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녹취
•홈  >  메시지  >  강단녹취
  제  목 : 전달하는 사람(창세기 48:20-22) 조회수 : 191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7-06
  첨부파일:   20060702 주일강단 메시지.hwp(80K)
본문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되게 하리라
1) 하나님의 약속
성경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잘 알아야 되겠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자마자 어떤 약속을 하시냐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십년쯤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약속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상숭배하고 있었던 믿음도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처음부터 약속을 주셨어요. 만나자마자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주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을 붙잡아야 되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게 안 믿어지니까 불신앙도 하고 염려도 하고 근심걱정 했어요. 그런데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되게 하시잖아요. 우리는 이것을 꼭 붙잡아야 되요.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는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을 받았는데, 불신앙을 하는거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뤄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켜 나가십니다. 지금도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약속을 붙잡는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축복
우리는 그냥 무조건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조건 믿어요!” 뭘 무조건 믿어요? 무조건 믿다가는 큰일 납니다. 믿을 것을 믿어야 되요. 무엇을 믿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되요. 어떤 사람은 사기꾼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틀림없이 사기당합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고 헛된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딱 붙잡는 것, 이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노예가 됩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입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사람이요 창대케 될 후손인데 이 약속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 땅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 합니다.
지금도 똑같아요.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충만한 축복을 받게끔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놓쳐서 엉뚱한 것을 섬기고 있거든요. 우리가 지배해야 될 것을 섬기고 있어요. 그것을 보고 노예요. 꼭 노예가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다니는 것만 말합니까?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축복을 잊어버리니까 400년 동안 노예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것 몰라서 지금까지 노예생활 하고 있어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뭔가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단지 하나 놓고 단지 속에 뭐가 있나 제가 한 번 보니까 쌀도 넣어 놓고 별거 다 집어넣어놨어요. 그것을 모시고 섬기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노예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뭔가를 붙여놨어요. 배게 속에, 가방 속에, 이불 속에, 심지어 어떤 사람은 팬티 속에도 부적을 집어넣었어요. 그것이 노옙니다.
제가 신문에 보니까 어떤 남자가 섬으로 팔려가서 노예같이 생활해요 도망갈지 모르니까 옷도 홀라당 벗었어요. 노예란 참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뭔가 잡혀 있는데 그게 노예란 말이에요. 거기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라고 했어요. 그것이 피 언약,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발라지는 그 순간 노예생활에서 끝나버려요.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노예에서 빠져나왔습니까? 우리 성도들 중에 여러분 계시지만 과거에 노예생활 하시지 않았어요? 우리 어머니도 노예생활 하셨거든요. 뭔가에 섬기고 빌고 하셨어요.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믿는 순간 완전히 빠져나왔습니다. 사주팔자 운명에서 완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섬길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운명, 저주, 재앙 사주팔자에서 완전히 빠져나왔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실패하는 사람들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안 믿는다. “아이구, 그래도 그렇지... 목사님...” 제 말입니까? 정말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하던 이 사람들이 희생제사를 드릴 때 빠져나왔어요. 그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아이구, 목사님... 무슨 그런말을 합니까?’ 그러니까 망하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지금도 실패자들의 특징은 말씀을 안들어요.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약속으로 꼭 붙잡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감사하게도 이 축복의 대열속에 있잖아요.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3)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희생제사 바로 그리스도가 깨달아졌어요. 그리고 말씀이 내게 들리고 믿어지고요. 또한 적용되어지니까 더 이상 우상숭배, 귀신 섬길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는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적용되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하나님 은혜로 공부 잘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듣는대요. 그러니까 애가 공부를 잘한대요. 맞는 말이잖아요. 꼭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선생님 말할 때 안 듣고 장난하고 있어요. 어떤 아이들은 듣긴 들어도 속으로 공상을 해요.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공부를 못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안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공부를 못합니다. 왜냐면 선생님들이 교사를 몇 년 합니까? 오래한 사람일수록 무엇을 가르쳐야 되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졸지, 공상하고 있지, 집중 안하는 사람들은 공부 못합니다. 그런데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놀 땐 잘 노는데, 선생님이 수업 시작할 땐 공부 잘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생활도 말씀이 잘 들리면 신앙생활 잘 한다. 그런데 말씀할 때 졸고, 말씀할 때 이상하게 엉뚱한 생각이 들고요. 평상시 잘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실패자들의 특징이 말씀을 들어도 의심이 많습니다. 의심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실패합니다. 사람의 말은 우리가 좀 잘 들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의심이 많은 사람은 영적 문제가 심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불평이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실패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기를 때도 아이가 늘 감사할 줄 알고 평안한 아이는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늘 불평하고 트집 잡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 인생이 실패하고 있어요. 그런데 성공하고 있는 사람들은 감사할 줄 알아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죠. 누가 불평하고 싶습니까? 그런데 불평이 나오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게 영적문젭니다. 이상하게 은혜 받은 사람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꼭 은혜 못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시기하고 질투가 많습니다. 뭐가 그렇게 시기가 많은지 동생하고 자기하고 둘이 있으면서도 시기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데 시기합니다. 누구와 비교하면 엄마와 비교하고 아빠와 비교하고 계속 비교해요. 그 인생은 은혜를 못 받고 있다 그 말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분별력이 생기고 깨달음이 옵니다. 그게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2. 전달하는 사람
1) 축복하는 사람
지금 야곱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어나서 앉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짜증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이 9절을 보면 “요셉이 그의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겠다.” 지금 당신은 병들어있고 나이가 많고 보기도 힘이 드는데, 손자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내게로 데리고 와라 그들을 내가 축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야곱입니다. 15절을 보면 그가 요셉에게“축복하여 가로되...” 지금 축복하는 인생입니다. 참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죠.
야곱이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내가 축복 할 때 이 축복이 내게 동반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죠 그 말은 야곱은 어릴 때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받은 대로 그 생애가 되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내가 축복할 때 내 자손들이 이런 축복을 받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러니까 야곱이 애굽 땅을 갈 때 바로 왕을 만날 때도 축복하고 바로 왕을 떠날 때도 축복했잖아요.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정말 축복하는 인생을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이드신 사람들일수록 기억해야 되요. 야곱은 나이가 147세에요. 그리고 병들었어요. 눈이 어두웠어요.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이 들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나 뭐 좀 먹고 싶다.” “내가 왜 이렇게 잠이 오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많아지면 얼마나 짜증과 불평이 많아집니까? 그런데 야곱은 그 자손들을 축복하고 있어요. 정말 축복하는 인생, 이 야곱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똑같은 환경에서도 사람을 축복하고 있는 사람. 이게 얼마나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되면 싫어하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축복하는 사람, 그게 얼마나 복 있는 사람압니까? 그래서 우리교회 연세 드신 분들은 오래 살기를 소원합니다. 왜 오래 사셔야 되냐? 자녀, 손자들을 축복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자녀 손자들을 축복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지금 야곱이 나이가 먹고,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쇠해져서 병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손자들을 축복하는 모습, 이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이걸 알고 있으면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가문이 살아납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살아납니다. 한 사람이 축복을 알고 있으면 그 축복이 전달됩니다. 야곱이 이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축복하는 사람으로 쓰임받잖아요.
2) 언약의 사람
그러면서 지금 야곱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15절에 보니까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이게 야곱의 인생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이 길러주셨다. 사람이 조금 되면. ‘내가~’ 그런다. 여러분, 그런 사람은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금까지 길러주셨다. 이게 그 아들 요셉에게 전해지는 것 아닙니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길러주셨다. 거기서 끝납니까?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사자(使者)가. 야곱은 주의 천사들의 활동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내가 환란 당할 때 마다 주의 사자가 예외 없이 나를 지켜 주셨다.” 요셉에게 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손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 할 것입니까? 나를 지금까지 길러주신 하나님, 모든 환란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언약 잡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내가해야 될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아야 되요. 내가 정말 믿음의 사람이고 언약의 사람이며, 지금 요셉이 앎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또 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야곱이 요셉에게 또 얘기하되... ‘또’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쳐보세요. 그럼 여러분 야곱이 노망들었습니까?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런 얘깁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하면 지금 병들어 있고 눈이 어둡고 기력이 쇠한 야곱이 요셉에게 이 말을 반복해서 한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자녀에게 야곱이 전해주는 얘기입니다. 이게 야곱의 인생 아닙니까? 전능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 야곱이 기력이 쇠하면서도 불구하고 그 아들에게 전해주는 말이 뭐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너희와도 함께 하신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분명히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어떻게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 이게 야곱의 인생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정말 내가 언약의 사람이 분명히 맞고 내가 축복의 사람이 분명히 맞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히 맞다면 무슨 일을 해야 될 것이냐?
사람에게 무슨 말을 전달해줘야 될 것입니까? 사람들이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사람이 말이 많아져요. 불신자들은 헛소리가 많아져요, 그래서 노인들 싫어한다니까요. 그런데 야곱은 나이가 듦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길러주신 하나님, 지켜주신 하나님,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그 아들 요셉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인생입니까. 똑같이 한 생애를 살면서 어떤 사람은 축복의 말을 계속 전달해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 후손들에게 계속 불신앙 이렇게 되면 후대들이 망하는 것입니다. “애야, 니네 아빠는 아주 못 됐다. 나 죽거든 니네 아빠를 어떻게 해다오...” 이런 망할놈의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고, 언약을 심고 이게 전달하는 사람 아닙니까? 야곱이 그렇게 나이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반복하고 있습니까? 야곱의 생애에 한이 되어서 그래요.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전달하는 사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문제없다면 앞으로 문제가 올 것인데, 저는 지금까지 목회 하면서 문제없는 사람 아무도 없더라고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희희낙락할 만큼 그런 일들만 생깁니까?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야곱이 가나안 땅을 죽어가면서 병이 들어가면서 자식들에게 이 축복을 전달합니까? 사는 길은 이 길밖에 없어요. 이 언약을 붙잡는 길밖에 없어요.
우리 자신도 우리 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길러주셔야 되고 나를 지켜주셔야 되고, 함께 하셔야 되고, 나를 인도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문제와도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그 환경을 뛰어 넘는 거요. 이게 야곱의 인생 아닙니까?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저는 문제없는 세상 살고 싶습니다.” 하는 사람은 빨리 천국 가셔야되요. 천국은 문제 없어요. 우리가 천국가는 그 순간까지 문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어도 정말 이 언약 딱 붙잡으면 문제를 뛰어넘습니다. 야곱의 인생입니다.
4) 쓰임받는 사람
그래서 요셉은 특별히 축복에 쓰임을 받아요. 22절 보니까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칼과 활을 아모리 족속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고요, 아버지 야곱과 대화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자식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요셉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합니다. 그 말은 서로 통했다는 말이잖아요. 우리가 사는데 서로 대화가 되는 사람과는 깊은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화가 안 되는 사람과는 일반적인 얘기 ‘밥 먹었어요?’, ‘잘 자.’ 그런 얘기만 하죠. 우리가 대화가 되는 사람과는 깊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야곱이 자기 가슴속에 하는 얘기를 요셉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요셉이 아버지 말을 잘 귀담아 듣고 있었다는 말이죠. 쓰임 받는 사람의 특징은 말씀을 잘 귀담아 듣습니다. 언약으로 붙잡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을 통해서 요셉이 기도를 배우잖아요. 지금 마지막에도 요셉 불러다 놓고 계속 얘기하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요셉과 야곱은 서로 통했고요. 그리고 이것을 붙잡고 분명히 인도받을 사람이 요셉이기 때문에 이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임 받는 사람이죠. 요셉에게는 갑절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게 되면 갑절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식구들과 말이 안 통하니까 강아지를 길러서 자기 죽을 때 강아지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고 하잖아요. 얼마나 자식이 미웠으면 그랬겠어요? 자식들에게 안주고... 강아지가 자기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말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통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다 임하는 것입니다.

3. 복음 공동체
1) 한 방향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일은 한 방향, 이걸 언약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왜 이렇게 요셉에게 구구절절이 부탁을 합니까? 자기 가슴속에 받은 말씀이 있다 그 말이요. 가나안, 이 언약을 지금 야곱이 받았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받은 말씀이 있어야 삽니다. 분명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세요. 그래서 말씀을 받을 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 말이요. 혼돈과 흑암과 공허의 세력이 무너지는 거요. 그래서 그 말씀을 정말 가슴으로 받는 거요. 가진 말씀을 지금 아들에게 전달해 주는것, 이게 바로 포럼이에요. 후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포럼 하는 거에요.
내가 받은 것이 없으면 남에게 전달할 수 없어요.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이 있고, 성취된 말씀이 있어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말을 하게끔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은혜를 못받았다면 할 말이 없잖아요. 지금 야곱은 그 아들과 포럼하는거죠. 무엇을 포럼 합니까? 나를 지금까지 기르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포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이 그 후대에게 전달되는 것 아닙니까? 꼭 우리는 이런 축복을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희집에 와서 계실 때 늘 저희집에 계시니까 죄송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랑 놀아줄수도 없고 집에 늘 혼자계세요. 그래서 “노인정에 가서 조금 놀다 오세요.” 그래서 노인정에 두 세 번 가시더니 안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 왜 안가세요 그랬더니 주로 노인정에 가서 하는 일이 화토치고 국수 끓여 먹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노인정에서 모여서 앉아서 하는 일이 며느리 흉보고 남편 흉보고 그런 얘기만 하길래, 그런 소리가 듣기 싫고 그러니까 안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집에서 그냥 비디오보시고 기도하시고 그래야 되겠대요.
그런 것 보면서 사람이 이상하게 신세타령을 많이 들으면 영적으로 문제가 옵니다. 불신앙의 말을 많이 들으면 불신앙에 전염이 됩니다. 그래서 포럼을 잘 해야 되요. ‘저는 늘 안되는데요...’ 안되는 포럼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불신앙을 포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세타령 포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이상한게 안에서 수다떨 때는 괜찮아요. 돌아와서는 이상하게 허전하거든요. 영적으로 힘을 다 잃어버려요. 불신앙은 ‘불’자라도 입에 대지 마세요. 신세타령하면 되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것 포럼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말씀 포럼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것에서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 함께하신 하나님, 내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 이것을 자식에게 말하면 자식이 믿음충만 하고 성령충만 하겠어요. 그런데 자식 앞에 놓고 자식 앞에서 이놈의 못된 놈의 자식아... 쓸데없는 포럼하고 있어요. 하나로교회 성도들은 싹 없애야 되요. 사는 길입니다. 할말이 그렇게 없습니까? 쓸데없는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주고 불신앙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구역예배, 다락방 모임을 통해서 말씀포럼 나눠야지 김집사는 어떻고 이집사는 어떻고 이렇게 되면 완전히 사단의 소굴이 됩니다. 이런 말을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얘기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실큰 말씀 나누고 구역예배 드리고 나서 차마시면서 “아이구, 김집사가 그랬지 말이야... 목사님은 왜 그런지 모르겠구만!” 창세기 3장 모습입니다. 그게 영적문제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거 아셔야 되요. 은혜 받은 말씀 가지고 그거 나누세요.
우리 인생을 쓸데없이 살면 쓸데없는 인생 됩니다. 우리가 가치 없이 살면 가치 없는 인생 됩니다. 제가 정말 쓸데없는 얘기 하면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을 정말 쓸데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지킬 줄 알아야지 일을 그렇게 낭비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야곱이 지금 돌아가시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한이 맺혀서 또 이르시되 또 이르되, 또 말하되 이렇게 말하는데 건강한 입술 가지고 건강할 때 복음의 말, 믿음의 말을 해야지, 노인도 아직 안되었는데, 아직 치매도 안 됬는데, 치매가진 사람처럼 하면 인생이 의미가 없어요.
2) 한 마음
사람이 맛을 보면 달라집니다. 우리는 복음의 맛을 봐야 되겠습니다. 복음이 참 놀랍구나! 우리가 한 번 5년 전에 내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미경자매를 만난지 5년이 됐는지 모르겠는데요. 저 자매가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 ‘고민’이라고 얼굴에 써져 있어요. 힘은 하나도 없고요 고민, 수심, 걱정이 가득하더라고요. 지금은요 제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예쁜지 달덩이 같아요. 5년 전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아마 못 돌아갈겁니다.
지금 복음의 맛을 본인이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얼굴에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삶이 되어지고 있고요. 이게 그리스도 누리고 있으면 흑암이 꺽어 버립니다.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고 참된 평안과 감사가 누려지게 되요.
그러면 이 때 되어지는 것이 그렇구나! 내가 언약 붙잡고 기도해야 되겠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해야지 해야지 할려고 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가 되어집니다. 물론 처음에는 기도하도록 조금 노력을 해야 되요. 그렇지만 복음의 맛을 보면 기도가 되어집니다. 기도하는 것이 행복해요. 기도하는 것이 즐겁다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되어질 때 기도포럼이 되어지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염려포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포럼을 기도포럼으로 바꾸세요. 모이면 불평포럼 하는 사람이 있어요. 불평포럼을 기도포럼으로 바꾸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염려한다고 구원받은 신분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포럼 하고 있으면 결국은 사단에게 당하는 겁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찬양도 있지 않습니까? “슬픔과 아픔을 기도로 바꿔~” 그런데 그런 찬양은 잘 하면서 염려포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주일학교 찬양을 많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세요. 그것이 놀라운 비밀입니다. 자꾸만 신세타령하지 말고 그것을 기도로 바꾸세요. 그것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이 있어요. 사도행전 1장의 초대교회 때 환란과 핍박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을 전혀 같이해서 전부 기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핍박과 환란이 다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의 베드로가 감옥에 들어가서 내일 모래면 사형당해요 그러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때 걱정하고 염려한 포럼을 했습니까? 모여서 같이 걱정한 것이 아니라 기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천사가 동원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이 충이 먹어 죽었어요. 그것이 기도포럼입니다.
우리가 두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포럼입니다. 걱정할 게 없어요. 얼마나 이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지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5명의 일꾼들이 전도캠프를 앞두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잖아요. 우리 성도들도 지난 두 주간동안 릴레이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잖아요 캠프를 앞두고요. 이렇게 기도하고 나갈 때 성경에서는 총독에게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이 꺽여버리고, 박수무당이 꺽어버리고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게 기도포럼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염려포럼하지 마시고 기도포럼 속으로 들어가세요.
3) 한 소원
하나님이 우리를 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살리는 것이에요. 그것을 꼭 기억하셔야 되요. 그러면 우리가 정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포럼 하는 것이 전도포럼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까? 우리가 그 사람을 분석하고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고 그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전도 포럼입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뭔지 알고 그 사람을 놓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이것이 전도 포럼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세요. 그래서 우리는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겁니다. 월화수 캠프를 하는데,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어떤 일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분명히 예비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게 전도포럼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임으로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는 염려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 살리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포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찬송하는 것처럼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만 입가지고 찬송해야 되는데, 우리는 입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나밖에 없는 입술 가지고 무엇을 할 겁니까? 말씀포럼, 기도포럼, 전도포럼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래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믿음의 영향을 주고, 야곱이 지금 죽어가면서 그 아들 요셉에게 끝까지 반복하고 또 설명하고 언약전달에 대해 말합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되게 하십니다. 이걸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를 되게 하십니다.
2. 정말 야곱의 인생, 그 가슴속에 한 맺히도록 전달하고 싶은 게 있죠. 그게 바로 언약, 나를 기르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전달하는 인생
3. 우리는 이를 위해 한 방향, 그래서 말씀을 붙잡고 한 방향으로 기도하고, 한 소원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축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부터 약속하셔서 되어지는 중에 우리를 인도하심을 찬양합니다. 정말 우리는 축복을 아는 자로 언약을 아는 자로 이 언약을 전달하는 일에 우리 생을 드릴 수 있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한 방향으로 가게 하시고,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같은 기도제목 가지고 인도받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어서 사람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일에 우리 생애가 쓰임 받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전글 : 요셉이 부탁한 말(창세기 45:24-28)
  다음글 : 두려워 마소서(창세기 50:15-21)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