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2. 19 하나로 교회 주일 강단 메시지
● 본문말씀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설교내용
1. 새로운 인생
주공 3차가 속초에서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입니다. 제가 주공 3차에 갔더니 이장현 집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아기를 데리고 부부가 가는데 어떤 사람이 술을 드시고 술병을 밑으로 던지더라는 겁니다. 다행이 아기는 다치지 않았는데, 가끔가다 그 길에서 사람들이 술병에 맞아서 머리가 깨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집사님이 하는 얘기가 이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는 이상하게 지저분하고 싸움이 많고 소리를 밤새 지르고 하는 일들이 종종 있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행복이 없어서 그렇죠. 그러니까 자기 자신도 학대하고 그 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겁니다.
1) 근본적인 운명
그러면 우리 인간은 왜 행복이 없냐? 그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행복한데, 하나님 없는 인생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말은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그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①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내 힘으로 살아야 되잖아요. 내 힘으로 살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세상의 풍습을 쫓아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이 운명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문제가 왔느냐 그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져 버린 데서 모든 문제가 온 것입니다.
② 드러난 문제
그래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사람들에게 어느 날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속에 참된 행복과 기쁨과 소망이 없으니까 자기를 괴롭히면서 학대할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요. 그리고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가서 술병을 던지는 거요.
술을 먹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술은 음식이고 잘 먹으면 건강에 좋은 것인데 그 좋은 것을 먹고 남을 괴롭히고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술병을 던집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병자죠. 정신이 마귀에게 잡혀있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기분 좋아서 평상시 말도 안하던 사람이 술 한 잔 먹고 얘기하고 평상시에 인색하던 사람이 술 한 잔 먹으면서 기분도 쓰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은 행복이 없으니까 주변에 화풀이 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은 주변에 관계 있는 사람이 굉장히 시달릴 것입니다. 괴롭히거든요. 또 그것도 차지 못하니까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술병을 던지는 것입니다. 여기 혹시 그런 사람 있으면 회개하세요. 사람들이 행복이 없으면 절대적으로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많고 남을 괴롭힙니다. 자기 삶이 다 파괴 되는 거요.
③ 내적인 문제
사람들이 이렇게 드러나는 문제인데, 의외로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내적으로 괴로워합니다.
신문을 보니까 한 기자가 학자들의 보고서를 인용해서 글을 냈는데, 미국 대통령 중 여러 사람이 대통령 재임 기간중에 병으로 시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랜트라고 하는 대통령은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하는 일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대통령의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목사도 성도들 뿐 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시간 관리를 잘 해야만 되는데,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야 됩니까? 그래야만 일이 되는데, 대통령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니까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한다면 얼마나 지장이 많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존슨 대통령 같은 분은 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금방 울었다가 금방 웃었다가 하는 것처럼 변덕이 심한 증상을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대통령께서 직책을 수행하면서 이런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 직분이 얼마나 힘든 직입니까?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런 문제가 왔겠죠. 또 닉슨이라는 대통령은 워터게이트라는 사건이 있었잖아요. 이 사건 때문에 결국은 대통령을 사임하게 되고 이것 때문에 계속 시달리게 되고 괴로우니까 술을 하고 결국은 술에 쪄들은 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켈빈 콜리지라고 하는 대통령은 자기 아들이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괴로워서 아들 생각 하면서 우울증으로 계속 시달렸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 대통령입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이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인간입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남의 문제는 쉽게 보이지만 자기에게 문제가 와버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OECD가맹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노인 자살률이 세계1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노인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가? 우리나라 노인들은 어릴 때부터 일제시대 가운데서 먹을 것 없이 고생을 했고요, 그런데다가 전쟁을 치루고요, 죽고 사는 문제 가운데 얼마나 상처들이 많았겠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으려고 억척스럽게 살았어야 되잖아요. 정말 고생 많이 한 분들이 노인들이거든요.
그리고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고생하고 살았어요. 이제 노년에 조금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려고 하니까 자식들이 돌아보지도 않고요(못난 자식들이죠) 그 자식들이 고생한 부모들을 조금만 돌봐줘도 되는데, 안돌보거든요. 그러니까 노인들이 인생을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위해서 다 투자했는데, 자식들에게 사랑 못 받고 인정 못 받으니까 자살 하는 거에요. 이렇게 자기에게 다가오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지면 내적으로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방법들을 취하게 되는 겁니다.
2) 하나님의 사랑
① 하나님의 사랑
사람에게 다가오는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어요. 왜요? 망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어요. 왜요? 망하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왜요? 우리가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감당하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2:4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이 말입니다.
② 사랑의 결과
그러면 이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요 5:24에 말씀하고 있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버리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 버리는 거요. 골 1:13에는 우리가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 10:28에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어요. 그래서 영원히 멸망치 않는 거요. 영원한 축복 속에 들어와 있는 거요. 그래서 이 축복을 아는 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이 우리에게 임하는 거요. 그래서 주님은 요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이 평안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3) 새로운 인생
① 정신의 노화
그러면 문제는 뭡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의외로 교회를 다니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갱신이 잘 안되는 것이 있어요.
여러분, 노인이 되면 제일 먼저 경직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몸이 굳어요. 아이들은 장난치다 자빠져도 별로 안 다칩니다. 애들은 장난치다 넘어지고 거꾸러져도 껍질만 조금 상처 나요 그런데 노인들은 자빠지면 뼈 부러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린 아이들은 유연하거든요. 노인들은 경직이 되어 있어요. 우리 육체도 그렇습니다. 애들은 가만히 놉니까? 책상에서 뛰어 내리고 소파에서 거꾸러지고 해도 별로 안 다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연하니까 그래요. 그런데 노인들은 뭐든지 경직이 됩니다. 생각도 마음도 육신도 다 경직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복음 전해야 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복음 설명하면 ‘아멘’하고 돌아서서 ‘노멘’이요. 연세 드신 분들은 다 알아듣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옛날로 돌아가 있어요. 이게 노인입니다.
제가 저희 어머님과 살면서 많은 메시지를 생각합니다. 어제 새벽기도하고 저는 운동을 하느냐고 늦게 가고, 어머님은 다른 차타고 가시는데, 어제 새벽기도 때 남기흥 집사님 오셔서 남기흥 집사님 차타고 가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새벽기도 끝나고 집에 갔는데, 어머니께서 안 오셨어요. 제가 운동하는 줄 알고 어머니가 차를 기다려도 사람이 없으니까 한 시간 걸려서 저희 집까지 걸어 오셨어요. 저 같으면 걸어오겠어요. 차 없으면 택시타고 가겠죠. 택시타면 2500원인데 아깝거든요.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은 늘 ‘절약’이라는 단어가 베어있어요. 늘 그렇게 살았으니까? 막 쓰라고 해도 못씁니다. 갱신이 안 되요. 어린 아이들 보고는 절약하라고 해야 되고 어른들은 막 쓰라고 해야 됩니다. 비 오는 날에도 “택시 타세요” 하면 “그래” 하면서도 걸어옵니다. 늘 절약하고 살면서 저희를 길렀거든요. 참 감사한거죠. 그러나 연세를 드시면 쓰셔야 되요. 한 번 주머니 들어가면 안 나와요. 젊은 분들은 들어가면 언제 나가는지 몰라요. 늘 부족해요. 젊은 사람들은 절약할 줄 알아야 되고, 연세 드신 분은 쓰실 줄 알아야 되고, 이게 왜 그러냐? 옛날에 고생을 많이 해서 절약하지 않으면 못 살았으니까? 갱신이 안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연세 드신 분일 수록 말로는 ‘아멘’ 해놓고도 돌아서서 안 믿어요. 그마만큼 갱신이 안 되고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요.
② 과거의 문제
우리는 과거 이런 것이 잘 안 바뀝니다. 사람은 과거를 쉽게 잊을 만큼 전능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잊자! 잊자! 잊자!’ 해놓고 잊어집니까? 잊을려고 해도 잊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뀌어 지지 않고 우리의 상처는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사단은 그것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사 43:18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고 했어요. 어떻게 우리가 옛적 일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새로운 은혜와 축복 속으로 들어가면 옛적 일이 점점 잊어지는 거요. 새로운 축복과 새로운 은혜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늘 과거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더 좋은 일이 생기면, 전에 있던 일은 점점 잊어집니다. 그런데 더 좋은 일이 없으니까 자꾸만 과거에 매여 있는거요. 왜 우리가 은혜 생활 해야 됩니까? 저와 여러분이 계속해서 은혜를 받아 버리면 우리의 모든 과거의 상처들이 잊어지게 되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면 과거에 매여 있는거요. 그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누가 잘못하면 “그래 내가 잊어 버릴거야, 다 용서했어.” 하면서 돌아서서 생각하고 있어요. ‘괘씸한 놈...’ 말은 용서했는데, 돌아서서는 그것이 남아 있어요. 어떻게 이게 잊어집니까? 잊어지는 길은 은혜를 지속해서 받는 길 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더 좋은 일이 계속해서 생기면 그것 다 잊어지고 용서가 되는거요.
여러분, 부부간에도 부부싸움 했잖아요. 그리고 살아남아야 되니까 마지못해서 화해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용서했다.” 하면서 용서가 됩니까? 또 조금 문제가 있으면 용서 했다고 하면서 옛날 것 끄집어내면서 “옛날에... 그랬잖아요.” 하잖아요. 언제 그게 없어집니까? 우리에게 더 좋은 일이 생겨버리면 그게 없어져 버리는 거요.
③ 새로운 인생
정말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어요. 저와 여러분이 이 은혜 속에 들어가 있으면 과거의 상처가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해요. 과거의 실패가 나를 붙잡지 못해요. 이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요. 새로운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거요. 이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2. 하나님의 대답
1) 하나님의 하시는 일
요셉에게 있는 그 많은 상처(문제)들이 어떻게 해결 되었습니까? 요셉이 미쳐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보세요. 14절에 “바로가 요셉을 부르매...” 여러분 바로는 그 당시 전 세계를 다스리던 애굽 나라의 왕입니다. 애굽 나라의 왕이 노예였고 죄수인 요셉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세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이라도 지위 높은 사람은 아무나 만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속초 시장을 만나려면 비서 분에게 전화해서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야 됩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예를 들면 가족, 직원들 중에 중요한 사람)은 아무나 만나겠죠.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만납니까? 하물며 그 당시 세계를 다스리던 바로 왕을 그것도 노예요 죄수인 요셉이 만난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거요.
2) 인간의 방법
하나님이 바로왕을 꿈을 꾸게 하잖아요. 그런데 그 꿈이 해석이 안 되는거요. 계속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고 시달리는 거요. 그러니까 아무리 왕이라도 자기가 괴로운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돈으로 해결하고, 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 할 텐데,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왕이 마음이 바쁜 것 아닙니까? 그 가운데 술 맡은 관원장이 말하니까 “그 요셉 데리고 와라” 하는 거요. 요셉이 누구든지 상관없어요. 바로 왕이 괴로워 죽겠는데...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만약 요셉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바로 왕을 만나려면 몇 년을 기다려도 만날지 몰라요. 우리말로 말하면 신원조회 다하고 알고 보니까 죄수요 노예인 요셉을 어떻게 감히 애굽왕이 만나려고 하겠습니까? 평생가도 못 만나겠죠. 그런데 지금 애굽 왕이 번민하고 괴롭고 답답하니까 “내 문제 해결할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으니 데리고 와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15절에 바로가 요셉을 만나자 마자 하는 말이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라. 들은 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아니 지금, 왕이 체면을 갖추고 있어야지 노예며, 죄수인 한 청년에게 자기 꿈을 얘기해요. 이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제가 막 마음이 괴롭고 답답한 얘기를 갖다가 성순이에게 “성순아, 내가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다 잠도 못자겠다.” 그렇게 말을 하겠습니까? 목사만 해도 그래요. 다 앞뒤 좌우 생각해 보고 할 것 아닙니까? 하물며 한 나라의 임금님이 자기 문제를 아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다 그냥 말하는 거요. 그만큼 자기가 급하단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문제가 정말 해결 됩니까? 왕은 박사들과 술객들을 불러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도 해결을 못했잖아요. 그런데 술맡은 관원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까 그 요셉이라는 청년이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요.
3) 하나님의 대답
그런데 16절을 보세요.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요.
바로가 여기에서 착각하는 거죠. ‘그래, 저 요셉이란 청년은 우리나라에 있는 술객보다 조금 낮고 똑똑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자기 얘기를 다 하는데, 요셉은 정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영적문제를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 말을 듣고 “임금님,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한다면 그것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죠.
하물며, 지금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16절에 말합니다.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여기에서 ‘평안한 대답’ 이라는 말은 완전한 해답을 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해답을 준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 시계가 고장이 나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시계가 고장 났다고, “목사님! 제 시계 좀 고쳐주세요.” 하고 제게 찾아오는 것을 보고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차가 고장이 나면 카센터로 가야지 제게 가서 “목사님! 차 좀 고쳐주세요.”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죠. 물론 제가 차에 대에서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시계를 고칠 줄 압니까? 차를 고칠 줄 압니까? 그걸 고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야죠. 정말 우리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해답입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어디서 온 겁니까? 지금 바로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꿈입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왕이 하나님을 못 만난 겁니다. 그러니까 꿈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문제 앞에 오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지금 요셉은 바로 왕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꿈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님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로 왕에게 완전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그 말은 하나님만이 임금님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로 왕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거잖아요. 그래서 요셉이 지금 바로 왕에게 이 말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에게 완전한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존하고 의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은 절대 행복이 없습니다. 지금 요셉이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임금님의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해답을 줄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만나야 된다 그 말이요. 참 복 있는 사람이죠.
3. 하나님의 은혜
1) 하나님의 은혜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은혜 속에 있습니까?
바울이 자기 과거를 보면 절대 복음운동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스데반 집사님을 돌로 쳐서 죽이는데 가장 앞장 선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음을 받았어요.
그러면 사단이 무슨 짓을 하겠어요? 늘 바울에게 속닥거리겠죠? ‘니가 옛날에 스데반 죽였잖아?’, ‘니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갔잖아’, ‘너 까지게 무슨 복음 전하러 다닌다고 하냐?’ 사단이 늘 그렇게 할 거에요.
그런데 바울이 무엇을 깨달았냐? 고후 5:17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내가 과거에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고 교회를 내가 조롱했던 사람이 분명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게 바로 사단에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 과거는 다 해결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3년을 따라다니며 동거동락 했다면 인간적인 의리로라도 예수님을 부인하면 안 되겠죠.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도망갑니까? 못된 놈이죠. 죽도록 얻어맞고 한 대 더 맞을 놈이죠?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정말 이 음성 듣고 다시 돌아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베드로는 복음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평생의 이 복음 전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감옥에 가잖아요. “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아라!” 그러니까요 베드로가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들으랴? 하나님의 말을 들으랴?” 얻어 맞고도 가서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받고 능욕 받고 얻어 맞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아, 내 과거 문제가 끝났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한번의 축복
그리고 히 9:11에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과거의 문제를 단번에 끝내셨어요. 요 19:30에 “다 이루었다”고 그랬어요. 이게 깨달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꼭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낚시금지” 여러분, 낚시질을 하다보면 되는 부분이 있고 안 되는 부분이 있죠. 어느 지역은 보호를 하느라고 “여기서는 절대 낚시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낚시 금지 구역을 해 놨어요. 아마 이유가 있겠죠.
여러분, 우리 인생도 낚시 금지구역이 있어요.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은혜 못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꼭 꺼내는 것을 낚시 금지구역에서 원망을 꺼내고, 불평을 꺼내고, 불신앙을 꺼내고, 염려를 꺼내고 계속 쓸데없는 것만 꺼내요.
여러분, 세상에도 낚시 금지구역이 있어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도 낚시 금지구역이 있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옛날의 상처들, 과거에 헛소리 들었던 것들, 상처 받았던 것들 꺼내서 울고, 잠 못 자고,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주님이 다 끝냈으니까 더 이상 그런 낚시질 하지 마라 그랬어요.
세상에서도 바른 사람들은 낚시 금지구역! 하면 안 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은 꼭 그런데 호기심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미성년자관람불가’ 그런 영화들 있잖아요. 그런데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런 영화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 있죠? 그런데 보면 별 것도 없어요. 기껏해야 벗고 그러는 건데, 그 때는 그런데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거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겠죠.
여러분, 낚시 금지구역에 가서 낚시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단에게 당합니다. 우리 과거는 다 끝났습니다. 그것 가지고 끄집어내서 붙들고 울고, 잠 못 자고, 화나서 불신앙에 빠질 이유가 더 이상 없습니다.
[낚시 금지구역에 더 이상 낚시하지 말자!]
어느 집사님 그러더라고요. 술 때문에 많이 고생하신 분인데, 제게 “목사님, 옛날 얘기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안 한다”고 그랬는데요. 끄집어내지 마세요. 낚시 금지구역에 있는 사람은 인도를 못 받는 사람이에요. 인도 못 받는 사람들은 끄집어내요. 이상하죠? 그러면서 그런 것 때문에 시험 들고 상처받고 그런거요. 다 끝난 문제를.... 후벼파지 마세요. 후비면 후빌수록 손해니까요.
그래서 지금 이 바로와 요셉이 받은 한 번의 축복은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잖아요. 그러면서 복의 근원 되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의 축복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군대에서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얘기하잖아요. 좋은 말이죠. 해병대에서 그 정신, 훈련 받았으니까 그 정신 가지고 살아라! 그 말이죠. 한 번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지 변덕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 망할 수 없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버린 절대 심판이 임하지 않는 이런 축복을 받았단 말이에요.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되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절대 우리를 송사할 자가 없어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요. 롬 8:33에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 축복은 영원한 축복이요.
3) 한번의 만남
그러면서 이런 만남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서 누구 말을 듣느냐가 모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 만나서 무슨 말을 들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고 내가 누구를 만나서 누구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누군가를 만나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미래는 어디 있습니까? 아마 우리 성도들 중에 사기꾼의 말을 많이 들었으면 고생 많이 했을 것입니다. 사기꾼은 절대 이마에다가 ‘사기꾼’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 않습니다. 친절하게, 정중하게, 진실하게 다가왔다가 나중에 “사모님, 인감도장 잠깐만 필요한데요.” 그러면서 사기 치는 것 아닙니까? 친절하게 잘 하다가 도장만 찍었다 하면 완전히 얼굴 돌려요 그게 사기꾼입니다. 누구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이 모든 것입니다.
4) 한번의 헌신
지금 바로 왕이 술 맡은 관원장의 말을 들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요셉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왕이 축복 받은 내용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예수 믿게 되었습니까? 누군가인지는 모르지만 전도자가 우리 주변에 있어서 전도자의 말을 듣고 우리는 예수 믿었어요.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 입니까? 사람은 누구 말을 듣느냐가 모든 것입니다.
루디아가 왜 축복 받았습니까? 주께서 그 마음의 문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듣게 했습니다. 그게 축복입니다.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된다니까요. 그래서 롬 10:14에 “듣지도 못하는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만약에 술 맡은 관원장이 임금님이 시달리고 있는데 입 다물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축복은 술 맡은 관원장이 받지 못하겠죠. 물론 하나님은 돌을 들어서도 일을 하실 수 있으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겠지만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이 자기 임금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 이년 전에 그 요셉 그 청년을 통해서 내 문제 해결됐지’ 이것을 갔다가 바로 왕에게 얘기를 한 것입니다. “임금님, 제가 이년 전에 임금님께 큰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갔었는데, 그 괴로움 가운데 있다가 한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란 청년을 만나서 해결 되었습니다. 그 청년을 만나면 임금님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자기에게 있는 증거를 임금님에게 얘기한 거에요.
여러분, 보세요. 복음 전도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임한 그리스도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이것 말하는 거요.
이 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로 왕이 술 맡은 관원장의 말을 듣고 행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어떻게 임금님이 술 맡은 관원장의 말을 듣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거죠. 그래서 롬 10:17 말씀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불신앙이 무너지고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혹시 우리 중에 불신앙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말 들을 것 없어요. 왜 불신앙에 사로잡혀 있냐면 불신앙의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래요. 왜 상처를 많이 받냐면 상처받을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래요. 왜 내가 행복합니까? 행복한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래요. 그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정말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말을 많이 들으면 믿음이 자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불신앙 체질이거든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겁니다.
지금 바로 왕에게 술 맡은 관원장이 자기에게 일어난 얘기를 한 거에요. 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바로 왕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요셉의 말을 듣게 된 거요. 이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술 맡은 관원장이 한 번 이 일 때문에 헌신한 것이 결국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임금님이 자기 문제 해결되고 술 맡은 관원장을 더 낮은 직분으로 내려 보냈겠습니까? 성경에는 안 나오지면 분명 술 맡은 관원장 에게 진급을 시켰든지 그렇게 되었겠죠. 그리고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자기가 번민했던 문제 요셉 만나서 해결되잖아요. 또 자기만 살 뿐만 아니라 애굽 전 백성이 흉년으로 죽어야 되는데 전 백성이 살아나잖아요. 그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살아나잖아요. 요셉은 어떻게 됐습니까? 감옥에서 빠져 나오고 총리가 됩니다.
한 사람이 한 번 헌신하는데 이것이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알 수 없잖아요. 저와 여러분의 미래를 알 수 없잖아요. 우리는 한 번 복음을 위한 헌신이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정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전 것은 다 지나가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새로운 삶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문제와 모든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가장 축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인생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합니까? 우리가 한 번 이 축복을 받으면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번 만남, 한 번 복음을 위한 헌신이 영원한 축복과 연결이 됩니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같이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언약기도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가진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하시며 인생의 영원한 해답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축복 속에 복음을 위한 헌신을 하는 삶으로 우리 생애가 쓰임 받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응답받고 인도받게 하시고 승리하는 축복으로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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