너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 대단합니까? 나이 75세에 우상 숭배하고 있었던 사람인데, 아브라함의 성격을 보니까 별로 잘난 성격도 아니요. 성경을 보니까 자기에게 있는 부인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는 사람이요, 게다가 자식도 없어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너는 복의 근원이라.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주제를 알잖아요. 내 주제에 안 믿어지는거요.
우리가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가진 것이 있다든지, 자식이 몇 있다든지, 나이 75세에 자식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셨단 말이요.
그리고 여러분, 모세를 보세요. 나이 80세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처갓집에서 살고 있어요. 40년 동안 응답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수한 겁니까? 왜 이렇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앞으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일어날 일들을 먼저 알고 계세요.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고 계세요. 아브라함이 비록 나이가 많지만 그 아들 이삭을 낳게 하시고 그 이삭의 아들 야곱을 낳게 하시고 그 아들 요셉을 낳게 하셔서 결국 애굽에 있는 모든 기근의 문제를 다 해결하셨다는 말이요.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멀리 보고 있는거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미래를 보고 계신 거요. 지금 모세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나이도 많고 힘이 없지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살리고 바로를 꺽을 사람임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제 내가 사울을 버렸다. 왕 세울 자를 찾아가라 그랬어요. 그래서 이새 집에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 집에 갔어요. 그래서 이새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전달하면서 “아들을 나에게 보내달라 그러면 그 아들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아들이면 기름을 붓겠다.” 왕으로 세우겠다는 말이죠.
큰 아들이 왔는데,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겼어요.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마라.”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기준에 볼 때, 왕이면 외모도 왕다워야 하고 그래야 될 것 아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첫째 아들부터 일곱 번째 아들까지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무엘이 또 아들 없냐? 그 때 이새가 다윗이 막내아들인데, 만약 아버지 마음에 흡족한 인물 될만한 아들이었다면, “정말, 내 막내아들이 있는데, 그 막내아들 보여주겠습니다.” 할텐데, 아니요. 아들이 없냐고 하니까. “있긴 있는데요...” 별로 기대되는 아들이 아니란 말이요. 있긴 있는데, 목장에 가서 일하고 있는거요. 그러니까 마지못해서 사무엘이 불러오라고 하니까 데리고 오는 거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다윗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저와 여러분의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왜 부모가 헌신하고 수고하며 투자를 하십니까? 그 아들을 통해 일어날 미래를 생각하니까 자식들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 아닙니까?
3) 생명의 전달자
그러면 정말 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한 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요. 생명은 반드시 생명을 통해 전달됩니다. 생명은 생명이 없는 것을 통해 전달되는 예가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태영아부 메시지를 몇몇 성도와 같이 봤는데, 목사님이 메시지를 하셨는데, 제가 포럼을 했더니 우리 이대영 선생님이 하는 얘기가 목사님이 무슨 얘기 하셨냐면 “사과에 씨가 몇 갭니까?” 물어봤어요. 그런데 이 씨가 앞으로 심겨져서 일어날 열매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생명은 적은 것이고 하나밖에 아니지만, 앞으로 생명을 통해 일어날 열매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잖아요. “씨를 뿌려봐라. 그 씨가 떨어지는데, 어떤 씨는 돌밭에, 가시밭에, 옥토밭에 떨어지는데, 이게 옥토밭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 무슨 얘깁니까? 열매가 100개가 열린다. 그 말이 아니죠. 이 씨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생명의 열매는 측량할 수 없다. 그 말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우리가 몇 낳습니까? 아무리 많이 낳아봐야 열 낳겠죠. 그런데 우리가 자식을 낳는데, 거기서 끝납니까?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자식을 낳으면 내 후대가 측량할 수 없는거요. 저를 통해서 저의 아이가 둘인데, 이 두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통해서 일어날 제 후손이 얼마나 많겠어요. 누가 그걸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생명은 반드시 생명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한 생명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루디아 한 사람이 빌립보 지방에서 중요한 사람이던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든지 생명의 씨 복음의 씨가 뿌려졌어요. 그래서 일어난 일이 얼마나 큽니까? 그 한 사람에게 생명의 씨, 복음의 씨가 뿌려졌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빌립보가 복음화 되고, 마게도냐 전 지역이 복음화 되고, 로마가 복음화 될 것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바울이 생각했겠습니까? 그냥 시간이 되어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런 열매가 일어났어요.
하나님은 이 시대에 생명의 전달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은 반드시 생명을 통해서 전달되요. 그럼 우리를 통해서 일어날 일들은 앞으로 우리가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일어날 일들은 세상이 측량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게 복음이요. 생명입니다.

2. 하나님의 지팡이
1) 인간관계
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얘기합니다. “장인, 제가 애굽으로 가겠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얘기합니다. 그랬더니 장인 이드로가 “평안히 가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인도를 받는 것이 가장 바른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모세가 성령인도를 잘 받아요. 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으니까 그냥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굳이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나를 보내주소서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장인인 이드로에게 가서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런데 장인 이드로가 평안히 가라고 얘기했습니다.
성령인도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관계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지난 주 김문상 집사님이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목사님, 제 먼 친척이 주일날 결혼식을 하는데, 저희 부부가 한 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주일 대예배는 참석을 못하고 새벽기도 참석하고 다녀오겠습니다.” 전화를 하고 가셨어요. 저는 집사님한테 고맙더라고요. 집사님의 가정에 결혼식이 있어서 당연히 가야 되는데,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께 ‘다녀오겠습니다.’ 전화 한 통화 해주는데, 저가 참 기분이 좋고 감사하고 귀한 분이다. 바른 분이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세가 지금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애굽에 가야 되는데 장인에게 그런 얘기 안 해도 되는데, 이게 성령인도 받는 길입니다. 평상시 관계가 잘 되어졌을 때, 하나님이 어느 시간표에 일을 합니다.
나중에 출애굽기 18장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요, 모세가 애굽에 있는 백성들을 인도해서 광야에 갔는데, 살다보니까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잖아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그 얘기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거요. 그러니까 그 얘기들을 다 해결해 주느라고 아무것도 못하는 거요.
이 때 이드로가 손주들을 보러 와서 가만히 보니까 모세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보이거든요. 그래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얘기합니다. “여보게, 그 많은 재판을 당신 혼자하면 되겠는가?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적은 일은 십부장이 해결하게 하고, 조금 큰 일은 오십부장이 해결하게 하고, 더 큰일은 백부장이 해결하게 하고, 더 큰일은 천부장이 해결하게 하고, 자네는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일만 해결하게 하게나.”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상시 관계가 안 되었다면, 이드로가 그런 얘기를 할 이유가 없겠죠.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성령인도 받는데 있어서 평상시 우리 인간관계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평상시 옆 사람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다가 우리 전도캠프 하다가 예수 믿으세요. 하면 “잘 다니세요.” 평상시에 옆 사람과 차도 별로 안 마시다가 교회에서 무슨 일 있다고 어쩌구저쩌구 하면 그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겠냐 그 말이요. 우리는 평상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모세가 그 집(이드로의 집)에서 단순히 밥 얻어먹고 산 것이 아니고, 그 집의 짐승 길러주고 밥 얻어먹고 살았어요. 그냥 나와도 뭐가 문제가 됩니까? 내가 당연히 할일하고 먹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은 인간관계를 통해 모든 일을 하십니다. 평소에 우리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사람이 이상하게 평소에 관계가 나쁘면 좋은 말을 해도 안 믿어져요. 그런데 평소에 관계가 좋으면, 조금 실수를 해도 그게 별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지팡이
① 하나님의 지팡이
그리고 이제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붙잡고 갑니다. 그것은 이미 17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서 이적을 행하라!” 그랬어요. 그래서 모세가 지금까지는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고 불신앙도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는 거요. 그러니까 지팡이가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붙잡았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이 지팡이를 네 손에 잡고 가라고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붙잡는 증거로 지팡이를 붙잡은거요. 지팡이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들은 또 그러니까 ‘나도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모세가 이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지팡이를 붙잡고 가라고 했기 때문에 가는 거요. 이게 바로 영원한 약속입니다.
② 영원한 약속
그러면 오늘날 저와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이 뭡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고 가라고 했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약속인 모세보다 더 확실한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가야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셔서 나와 영원토록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도록 영적 권세를 주셔서 흑암을 꺽어 버리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천군천사를 동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이 땅에서 맛보면서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증거를 주셨어요. 이런 신분과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말이요. 이게 우리 경건의 열맵니까? 열심의 열매입니까? 그냥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방적으로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해서 간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40일 금식을 하고 100일 철야를 해서 ‘이렇게 하면 이 지팡이에게 능력이 임할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경건과 열심과 공로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진 그 순간부터 영원한 신분과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우리는 이것을 붙잡고 누리는거요.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3) 나를 섬기게 하라
① 바로의 발악
그러면서 지금 모세에게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바로가 이렇게 니가 기적을 행해도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바로의 장자를 죽인 다음에야 될 것이다. 그 말은 바로는 마귀를 상징합니다. 요 마귀 사단은 기적을 행한다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잖아요. 그러니까 바로가 놓아줄께, 가라! 그랬다가도 그 다음날 보면 안 놓아주고 끝까지 붙들고 안 놓아주잖아요.
사단은 우리가 무슨 능력을 행한다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금식을 행하고 철야를 한다고 무서워하면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기적을 수 없이 행했어요. 그러면 바로가 깜짝 놀랐다가. 그 다음날 마음이 쌩하고 돌아와서 안 보내줘요.
제가 이것을 몰라서요 옛날에 귀신을 들린 사람이 있어서 이 사람을 제가 기도원에 데리고 들어가서 막 붙잡고 몇 시간 기도하니까 귀신이 나가더라고요. 그런데 3일 지나니까 이 사람 안에 귀신이 또 들어와 앉아 있어요. 또 나가라고 하니까 귀신이 게거품을 물고 나가더라고요. 그런데 1주일 지나가면 또 들어와 있어요.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사단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해결 안 됩니다. 그레서 네(바로의) 장자를 죽게 하리라! 죽어야만 낫는거요. 그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보혈의 피를 흘려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낸거요. 이 때여야만 사단이 꺽어져요. 우리가 신비한 능력을 행한다고 사단이 도망가고,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사단이 도망가고 그런 것이 없어요. 오직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끝나는 거요. 바로의 장자 죽으니까 그리고 모든 백성들의 장자가 다 죽고 짐승들의 첫 새끼도 다 죽으니까 온 바닥에 피 바다가 흐르니까 그 때서야 놓아줬잖아요. 그래서 보혈의 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는 거요. 그래서 피 제사를 말하는거요. 그래서 희생제사를 드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발악하는거요. 안 놓으려고.
주님이 예화(비유)를 들잖아요 강한자를 먼저 결박한 이후에야 그 집에 있는 세간을 늑탈할 수 있지 않겠냐? 그 집의 강한자를 누가 결박할 수 있겠어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했을 때,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면서,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했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에게는 음부의 권세가 아무 힘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요. 사단의 머리를 박살냈기 때문에. 겁낼 것이 없어요. 우리는 이것을 딱 붙잡아야 되요.
② 나를 섬기게 하라
그러면서 내 백성이 나를 섬기리라고 했어요. 그러면 이 백성이 왜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한 이유가 뭡니까? 피제사를 잃어버렸어요. 말하자면 언약을 놓쳐버리니까 결국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죠. 지금도 똑같애요.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시험을 했잖아요. 40일 금식기도한 예수님에게 이 돌을 떡덩이 되게 해서 먹으라. 성전 높은 데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백성들이 너를 칭찬할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은 무슨 얘기를 합니까? 나에게 절하라! 그러면 이 천하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무슨 말입니까? 마귀의 목적은 경배의 대상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하지 말고 너를 섬기지 말고 세상의 보이는 것을 섬기라 곧 사단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놓쳐버렸다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육체는 있지만 생명이 전달이 안 되어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한거요. 그래서 정말 이 생명이 살아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 제사를 드리라 그 말이죠. 그래서 생명 가진 자들이 생명 가졌다는 증거로 모여서 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라 그 말이요.
혹시 이 자리에 예수 생명 없는 자들이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잖아요. 그것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요. 예배 보는 것이지. 예수 생명 있는 사람들이 생명의 그 주님을 찬양하고 생명의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거요. 그러면 이 백성들이 400년 동안 노예생활 하는 이유는 생명이 전달 안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이 회복되어지고 생명이 전달되어지는 것이 희생제사란 말이요. 그래서 이것 회복하란 말이요. 지금 신약으로 말하면 보혈의 피란 말이요. 그리스도! 그리스도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죄 문제 해결할 수 없고 그리스도 아니면 사단의 세력에 매여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 말이요.
우리가 생명 가졌다고 하더라도 또 우리는 이 세상 살면서 천국 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데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우리가 예배의 축복을 회복하면 그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가 힘이 없어져요.
아브라함이 분명 복의 근원이잖아요. 아브라함에게 많은 문제가 왔어요. 그런데 롯이 떠난 이후에 단을 쌓았어요. 그러고 보니까 모든 부분이 회복 되었어요. 야곱이 외롭고 쓸쓸하고 어려운데 벧엘에서 단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다 회복되었어요.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배의 축복만 회복되면 문제와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축복으로 바뀌어버립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이 너무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공예배와 개인예배에 승리하세요. 예배 되어지면 그것들이 나에게 별 힘이 없어요.
우리가 사실은 예배를 통해 은혜 받으면 내가 못된 성격도 그것을 뛰어 넘습니다. 제가 은혜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성질 급한 것도 뛰어넘더라고요. 제가 느긋해지고, 이해가 되어지고 그런데 은혜 못 받으면 과거의 성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정말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이것이 쌓여져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3. 복음의 능력
1) 순종하는 자
그러면 모세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나아가잖아요. 19절에 보면, 미디안에 가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너를 죽이려고 했던 자는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면 이미 흑암은 다 꺽여버립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려고 지금 마음을 먹고 미디안에 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말씀하기를 “모세야, 너를 죽이려고 했던 자는 다 죽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모세가 이것을 몰라서 나는 안 되고 이것은 되고 그랬잖아요. 쓸데없는 것을 미리 끄집어서 염려 하는 거죠.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일할 계획을 가졌기 때문에, 장애물을 다 없애 버렸어요. 우리가 복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이 장애를 없애 버립니다. 사람들이 뭘 모르고 복음을 막는데 복음을 막으면 하나님이 데려가버려요. 모세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바로 왕이잖아요. 그러니까 왕을 불러가 버렸어요. 왕 뿐만 아니라 모세를 잡으려고 했던, 모세를 알고 있는 모든 자가 모세를 잡으려고 했어요. 19절 보니까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모세의 생명을 찾을 자가 없다고 했죠. 참 감사하죠.
저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시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겠다.”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모세를 잡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이 다 불러가 버렸어요. 뭐가 문젭니까? 나를 괴롭히고 망하게 하려고 했던 자는 다 불러가 버렸는데,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불러갑니다.
2) 피 언약
① 생명의 주인
그런데 이제 모세가 가는데, 하나님이 변덕을 부리는지, 24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자는 내가 다 죽어버렸다.” 그랬는데, 지금 모세에게 어려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무슨 얘깁니까? 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까?
여러분,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모세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모세보고 쓸데없는 불신앙하지 말라 말이요. 생명은 내 손에 있기 때문에 변명하고 핑계될 것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너를 불러갈 수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나를 불러갈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아무리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관리를 한다고 더 살고, 건강관리 안 한다고 금방 죽습니까? 똑똑하고 훌륭하고 사회에서 좋은 일 많이 하면 오래살고, 못된 짓 하면 빨리 죽고 그런 것입니까?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가시면 가는 거요.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어요. 모세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는거요.
② 잊지 마라
또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이 때, 그 아내 십보라가 그 아들들 양피를 베어서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내게 피 남편이로다.” 그러면서 이것을 성경은 26절에 할례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지금 모세가 애굽 땅에 가는데 또 깜빡 놓친 게 있어요. 자기는 할례를 받았지만. 지금 두 아들은 할례를 안 받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될 ‘피’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할례를 받게 한 거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은 언약의 백성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이렇게 피를 흘려야 한다.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할례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가 일을 보잖아요. 그러면서 너는 언약의 백성임을 잊지 말라, 이 모든 축복은 피를 통해서 온다. 이런 것들을 잊지 말라고 할례를 행하는 것이지 할례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그래서 모세로 하여금, 그 가족들로 하여금 이것을 잊지 않도록 할례를 받게 한거요.
3) 복음의 능력
그러면 이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가 갈 때에 아론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아론아, 너 저기 광야에게 가서 모세를 맞으라.”고 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론에게 “너는 가서 모세를 맞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작업해놨어요. 31절에 보면 “이 백성들이 모세가 전한 말을 다 듣고 여호와를 믿으니...” 그랬어요. 그러니까 생각할 때에, 이 백성들이 완악하고 노예생활 하면서 얼마나 말을 안 듣고 영적 문제가 많은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보냈다고 믿겠습니까? 내 말을 믿겠습니까? 이게 모세가 늘 불신앙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모세가 가서 말을 했는데 웬 역사입니까? 이 백성들이 다 믿었다고 했어요.
우리는 잘못하면 착각해요. 내 수준으로... 그런데, 복음은 내 수준에 매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통로기 때문에, 나 자신이 복음을 누리고 있으면 나 자신을 뛰어넘고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게 되면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모세가 볼 때, 이 백성들이 얼마나 완악합니까? 영적문제 많죠. 노예생활하면서 찌들려있죠. 그러나 이것은 모세 생각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보란 듯이 다 믿어버리잖아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복음 막는 자를 정죄해 버리고요. 하나님이 동역자 아론을 붙이신 것처럼 동역자를 붙이고요. 현장에서 복음 받을 사람을 예비하시고 다 믿게 되었다. 그 말이요. 이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거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치유되어지고 변화되어지고 우리가 이렇게 복음을 누리면서 쓰임 받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현장에서도 분명히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에요. 내가 이렇게 복음 받고, 치유 받고, 변화 받고, 쓰임 받고 은혜누리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 주변에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는 겁니까? 많이 있겠죠. 우리가 안 전해서 그렇죠. 안 믿으니까 “저 사람, 믿을 것 같지 않아, 저 사람 성질이 저래서 믿겠어?” 그러면 우리 성질은 얼마나 좋은데요? 내가 보니까 저 사람은 예수 믿을 상이 아니야. 그럼 여기 예수 믿을 상이 누가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말하는데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은혜를 계속 받으면서, 내가 이렇게 치유 받고 변화 받고 쓰임 받고 있는데, 그럼 우리 현장에도 그런 사람들 많이 있을 것 아니요. 모세가 착각한거요. “저 사람들은 완악해서 어림도 없어요...” 그런데 모세가 가서 말하니까 다 믿었어요. 이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말씀정리>
1.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신분과 권세를 일방적으로 누리면서 예배의 축복을 누리면 모든 문제 끝납니다.
3.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우리의 사상을 넘어섭니다. 우리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정말 이 복음 누리시고 복음 증거 하는 축복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복된 날 우리에게 예배의 축복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졌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이 볼 때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볼 때 가장 중요한 사람임을 확인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경건과 노력과 상관없이 신분과 권세를 주셔서 이 영원한 약속인 신분과 권세를 붙잡으며 예배 축복 누릴 수 있도록 복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나는 자꾸만 내 수준과 내 생각과 방법과 경험으로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지만, 복음은 어떤 사상도 초월하고 어떤 환경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인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누리게 하시고 현장에서 정말 복음 전도의 증인으로 쓰임 받도록 축복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전글 : 희생제사(출애굽기 3:15-22)
  다음글 : 명하신 대로(출애굽기 7:1-7)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