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0일 주일 강단 메시지
구원의 감사(살후 2:13-17)
본문말씀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찬미의 제사
1) 영적인 축복
이번 주일은 추수 감사주일이다. 수장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한다. 추수 감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해서 곡식을 거두었다. 곡식을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해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 곡식들을 창고에 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곡식들을 창고에 집어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바로 우리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천국의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우리의 생애를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 바로 추수 감사 주일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눅 12장에 보면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그 해에 풍년이 들었다. 부자가 생각하기를 이 많은 곡식을 어떻게 해야 될까 하다가 큰 창고를 짓고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았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이제 내가 평생을 먹고 살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때 부자가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아 놓았다고 할지라도 그날 밤 영혼을 불러 가면 그 창고에 쌓아둔 것이 누구 것이 되겠냐?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요치 못한 자는 바로 이와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또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얘기가 나오는데, 세상의 부자가 살다가 그 영혼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서 죽어서 지옥을 갔다. 부자 집 앞에서 늘 거지 생활했던 나사로는 다행히도 예수를 믿어서 죽어서 천국을 갔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부자가 나은 삶이냐? 거지가 나은 삶이냐? 우리는 분명히 부자가 이 땅에서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부자인생을 살았더라도 예수 생명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인 것이다. 이 땅에 실패하면서 거지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예수 생명 있는 인생은 그 영혼이 천국에 갔다는 말이다. 그 말은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거지처럼 예수 믿다가 천국 가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우리 영혼이 예수 믿는 것처럼 복된 인생이 없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는 혹시 우리 영혼이 많은 어려움을 받고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 받은 영혼은 천국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적 축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미 생명이 들어와 있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풍성함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2) 찬미의 제사
그래서 히브리서 13:15에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다. 그러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할 일은 항상 예수로 말미암아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배이다. 분명히 사단은 존재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예배가 뭔지 모르지만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예배를 놓치게 만드는 것이다. 사단이 하는 짓은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은 뺏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예배를 놓치게 만든다.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울은 이 히브리서 13장 15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하는데 사단은 뭐 그렇게 예배를 드릴 것이 있냐? 기분 좋고 시간 나면 예배드리지 이 바쁜 세상에 누가 그렇게 주일날 예배당 가서 예배 드리냐? 사단이 이렇게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정말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예배를 드리더라도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로 드리라고 했다. 예배를 드려도 예수 없는 예배, 습관적인 예배, 종교적인 예배 이게 사단이 속이는 것이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이 이 예배에 실패했다. 예배 실패는 인생의 실패이다. 가인이 예배를 드리기는 드렸는데 피 제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 되어야 된다. 그것이 예배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지난주도 예배 드렸지만 오늘도 예배드리고 다음 주에도 또 예배드리고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 사단은 이 예배 못 드리게 만든다. 우리를 자꾸만 분주하게 해서 예배 못 드리게 만들고, 예배보다 다른 것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예배 못 드리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구원받은 사람이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부분에 승리한다.
3) 주인되심
그러면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부분이 확인 되냐면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이 확인된다. 사람은 일도 열심히 해야 되고 노력도 많이 해야 되지만 줄을 잘 서야 된다. 우리는 줄을 잘 선 사람이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죄인의 길에 서기를 원하겠습니까? 이게 좋은 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악인의 길이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우리가 어쩌다가 줄을 섰는데 축복의 길에 섰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 우리 이장현 집사님 내외가 결혼을 하고 다음 주에는 이대영 선생님이 결혼을 한다. 결혼이 줄줄이 있다. 여러분 결혼 할 때 생각이 다 있을 것이다. 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겠다. 축복된 삶을 살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결혼 할 것이다. 만약 저 사람과 같이 살면 망할 것이라고 망할 일을 뻔히 보면서 결혼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이 복덩이라 얼굴은 조금 그런데 결혼 하고 보니까 복덩이라. 그렇다면 축복인데 그런데 이 사람이 겉으로 볼 때는 사람이 괜찮아 보였는데 결혼해서 보니까 문제 투성이라면 아마 고생을 많이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부모가 괜찮다면 고생을 별로 안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났는데 부모가 개차반이라면 아마 인생 사는데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직장생활하는 사람이 직장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매너가 좋고 직원들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직장 들어간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좋은 직장인줄 알고 들어갔는데, 그 직장이 만약 도둑놈 소굴이라면 그 직장 들어간 사람은 고생 많이 한다. 누가 결혼할 때 사기꾼이랑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개차반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도둑놈 소굴인 직장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겉으로는 몰랐는데, 들어가 보니까 좋은 것이다. 줄을 잘 선 것이다. 꼭 저와 여러분은 다른 축복은 몰라도 이 축복을 받으셔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우리 중에 좋은 상대편을 만나 행복한 사람이 있고 좋은 부모를 만나 별로 고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좋은 직장 상사를 만나 편안하게 직장생활 하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결혼할 때 이상한 사람 만나 고생하고 있고, 태어났는데 개차반인 부모 만나서 죽을 고생하고 일하러 직장 들어갔는데 사기꾼들 소굴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만나는 순간 인생이 바뀐다.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래서 과거에 잘못된 모든 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의 발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약 부모가 이상했구나 그렇다면 내가 정말 복음의 뿌리 내려서 후대에게 영적 문제는 물려주지 않아야 되겠구나! 한을 품고 기도할 것 아닌가? 도리어 축복이다.
이상한 사람 만났다. 내가 이 복음 못 누리니까 이상한 사람 만났구나! 그렇다면 이제 오직 복음 체질로 바꿔져야 되겠구나! 그러면 그게 축복의 발판이다.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가장 축복된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2. 구원의 감사
1)사랑 받는 자
ㄱ.마땅한 일
오늘 말씀을 보라. 우리가 얼마나 복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셔야 된다. 13절에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여기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그런데 그 앞에 보면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될 것은 항상 감사해야 되는데, 어떻게 감사해야 되냐면 “마땅히” 라고 했다.
마땅히 라는 말이 무엇인가? 빚을 졌다는 말이다. 빚을 지면 어떤가? 빚은 반드시 갚아야 된다. 빚을 갚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된다. 그런데 내가 만약 빚을 안 졌는데, 다른 사람의 빚을 보증 섰다면 보증 선 사람이 그 빚을 빚진 사람 대신에 갚아야 된다. 그러니까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말은 우리는 반드시 끝까지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다. “마땅히”라는 말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감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이렇게 빚진 자 처럼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ㄴ.사랑 받는 자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되냐? 이유를 다시 알아야 된다. 13절을 다시 보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16절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세상 살아가면서 이웃으로부터 사랑 받으면 얼마나 흐뭇하고 기쁘고 감사합니까? 그런데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이유가 그냥 추수 감사절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어느 정도 사랑하시는가? 롬 5:8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죽기까지 사랑하신다. 여러분 이런 사랑이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요한복음 13:1에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한다.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신다.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끝까지라는 말은 불가능하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만큼 사랑하셨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 밖에 없다.
ㄷ.영원한 축복
그 다음에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되는가? 16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좋은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것 밖에 없다.
2)구원의 감사
ㄱ.택하심
그래서 이 축복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가? 내가 노력해서 왔는가? 성경에 13절 다시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 내가 뭘 했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이 나를 처음부터 택하셨다. 이것을 우리가 아셔야 한다. 야곱이 훌륭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어머니 태중에서 그를 축복하셨다. 그래서 야곱은 축복된 생애를 살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깨달았다. 내가 어머니의 모태에서 택정함을 받았구나! 또한 바울은 나중에 더 깊이 깨달았다. 알고 보니까 창세전에 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셨구나!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내가 뭘 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나를 택해 놓으셨다.
ㄴ.부르심
그 뿐 아니라 14절에 보니까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나를 부르사.” 내가 경건했기 때문에 진실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원해서 부르셨다. 복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종교생활(유대교)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 하고 잇었는데, 주님이 원하셔서 부르셨다. 우리는 미신 믿고 불교 믿고. 이상한 것 믿고 시달리고 있었는데 주님이 나를 원하시고 부르셨다. 주님은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셨다. 우리의 윤리도 도덕도 행위도 경건도 아니다.
ㄷ.거룩하게 하심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가? 우리를 부르신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3절에 보니까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그러니까 완전히 우리를 구별하셨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 무엇인가?
저는 어떤 분들과 얘기하다 보니까 “목사님 저는 아무리 믿어보려고 해도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더라.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진다. 이렇게 믿어지는 것이 차이점이다.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어보려고 애쓴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나를 부르셨구나! 라는 사실, 이게 믿어지는데 어떻게 하는가? 그런데 어떤 분은 아무리 아무리 설명해도 안 믿어진다고 한다. 안 믿어지는 것을 믿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저는 믿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믿어지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은혜의 주인공이 우리다. 이 땅에 사람들이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체면이 있지, 벼룩도 낯짝이 있지 내가 어떻게 합니까? 그러는 것이다. 벼룩이 낯짝이 없는 것은 맞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은혜 받은 사람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택하신 것 제가 믿어지고 하나님이 나를 원하셔서 부르신 것이 제가 믿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진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떤 사람은 안 믿어지니까 “믿~슙니다.”, 그래도 안 믿어지니까 “믿슙, 믿슙, 믿슙, 믿슙,믿슙니다.” 그런다고 믿어집니까? 저는 이게 하나님의 은혜로 가만히 있는데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그래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생애를 인도하시는구나! 이게 믿어지는데 이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런 믿어지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치를 알라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말하는가? 15절에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 지금 말과 편지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다. 이 복음을 굳게 지키라고 했다.
여러분 한 번 잘 생각해 보라! 이해가 쉽도록 설명하겠다. 제가 비교적 비싼 반지를 끼고 있다. 이 반지가 제가 얼마짜린지 모른다. 제 생각에 이게 1000원 짜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게 1000원짜리라면 아무렇게나 놓고 다니지만 주일날만 생각이 나서 낀다. 평상시에 이 반지를 제가 안 끼다가 반지를 넣는 케이스에 넣고 장롱에다 넣어둔다. 왜냐면 귀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만약에 1000원짜리인데 그걸 케이스에 집어넣고 장롱에다가 모셔놓지는 않는다. 왜냐면 반지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잘 보관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한다. 지금 바울이 여기 지키라는 말은 가치를 잘 알라는 말이다.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서 별로 가치 없는데다가 생을 거는데, 복음은 모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죄 문제를 해결 받았으며 사단의 손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는가? 어떻게 우리가 이 축복과 이 평안과 감사를 누리고 있는가? 복음 때문에 아닙니까? 이것을 우리는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이 복음 때문에 교회를 세우셨다. 복음 때문에 우리가 살아났다. 지금 사람들이 공부를 안 해서 죽어 가는가?
사람들이 복음이 들어가니까 많은 부분이 변화되더라. 좋은 말을 한다고 사람들이 변화되는가? 아니면 크게 혼낸다고 사람들이 변화되는가? 아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변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된다. 이것을 모르니까 사람들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를 하나님 만나게 하시고 죄문제 해결하시고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 복음인데, 이것 모르니까 오직 복음 말하지 않고 다른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가치를 몰라서 그렇다. 그러면 왜 강단에서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죄문제 사단의 문제 하나님 만나는 길,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만이 내가 사는 길이고 내 후대가 사는 길이고, 그리스도만이 교회가 사는 길이고, 그리스도만이 세상이 사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치를 알아야 된다. 그래서 이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 중요한 것을 잘 지켜야 한다. 만약 반지가 1000원짜리라면 가다가 누가 달라고 하면 줄 것이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반지가 1000원짜리보단 비싼 것 같다. 물론 이것이 꼭 필요한 중요한 사람이라면 줄 것이다. 왜냐면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길의 거지가 “목사님, 저거 주세요!”하면 주겠습니까? 차라리 내 지갑에 있는 만원짜리 주고 ‘떨어져라’고 할 것이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그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는 만큼 그것을 소중하게 다룬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강단 메시지를 붙잡고 기도하고 한 주간 내내 묵상하는 것이다. 이게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이구, 목사님 또 열내서 얘기 하셨네... 그래 잘 해봐!’ 그것이 아니잖아요. 소중한 줄 알면 소중하게 가꾼다. 우리는 정말 이 복음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복음이 희미해지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3. 예수의 이름
1)그리스도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된다.
정말 우리 죄 문제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죄가 어느 정도 심각한가? 하나님과 원수관계다. 하나님과 원수관계 된 이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다. 우리가 선행 한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나의 모든 죄 값을 대신 갚아 버렸다. 그래서 감사한 것 아닙니까?
분명히 이 땅에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 이 사단 이 땅의 모든 문제를 가져오는 창 1:2부터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이 땅에 들어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던 이 사단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가? 정치와 권력이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창세기 3장 15절에 말씀한 것처럼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셨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서 빠져 나왔다. 그래서 귀신 섬기고 제사 지낼 것 없다. 우상 숭배할 것 없다. 왜냐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해결됐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죄 문제 해결 받고 사단에게서 해방되고 정말 이 땅에서 축복을 누리다 우리 생애 끝나는 날 천국가게 된다. 그런데 불신자는 이 땅에서 죄에 종노릇하고 사단에게 끌려 다니다가 결국 지옥가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말하는 운명과 사주와 팔자에 묶여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 문제 해결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리의 운명의 문제를 완전 해결하시고 미래까지 완전히 보장하셨다.
2)권세를 주심
이런 축복을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 어떤 권세를 주셨냐?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가 계속 창세기를 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신약을 보는데 아브라함 신분이 바뀌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신다. 이게 신분이다. 이삭을 당할 자가 없다. 이삭이 훌륭하고 똑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기 때문에, 이삭은 가는 곳 마다 축복을 받는다. 야곱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야곱과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야곱을 하나님이 계속 승리케 하신다. 야곱을 무너뜨릴 자가 없다. 왜? 신분이 그렇다. 요셉이 비록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으로 가지만 요셉은 망할 사람이 아니다. 왜냐면 신분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신분이 있다. 영원한 신분 내 수준과 상관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다. 이 신분을 주실 뿐만 아니라 권세를 주셨다. 흑암을 꺽을 권세를 주셨다. 천국을 누릴 권세 주의 천사들이 활동할 권세 이러한 권세들은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다.
세상 나라가 주는 권세가 있다. 공무원은 나라가 권세를 주었다. 그런데 공무원이 은퇴하게 되면 그 권세가 없어진다. 1부 예배 오 면장님 오실 때, 제가 그런 얘기를 했다. 면장님으로 계실 때 면장님이지 은퇴 하시고 나면 면장님이 아니다고 했다. 세상이 주는 것은 현직에 있을 때만 그 권세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천국 갈 때 까지 영원한 것이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래서 우리 권세를 잘 사용하면 된다. 자꾸 뭔가 시커먼게 보이고 이상한 것이 보이면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우리 가정에 자꾸만 저주가 임하면 예수 이름으로 저주는 떠나갈 지어다. 해도 해도 가난이 떠나지 않으면 이 가난 저주는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권세를 사용하라. 권세는 사용하라고 주셨다. 자꾸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프다. 그러면 예수 이름으로 이 병마는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기도하라. 그래서 권세를 주신 것이다. 권세를 사용하면 된다. 그러면 내 것이다.
3)인생의 이유
ㄱ.훌륭한 생각
정말 우리 인생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훌륭한 생각을 하면 훌륭한 응답을 받는다. 꿰제제한 생각을 하면 꿰제제한 응답을 받는다. 사람이 큰 생각을 하면 큰 응답을 받는다. 원래 추수 감사주일은 미국에서 시작 되었다.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102명이 몇 달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배를 하나 샀다. 왜냐면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다.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짬뽕했다. 청교도들은 오직 하나님 잘 믿겠다는 중심이 있었는데,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을 지금 다락방을 이단, 삼단 핍박하는 것처럼 핍박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하나님 정말 잘 믿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뭉쳐서 몇 달 동안 일해서 배를 하나 사서 그 배를 타고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건너가려고 했다. 그래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 잘 해보자 하면서 65일 동안 배를 타고 미국에 간 것이다. 오면서 절반이 죽었다. 미국 땅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예배당을 하나 건축했다. 하나님을 잘 믿기를 원했기 때문에 예배당을 젤 먼저 세웠다. 얼마나 훌륭한 생각인가?
지금 미국이 복 받은 것은 조상들이 잘 해서 복을 받은 것이지 미국이 잘 해서 복 받은 것이 아니다. 조상들이 훌륭한 생각을 하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예배당을 세웠다. 왜냐면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그래서 예배당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학교를 세웠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후대들이 가장 바르게 자라야 될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다음에 자기 집들을 지었다. 그래서 이들이 복 받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1년 동안 고생해서 곡식을 얻어서 첫 번째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추수 감사주일의 유래이다. 훌륭한 생각은 훌륭한 응답과 말로 할 수 없는 축복을 받는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래, 해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어려워서 동참하지 못해도 내가 하루에 정시기도를 세 번 하는데, 우리 교회 선교원 짓는 것을 위해서 한 번 정시기도를 더 하겠다. 그렇게 동참하는 것이 훌륭한 생각이다. 훌륭한 생각은 훌륭한 응답을 받는다. 포기하는 생각을 하면 포기의 응답을 받는다. 우리의 인생이 포기의 응답 받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지금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드릴 것이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이게 훌륭한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또 자기가 참여를 못하니까 은근히 혼자 외톨이가 된다. 참여를 못하게 되면 내가 참여를 못하는구나! 생각하고 뒤에서 기도로 후원하면 될 텐데, 은근슬쩍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훌륭한 생각이 아니다. 삐딱한 생각은 삐딱한 응답 받고 자기 자신이 삐딱한 인생을 산다. 얼마나 인생이 불쌍합니까?
우리는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하시고 내가 못 하면 훌륭한 생각을 하며 기도로 후원하라. 우린 이 땅에서 훌륭한 생각의 응답을 꼭 받아야 한다. 고전 15:10에 보면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이 주의 복음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데 누가 안 알아준다고 해서 상처 받을 것 없다. 내가 이렇게 수고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지 얼마나 감사하냐 하는 것이 훌륭한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열심히 일을 했는데 제가 알아주지 않았다고 시험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꿰제제한 사람이다. 복음은 꿰제제한 것이 아니다. 멋있는 것이다. 생각이 훌륭해야 된다
어떤 사람이 시험 들었다고 하길래 왜 시험들었냐고 물어봤더니 인사했는데 인사를 안 받아줬다고 시험 들었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우리 목사님 눈이 나빠서 그런가보다.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시다가 그런가보다. 아니면 목사님 무시기도 하시느냐고 내 인사를 못 봤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셔야지 그것 때문에 삐지고 시험 들고 삐질 것 없다. 그런 사람은 평생토록 삐지고 시험 드는 응답만 받는다. 생각이 훌륭해야 된다. 이게 모든 응답이고 모든 미래가 된다.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이 멋있어야 된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야, 저 사람은 참 멋있는 사람이다.’ 그래야지 ‘에이, 저 사람은 속이 좁은 사람이다.’ 속이 좁으면 좁은 응답 받는다. 일단 사람은 속이 넓어야 한다. 그게 훌륭한 생각이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봐 얘기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이 그릇이 커야지 간장 종지 같으면 이게 응답을 그만큼 밖에 못 받는 것이다. 이게 훌륭한 생각이다.
ㄴ.한 사람
두 번째는 에레미야 5;1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면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우리는 축복된 한 사람으로 쓰임 받아야 한다.
사도행전 16장에 루디아 한 사람 때문에 빌립보 전 지역이 복음화 되었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는 실패한 인생인데 그들이 바울을 만났다. 그들이 고린도지방에 살았다. 고린도는 속초와 양양 같이 우상이 가득한 지역이다. 그런데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때문에 고린도지역이 복음화가 되었다. 행 10장에 보면 피장 시몬 때문에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가 하나님께 돌아온다. 누가라고 하는 한 사람 때문에 데오빌로가 복음을 받는다.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요셉 한 사람 때문에 전 세계가 기근이 들어 다 죽어야 되는데 가문이 살고 전 세계가 살았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시대가 산다. 가이오 같은 사람은 교회 식주인의 응답을 받았다.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가 많아서 망한 것이 아니라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다. 우리 가정이 왜 어려움을 당했냐? 지금까지 복음 가진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하나님 은혜로 내가 복음을 받았다. 그러면 틀림없이 나 때문에 가정이 산다. 이걸 아셔야 된다. 이 지역엔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몰라도 저와 여러분 통해 이 지역은 축복 받게 되어있다.
제가 어느 날 사업하는 분을 만났더니 목사님, 속초는 살 곳이 못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떠나버린다고 하더라. 제가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상처가 되는 것이다. 속초 사람이 다 떠나버리면 나 혼자 남을텐데, 그러면 나 혼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니까 근심이 되는 것이다.
내가 다시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그 분은 사업가기 때문에 사업하는 입장에서 먹고 살 곳이 없는 곳이지만 저는 기도하면서 그랬다. 하나님은 나 때문에 이곳을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 왔다. 분명 그 분은 사업하는 분이니까 다 연구해서 그렇다. 거짓말 하는 분도 아니다. 속초 양양 인구가 준다. 그런데 제가 기도하면서 이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 때문에 이 곳에 인구 많게 할 것이고, 돈 많은 사람도 오게 할 것이고 사람들을 안 떠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왔다. 다 떠나면 나도 떠나야 할 것이고 그러면 속초 양양은 누가 살릴 것인가? 그 믿음이 왔다. 제가 있는한 여러분은 어디 도망가려고 생각하지 마라. 도망가는 사람은 반역자다. 그걸 아셔야 한다. 나 때문에 이 지역은 복 받겠구나 하는 믿음이 왔다. 나 때문에 이 지역은 복 받게 되어 있다는 믿음이 왔다. 나 때문에 가정이 살고 나 때문에 우리 교회가 산다. 우리 지역이 산다. 여기 한 사람만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시대가 사는 것이다. 이게 축복의 주인공 아닌가?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가.
ㄷ.미래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청교도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예배당을 세우고 학교를 세웠다. 그러면 이 지역에 학교도 많고 유치원도 많고 학원도 많고 어린이 집도 많다. 이런 것들 당연히 해야 되는데, 한 가지 복음만 안 가르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 우리가 왜 이 지역에 선교원을 왜 세워야 되는가? 다 있는데 한 가지가 없는 이 복음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복음을 가르쳐 줘서 이 복음에 길들여지고 복음에 사상이 되고 체질이 되었더라면 아마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훨씬 풍성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인 우리는 후대 살리는 일에 투자해야 될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면 무엇을 투자해야 될 것인가? 우리 후대들에게 복음을 영적인 축복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것이다. 이게 우리가 하려고 하는 후대교육이다. 이것 때문에 저는 전도사님을 모시기로 결정을 했다.
또 선교원을 세우자고 했다. 우리가 여유가 있어서 돈이 많아서 선교원을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다 어렵다. 저도 빚을 내야 된다. 공동체 훈련장 헌금도 저는 3년 후에 일시납을 했다. 왜냐면 너무 나가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우리는 후대 살리는 일을 해야 된다. 후대를 살리지 않으면 교회 미래가 없다. 우리 후대를 살리지 않으면 사회에 미래가 없다.
한나는 사무엘을 어릴 때부터 복음으로 양육을 했다. 한나는 사무엘을 어릴 때 하나님 앞에 드렸다.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선지자 중 하나가 사무엘이다. 요게벳은 그 아들 모세에게 어릴 때부터 언약을 심었다. 이 모세가 민족을 살렸다. 어릴 때부터 복음 심으면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그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 축복을 누려야 되는 것이다.
말씀정리
정말 예수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 예수 이름으로 찬미 제사 드리는 축복을 누려야 되겠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사랑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신분과 권세를 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이 훌륭한 생각 하면서 후대 살리고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아야 될 것이다.
언약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추수 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훌륭한 생각 가운데 멋있는 복음의 사람으로 길들여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후대 살리는 일에 생을 걸고 인도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시고,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셔서 마음껏 주의 복음을 위해서 후대를 위해서 헌신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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