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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셉이 부탁한 말(창세기 45:24-28) 조회수 : 1997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5-30
  첨부파일:   060528 주일 강단 메시지.hwp(50K)
2006. 5. 28 주일 강단 메시지
요셉이 부탁한 말(창세기 45:24-28)

본문말씀(창세기 45:24~28)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이미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말씀정리
1. 들리는 축복
1) 듣는 축복
① 듣는 축복
지난 주 램런트 기도수첩에 보니까 한 고등학생이 간증문을 썼는데, 자기 아버지가 술로 문제를 일으키니까 아버지가 싫고 상처가 되었는데, 이게 나에게 축복의 발판이 됨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복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불신자와 같이 방황하고 갈등했는데, 말씀을 듣고 적용하면서 조금씩 응답이 되어지고 성취 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참 내가 말씀속에 있다는 것이 축복이구나! 하나님이 나에 대한 비전이 있고, 찬양사역자로 쓰임받을 것을 감사하다는 글을 써 놓았다. 그래서 말씀이 들어가면 다 사는구나! 아무리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고 술을 먹고 문제를 일으켜도 말씀을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축복받는 사람이다.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 말씀이 잘 안 들린다. 누가 말씀을 안 듣고 싶겠는가? 예배당에 왔으니까 누구나 말씀을 잘 듣기를 원하는데,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이다. 말씀이 안 들리면 어떻게 할수 없지 않는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 듣는 축복의 자리에 와 있다. 틀림없이 사단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한다. 오만 생각을 다가져다 줘서 말씀을 못 듣도록 방해한다. 이게 사단의 역사이다.
② 들리는 축복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말씀이 들려지면 이때부터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을 듣는 것과 들려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울이 빌립보 지방에 가서 여러 여인들에게 말을 하는데 하나님이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했다. 이 말은 루디아에게 하나님이 들리는 축복을 주었다는 말이다.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이 때부터 역사가 일어난다.
사도행전 19장 11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다. 그 말은 말씀을 듣고 계속 묵상하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저는 지난 주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주신 말씀이 제가 가깝게 하소서라는 말이었는데, 제가 ‘가깝게 하소서’를 묵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를 가깝게 할 것인가 생각 하다 보니까 우리 교회 계시다가 이사 가신 분이 계셔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더라. 그래서 기쁨으로 여러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는 것이 축복이다. 그럼 들은 말씀을 내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조금만 적용했더니 그 분이 굉장한 힘을 얻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또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이 좀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서 그 분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다. 지금 뭐가 문제인가? 그 사람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니가 지금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 사람에게 역사하는 사단을 꺽으라고 얘기를 했더니 굉장히 힘을 얻고 기뻐하더라. 여러분 우리는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축복이고 들은 말씀을 내 삶 속에 어떻게 묵상하고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게 적용이 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여러분이 어제 걸어오는데 비도 많이 오고 힘드셨을 것이다. 저도 옛날에 걸어보니까 차라리 비가 올 때가 낫더라. 시원하니까 비가 오면 시원하니까 한편으로 그런 기도를 했다. 류목사님이 램런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제가 메시지를 듣고 보니까 날이 조금 서늘했으면 좋겠다.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비가 계속 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게 되었다. 왜 램런트들이 걸어오는데 비가 오게 했을까?
봄에는 비가 와야 한다. 여기는 농촌이다. 농촌은 비가 없으면 큰일난다. 모내기도 해야 되고 곡식도 심어야 한다. 여기 교인들 중에 농사하는 분도 많이 계신다. 하나님이 내 기도와 상관없이 비가 오는 것이 더 축복이니까 비가 오게 하시는구나! 이렇게 깨달았다.
그런데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무엇으로 덮어 버리면 비와 아무 상관없듯이 이 시대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을 많이 주시는가? 복음운동에 동참한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주신다. 그렇지만 나와 묵상하고 적용하고 내 것이 안 되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말씀이 내게 적용되는 것 이것이 축복 중 축복이다.
2) 문제의 진단
그러면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분별이 되어진다. 어떻게 분별이 되어지는가? 바울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배운 대로 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과거에 배운것이 제일 옳은 줄 알고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바울이 내가 옳은 일을 한 줄 알았는데 잘못됬구나! 진단이 되고 분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과거에 핍박하던 예수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말씀이 자기 영혼 속에 새겨졌다는 말이다. 말씀이 들리면 정확하게 진단이 되어지는 것이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과거에 어부였다. 밤이 지나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시몬아,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고 했다. 베드로의 경험으로는 얕은 물에 그물을 던져야 고기를 많이 잡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던진 것이다. 그런데 고기가 엄청나게 잡혔다. 베드로가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 말은 ‘주님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 내가 지금까지 내 지식과 경험을 의지했는데,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말씀이 들리면 깨닫는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안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그리스도여야 되는데 내가 내 인생이 주인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개인적인 한
그러니까 이때부터, 개인적인 한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지난주에 캠프를 하고 몇 사람이 모여서 포럼을 했다. 그 중 집사님 한 분이 간증을 했다. 제가 복음을 몰라서 내 열심을 가지고 하다 보니까 내 자식들이 무너졌고, 내가 복음 없이 살다보니까 경제도 다 무너지고 삶도 다 무너졌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서 내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말 내가 복음의 한 내가 붙잡아야 될 것은 복음밖에 없다. 내 후대를 살리는 길은 복음이요,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는 길도 복음이요, 얼마나 귀한 깨달음인가?
또 한분은 캠프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예수 영접이 되어졌는데, 지속이 안 되니까 자꾸만 낙심이 되어졌다. 왜 그럴까? 그래, 저 사람이 복음을 받긴 받았지만 분명히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씀을 받지 못하게 하고 예배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사단이 방해하는 것을 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신 영적 싸움을 해줘야 되는 데 이것을 내가 몰랐구나! 그래서 영적 싸움이 한으로 맺혀졌다.
여러분, 말씀이 들리면 진단이 되어지면서 개인적인 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내 인생이 왜 실패했냐? 복음 없어서, 정말 우리가 바른 인도받지 못했는가?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말 성령인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 개인의 한이 되었다는 말이다. 참 감사하죠.
여러분, 혹시 시간 있으면 바닷가를 한 번 걸어보라. 내가 아무도 걷지 않는 백사장을 반듯하게 걸어보겠다고 생각하고 한참동안 걷다가 얼마쯤 가다가 돌아보면 반듯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반듯하게 걸을 수 있는가? 반듯하게 걷고자 하려면 한 목표물을 향해서 걸어야 한다.
저와 여러분의 목표물은 무엇인가? 그 목표물은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 정말 반듯하게 걸을 수 있다. 내 경험도 소중하고, 내 지식도 중요하고 내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기준은 그리스도밖엔 없다. 그리스도 바라볼 때 우리는 가장 반듯한 길을 걸을 수 있다.

2. 요셉이 부탁한 말
1) 다투지 말라.
24절에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마십시오. 그럼 이 말의 배경이 무엇인가? 지금 요셉이 총리가 되었는데, 과거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왕따 시키고 죽이려고 물구덩이에 빠뜨렸다. 그래도 안 되니까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그런데 요셉이 죽지 않고 총리가 되어 버렸다.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내가 못되게 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성공했다.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때 요셉이 말한다. 형님들 노중에 다투지 마소서. 이 말은 누구나 다 과거가 있다. 과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좌절한다. 과거 때문에 포기한다. 왜 그렇습니까? 이게 사단의 역사다. 사단은 우리의 과거를 물고 넘어진다. 요셉이 이것을 알기 때문에 ‘형님들, 노중에 다투지 마십시오’ 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에 과거 문제는 다 끝났다. 우리 과거의 모든 허물 예수님이 완전 해결하셨다. 더 이상 과거 문제에 매여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단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과거는 다 끝났다.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만약 우리 과거 문제가 아직 덜 해결되었다면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셔야 된다. 그런데 분명히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따라해보세요. “나는 과거에 내가 아니다.” 저와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여기 박재준이 있는데, 우리교회 출신이다. 제가 우리 재준이의 과거를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알고 있던 재준이가 아니다. 저와 여러분의 과거는 다 지났다.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2) 야곱에게 말하다
① 말씀을 따라
25절 보면 이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말한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야곱에게 말을 하는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형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 형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야곱에게 가서 말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가서 말해야 될 대상이 분명하다.
우리는 아무 얘기나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분명한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택함 받은 사람은 말을 하면 듣게끔 되어 있다.
② 야곱에게 말하다
그래서 지금 요셉이 아버지를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버지 야곱에게 말하시오 해서 형들이 가서 지금 아버지 야곱에게 말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야곱에게 말하니까 26절에 보면,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그랬다.
여기서 기색한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기절한다는 말이다. 죽은 요셉이 살아있다고 말하니까 야곱이 너무너무 놀란 것이다. 왜? 10여 년 전에 죽었다고 했다. 요셉의 형들이 야곱을 속였지만 그 옷을 붙잡고 야곱이 얼마나 울었겠는가? 그래서 아마 장례식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애가 살아있다니...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인데 그 아들이 애굽 땅에 총리가 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믿겠는가?
3) 요셉이 부탁한 말
① 요셉이 부탁한 말
이때에 무엇을 하는가. 지금 27절에 보니까 그들이 또 요셉에게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지금 요셉이 부탁한 말을 아버지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요셉이 무엇을 부탁했는가? 창세기 45:9에 보면 요셉이 부탁한 말이 있다. “내게로 지체 말고 오소서.” 그리고 10절에는 “가깝게 하소서.” 11절에는 “결핍할까 하니까 내가 봉양하겠습니다. 속히 오소서.” 이게 지금 요셉이 한 말이다. 그러니까 형들이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요셉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더이다. 그대로 전해준 것이다.
② 하나님의 역사
그랬더니 창 45:27절에 보니까 “그들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이 자기를 태우러 온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
여기서 기운이 소생했다는 말은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그 ‘기운’이라는 말은 생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기가 소생했다. 살아났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야곱은 옛날에 은혜 받고 축복받고 응답받고 인도 받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완전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들에게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할 만큼 결핍한 상황이다. 육신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이다. 육신적으로 배만 고픈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힘이 다 다운된 상황이다. 영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이 육적으로 무너지면 영적인 부분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영적인 힘을 얻어야만 육적인 힘도 얻게 된다. 야곱은 옛날에 응답받고 축복받고 인도 받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비참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요셉의 말을 듣고 기운이 소생했다.
정말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된다. 우리는 요셉이 전하는 말, 이 말은 왜 아버지가 나에게 오셔야 되는지, 형들과 조카들이 왜 나에게 와야 되는가? 요셉에게는 양식이 있다. 그럼 양식은 먹고 사는 것을 말한다. 요 6:47에 보면 예수가 생명의 양식이라고 했다. 바로 복음이 있다는 말이다. 복음이 있는 사람에게 와야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그 아버지 야곱에게 복음을 설명한 것이다. “나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생명 양식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 이 말을 듣고 살아났다는 말이다.

3. 쓰임받는 사람
1) 요셉의 인생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보면 그는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인도 받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잃어버리고 혼자 외로우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때 하나님이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할 것이다. 는 비전을 받았다. 그래서 요셉은 어릴 때부터 이 비전을 붙잡고 인도받기 시작했다.
형들에게 미움도 받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는데, 이것 때문에 요셉이 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 하나님의 인도임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구나! 이게 요셉이 안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은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다. 우리가 복음운동에 동참해서 보면 우리가 과거의 실패했던 것도 알고 보면 축복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2) 쓰임받는 자
그러면 요셉뿐만 아니라 요셉의 형들을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있다. 요셉의 형들은 젊은 시절에는 언약을 몰라 실패했다. 그래서 요셉을 미워하고 요셉을 쫓아내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창세기 45장에 보니까 요셉의 형들 때문에 가족이 다 산다. 물론 요셉이 다 하지만 그 일을 형들이 대신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그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과거에 잘못했기 때문에 인생을 포기한다. 우리 교인 중에 어떤 분이 예배에 실패했다. 한 동안 예배가 안 되었다. 예배가 안 되어지니까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이 다 무너졌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이 분이 예배가 회복되었다. 그러면서 제게 하는 얘기가 “목사님, 예배 속에 모든 답이 다 있는데, 제가 예배를 놓쳐서 이렇게 살았다고 그래서 다시는 예배 놓치지 않고 예배 승리하겠다고...” 그런 고백했다.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은 예배에 실패했다고 아무것도 안된다며 망하는 사람이 있다. 쓰임 받는 사람 특징이, 아, 내가 예배를 놓쳤구나! 예배를 회복한다.
어떤 분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제가 훈련을 못 받아서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에게 속고 있지 하면서 속는다고 한다. 여러분, 모르고 속으면 억울하지도 않는데, 알면서 속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분이 제게 왜 내가 교회 훈련을 받고 본부훈련을 받아야 되는지 복음 체질이 안 되니까 알면서도 계속 속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교회훈련부터 승리하겠다고 그런 얘기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쓰임 받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과거에 잘못했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버린 인생...’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쓰임 받지 못한다. 그런데 깨닫고 ‘지금부터 내가 이렇게 인도받아야 되겠구나!’ 이게 쓰임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과거가 전부 발판이 된다. 이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기 10명의 형들이 “우리가 옛날에 요셉을 팔아먹고 못되게 했는데, 지금 요셉의 말 들으면 되겠어요?” 하고 도망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지금 깨닫고 “그래, 우리가 요셉에게 참 잘못했구나! 지금이라도 요셉의 한 말들을 아버지에게 가서 전해야 되겠구나! 지금이라도 우리 자녀들을 언약 속에 인도해야 되겠구나!” 깨달은 것이다. 이런 사람이 쓰임받는 사람이다. 꼭 우리 성도들, 램런트 들이 이 축복 속에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생의 이유
정말 우리 인생의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전에 우상 숭배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름을 알고 믿음의 조상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전에 핍박자 였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음을 깨닫는 순간 그 인생이 바뀐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하고 도망했다. 이 자리에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했던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간 꼭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다 지났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이유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지난주간에 제가 원통에 있는 손영희 집사님에게 전화했다. 왜냐면 맹강도사님이 원통지역 가서 말씀운동을 하는데, 몇주동안 문이 닫혔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할까 하면서 전화를 했는데 너무너무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목사님, 너무 바빠서 강도사님이 오시는데, 사람들이 너무너무 바빠서 안 온다. 그러니까 제가 강도사님께 죄송해서 몸둘바를 몰라서 잠깐동안 쉬자고 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바쁘신데요?” 그랬더니 “농번기라서 바쁘기도 하고, 맹강도사님 하고 있는 현장에 군의원 후보가 몇 주간 참석을 했다고 하는데, 선거가 가까우니까 선거운동 해준다고 너무 바쁘다는거요.” 그러면서 고 집사님이 주로 그 일을 하는데, 선거운동 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하기에 그래서 제가 “잘 하시는 거라고” 그래서 “왜요?” 그러니까 제가 “원통 복음화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집사님이 집에만 있으면 사람 못만날 것 아닙니까? 선거운동 하면서 별 사람 다 만날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다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전도의 문 아니겠나? 열심히 하라.” 고 했다.
우리 동기는 사람 살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 만나면 그 사람들이 전도의 문이다. 사람들은 거의 다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만난다. 언제 내가 덕을 볼까 생각 하면서 만난다. 그런데 우리 동기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이유다.
4) 복의 근원
마지막으로 정말 내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느 책에 보니까 “지금”이라는 글 속에는 내가 아는 내가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자세히 읽어보니까 내가 지금이라는 글자 속에 내가 웃고 있으면 웃는 모습이 그 글자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 울고 있으면 울고 있는 것이 지금이라는 글자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당신의 인생이다. 혹시라도 너무나도 슬프고 억울하면 지금이라는 글자를 크게 쓰면서 웃음을 거기에다 집어넣으면 어느 날 슬픈 것이 웃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제가 이 말을 들으며 불신자가 쓴 말이기 때문에 그렇겠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슬프기 때문에 무조건 웃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우리에게 슬프고 답답한 일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땐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자식이 없는데요, 지금 나는 가진게 없는데요?” 하는 것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요셉이 어릴 때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을 하더이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런데 요셉이 지금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님 시간표 따라 분명히 되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화상을 정말 확실히 그려야 한다. 아, 나는 복의 근원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땐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 베드로를 부르실 땐,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 바울을 부르실 땐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는 말이다. 저는 이 지역에 살고 있다. 하나님이 저를 속초, 양양, 인제, 고성지역 살릴 사람으로 택하셨다고 나를 믿고 있다. 이게 저의 믿음이요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 지역 살면서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저와 상관없이 일하신다. 지역복음화 뿐만 아니라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의 대열 속에 저를 하나님이 집어놓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 램런트를 키우는 여러분의 선배, 선생들이 총신에 와있는데, 제가 또 총신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저를 이 민족과 세계 복음화의 현장 속에 내어 놓으신 것이다. 내 수준과 상관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복음 깨닫게 하시고 이 복음의 대열에 서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런 일 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나의 자화상을 분명히 그려야 한다. 우리는 분명 복의 근원이다. 신명기 33:29에 보면 너는 행복자로다. 저와 여러분은 행복자입니다. 왜냐? 지금 어려운 것은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게 전부 다 축복의 길이다. 요셉의 형들을 보니까 한 지역을 책임질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사람이다. 자기들은 몰랐지만 하나님이 이들을 12지파의 조상으로 택해 놓으셨다. 한 지역을 책임질 자로 택해 놓으셨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부족하지만 민족을 살릴 자로 세계를 살릴 자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대열속에 있게 하신 것이다. 이런 축복을 꼭 누리길 축원합니다.

말씀정리
1. 말씀이 들리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이 복음의 한 가슴속에 새겨지게 되어있다.
2. 요셉이 부탁한 말이다.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있을 사람이 아니다. 우리 과거는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대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다. 나를 통해서 분명히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축복이다.
3. 쓰임받는 사람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가 상처가 아니라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이유가 사람 살리는거구나! 그리고 나는 복의 근원임을 깨닫는 사람이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이 말씀이 들리게 하실 뿐 아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고 삶에 적용하는 축복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있는 자들이 아니요 이 과거를 통해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살리는 자의 축복의 대열에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과거는 발판이요 축복인 것을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하나님이 인도하셨음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한 인생 살아가면서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시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복된 존재임을 알게 하여 주시사 가장 바른 인도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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