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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소원(출애굽기 3:1-12) 조회수 : 197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8-23
  첨부파일:   20060820 주일 강단 메시지.hwp(82K)
20060820 주일 강단 메시지
하나님의 소원(출애굽기 3:1-12)

<성경본문>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 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 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 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예배 메시지>
1. 들을 말씀
1) 들을 말씀
저는 지난 주간에 제가 잘 아는 선배 목사님이 이 곳에 와서 같이 좀 지내다가 그 목사님이 지나가는 말로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자기 교회에 일류대학을 나온 훌륭한 엘리트가 있는데, 교회학교 교사를 맡아서 봉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선생님은 가끔 가다가 주일 예배도 빠지고 저녁 예배를 나오지 않느냐?” 이렇게 물었더니 그 자매가 하는 말이 “들을 말이 있어야 교회를 가죠.”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그 때부터 설교 준비하는데 생을 걸었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이 많이 바쁘잖아요. 그런데 금요일 오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도원을 가서 토요일 까지 이틀 동안 계속 기도하면서 설교 준비를 하시는 겁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으면 토요일 일을 보고 오후에는 반드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쉬면서 설교준비를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목사님이 훌륭한 목사님이다. 이렇게 바쁜 일이 많지만 설교 준비를 위해서 이틀을 투자한다는 것은 좋은 목사님이고 훌륭한 목사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그 말이 맞는 말인데, 틀린 말이 아니겠는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엘리트인 자매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닐 때 1학년 때는 그 때 교과서를 배우잖아요. 2학년이 되면 2학년 때 교과서를 배우잖아요.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또 3학년이 되면 새로운 책을 공부하게 되는데, 이 자매가 혹시라도 교회를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처음 예수 믿는 사람이나 평생 예수 믿는 사람이나 성경 말씀 한 권 가지고 평생을 듣다가 천국을 갑니다. 오늘 처음 예수 영접해서 하나님 자녀 된 사람도 성경 말씀 듣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 믿는 사람은 평생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성경 한 권 가지고 우린 말씀 듣고 삽니다.
저는 이런 생각 하게 되었거든요. 제가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평생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정말 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아이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칭찬의 말을 해주고 믿음의 말을 주고 격려의 말을 주는 것이 평생 부모로서의 할 말이 아니겠는가? 물론 새로운 얘기도 많이 하겠지만 결국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 가지고 칭찬과 격려와 믿음의 말을 주는 것이 평생의 할 말이지 다른 말을 또 해야 될 것인가? 물론 모양은 다르고 색깔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 후대들이 부모의 사랑과 칭찬과 격려의 말을 못 듣기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고 어긋나고 반항적이고 부정적, 비판적인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의 사랑의 말을 잘 못 들어서 그러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천국 갈 때까지 하시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평생토록 들어야 될 말이 무엇일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하나님의 사랑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정말 들어야 될 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땅에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하는데, 계속 어지럽고 혼란하고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빛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라는 말이죠. 사람들이 착하고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고 해도 자기에게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사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땅에서 실큰 노력하다가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끌려 다니며 살다가 지옥에 갑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냐 여인의 후손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사람들이 망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이 땅의 문제의 원인은 사단에게 있었고, 이 문제의 해결자인 그리스도를 보내겠다는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왜 기록했습니까? 요한복음 20:31에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힘입어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이 계속 들어야 될 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이나 평생 믿는 사람이나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들어야 될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까?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멸망치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어야 될 말이 무엇입니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 안에 있어야만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싶은 것이고 이것을 하나님의 자녀 된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듣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들을 말이 있어야 교회를 간다.’ 맞는 말인데 이게 굉장히 위험한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들어야 될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어야 되고 이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거요. 이것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2) 택함 받은 자
그럼 누가 이 말을 듣습니까?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사람이 이 말을 듣습니다. 그럼 누가 택함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인격이 훌륭하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그를 택하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형제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사람을 비교해보면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에서가 훨씬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에서는 남성답고 사냥도 잘하는 오늘말로 말하면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남자가 힘 있고 능력이 있어야지 힘이 없어서 늘 엄마 치맛자락 쫓아다니면 되겠습니까? 만약에 제 딸이 결혼 상대자로 에서 같은 사람, 야곱 같은 사람 두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아빠, 어떤 사람이 제 남편으로 좋겠어요?” 그러면 저는 제 기준으로 보면 에서와 같은 사람을 택할 것 같아요. 왜냐면 힘도 있지, 사냥도 잘하지, 능력도 있지 그러면 ‘저 사람이 내 딸을 잘 먹여서 살리겠구나!’ 이런 생각 가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야곱은 여성스러워서 힘도 없지 사냥도 못하지 자기 할 일도 못하고 그러면 ‘저런 사람이 내 딸을 먹여 살리겠는가?’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은 왜 에서를 택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택하셨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항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때, ‘나 같이 잘 난 사람을 택하시지 왜 못난 사람을 택하셨습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라. 능한 자가 많지 않고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그러면서 바울이 깨달은 것은 “세상에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택하셨다.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택하셨다.”고 그랬어요. 바울이 깨달은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참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인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셨습니다. 여기 혹시 “하나님 저 잘나서 택했죠?” 그런 사람 있습니까? 내가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해서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축복의 대열 속에 있는 것입니다.
3) 말씀을 따라
이렇게 택함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사람은 내 방법대로 내 수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까? 자수성가한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사람이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서 성공했다. 그런 사람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힘이 나고 ‘저렇게 살아야지, 얼마나 훌륭하냐! 아무것도 빈털터리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 없이 저렇게 수고하고 노력해서 성공한 자리까지 왔으니 얼마나 귀하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본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잘못하면 중요한 맹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성공은 맞는 말이지만 잘못하면 이 사람이 복음 모르고 하나님 모르면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야 되고 내가 수고하고 내가 결단을 내리고 내 경험이 중요하지만 이것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이런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후대를 교육시킬 때 “야, 너 혼자서 참 잘한다. 너 스스로 잘해라.” 이렇게 가르치잖아요. 우리 자식을 언제까지 도와줄 것입니까? 네가 무슨 일을 할 때 네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인도받아라. 이렇게 가르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만약에 아이들이 이렇게만 자라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모른다면 나중에 성공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어서 주인 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2. 하나님의 소원
1) 부르신 하나님
① 인생 역전
출 3;1에 보면 모세가 그 장인 집에서 양 무리를 치는 목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 인생이 이상하게 된 것 아닙니까? 모세는 왕궁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미래가 보장받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출애굽기 3장에 보니까 미디안 광야에서 한 제사장 집에서 양 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모세가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겠죠. 모세의 생각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자기에게 젖을 먹였던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 있잖아요. “네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바로 너를 통해 이 민족을 살리길 원하신다.” 이 말을 계속 들은거죠. 그런데 모세가 왕궁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다 보니까 ‘내가 이만큼 교육을 받았으니까 이제 내가 내 백성을 살려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진거죠. 물론 잘못된 마음은 아니죠.
어느 날 평민들이 사는 마을로 갔더니 애굽의 군인이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말렸겠죠. 그런데 애굽 군인이 말을 안 들어서 모세가 한 방 쳤어요. 한 방 맞았는데, 죽어 버렸어요.
여러분, 한 방 맞았는데 죽었다는 말은 얼마나 이 사람이 힘이 있다는 말이고 상대방의 급소를 안다는 말이죠. 무서운 것 아닙니까? 사람이 훈련을 받은 사람은 무섭습니다. 1부 예배 때 이강준 집사님 나오셨는데, 운동으로 다져진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얼쩡대다가 성질나서 한 번 잘못 받으면 가버립니다. 무섭잖아요.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자기 교회에 태권도 7단이 있는데, 그 분이 목사님한테 그러더래요. “목사님, 저는 사람만 보면 급소가 보인대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아, 저 사람은 저기 치면 죽겠다.’ 게다가 손이 얼마나 큰지 어린아이 머리통 크기만 하데요. 그러니 사람이 얼쩡대기만 하면 때리고 싶어도 급소만 보이니까 때릴 수가 없는 겁니다. 아마 모세가 그랬던 것 같아요. 훈련을 받으니까 모세가 사람을 한번 쳤는데, 급소를 쳐서 그 사람이 죽은거요. 그래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모세가 살인자, 지명 수배자가 된 겁니다.
그래서 바로의 왕권이 미치지 못하는 광야로 도망가서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그게 미디안 제사장 집이란 말입니다. 아니, 왕궁에서 미래가 촉망되던 사람이 갑자기 살인자가 되어서 저 광야로 도망가서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올 수 없는 그 곳에 가서 사는 이러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데 그 곳에 갔었어도 자기 것이라도 있으면 희망이라도 있을텐데 자기 것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나라 옛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갓집 신세 안 진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런데 모세는 얼마나 비참한지 먹을 것이 없으니까 처갓집에서 목동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어떤 소망이 있겠으며, 어떤 비전이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나이가 80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모세의 인생은 이러고 끝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아무 소망 없이 살다가 노인이 되었으니 끝나고 나중에 천국 가는 겁니다.
② 부르신 하나님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면 우리 인생은 역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는데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그 땅에서 네 신발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발을 벗으라고 했는데, 왜 신발을 벗으라는 말입니까? 이 당시에 자유인들만이 신발을 신을 수 있었습니다. 노예는 신발을 안 신은 것입니다. 모세는 스스로 생각할 때 자기는 자유인이거든요. 그런데 모세는 자유인입니까? 살인자로 지명 수배 받아서 도망 다니는 신셉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지금 네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여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발을 벗으라는 말은 완전히 너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너의 인생의 주인이 네가 아니고 이제는 내가 너를 대신해서 살아준다는 말입니다. 완전히 내가 네 생애를 책임지겠다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자마자 하신 말씀이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랬어요. 그 말은 무엇입니까? 떠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네 생애를 살아주겠다. 책임지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제까지는 네 힘으로, 네 방법으로 네 경험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네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가 너를 대신해서 살아주마.”그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전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고 완전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완전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때 내 인생에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내가 내 수준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내 수준 이상을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 인생 주인 되셔서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이런 축복을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이게 모세의 인생입니다.
2) 보시는 하나님
그럼 모세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모세의 생애를 전혀 모르겠습니까? 모세는 아마 이런 착각을 했을 거에요.‘아, 내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의 억울한 것을 보고 계시겠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 하면서 그 괴로움을 하나님이 보겠냐? 이런 생각하잖아요.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앉고 일어서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님이 다 보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은 택함 받은 저와 여러분의 생애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키시고 내가 외로울 때도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시고 내가 답답하고 억울할 때도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해요. 애굽의 백성들이 우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보셨다는 말이죠. 모세가 지금 광야에서 이 장인의 양을 치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이 한번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셨다 그 말이에요. 우리의 생애를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세요. 왜 그렇습니까? 우릴 지키시려고요. 내 생애를 하나님은 보고 계세요.
3) 하나님의 소원
① 하나님의 계획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뭐냐? 내 백성이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분명히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지배당하고, 학대당하고, 고통당하고, 괴로움당하는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잖아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기를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바로 네 후손을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인데 이 백성이 하나님의 계획과 영 반대의 삶을 살고 있잖아요. 꼭 저와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게 우리 인간입니다.
② 하나님의 소원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을 다 놓쳐버리고 지금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을 저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살게 해서 저들로 하여금 축복된 삶을 살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소원은 바로 자식이 축복된 삶을 사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저와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은 이 땅에서 가장 복된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흑암의 나라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 옮겨져서 천국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란 말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서 영적으로 시달리고 고통당하고 망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란 말입니다. 이 땅에서 도적 같은 사단에게 속아서 있는 것 다 빼앗겨 버리고 망하고 거지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풍성을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란 말입니다.
③ 하나님의 방법
그래서 하나님이 이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 10절에 보면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이 이 축복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자로 모세를 부르셔서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죠.
여러분, 성경의 원리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빌립 집사님을 택하셔서 유대인들이 전혀 가지 않는 사마리아 땅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백성들이 귀신에게 눌려서 살고, 중풍병자 앉은뱅이 되어서 이 땅에서 정말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빌립 집사에게 은혜를 주셔서 남들이 안 가는 사마리아 땅에 가게 하신거에요. 하나님이 보냈으니까 가서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거기에 택함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자마자 귀신들이 떠나가게 되고, 중풍병자가 낫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빌립집사님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누구도 그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인지를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게 하셨어요. 저렇게 성전 미문에 앉아 있어서 거지처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님을 알았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잖아요. 베드로가 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랬더니 이 사람이 택함받은 사람이니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용하는 거잖아요.
어느 날,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 가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로마의 백부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를 많이하고 구제도 많이 하는 사람인데 그리스도를 몰라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베드로를 보내서 베드로가 “내가 고넬료 집에 가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베드로로 하여금 고넬료 집에 가게 하잖아요. 가서 한 일이 내게 있는 그리스도 내가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 말했는데,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요. 베드로가 똑똑해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베드로를 그렇게 사용하신 겁니다.
루디아라는 여인이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그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 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래 바울이 가고 싶은 길을 막아놓고 바울의 길을 빌립보 지방으로 가게 했어요. 그래서 며칠동안 그 곳에 있는 동안에 여인들이 우물가에 앉아 있으니까 바울에게 하나님이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물가에 앉아 있는 여인들에게 그가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듣게 했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바울을 쓰셨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루디아는 빌립보 지역을 복음화 할 사람으로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듣게 하신거죠. 그래서 루디아를 통해서 빌립보 지역이 복음화 되었어요. 하나님이 곧 바울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는 것처럼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거요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잖아요. 내가 똑똑해서 ‘주님, 나를 부르소서! 내가 가겠습니다!’ 그래서 부름 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셨어요.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축복의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택함 받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이 축복의 대열에 쓰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참 감사하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셨잖아요. 노예로 팔려가게 하고 감옥에 가게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 기근이 오기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을 살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셉을 그 길로 인도하시고 이 일에 요셉을 사용하셨어요. 그래서 야곱의 가문을 다 살려내고 전 애굽을 다 살려냈잖아요. 하나님이 하신 거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하나님은 한 사람을 들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자를 하나님이 세우시는 거요. 이 축복된 일에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약속
1) 영원한 약속
그러면 이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모세가 말하잖아요.“하나님, 내가 누구관대 내가 바로에게 가며,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면 우리도 모세처럼 말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 내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죠. 잘난 것이 있어야죠. 내가 뭐길래 바로 왕에게 가서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내가 무슨 힘으로 건지겠습니까?” 당연한 질문 아니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이 하신 영원한 약속입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은 곧 “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사용해서 이 일을 하겠다.” 그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잖아요. 그러면서 첫 번째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하기 위해서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모든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승천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영원한 약속입니다.
여러분, 휴가철을 맞이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저도 이번 여름동안 여러 손님들이 와서 제가 여러 손님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휴식이 뭡니까? 제가 휴식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 편안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하루, 이틀, 사흘 지나도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그게 휴식입니다. 반면, 내가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흘 정도 같이 지냈다고 하면 몸살 납니다. 그렇잖아요.
저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세상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편한 사람,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좋잖아요. 하물며 내 인생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데, 이 축복 누리는 것처럼 복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내가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너희와 함께하며 네 속에 영원히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오겠다고 약속하시잖아요.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단 말이에요. 그래서 모세가 걱정할 것이 없어요. 만약 하나님이 모세에게 ‘야, 네가 왕궁에서 40년 동안 배웠지 않니? 병법도 배우고, 리더쉽도 배우고 많이 공부했잖아. 니 힘으로 해라!’ 그러면 모세가 어떻게 하겠어요. ‘니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겠다. 내가 함께 하는데 너를 내가 사용하겠다.’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십니까?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이후에...” 그랬어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애굽 땅에 있는 내 백성을 인도하겠다는 것이잖아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할 일은 하나님의 인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어떻게 애굽에 있는 그 백성들을 인도했습니까? 하나님이 그 때마다 주신 말씀 가지고 바로에게 가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말을 잘 안 듣잖아요.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어요. 그래서 모세가 바로 앞에 가서 그 말을 전했어요. 그게 인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내가 막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내가 되게 하려 한다고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시는데 이 땅에 65억 인구가 되겠다고 힘을 합친다고 됩니까?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애굽 땅에 있는 내 백성을 하나님이 건지시겠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런데 모세는 이것을 믿잖아요. 가서 모세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만 전해줬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바로는 꺽어지고 400년 동안 종살이 했던 그 문제가 해결 됬어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이 땅에서 어떻게 인도를 받습니까? 내 경험 따라 인도 받는 것이 아니고, 내 공부한 지식 따라 인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도를 받습니까? 하나님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강단을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한 주간 동안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강단 말씀과 연결시켜 보세요. 그럼 반드시 거기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래, 목사님 참 말 잘하는구나!’ 그렇게 깨달으면 그건 실패한 것입니다. 무슨 목사가 말을 잘 하겠습니까?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제 말 들어서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강단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정리해보고 이 말씀을 내가 어떻게 적용할까 생각해보고 또 이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까 생각하는 것이 응답이요. 인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실천하게 되면 인도 받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막 힘쓰고 애쓴다고 하면 우리는 잘 못하잖아요. 그러나 말씀을 우리가 자꾸 듣고 묵상하고 정리해보고 적용해보고 실천해보고 어떤 문제가 왔을 때 이번 주 강단 메시지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이게 처음에는 안되는데, 계속해서 하다보면 되어집니다. 이게 인도받는 길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
① 예배의 축복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12절에 보니까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그랬어요. 그러면 여기 중요한 비밀이 있잖아요.
애굽에 노예생활 하고 있는 백성들이 왜 노예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가 물론 요셉의 후손들이 언약을 전달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뭡니까? 이 사람들이 예배를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제 내가 너와 함께 해서 이 백성을 인도해 낸 이후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 그 말입니다. 그것은 곧 예배를 회복하겠다는 말입니다. 예배가 회복이 되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됩니다.
우리 개인적인 문제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억울한 일 답답한 일이 많잖아요. 힘든 일도 많고 괴로운 일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를 다 가지고 왔는데, 예배 시간에 예배를 통해서 흡족한 은혜를 받으면 그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치면서 어떤 사람은 술 먹고, 화투치고 그러다가 결국은 무너지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해결합니까? 어려운 일, 답답한 일 생기면 어떻게 해결합니까? 내가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고민스럽고, 괴롭고 좌절하고 낙심될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말입니다. 그 시간에 말씀 묵상하고 예배를 드려보세요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런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 주신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그 문제를 뛰어넘어 버리게 된다니까요. 그것이 우리가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 인간을 망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예배를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가인이 화가 나서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예배가 안 된다는 말은 결국 사단에게 속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이게 가인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실패해서 인생 실패를 한 것이 가인입니다. 예배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온 것이요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속고 있다는 말이죠.
마태복음 4장에 보면 40일 금식 기도를 한 예수님에게 사단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하잖아요. 시험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입니까? 경배대상을 바꾸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예배하지 말고 마귀 사단에게 예배하라는 말이잖아요. 이게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경배 대상을 바꾸라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고 다른 것을 바라보라는 것이 사단의 목적입니다. 바로 이게 창세기 3장문제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바라보지 않고 너의 힘으로 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가 뭡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인간의 방법으로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사단에게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인간의 근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계가 고장 나면 시계방에 가야 고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가 오면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가야만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예배인데 사단은 이 예배를 놓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만들고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통해서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을 인도해내서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 이게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다.” 바로 이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예배를 놓치고 있으면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점점 메말라 죽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예배가 안 되어지면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힘을 잃고 결국 문제가 오는 것 아닙니까?
②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결국 우리가 회복해야 될 것이 뭡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답답한 일은 답답한 일이 아닙니다. 은혜를 지속해서 받으면 과거의 상처는 상처가 아닙니다. 이게 놀라운 비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에게 너무너무 소중한 영적 자녀요 믿음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딤후 2:1에 내 아들아 하면서 하신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할 때, 우리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우리가 강하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서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잖아요. 우리 성도들이 지나간 여름 동안 얼마나 고생 많았습니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듭니까? 물건 하나만 사도 좋니, 나쁘니 그러고 방에 와도 텔레비전이 잘되니, 안되니 별의 별 말 다하는데, 그 스트레스 우리가 어떻게 받고 삽니까? 이러한 우리 현장에서 은혜 못 받으면 열불나서 못 살아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너 까짓것 우리 집에 오지 마라!’ 그러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도 와야지 그렇잖아요. 정말 우리는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지 않으면 열불나서 못삽니다. 억울해서 못삽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정리>
1. 우리는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택함받은 사람은 말씀을 따라 삽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은 나 자신이 이 땅에서 가장 풍성한 복음을 누리고 죽어가고 있는 택함받은 저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3. 이 일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로 인도받게 해서 은혜 속에서 강해서 이 일을 감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내가 택함 받은 하나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고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내가 복음을 풍성히 누리고 택함받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내 인생의 쓰임을 받는 것이 소원인 것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축복된 일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삶을 인도하셔서 주의 은혜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증인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축복을 한 주간 동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풍성히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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