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03 주일 강단 메시지
출 3:15-22 희생제사
<성경말씀>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表號)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眷顧)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노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임하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본문>
1. 영적 사실
1) 잘 사는 것
사람들의 소원이 뭐냐면 잘사는 것 입니다. 불신자도 잘 사는 것이 소원이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도 잘 사는 것이 소원이고, 우리는 비록 어렵게 살지라도 내 자녀들은 참 잘 사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나중에 잘 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왜 일을 열심히 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소위 말해서 잘 사는 것이 뭐냐?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고 잘 산다고 말합니다. 명예를 가지고 권력을 가지는 것을 보고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식들을 잘 낳아서 자식들이 다 잘 되는 것을 보고 잘 산다고 말하고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살까요? 제가 보니까 잘 사는 사람들은 일단은 먹는 것을 잘 먹더라고요. 우리들은 먹기 위해서 먹지만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것이 뭔가 하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어요. 그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니까 잘 사는 사람은 여유가 있어요. 시간도 있고 돈도 있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거든요. 하고 싶어도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수 없어요. 잘 사는 사람은 일단 돈이 있고 시간여유가 많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요. 여행을 가고 싶다면 여행 가기도 하고, 사고 싶다면 사기도 하고 그게 잘 사는 겁니다. 또 남을 도와주고 싶다면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그게 잘 사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에 아주 부자가 나오고 거지 나사로가 나옵니다. 부자는 아주 잘 사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돈이 많으니까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세상 말로 말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도 어느 날 죽잖아요. 죽었는데 지옥에 갔습니다.
우리 이것을 볼 때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축복된 삶을 살아야 되지만 하나님 모르는 인생은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되요. 정말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세상에서는 잘 살았을지 몰랐어도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니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잘 사는 첫 번째가 무엇이냐?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상태에서 돈도 많고 건강하고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자식도 잘 되어지는 이것을 보고 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잘 사는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2) 지혜로운 사람
이 세상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저 사람은 배운 것은 없는데, 참 지혜롭다.” 그런 말을 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부를 별로 못했는데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요. 그럼 우리가 지혜롭다는 것과 어리석다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요, 별로 공부는 못했고 아는 것은 없어도 정말 알아야 될 것을 아는 사람을 보고 지혜롭다고 해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알아야 될 것을 잘 아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해요. 그 반대로 오만때만 것을 다 아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몰라요. 실제 자기의 삶에 적용할 것을 몰라요. 그런 사람을 보고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을 보고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부패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어리석은 자는 자기를 죽이고 미련한 자는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지혜로운 것이 뭡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란 말입니다. 그럼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바라볼 수 있습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멸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 예수 이름을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데 그런 우리를 영생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독생자 예수 되신 그 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것을 보고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어요. 이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다 그 말입니다.
3) 영적 사실
그러면 이 땅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눈에 안 보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에 있어요.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어요.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내 몸속에 있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데, 그 벗어난 영혼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 선조들이 귀신이 되어서 이 세상천지를 떠돌아다니니까 그 돌아가신 귀신을 잘 섬겨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잖아요.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천사가 됩니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이것을 안 믿습니다.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보여야 되는데 안 보이잖아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보고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면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농담 삼아서 얘기해요.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농담으로 얘기해요. 우리가 혹시 실수하고 잘못하면 “아, 너 지옥갈꺼야!” 우리가 잘못하면 지옥 갑니까? 그리고 조금 좋은 일 하고 기쁜 일 하게 해주면 천국갑니까? 구원 받은 영혼이 천국에 가고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을 가는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천국하고는 상관이 없고요. 구원받은 영혼이 혹시 잘못을 해도 그것은 지옥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눈에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안 믿어요.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흑암의 아들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게 보입니까?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안 믿는거요.
심지어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을 시험을 했어요. 돌을 가지고 떡 덩이를 만들어서 먹으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산 높은 데로 끌고 와서 “나에게 절하라.” 이런 것들을 누가 속이는 것입니까? 마귀가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자마자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안 믿는다니까요.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했잖아요. 성령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이잖아요. 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활동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요,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날 것도 천사가 가르쳐 주잖아요.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잖아요. 베드로를 초청하라. 천사가 한 얘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니까 안 믿어요. 그것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겁니까? 정신이 어디 있습니까? 코 밑에 있습니까? 눈 밑에 있습니까? 배꼽 밑에 있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정신이 있잖아요. 문제가 오면 병이 생기잖아요. 우울증 증상도 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디가 있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겁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요 그것을 보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사실을 아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 있어요.
2. 희생제사
1) 언약의 하나님
① 부르심
오늘 성경에 본문 15절에 보면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어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그러면 보세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셨잖아요. 언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는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우상숭배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어느 날 광야에서 목동생활 하면서 “하나님, 제가 바로에게 가서 애굽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백성을 건져내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모세는 정말 자기 삶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태에서 처갓집에서 목동생활하고 있어요. 소망도 없고 어떤 의미에서 사람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어요.
바울 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도 알고 하나님도 아는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지 못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그 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독을 품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어요. 베드로가 어느 날 주님을 바라보고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한 것이 아니라 어부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부르셨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역전되었어요. 우리 생애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그 순간부터 아브라함의 과거는 상관없는 거요.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름 받는 그 순간부터 모세의 모든 실패는 끝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핍박했던 그 모든 것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부터 다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과거는 다 끝난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 성도들이 과거의 상처 때문에 과거에 실패한 것 때문에 과거를 누구에게 말 할 수 없는 이것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은 분명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부터 우리 생애는 인생이 역전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세의 생애가 바로 그랬습니다.
② 언약의 하나님
그런데 너희 조상의 하나님,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자마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렇죠?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약속 하셨고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너는 샘의 근원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을 당할 자가 없었어요. 벧엘에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너를 지키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약속 한대로 야곱의 생애를 버리지 아니하고 그를 승리케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다. 그 말은 지금 모세가 애굽 땅에 갈 텐데 애굽의 사람들이 자기들이 뭔가를 섬기고 있었어요. 애굽의 신들이죠, 우상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상과 같은 미신과 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하시고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시키시고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승리케 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너희 하나님이시다. 우린 이 사실을 꼭 붙잡아야 되요.
2)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16절에 보면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렇게 쭉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그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고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그러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17절에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누구에게 장로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장로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얘기하면서, 너희들을 권고하는 것을 보고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거든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혼자 살라고 방치해 두셨습니까? 이삭을 “이제 네 힘으로 살아라! 나 이제 귀찮다. 나 하나님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네가 스스로 살아라 하셨습니까?” 야곱이 어려울 때 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이 야곱을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를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사람은 부족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함께 있다가도 함께 못해요. 우리가 자식을 기르다가도 속상하면 귀찮게 여기는데, 그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한 번도 아브라함을 놓치지 아니하시고 이삭을 놓치지 아니하시고 야곱을 놓치지 아니하시고 요셉을 놓치지 아니하시고 그를 인도하셨어요.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말이요. 저와 여러분이 이 부분을 붙잡으셔야 되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놓치시거나 버리시거나 주무시거나 졸거나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 말이에요.
3) 희생 제사
① 듣게 하시는 하나님
그러면 그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전하라고 했습니까? 18절에 보니까 “그들이 내 말을 들으리니” 그랬어요. 장로들이 그 말을 듣는다 그 말이에요. 장로들이 누구 말을 듣는다고 했습니까? 18절 다시 보면 “그들에 내 말을 들으리니...” 그랬어요. 내 말은 모세의 말이에요. 그런데 모세 자신이 생각해 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하라고 한 그 말을 이 장로들이 듣겠다는 그 말이에요.
우리가 전도현장에서 보면 이것을 참 많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복음을 전하게 되면 분명히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은 그 말씀을 잘 알아듣고요 그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요. 그런데 내가 아무리 복음 메시지를 잘 정리하고 메시지를 잘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안 들어요. 들었어도 절대 안 믿어요. 무슨 차입니까? 내가 잘 전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받고 내가 잘못 전하면 그 사람이 못 받습니까? 아니오. 하나님이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은 우리가 복음을 희미하게 설명해도 금방 알아듣고 영접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서 복음을 설명했어도 작정이 안 되고 시간표가 안 된 사람은 복음을 못 받아요.
그러니까 모세가 자기가 말할 것이 없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란 말, 바로 나를 보내신 이는 스스로 있는 분이다. 바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다. 이거 말하게 되면 장로들이 그 말을 듣게 된다. 그 말이에요. 그 말은 하나님이 장로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서 듣게 하시겠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이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지방에 가서 여인들에게 말을 할 때에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누가 열었습니까?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했다 그랬어요. 우리가 말을 잘 하기 때문에 복음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사람이 작정된 사람이고 주께서 그 마음의 문을 열면 그 분이 이 복음을 받게끔 되어 있어요. 지금 모세가 가서 말을 잘 해야 된다.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들을 듣게 하시겠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현장을 가는 것입니다.
②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이제 듣고 너는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바로에게 가라. 여기에도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길 원하세요.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세요.
우리가 복음전도 현장은 혼자서도 되어지지만 함께 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지금 캠프를 준비하고 있잖아요. 캠프 현장에 나가는 분도 계시고 또 못 나가는 분은 기도로 후원하는 거요. 이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캠프에 AUC 강의로 인해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맹강도사님이 전체를 진행을 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캠프를 안 하는 겁니까? 아니오. 저는 기도로 맹강도사님과 현장에 나가는 분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하는 거거든요. 그게 하나 되는 것입니다. 내가 참석하지 못해도 기도하는 것 이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 시간 낼 수 있는 분은 가서 현장에 가서 사람 연결시켜 주는 것 이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모세 너 혼자 애굽의 왕에게 가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알아듣는 장로들과 함께 바로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현장에 보내실 때 둘씩둘씩 짝을 지어서 함께 보내셨는데,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는 사람들을 자꾸만 이간질시키고 분리시켜서 따로따로 만들게 하는 거요. 그런데 복음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다 하나 되어져서 복음 전하는 방향으로 쫙 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로마 복음화가 되었어요. 사단의 역사는 전부다 마음이 갈래갈래 다 찢어져요.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 되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거요. 바로에게 가는데 모세 혼자 가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 말을 알아듣는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함께 하는 공동체의 축복을 누리는 거요. 우리는 이 지역복음화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공동체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현장에 갈 사람이 있고 기도로 후원을 할 사람이 있고 내가 또 못하면 내가 물질로도 후원할 수도 있고 이게 공동체요. 성령께서는 하나되게 하세요. 반면 사단은 이간질 시키고 분리시켜요.
③ 살게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 가서 애굽 왕에게 우리가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 그 말이요. 그러면 애굽에 있는 백성들이 왜 노예가 되었습니까? 피제사 언약을 놓쳤기 때문에 노예가 되었거든요. 그러면 여기에서 이 백성들이 사는 길이 피 제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백성들에게 그리고 바로 왕에게 가서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 “야, 너 애굽에 있는 내 백성에게 가서 너 왜 그렇게 애굽에서 율법을 못 지켰냐? 율법좀 제발 지켜라! 왜 너희들이 그렇게 충성하지 못하고 불순종하고 살았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뭘 하라고 한 것입니까? 희생 제사를 회복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 왜 희생제사입니까?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 이 백성들이 노예 생활에서 살아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희생제사란 말이에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어요. 왜 노예가 되었습니까? 왜 사람들이 죄와 사단과 지옥 권세에 매여 있습니까? 구원 못 받아서요. 그러면 구원 받는 길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랬어요. 바로 길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희생제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염소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신 사건입니다. 이게 희생제사란 말이에요.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희생제사를 드리라. 그래서 우리는 보혈의 피를 찬송하잖아요. 구약 성경에 많은 얘기들이 피제사 드리는 거요. 그게 바로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요 내가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길 외에는 없어요. 우리는 선행도 좋고 진실도 좋고 성실도 좋고 봉사도 좋고 충성도 좋고 구제도 좋지만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니요. 피제사, 희생제사,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만이 우리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희생제사를 드리라 그 말이요.
4) 능력의 하나님
그런데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바로 왕이 금방 풀어주겠냐? 아니란 말이요. 내가 강한 손으로 친 이후에야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단이 그냥 안 놔둔단 말입니다. 끝까지 발악한다는 말입니다. 기적을 행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가 사단이 존재하고 사단이 사람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보혈의 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말할 길이 없어요. 어떤 능력, 어떤 기적, 신비한 사건으로도 사단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해요.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른 날 빠져나왔어요. 그 때 완전히 사단이 꺽여요. 하나님이 기적으로 행사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그럴 뿐 만 아니라. 이 백성을 빈손 들고 나가지 않고 애굽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이게 지금 노예생활 하던 사람들이 온갖 물품을 다 취하고 나와요. 물질적인 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풍성하게 하겠다 그 말이요.
3. 하나님의 역사
1) 준비하라
그러면 이 축복을 우리가 같이 누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뭐냐? 우리 성경을 다시 한번 보세요. 15절의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랬어요. 우리 성도들은 “또” 라는 말에 성경에 동그라미를 쳐놓으세요. 이 “또”가 중요합니다. 이게 자꾸 사단이 속이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그랬답니다. “우리 목사님은 설교를 들어보니까 지난주에 하신 얘기를 또 하시네, 한 달 전 테이프를 틀어서 들어보니까 그 얘기가 알고 보니까 또 하셨네, 작년 테이프를 틀어서 들어보니까 또 그 말씀하셨네...” 그러더래요.
일반 사람들은 같은 말을 자꾸 하면 식상합니다. ‘목사님, 할 말이 없나보다. 왜 이렇게 잔소리를 자꾸 하실까? 그 말 또 하셨구나!’ 그런데 이게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말씀이 없어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시되... 그랬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번 말했으면 됐지 또 말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또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또 말하면 안됩니까? “또”가 너무 중요합니다. 하여간 이거 모르면, 여러분 사단에게 속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신분이 바뀌는 것은 즉각적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 습관은 즉각적으로 바뀝니까? 밤늦게 까지 잠을 안자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학생이 예수를 믿는 그 순간 게임을 끊어버리고 초저녁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됩니까? 구원은 단번에 받아서 신분이 바뀌지만 밤늦게 까지 컴퓨터 게임하던 아이는 쉽게 안 고쳐집니다. 제가 우리 교회 어느 분에게 그런 얘기 했어요. 이 친구는 늘 늦게 잔대요. 1시 2시 이렇게 자요. 그래서 제가 12시 이전에 자라 그래야 새벽에 일어날 수 있다. 그거 3개월 노력하는데 안 된대요. 여러분, 우리가 습관 하나 바뀌는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라는 말을 그래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이 금방 바뀝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는데, 우리의 있었던 생각들, 체질들이 금방 바뀝니까? 참 안 바뀝니다.
여기 연세 드신 우리 권사님들 중에는 우리 어머니랑 비슷하세요. 저희 어머님은요, 음식 남으면 절대 안 버리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그 다음 끼에 또 드세요. 제가 여러번 얘기해요. “어머니, 음식 남은 것 잘못 드시면 탈나니까 버리세요.” 그런데 안 버려요. 왜 그렇습니까? 생각이 ‘이 음식이 얼마나 귀한 건데...’ 옛날에 우리 어르신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셨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음식을 안 버려요. 아까워서... 돈으로 치면 사실 얼마 되지도 않거든요. 그러다가 잘못 먹어서 한 번 탈나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몸 약해지죠, 돈 들죠. 고생하거든요. 그 생각이 잘 안바뀝니다. 구원 받아서 권사님인데도 생각이 잘 안바꿔져요. 그래서 제 아내와 저희 어머니와 늘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저희 어머니는 냉장고에 넣고 제 아내는 버리려고 하고... 그래서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살짝 갔다 버립니다. 그게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왜냐면 그 생각이 옛날에 다 어렵게 살았잖아요. 밥 한 그릇 가지고 온 식구가 다 먹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아까운 것...’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생각이 그냥 바뀌냔 말이에요.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자꾸 얘기하니까 지금은 우리 어머니가 바뀌셨어요. 몇 년 동안 제가 얘기했어요. 그런데도 어느 날 보면 또 옛것이 나와서 제가 냉장고 열어보면 냉장고 열어보면 냉장고 구석에 먹던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라는 말을 알아야 됩니다. 얼마나 우리가 불신자의 체질이 깊이 박혀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들어서 복음적인 생각을 하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 뺑 돌아서 정죄를 하고, 판단을 하고 있어요. 얼마나 우리에게 율법적인 체질이 젖어 있었는지, 금방 바뀌냔 말이에요. 안 바뀌죠. ‘그래,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수준으로 봐야지...’, 메시지 들었어요. 하나님의 수준으로 보셨어요? 메시지들을 때는 ‘그래, 우리 소중한 remnant(램런트), 너무너무 귀하지...’ 그렇게 봤다가 조금 말 안 들으면 “요놈의 새끼가... 이게 뭐...” 금방 돌아가 버려요.
그래서 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도 모세에게 반복해서 또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우리는 평생 동안 말을 해야 되요. 우리 성도들 중에 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간첩이요. “또”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면 간첩이요.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평생에 복음을 들어야만 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어요.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어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서 믿음이 생기는 거요. 이 축복을 누려야 되요.
2) 평소의 은혜
① 예배
그러면서 우리는 평상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람들은 육신적인 일은 금방 알아들으면서 영적인 일은 참 못 알아듣습니다. 우리가 어제 식사를 다 하셨잖아요. 그런데 오늘 또 식사를 하십니다. 내일 또 식사를 하십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식사를 하십니까? 한 번 하고 마시지, 배가 고프니까 하죠. 물론 배가 고프니까 하는데,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한번 왕창 먹었으면 안 먹어야 될 것 아니요. 예배도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만날 드려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에게 꼭 묻고 싶습니다. 밥은 뭐 만날 먹어요? 일주일치 왕창 먹어버리고 굶죠. 죽어라 하고 밥은 먹으면서,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요. 바쁜 사람은 서서라도 밥 먹어요. 그런데 예배는 안 드려도 되는 줄 착각해요. 그게 망하는 것입니다.
평상시 우리가 식사를 잘 해야만 육신의 건강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평상시 예배에 승리해야 만이 우리의 영적 생활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육적인 것은 잘 알면서도 영적인 것은 모르는지 그것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그래요. 우리가 건강관리도요 평상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건강한 거지, 운동을 실큰 안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동하면 병걸려요. 우리는 영적생활, 예배가 평상시 되어야 됩니다. 지난주도, 이번 주에도, 다음주에도 예배 승리하고 그렇게 평생 가는 것입니다.
② 기도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또는 새벽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 일과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오늘 내가 만남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내 인생 스케쥴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하루를 마칠 때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또한 하나님이 이루실 꿈을 놓고 기도하고 이게 쌓여져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큰 기도 안하다가 어느 날 사건 생기면, “주여, 살려주세요.” 평상시 안 하다가 물론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은 바른 것 아닙니까? 저는 옛날에 잘못 깨달아서 무슨 일만 생기면 보따리 싸들고 기도원 다닌 사람입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너무 많이 굶어서 제게 속병이 좀 있어요. 너무 잘못된 거잖아요. 평상시에 우리 기도하잖아요. 평상시 기도하면 이게 쌓여져서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거 다 놓치고 살아요. 사람들이
③ 전도
그러면서 하나님의 소원은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언제요. 평상시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생각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정확한 시간표 따라 복음 전하는 거요. 아무 관심도 생각도 없다가 야, 오늘 전도 캠프니까 복음전해야지, 그랬다가 한 번도 안 만났던 사람에게 갑자기 “한번 찾아갈게.” 하면 놀래서 “왜와?” 그러잖아요. 평상시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가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지, 평상시에 생뚱맞게 있다가 전도 대상자 적어내라고 하니까 그 사람 적어 내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리가 없잖아요. 늘 전도 준비하는 것, 축복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
그럼 우리가 이렇게 예배가 되어지고 기도가 되어지고 전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했어요. 우리가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이 쌓여져서 계속해서 예배를 통해서 내가 은혜를 받고 복음이 확립되어지고 기도가 되어지고 전도대상자를 놓고 늘 관심 갖고 준비하고 있을 때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같이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말씀정리>
1. 지혜로운 사람은 영적 사실을 알고 누리는 사람입니다.
2. 정말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제사 피제사 이 예배의 축복을 누리면 되요.
3. 정말 하나님의 역사는 나를 완전히 복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평상시에 기도가 준비되며, 예배가 되어지며, 전도 준비할 때 하나님의 역사 일어난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복된 날, 우리에게 영적인 사실을 알게 하시고, 언약의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축복을 누리게 하시고, 내가 복음 안에 지속적으로 말씀을 듣고 확립되고 예배와 기도와 전도에 방향 맞추고 인도받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축복을 깨닫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이 축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누리는 한 주간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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