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1:18-23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설교내용
1. 크리스마스
1) 변질됨
청소년 사역을 하는 한 단체에서 청소년들에게 성탄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 중 30%는 산타클로스가 오는 날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또 20%정도는 크리스마스트리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7.2%가 예수님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나신 날인데, 어른들은 덜하겠지만 청소년들은 성탄절을 산타클로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참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가 볼 땐 교회의 책임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텔레비전에서도 정치가들이 빨간 옷 입고 빨간 모자 쓰고 하얀 수염 붙이며 선한 일을 많이하고, 운동선수들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행을 많이 하는 모습을 많이 비춰준다. 이런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성탄절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자꾸만 성탄절을 자꾸만 선행을 하며,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는 날이다. 성탄절은 어린아이들의 꿈이 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이렇게 언론은 이끌어간다. 그분들은 복음을 잘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에 언론이 그렇다고 사회가 그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에 교회도 그렇게 간다고 하면 성탄의 주인공인 그리스도가 없어져버리고 산타클로스가 그리스도가 되어 버린다. 심각한 문제이다. 점점 이런 것들이 변질이 되어져버린다. 아이들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성탄절에 그리스도가 생각이 안나고 산타클로스가 생각나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생각이 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교회의 책임이다.
우리나라의 참 안타까운 일인데 황교수님은 실력 있고 훌륭한 교수님이다. 이분이 과학자다보니까 성과를 빨리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자기 이름도 드러내길 원한다. 황교수님도 어떻든지 빨리 연구 결과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많이 앞선 나머지 처음에는 순수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조급해지니까 결국은 논문을 조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지난주 보도내용이다.
저는 처음에는 순수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증이 오니까 결국은 거짓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조급증은 사단의 통로이다. 조급한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을 가능성이 많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뭔가 빨리빨리 하려고 하니까 실수를 하게 되고 뭔가를 부풀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복음 운동하는 사람들은 잘못하면 여기에 속을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만큼 얘기해야 되지 내가 누려지지도 않는데 누린다고 하면 나중에 황박사님처럼 들통난다. 내가 되어지는 만큼 말하면 된다.
사람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처음에 심심풀이로 화투에 빠져들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빠져들면서 다른 데는 관심이 없어져 버리게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우리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구원 받아서 감사하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 구원의 감사가 식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세상에 재미있는 일 하나가 생기고 세상 맛을 보게 되면 주일날 한번 빠지지 하고 빠졌다가 세상에 맛이 들면 예배의 축복보다 세상의 맛이 훨씬 좋게 보인다. 나중에 죽을지언정 그래서 지금 당장은 더 좋은 것이다.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결국은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우리가 자꾸만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다보면 예배의 축복, 기도의 축복 이런 것들을 점점 놓치게 된다.
사람은 참 이상한 존재이다. 육적으로는 상당히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굉장히 둔하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오는 영적 축복은 영적 축복은 어마어마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예배 안 드리고 가서 무엇을 하게 되면 하루가 버는 것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시간이 생기는 것 같이 좋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데 점점 변질되어서 나중에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배 안드리고 기도 안해도 지금 당장은 별 문제가 없다. 나중에는 망하긴 망하는데 지금 당장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게 사단이 하는 짓이다. 사단의 하는 짓은 변질시키는 것이다. 비슷하게 변질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2) 근본적인 문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 뭐 바르게 살면 되지, 열심히 살면 되지 남들에게 손해끼치지 않고 내가 착하게 살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원죄이다. 하나님을 떠났다. 그런데 그것이 뭐가 대단한 문제인가?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적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니까 사단에게 완전히 잡혀서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바르게 살면 되지, 열심히 살면 되지, 왜 자꾸만 오직예수 그런 얘기를 왜 자꾸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원죄와 사단의 실체를 몰라서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저 사람들 조금 이상한가봐, 선행도 하고 구제도 하고 바른 것도 해야지 왜 오직 그리스도냐?” 이렇게 착각하고 있다. 이게 속는 길이다. 성탄절도 자꾸만 산타클로스가 부각되는 것처럼 자꾸만 그리스도는 약화되어지고 선행, 구제, 봉사, 충성 이런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이 영적 존재이고, 이 사단의 존재를 몰라서 그렇다. 사람들이 원죄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운명 사주 팔자에 매여 자기도 모르게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3) 크리스마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변질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 마스는 예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선물 주고받고 즐기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우리 인생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그분에게 예배하고 찬송하고 경배드리는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고 있는가?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을 외롭게 지내면 되냐? 떡볶이집 가자, 피자집가자, 이 성탄절에 우리가 외롭게 지내면 되겠냐? 서로 선물 주고 받자 자꾸만 이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단의 전략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이날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날인데 이것이 자꾸만 변질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이것이 크리스마스인데, 이것이 자꾸만 변질되고 있다.
2. 성탄의 축복
1) 중요한 일
성경은 중요한 일을 말할 때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마 1:23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중요한 일을 말할 때 ‘보라’ 고 하였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요한 일을 말 때 “이거 중요한 얘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너무 너무 중요한 일을 말할 때 성경에서는 ‘보라’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계시록 3:20에 보면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그랬다. 사람들 마음 문 밖에서 주님이 두드리고 계신다. 왜요? 그 주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받아들인다. 참 안타깝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겠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볼 지어다! 라고 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면 영접할 때 우리의 과거는 다 끝났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다. 혹시 과거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정말 내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고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전 것은 지나갔다. 다 끝났다. 우리 성도들 중 혹시라도 제 과거를 팔려고 생각 하지 말라!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제 과거의 못된 것도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셨다. 그런데 그거 붙잡고 ‘아, 우리 목사님 과거에 못된 짓 많이 했네.~’ 그거 헛된 소리다. 저만 그렇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목사님, 제가 과거에 알콜중독으로... 끝났다. 목사님, 제가 옛날에 가정도 안 돌보고 깡패짓... 끝났다. 주님이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전 것은 지나갔다. 보라 새로운 것이 되었다고 했다. 저와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에 내가 아니다. 복음 이전에 이길근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혼난다. 어떤 사람은 또 남은 그렇게 인정하고 자기는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자기를 구박하는 사람은 참 못된 사람이다. 자기가 남을 구박하는 것 못지않다. 하나님 말씀 안 믿는 것 아닌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전부 부정하는 것 아닌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주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을 할 때 보라! 볼지어다! 라고 하셨다.
2) 성탄의 축복
그러면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지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이게 성탄의 축복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을 입고 왜 이 땅에 오셔야 되는가?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와 사단과 지옥에 묶여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운명에 묶여있는데. 바로 이 운명을 깨뜨리시고 사단과 죄와 지옥권세를 깨뜨리실 주인공이 육신의 처녀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니까 자꾸만 우상을 만들어놓고 우상 앞에 절하고 귀신을 섬기고 굿하고 부적을 붙이며 자기에게 오는 재앙을 이길 길이 없다. 여러분 홍수가 밀려오는데 홍수에서 빠져나올 길이 있습니까? 얼마전에 동남아에서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거기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그런 재앙이 왔다. 성경에서 보니까 전 세계적으로 홍수가 덮쳤을 때 사는 길이 한 가지 방법 - 방주 안에 들어올 때 살았다. 이 땅에 끊임없는 저주와 재앙이 오고 있는데 살아남는 유일한 길인 방주의 주인공인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니까 붙잡혀서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이다. 노예생활 하면서 고통 당하며 사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다. 희생제물, 어린양의 피를 몰라서 아무리 그 안에서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선행하고 공부해도 노예생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신분 자체가 노예다. 마귀 자녀다. 신분 자체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어린양의 피 바를 때 빠져나왔다. 그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약속하신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데 그 분이 예수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오셨냐? 우리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다. 이게 성탄의 축복이다. 그래서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왜 독생자를 주셨냐? 멸망받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우리가 예수 믿는 그 순간 요 5:24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죄와 허물로 인해 우리의 영이 죽었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살아난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에 요 10:10에 말씀한 것처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전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이 도적인 사탄을 꺾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심어주고 우리 삶을 풍성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게 바로 성탄이란 말이다.
우리는 과거에 흑암의 나라에 잡혀 있었다. 바울은 이렇게 깨달았잖아요. 골 1:13에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바로 우리가 흑암 가운데 사로잡혀 있으니까 귀신을 섬길 수밖에 없고 세상 풍습을 따라 살 수 밖에 없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이게 성탄의 축복이다.
3) 임마누엘
① 임마누엘
그럼 성탄의 축복이 구원이다. 그럼 구원 받는데서 끝나냐? 그것이 아니다. 성경에 보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예수님이 “그래, 이제 너희들 방법대로 잘 살아봐~ 나는 내 볼일 보고 있을테니까?”그런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하시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죄에서 빠져 나와서 감사하다. 물론 사단의 세력에서 빠져나와서 감사한데, 더 감사한 것은 구원받은 우리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하신다는 것이다.
교회 다닌다는 사람에게 있어서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지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임마누엘이 내 삶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고민과 염려 불신앙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대 하면서 불신앙하며, 염려하면서 잠 못 주무시고 만성 소화불량에 노이로제에 걸려서, 임마누엘을 못 누리니까 그러는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대 하면서 들어서 알긴 아는데, 뭔가 모르게 시달리고,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다. 임마누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알고 지식적으로는 아는데 실제적으로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문제인 것이다.
야곱이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함께 할 것이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버리지 않고 지키고 보호하겠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순간부터 야곱을 이길 자가 없었다. 라반이 야곱을 이길 수 없었고, 에서가 야곱을 이길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순간, 야곱을 이길 자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말씀하셨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요셉을 누가 이깁니까? 형들 10명이 요셉을 괴롭혀도 요셉을 이길 자가 없었다. 보디발 장군 집에 노예로 팔려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요셉이 그 집의 주인같이 되어버렸다. 요셉이 또 감옥에 갔는데, 그 감옥이 요셉 중심으로 다 바뀌었다. 요셉이 뭐 했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누렸다는 말이다.
② 착각하는 자
많은 사람들이 임마누엘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임마누엘을 알면서 잠 못 자고, 알면서 눌리고, 알면서 신경성 노이로제에 걸리고요. 왜 그렇습니까? 못 누리는 것이다. 야곱이 요셉이 만약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억울해서 한 맺혀서 병들어 죽었을 것이다. 임마누엘 누리지 못하면 한 맺힌다. 저놈의 웬수하고 내가 왜사냐? 임마누엘 못 누리니까 그런 것이다. 아,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노예로 팔려가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감옥에 가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삼촌 라반의 집에 가게 하셨구나! 임마누엘을 깨닫는 순간 다 바뀌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마누엘을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생각은 물론 믿음이 필요하지만 율법을 지켜야지 구원받지 왜 율법을 안 지키냐? 왜 초대교회는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라고 하냐? 저것들 이단이다! 율법도 안 지키고 이렇게 찍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랑 비슷하다. 자기네 말 안 들으면 무조건 이단이다. 유대교인들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를 보고 이단이라고 했다. 왜냐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해서. 뭐가 이단인지 분별이 되어야 된다.
여러분, 중세교회 천주교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을 가장 싫어했다. 그래도 선행도 하고 공도 세우고 공로가 있어야지, 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냐?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여러분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우리가 행실을 아무렇게나 하라는 말인가?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율법은 축복의 도구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요, 선행은 마땅히 해야 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선행을 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우리 죄 문제가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없어지는가? 그리스도께서 죄 문제를 해결하셨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세력에서 빠져 나옵니까? 우리가 율법을 많이 지키고 공을 많이 세우니까 사단이 “그래, 너는 자유해라!” 그랬습니까? 아니거든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단의 세력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종교 개혁자들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아닌가? 지금.
③ 임마누엘 누림
그래서 마가다락방 교인들은 정말 임마누엘을 누린 사람들이었다. 마가다락방에 모이면 감옥에 갔다. 마가다락방에 모이면 사형도 당했다. 그런데 마가다락방 교인들이 하나님이 분명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구원 받은 신분이 영원히 변하지 않은 것처럼 임마누엘은 영원한 것이다. 여러분, 보세요! 구원과 임마누엘은 같은 말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신다. 혹시라도 이거 모르는 사람은 오늘 정말 확인하셔야 한다. 구원이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죄와 사단과 지옥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인데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신다. 지금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무엇을 가졌나?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러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핍박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아 놓고도 신앙생활하면서 왜 흔들리는가? 임마누엘이 확인이 안되니까 흔들리는 것이다. 분명히 성경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하기위해서 오셨다. 이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멤버들은 이것을 딱 붙잡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갈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3. 전달자의 축복
1) 자녀의 권세
그러면 이땅에 성탄의 주인공으로 창세기 3:15, 6:14, 출 3:18의 주인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권세를 주셨는데 사람들이 권세를 빼먹는다.
구원은 우리가 해방되는 것이고 임마누엘 하는 것이고 권세도 같이 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아이고, 목사님처럼 신학을 공부하시고 그래야 권세가 있지 우리같은 평신도가 권세가 있겠냐?” 착각한다. 죄송합니다. 권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byung신도이다. 권세를 누리는 사람은 평신도이다.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서 끝나면 byung신도다. 우리 하나로 교회 성도들은 byung신도가 없어야 되요. 만약, byung신도 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우리가 평신도지 아니 이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처음부터 주신 것이다. 아니면, “그래도 내가 중직자 정도는 되야지, 권사나 안수집사 정도는 되어야 권세가 있는 것 아니겠나.”그것도 byung신도다. 성경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누구나 믿는 자에게는 권세가 와 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 능력과 상관없이 권세가 와 있다. 권세를 사실적으로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 권세는 처음부터 주셨고 하나님의 주신 것이고 영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권세를 주셨는가? 영적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다. 천사는 없어지지 않고 사단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영혼 또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사단이 활동하기 때문에 이것을 꺽을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래서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이 땅에서 승리하라고 권세를 주셨다. 그래서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권세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좋은 것이다.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간직하며 모셔놓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다. 하는데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사용해야지 “내 통장에 돈 많다!”그런데 굶어 죽으면 되겠는가? 어떤 거지가 어떻게 거지 짓을 잘해서 집 5채를 샀는데, 그런데 굶어서 죽었다고 한다. 집을 다섯 채나 샀으면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5채나 사고 거지같이 굶주려서 죽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바보, 멍청이, 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 사용하라고 권세는 사용하는 것이다. 내 주머니에 돈이 두둑하게 있으면 그거 잘 쓰면 되는데, 돈이 두둑하게 있으면서 궁상맞게 라면만 끓여먹고 있으면 그걸보고 바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이 두둑하게 있으면 하나님 앞에 헌금도 하고 우리 선교원 위해서 헌금도 하고 그런데 주머니에다 넣고 “나 돈 많아, 많아!” 그러고 자랑만 하고 있다. 많아서 어쨋다는 거요? 나 많아 그렇다가 죽었다. 그러면 많은 것이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써야 되는 것이다. 권세는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권세를 주셨다. 우리 성도들은 한 사람도 byung신도가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세를 사용하셔야 한다. 사용하면 할수록 흑암의 세력은 꺽어져 버리고 주의 사자가 동원되어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2) 복음 사상
그래서 우리는 이제 문제는 사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사상이 안되니까 안되는 것이다. 모르니까 “그래, 내가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지, 하나님 함께 하시지, 권세 있지.” 그런데 사상이 안 되니까 사용이 안되는 것이다.
여러분 운동을 해도 기본 폼이 체질이 되어야 나오는 것이다. 축구만 해도 머리로는 다 아는데 헛발질 하는 것은 어떻게 하겟습니까? 그리고 뛰어가면 되니까 마음은 뛰어가는데 몸이 안 뛰어간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가 원래 달리기를 못했는데 어떻게 달리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연구를 했다고 한다. 자기가 가만히 보니까 달리기를 아주 열심히 뛰는데 앞으로 뛰지 않고 위로 뛰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 방법이 뭘까? 몸을 15도 정도 앞으로 숙여야만 앞으로 뛸 수 있구나 그리고 팔을 많이 휘둘러야만 앞으로 뛸 수 있고, 발을 할 수 있으면 높게 뛸 수 있어야 앞으로 간다고 했다. 이 친구가 연구를 했는데 숙달하다 보니까 달리기를 잘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게 운동을 가르쳐준 목사로부터 이 말을 듣고 아, 원리가 그렇구나! 깨달았다. 말은 맞는데 이제 내 것이 되어야 되는데 이것을 사상이라고 한다. 복음을 아는데 내 것이 되어야 된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부터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 이게 내 것이 되면 문제가 없는데 아브라함이 아직 자기것이 안 됐다. 복의 근원은 고사하고 애도 없다. “아들도 없는데 무슨 복의 근원이냐?” 하니까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 부르실 때부터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 그러면 아멘 하고 나가면 되는데, 안 믿는다. “나같은게 나이도 많은데, 가진 것도 없는데 뭐가 되겠냐?” 그러니까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주셨고 우리를 부르실 때부터 복의 근원으로 주셨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샘의 근원의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의 축복을 주셨다. 요셉에게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더이다 그랬다. 이것 붙잡는 순간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이 우리에게 사상이 될 때부터 우리 영혼과 잠재의식 속에 새겨질 때부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볼 땐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구나! 그래서 거울 앞에서 늘 고백하세요. “나는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이구나!” 나는 왜 납작코고, 키는 콩알만하고, 눈은 왜 째지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눈을 이렇게 째지게 만드셨구나! 코를 납작하게 만드셔서 이렇게 절새 미인으로 만드셨구나!” 이렇게 영적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실수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을 실수하는 사람으로 만들면 불경죄다. 하나님이 저를 어루만져서 머리를 이렇게 시원하게 만드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제가 제 아내랑 얘기할 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참 고생 많겠다. 머리 손질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집에서도 뭐 끼고 있다. 하나님이 내게 너무나 많은 복을 주셨구나! 제가 머리 손질 할 땐 돌아볼 것도 없이 머리 감고 한 번 빗으면 끝난다. 1분도 안 걸린다. 저 사람은 머리 손질하려면 지지고 볶고 미장원 가서 맘이 드니 안 드니 한다. 참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어떤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데,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련히 그에게 맞게 어떤 사람에게는 아담하게, 납작하게, 뾰족하게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요셉이 “왜 나는 이렇게 복이 없냐?”그게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엄마 일찍 데려가시고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노예로 팔려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감옥 가게 하셨다. 그러니까 복음 사상되니까 감당할 자가 없다. 꼭 이 축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과 통함
복음 뿌리 내리고 사상 되어지면 그 때부터 평안의 열매가 기쁨의 열매가 감사의 열매가 소망의 열매가 맺는 것이다. 이게 안 되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내고 원망하는 것이다. 만약, 요셉이 짜증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감옥의 죄수를 다 맡겼겠는가? 아마 멸시 천대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누리고 있으니까 평안과 소망이 생기니까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열매와 증거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얼굴이 어두운 사람은 회개하셔야 된다. 얼마나 복음을 못 누리면 오만 근심걱정에 찌들려서 얼굴이 이상해지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얼굴은 자기 내적인 것이 얼굴에 표현이 되는 것이다. 회개해야 된다. 웃을 때도 비웃으면 건강에 많은 손상이 온다. 사단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얼굴이 그런 사람은 거울 보면서 회개하면서 고치셔야 한다.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지면 하나님과 통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기 때문에 고전 2;10에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통달하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중심이 되니까 모든 것이 다 통하게 되는 것이다.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하나 걱정할 것이 없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말을 한 마디 해도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하나님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말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복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기 때문에 말이 얼마나 잘 통한지 모른다. 하나님과 통하고 있으면 사람과도 잘 통한다. 부부간에도 그리스도 같이 바라보면 부부간에 서로가 통한다.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한다. 안 통한 사람은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가서 뭐하는지 감시해야 되지 주머니에 뭐가 있는지 체크해봐야 되지 안통하니까 그렇다. 통하면 다 맡긴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한다. 여러분 교인들도 가만히 보면 담임 목사님에게도 뭔가 모르게 숨기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키는 것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목사님과 잘 통한다. 혹시 목사님과 잘 안 통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안 통하는 것이다. 복잡할 것이 없다. 뭔 비밀이 많습니까?
여러분, 부부지간에도 비밀이 많은 사람은 문제 많은 사람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남편 두고 다른 남자 친구 두고,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 두고 다른 여자친구 두고 숨길려고 하니까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누구 만나고 왔으면서도 안 만난 것 처럼 할려고 하니까 뭔가 이상하고 안 통하는 것이다.
애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속이는 애들은 부모와 안 통한다. 부모를 속여야 되니까 거짓말을 해야 되고 또 거짓말을 해야 되고 계속 거짓말을 해야 된다. 결국은 안 통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과 통하고 사람과 통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목사님과 통한다. 뭔가 비밀이 많은 사람은 빨리 회개하시고 좌수하고 광명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다 하나님과 통하면 다 되는 것이다.
4) 전달자의 축복
① 정확한 복음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성탄절의 본질인 그리스도가 희미해지고 있다. 변질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임마누엘 축복을 누리고 권세가 우리에게 와 있다. 이 정확한 복음 이걸 우리가 누려야 한다. 그래서 흑암세력을 꺽어 버리고 주의 사자들이 동원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 우리에게 증거 나타나면 증인의 삶을 사는 것 아닙니까? 이게 정확한 복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축복을 누리다가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천국 가는 것 아닙니까?
② 영적인 원리
그런데요 우리가 물질적인 것은 주면 좀 아깝다. 제가 양복이 두 벌인데, 그 가운데 한 벌을 우리 맹강도사에게 주면 조금 아깝다. 예를 든다면 그런데, 물질은 주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제가 제 아내랑 사과를 먹는데 사과가 3개 있다면 우리 어머니 하나 저 사람 하나 나 하나 먹으면 내가 2개먹고 싶은데 못 먹잖아요. 그러면 뺏어먹어야 되잖아요. 어머니와 당신은 사과 한 개 가지고 나눠 먹어요. 나는 2개먹을 테니까. 근데 선한 마음이 생겨서 하나씩 나눠먹자고 하면 난 하나밖에 못 먹잖아요. 이게 갈등이다. 육신적인 것은 나눠먹어야 하니까 갈등한다.
그런데 영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 나눠주면 나눠줄수록 풍성하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이 때 베드로의 기쁨이 얼만했을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영적인 것은 나눠줄수록 더 풍성해진다. 성경책이 2권 있을 때 한 권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리면 내게 한 권 밖에 없으니까 아까운데 영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 나눠줄수록 좋은 것이다. 나를 통해 생명 받은 그 사람이 믿음 안에서 자라고 제자로 세워지면 얼마나 기쁜가? 저는 이 자리에 저를 통해 예수 영접 받고 복음 안에서 자라는 것 보면 그렇게 기분 좋은지 모른다. 모든 성도들이 다 소중하지만 저 분이 믿음 안에서 자라니 얼마나 귀하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속상한 사람이 있는가? 내가 낳은 자식이 잘 자라니까 기쁘고 감사하지, 아니, 저 자식이 나보다 더 잘 생겼네! 그런 부모는 없다. 요즘은 하도 부모들이 이상한 부모가 많아서 그런 부모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부모는 자식이 무럭무럭 잘 자라면 너무너무 기뻐하는 것이다. 영적 원리는 주면 줄수록 풍성한 것이다. 내게 있는 보배로운 그리스도 나만 딱 간직하고 임마누엘 누리고 나만 권세 누리는 그런 욕심쟁이 되면 안되요.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몰라서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해서 갈등하고 권세를 사용하지 못해서 영적으로 시달리고 고통받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 이 영적인 축복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런 것이 복된 것이다. 이게 바로 전도자다. 이걸 사람들이 모른다.
③ 전달자의 축복
롬 10장에서 듣지도 못한자가 어찌 믿겠는가?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는가? 이거 모르니까 못 듣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 전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축복된 성탄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사람의 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은 결단코 상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이 축복된 일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가정에서 말씀운동하고 여기에서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겁니까? 정말 우리는 이런 축복 누려야 하겠다.
● 말씀정리
성탄절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한 것 때문에 감사해서 예배드리는 날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 이것은 이미 와 있는데, 이 권세를 풍성히 누리면서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전도자다 이런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같이 누려야 될 줄 믿습니다.
● 언약기도
오늘 성탄절 우리에게 은혜 베푸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고, 자녀의 권세 주셔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 은혜를 찬양합니다. 지금 이 축복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영적으로 죽고 시달려가는 많은 사람들 살리는 일에 우리 생애가 쓰임 받도록 주님이 축복하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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