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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인도(창세기 37:18-28) 조회수 : 186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11-15
  첨부파일:   20051113 주일강단 메시지.hwp(30K)
● 창 37:18-2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설교내용

1.우리의 행복
1)숨겨진 문제
ㄱ.드러난 문제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죄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죄를 크게 나누면 드러난 죄와 숨겨진 죄가 있다. 드러난 죄는 설명하기가 좀 쉽다. 예를 들어서 자범죄를 지었다고 하면 금방 설명이 되어진다. 자범죄를 지으면 일반적으로 내가 손해를 보니까 죄를 지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우상숭배가 죄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잘 설명을 하면 이해를 한다. 우상숭배를 많이 하면 성경에서도 3-4대까지 망한다고 했고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조상의 죄가 후대에게 내려온다. 설명을 하면 이해를 한다. 그렇구나! 우상숭배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구나!
조상으로부터 죄가 후대에게 내려온다. 이게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설명을 잘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예를 들어서 유전이라는 것을 설명하면 금방 알고, 습관, 성격, 음식 등은 부모로부터 닮는다. 병도 부모의 내력이 있으면 자기에게 그 병이 올 확률이 많다. 조상의 문제다. 이런 것들은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
ㄴ.숨겨진 문제
그런데 문제는 숨겨진 문제다. 이 원죄라는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설명도 어렵고 사람의 눈에 안 보이고 증명이 안 되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다. 도대체 원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그 순간부터 원죄가 임하게 되었는데,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일어난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사단에 잡히게 되었다. 바울은 엡 2:2의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끌려다닌다고 했다. 바울이 롬 5:10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원수 상태가 바로 원죄다. 원수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가?
원수 상태가 되어버리면 그 사람 밥 먹는 것도 꼴 뵈기 싫고 걸어가는 것도 화가 나고 숨쉬는 것도 신경질 난다. 잠자는 것도 화가 난다. 원수상태가 되면 밥먹다 배탈이 나야 기분이 좋다. 처절하게 망해야 고소하다. 그런 상태가 원수다. 하나님과 관계가 원수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원죄다. 이것이 눈에 안보이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죄를 말할 때 눈에 보이는 것은 금방 이해가 되는데, 원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건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종교나 좋은 것이 아니냐? 우리가 선을 추구하니까 좋은 것 아니냐? 내가 선하게 살고 바르게 살면 원죄문제가 해결될 것 아닌가? 사실은 조상숭배 우상의 죄도 해결이 안 되는데, 착각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교회를 다녔다고 하더라도 오직 예수라는 말을 모른다. 하나님과 원수 된 이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밖에 없다. 이 말이 오직예수라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이 갈 3:13에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다. 내가 받아야 될 저주 원수의 모든 값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치루셨다. 그게 십자가다. 그러니까 원죄라는 것을 모르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되는지 모른다. 하나님과 원수 된 문제는 하나님 십자가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사람들이 모르니까 아무 종교나 잘 믿으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착하게 산다고 종교를 하나 가진다고 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예수의 피를 말하는 것이다.
2)마음의 문제
또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나 실패된 감정들이 있다. 우리 사람 속에 들어와 있는 실패된 감정들은 잠시 잠깐 동안 잠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 사단의 통로로 남아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모르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단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결되어 지는 것도 아니고 잊으려고 한다고 잊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담겨지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왜 계속적인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는가? 우리 속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왔던 상처와 감정들이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기가 해결하면 되는 줄 알고 있는데, 말씀이 그 영혼 속에 잠재 의식 속에 심겨지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지속해서 들어야 될 이유가 여기 있다.
3)우리의 행복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바보 또라이 같은 물고기는 물속에 있으면서도 불평이 많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이 축복 속에 있으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또라이 물고기처럼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우울증이나 불면증이나 의부증 의처증 정신병 노이로제 같은 것은 짐승에겐 거의 안 나타난다. 이런 증상은 인간에게만 나타난다. 왜냐면 우리 인간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걸린 개를 본 적이 있습니까? 잠을 못 이루는 돼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만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밤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병이 오기도 하고 한다. 왜냐면 인간에만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말 이런 문제는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참된 행복이 있는 것이지 다른 방법으로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총독이 박수무당을 끼고 살았다. 그 당시의 총독이면 지금 도지사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당시 총독과 지금의 도지사 하고는 권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 당시 총독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한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도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한이 없다. 그러면 그 만큼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뭔가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박수무당을 끼고 사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 인간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점하는 귀신들린 소녀가 그 동네를 휘젓고 있다. 그 말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이 없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이 전부 미신을 믿고 있다. 왜 미신을 믿는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절대 우리 인간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인간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이 축복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만나게 하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단의 세력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신 이 축복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 곳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잖아요. 만약에 이 축복 모르는 사람은 지금 예수 영접 하셔야 된다. 교회 30년 50년 다녔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참된 평안이 없다.

2.하나님의 인도
1)길들여진 사람
ㄱ.교활함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죽이자고 하는 것이다. 그 죽이기를 꾀한다는 말은 교활하다는 말이다. 또 20절에는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자. 아주 즐기자는 말이다.
ㄴ.무서운 결과
이게 사람이 한 번 생각이 비뚤어지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요셉이 꾼 꿈을 가지고 미워하고 시기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죽여서 구덩이에 던지자. 그리고 그 옷을 벗겨서 짐승의 피를 묻혀서 잡혀 먹었다고 하겠다. 사람이 한 번 생각이 비뚤어지면 딴 판으로 가게 된다. 요셉이 자기 동생인데, 사람에게 한 번 형성된 습관, 생각은 겉잡을수 없이 나간다.
제가 어느 날 아내와 같이 시장에 나갔는데, 제 아내가 “아줌마, 이놈은 얼마요?” “저놈은 얼마요?” 그러더라. 그래서 제가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여보, 이놈은 뭐요? 저놈은 뭐요?” 내가 계속 그랬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막 웃더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저도 그렇게 사용하긴 하는데, 제 아내가 이놈저놈 하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 이게 자기도 모르게 말이 습관이 된다. 악한 생각을 가지고 한 것도 아닌데,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 사람이 한 번 잘못된 생각과 습성에 길들여지면 바꾸기가 힘들다.
지금 요셉의 형들이 조금 하나님과 방향이 안 맞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데 까지 가는 것이다. 복음 때문에 말도 곱게 쓰고, 저는 그런 것을 보면서 제 자신이 복음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내 삶의 모든 부분에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복음을 한 번 들으면 아는데 그것이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 생기면 옛날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걸 내 삶에 실제로 적용하고 그 안에서 응답받고 인도받는 이것이 잘 안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것 모르면 “목사님은 왜 맨날 주일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만 말합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나를 보면 안다. 되는 것처럼 안 되는 것이 복음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 삶에 적용이 잘 안되는 것이다. 누가 나를 건드려서 나한테 핏대가 올라갔다 그렇게 되면 복음이고 나발이고 없다. 완전히 내 자존심, 성격, 성질 급한 것이 다 나온다. 그러면 저만 그렇습니까?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온 성도님들도 비슷한 동창생 아닌가? 정말 우리는 복음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내 의지로 노력해도 결단해도 안 되는 것을 어떻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복음에 길들여지고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야 되는 것 아닌가?
2)생각하는 사람
그런데 여기 그 형 르우벤은 멋있는 사람이다. 우리 동생 죽이지 말자고 한다. 그래서 구덩이에 던져 놓자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은 나중에 요셉을 살려서 아버지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유다는 나중에 동생 죽이면 되겠냐? 노예로 팔아먹자 다른 형제들이 죽이려고 하니까 살리는 길이 아닌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르우벤과 유다가 내 동생을 죽이면 되겠냐? 살려야 되겠다. 이것이 복된 생각인가?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영적 생활에 유익한가? 생각을 해야 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성령충만함을 유지하고 어떻게 복음에 길들여 질까 어떻게 은혜를 유지할까 늘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가정생활하면서도 그렇고 인간관계를 하면서도 생각을 해야지 방법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나를 은혜 체질로 자꾸만 생각하면 방법이 나온다. 테이프라도 매일 한 번씩 들어야 되겠구나!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 못 들었으면 또 다시 해야 되겠다. 기도수첩을 가지고 매일 같이 정시기도 해야 되겠구나 생각을 해야 된다. 만약 실천을 못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버리면 일주일 금방간다. 생각이 없으면 그렇다. 내가 뭘 실천을 못해도 생각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이 쌓여져서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된다. 내가 은혜를 유지하고 복음적인 삶을 살고 복음에 길들여지며 성령충만에 길들여지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된다. 예배드리고 나서 생업현장에서 바쁘다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3)하나님의 인도
결국은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구덩이가 있는데 그 속에 물이 없었다. 결국은 요셉은 은 20냥에 팔려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다. 그게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인도였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떤 깨달음이 왔냐면 아버지 야곱에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다. 만약에 요셉이 아버지 품에 있었으면 물론 어머니가 안 계시고 형들이 왕따시키기는 하지만 늘 아버지에게만 의존했을 것이다. 그러면 요셉은 그 인생이 초라한 인생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아시고 요셉이 그의 아버지를 떠나도록 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 이게 하나님의 인도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후대를 기를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부모만 바라보도록 만드면 실패할 것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서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인데, 부모가 “나를 봐라! 내가 너를 다 책임지겠다!” 부모가 자기 인생도 다 책임 못 지면서 무슨 자식의 인생을 책임지겠는가? 하나님의 인도이다. 요셉이 그 당시에는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게 축복인 것이다. 롬 8:28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도다.’ 요셉이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인도였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요셉이 하나님을 안 바라보면 살 수 없도록 하나님이 환경을 만들어 갔다. 성도들 가운데서 이런 사람들이 여러 분 계실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프고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이게 하나님 인도고 축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복음 안에 있는 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축복의 길이다.

3.인생의 이유
1)하나되는 일
그렇다면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의 인생의 이유가 하나 되는 일임을 깨달았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거의 가난하고 무식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초대교회를 설명할 때 마다 특징되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같이 해서 기도에 힘썼다.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했다. 이 말은 물론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전 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상대편이 전 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과 나와 하나 되자고 해서 하나가 되는가? 그 때는 하나 될지 모르지만 그 다음날 가보면 하나가 안 된다. 그게 우리 인생이다.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상대편이 또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다스림 받고 할 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이었지만 각자 각자가 전부다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하나가 되었다. 이게 그래서 초대교회를 통해서 로마복음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저는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 바라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성도님이 하나님을 바라보면 역사가 일어난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가정이 하나가 되어버리면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 가정이 만약 네 식구다 네 식구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하나님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계속 세상 붙들고 있으면 그 가정은 얼마 못 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식구가 다 같이 하나님 바라보고 있으면 어려움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의 발판이 된다. 초대교회가 그랬다는 말이다.
2)훌륭한 이유
그러면서 정말 우리는 생각이 참 훌륭해야 된다. 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을 듣고 형들은 생각이 비뚤어졌다. 그런데 야곱은 그것을 마음에 두었다. 생각이 이마만큼 중요하다.
사람이 얼만큼 훌륭한 생각을 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고 미래다. 사람의 생각이 쪼잔하면 쪼잔한 인생이 된다. 생각이 크고 미래를 바라보고 하면 그 삶이 풍성한 삶을 사는 것 아닌가? 생각이 옹졸하고 좁으면 그 사람의 인생이 옹졸하고 좁은 것이다. 그게 자기 응답이요 그릇인 것이다. 참 우리는 내가 이 복음 안에서 생각하느냐가 응답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말이 되고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가이오 같은 사람은 물질의 복을 받았다. 가이오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복음을 위해서 쓰임 받아야 되겠구나! 그래서 교회의 식주인이 되어 교회의 모든 살림살이를 감당할 만큼 물질을 드렸다. 대부분 사람이 돈 많으면 목에 힘주고 폼이나 재고 산다. 그런데 가이오는 “아,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물질을 주셨는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복음에 헌신하라고 주셨구나!” 그래서 귀하게 쓰임 받았다. 생각의 차이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는 복음 때문에 자기의 생명이라도 내어놓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울은 열심히 해보라고 해! 우리 부부는 인생을 즐기며 사는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살 수도 있다. 성경에 보면 평신도 중에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였다. 그들의 생각이 복음이 너무 소중하고 복음전도자가 너무나도 귀중하구나! 그러니까 우리 목이라도 내어놓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목을 내어놓았는가? 생각이 그런 것이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그의 미래고 그의 응답이다. 우리는 복음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이 우리 미래고 우리의 응답이다. 이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된다.
3)인생의 이유
ㄱ.참된 헌신
정말 우리는 인생의 이유를 알아야 된다. 어디에다 참된 헌신을 할 것인가? 류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더라. 자신이 나이 20살에 어머니 따라서 교회를 다니다가 교인들이 믿음이 없고 복음이 없으니까 전부다 예배드릴 때는 아멘 하는데 돌아가서는 전부 불신앙하고 장로님 권사님 다 그러니까 ‘아, 내가 교회 다닐 필요가 없구나!’ 그러면서 나이 20살에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회를 안 다니니까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그러다가 완전히 타락해서 못된 짓을 많이 했던지 동네 사람들이 자기 아들들 보고 ‘광수하고 놀지 말라!’ 이게 얼마나 비참한 얘기인가? 그런데 잠을 자는데 가끔 가다가 어렴풋이 깨보면 어머니가 머리에다 손을 얹고 하나님, 이아들 복음 위해서 세계 복음화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더라. 그래도 자기 양심이 있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전부 광수하고 놀지 말라고 하는데, 어머니는 소망을 잃지 않고 우리 아들 세계 복음화 위해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자기 꼬라지가 얼마나 불쌍한지 깨닫고 그런 중에 나중에 복음 깨닫고 쓰임받았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을 사람이기 때문에 어머니로 하여금 기도하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해도 어머니가 가슴에 한을 품고 중심을 담고 복음에 쓰임받도록 헌신할 때 일어난 역사들이다 혹시 자녀들 중에 그런 자녀 있으면 언약 가진 부모 때문에 그 자손들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낙심해도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 언약가진 부모 때문에 그렇다. 쓸데없이 나이 많이 먹어서 남들 욕이나 하지 말고 정말 자손들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게 부모가 할 일 아닙니까?
ㄴ.인생의 투자
우리는 인생을 영적인 일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금을 하고 예배드리는 것도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많이 투자한다. 우리가 시간도 보면 눈에 보이는데 얼마나 많이 투자하는가? 여자 분들은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생을 걸고 있는다. 그 말은 속이 허하다는 말이다. 속이 허한 사람일수록 겉에다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옷도 단장하게 입고 다녀야 되지. 붙이고 난리법석 하는 것은 그만큼 속이 허하다는 증거다. 정말 우리는 중요한 가치있는 일 영적인 일에 우리의 생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제 아이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컸는데,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성도들이 집에 오기도 하고 손님들이 오기도 하면 돈을 주기도 하고 했는데, 그래서 잘 설득시켜가지고 저축을 시켰다. 자기 용돈도 아껴서 저축을 시키도록 만들고 외부로부터 생긴 돈들을 다 저축을 시켰다. 6년이 돼서 졸업할 때 쯤 되니까 돈이 꽤 많더라. 아이들이 볼 때는 천문학적인 숫자고 제가 볼 때도 이렇게 돈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돈을 타오기 전에 제 아내가 우리 아이들을 앉혀놓고 얘기하더라. “우리 이거 하나님 앞에 드리자! 하나님 앞에 드리면 니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쪼들리고 쪼들리면서 살았기 때문에 이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계산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날아가니까 안한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자꾸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반 강제적으로 헌금을 했다. 그런데 지금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애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구나! 전 깨달아진다. 제 큰아이 같은 경우는 대학 졸업하고 바로 박사과정으로 들어갔다. 5년 동안 학비 전액 무료 학교에서 한 달에 1500불씩 지원한다. 5년 지나면 연장할 수 있다. 이게 자기 실력입니까? 부모가 잘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우리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하고 외국 유학을 갔다. 외국을 갈 때 한 학년 낮춰서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교를 가는데 3학년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저는 안 된다.”고 해도 학교에서 3학년으로 시켜놨다. 그래서 1년이 빨라져 버렸다. 우리 아이와 동창들은 대학 3학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대학 4학년이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이다.
그런데 애들에게 참 은혜를 주셔서 미국생활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활을 못한다. 제가 차를 사라고 하는데 안 산다. 엄마 아빠에게 부담 될까봐서 우리나라에서는 교통 환경이 좋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을 가려고 해도 차가 없으면 못 간다. 그게 사실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애들 마음을 움직이니까 그런 것 아닌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후대들에게 정말 하나님 앞에 그 인생을 맡길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 그들의 생애를 복되게 하는 것이다. 저는 저희 두 아이를 보면서 그들이 특별히 똑똑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높이시더라.
ㄷ.미래를 위하여
정말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후대에 투자를 해야 된다. 왜 제가 우리 교회에 전도사님을 모시기 위해서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맹 강도사님, 김동우 전도사님 뛰어난 분들이다. 전도사님 한 분 없어도 이분들이 다 커버한다. 그런데 제가 한분 전도사님을 모시려고 한다. 그러면 교회가 돈 많습니까? 재정부에서는 늘 불안하다. 목사님이 무슨 일을 터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빚은 1억 6천 있지. 전도사 모신다고 기도하고 있지, 그러나 후대 생각하면 빨리 와야 된다.
그런데다가 또 선교원 하겠다고 목사님이 저러니까 성도들 가운데 부담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선교원 하는데, 적어도 몇 억이 있어야 한다. 건물과 건물을 수리해서 선교원으로 쓸 수 있어야 된다. 그리고 관리인도 있어야 된다. 돈도 없는데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주시면 하고 안 주시면 안하는 것이고 복잡한 것은 없고 억지로 밀어 붙히는 것도 없이 주님 주신 응답 따라서 가면 된다.
왜 이런 것을 해야 되냐?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운동에 동참하며 복음 누리면서 보니까 내가 너무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더라. 그런데 제 삶을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만약 어릴 때부터 복음을 붙들고 복음 안에 길들여져서 자랐더라면 그많은 고생 그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았을텐데. 그렇다면 우리 후대들 이거 심어줘야 될 것 아닌가? 저는 보면서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늘 그러면서도 머리로 이해는 되는데 체질이 안 되니까 낙심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면 우리 후대들을 어릴 때부터 복음 안에서 체질 되도록 복음적인 눈을 열어주고 복음 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복음적인 삶을 살게 되면 이게 인생에 얼마나 귀하겠는가? 이걸 생각하니까 그래, 정말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될 일이 뭐냐? 정말 우리가 투자해야 될 일이 뭐냐? 우리 후대들 이거 해야 될 것 아니냐? 제가 하나님 앞에 양심적으로 기도하면서 “그래, 우리 교회가 해야 될 일이 뭐냐? 일단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진 애들부터 이거 해야 되거든요.”
지금 우리 1시 30분에 태영아부 예배와 그리고 가정에서 집사람이 태영아부 다락방을 한다.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여기 김동우 전도사님이 결혼하셔서 사모님과 같이 오셨는데, 제가 어제 저녁에 두 사람에게 그랬다. 사역도 중요하지만 태영아부 예배부터 참석하라고 했다. 왜냐? 부부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그러지 않는가? 시작부터 배워야 될 것 아닌가? 교인들이 자녀 기르려면 좋은 말 할 때. 들어라. 아니 내가 실패하고 그렇게 찌그락하면서 살았으면 우리 후대들은 그렇게 키우면 안 될 것 아닌가? 여기서 자란 후대들이 아들 낳고 태영아부 다락방 하고 있는데 얼마나 귀한가? 애들이 자라서 일반 유치원 어린이 집 가보면 복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급하게 선교원 세워서 태영아부에서 자란 애들 어릴 때부터 복음 심어 놓으면 애들은 영원하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여기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왜 이 지역에 살게 하셨는지에 대한 이유 알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살아야 한다. 밥먹기 위해서 산다면 뭘 해도 먹고 산다. 감옥에 가도 밥 먹고 산다. 정말 우리 인생은 그런 인생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훌륭한 생각 하면서 인도 받아야 된다.

● 말씀정리
우리는 죄문제 해결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원죄문제 가운데서 해결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말씀에 길들여져서 복음 안에서 생각하고 복음 안에서 인도받는 축복 누려야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훌륭한 생각 가운데 하나님 바라보는 하나 되는 일에 그리고 참된 헌신하는 일에 미래를 위해 내 인생을 투자하는 주인공으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 언약기도
우리를 복된 날 복된 장소 은혜 받을 자리에 있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언약이 되게 하시고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복음적인 생각, 복음적으로 인도 받는 축복 누리게 하시고 우리 인생이 어디에 투자하며 살아야 될 것인지 인도받는 축복 누리게 하소서. 우리 자신이 복음 안에 길들여지게 하시고 우리 후대들이 복음에 길들여져서 지역을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깨어져 가는 가정을 살리고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데 쓰임 받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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