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8. 21 하나로 교회 주일 강단 메시지
창세기 30:25-36 생명을 아는 사람
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28 또 가로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가로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1. 생명의 힘
1) 생명의 힘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이 2000년 된 종려나무 씨앗에서 싹을 틔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씨앗은 이스라엘의 맛사다라고 하는 사막지역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 씨앗이 6주가 되는데 발아가 되는데, 어떤 싹은 길이가 30센티 정도 되는 잎이 났다고 한다. 그러면 2000년 된 씨앗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중동지방은 사막지역이기 때문에, 부패되지 않고 생명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만에 과학자들의 과학기술로 인해 싹이 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는 그 보도를 보면서 과학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씨가 2000년동안 죽지 않았기 때문에 싹을 틔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죽었다면 아무리 과학자들이 수고한다 해도 싹을 틔울 수 없었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생명
생명의 힘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도 생명의 힘은 신비하고 놀랍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누구인가?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그랬다.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생명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그랬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면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어떻게 되는가? 요한복음 5:24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게 예수 믿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교회가게 되는 것, 물론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러나 정말 예수 믿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 생명이 임해지기 이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그 순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과 교제와 영적인 모든 삶이 회복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생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증거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요한일서 5:11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안에 있는 그것이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그랬다. 분명히 예수가 내 안에 영으로 계시면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 자체가 ‘내가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으로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바로 예수생명이다.
과학을 통해서 생명의 힘이 대단함을 느끼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3) 영원한 축복
예수 생명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영원한 축복이다. 요한복음 14:16에 ‘내가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겠다.’ 보혜사를 보내는 이유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하기 위함이다. 영원히 함께 하는 방법으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인격적인 주인으로 모셔들인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히 함께 하신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내가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너희와 함께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심겨져 있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요 10:28-29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라는 사실은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빼앗아 가려고 속이는 자가 있는데, 성경은 그를 마귀와 사단이라는 자들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이 땅에 어떤 존재도 하나님을 이길 자는 없다. 이 사실을 꼭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혹시 낙심하고 좌절해도 불신앙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 영원한 축복이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인도
1) 하나님의 인도
야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냐는 말이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1) 야곱의 관심
오늘 말씀 창세기 30:25절에 야곱이 왜 고향으로 갈려고 하는 것인가? 야곱의 관심은 언약에 있다. 창세기 28:13에 너 누운 땅(벧엘)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야곱이 누운 땅은 벧엘 땅 가나안 땅이다. 그 땅을 차지하려면 야곱이 그 땅에 가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곱이 왜 삼촌 라반의 집에 와 있는 것인가? 삼촌 라반의 집은 임시로 와 있는 것이다. 지금 가나안 땅에 있으면 가나안에 우상숭배 하는 여자들을 아내로 맞게되기 때문에 가나안의 여인을 맞지 말고 언약가진 여인을 아내로 맞기 위해서 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게 되었다. 즉 언약가진 여인을 아내를 맞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창세기 28:14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고...’ 그 말은 네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많아지기 위해서는 먼저 결혼을 해야 될 것이고, 언약가진 레아와 라헬과 결혼을 하고 아들을 12이나 낳게 되었다.
그러니까 야곱의 관심이 언약가진 아내를 맞았고, 언약 가진 후대를 12명이나 낳았다. 그러면 지금 자손이 많아졌다. 그 다음 야곱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인도
창 30:26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처자식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당연한 얘기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안에 중요한 영적 비밀이 있다. 그러면 아내들과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약속된 사람들이다. 우리 말로 말하면 기도응답이다. 지금 야곱이 라반의 집으로 간 것은 언약가진 아내를 맞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야곱은 살았다. 그래서 언약가진 아내를 만나고 자식들을 얻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가는데, 홀로가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데, 어떤 인도를 받아야 되는가? 이미 받은 응답을 확인하고, 우리가 받아야 될 응답을 바라보면서 나가는 것이다. 야곱은 이미 두 아내와 아들들을 응답으로 받았다. 받은 응답을 놓치지 않고 받을 응답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이요 바른 인도를 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받은 응답을 놓쳐버리고, 새로운 응답을 향해서 계속 나가는 것이다. 그게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응답, 축복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될 것 아닌가? 신앙생활 하는데, 받은 응답을 확인하면 믿음이 확실해진다. 언약이 선명해진다. 그러니까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받은 축복을 놓쳐 버리고 없는 것만 붙잡고 가려고 하니까 흔들리는 것이다. 야곱은 지금 바르게 인도받고 있다. 자기 방법,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 따라 인도받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이익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도 받는데, 꿈의 인도를 받는다. 보여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불건전 신비주의다. 사단에게 속는 것이다. 제가 어릴 때 어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머리가 길어서 좋아한다고 한다.’ 인도를 그렇게 받으면 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받는다. 지금 야곱이 어떻게 인도를 받는가? 분명히 자신이 받은 응답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능력
(1) 붙잡는 라반
그런데 지금 삼촌 라반이 붙잡고 있다. 27절 보니까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라반이 축복받은 이유를 안다. 야곱이 가겠다고 하니까 이 복덩이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라반이 복덩이 야곱이 간다고 하니까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사업을 하는데 내 사업에 이익을 계속 주는 사람이 간다고 하면 안 놓는다. 라반이 욕심쟁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요 정확히 말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면서 야곱에게 말한다. 네 품삯을 정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그것을 주겠다. 이렇게 말하면서까지 붙잡는다.
29절에 보면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으며, 쳤는지, 외삼촌이 알잖아요, 하면서 쭉 얘기한다. 31절에 ‘라반이 무엇으로 내게 주랴’ 계속 그러는 것이다.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것이다. 붙잡으려고.
이 때 야곱이 어떻게 하는가? “좋다. 그럼 내 품삯을 많이 정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야 되는데, 야곱은 그렇지 않는다. 31절에 “라반이 가로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가로되 아무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삼촌이 내게 줄 것 없다. 이것이 절대 교만한 얘기가 아니다. 32절에 양과 염소가 있는데, 색깔 있는 것은 전부다 가져가시고, 흰둥이 양과 염소만 기르겠다. 그 중에 색깔 난 것은 내 삯이 되겠다는 말이다. 흰둥이는 흰둥이만 낳게 되어 있다. 그런데 색깔있는 것은 다 가져가버리고 흰둥이만 데리고 양을 기를텐데, 그 중에 색깔있는 것이 낳으면 내 삯이 되겠다고 한다. 라반이 가만히 계산해보니까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2) 하나님의 능력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다. 옛날에 자기 아버지를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농사를 지을 때 100배의 축복을 하신 사실을 믿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세상 사람의 도움 안 받아도 된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었다. 창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연합군에게 잡혀갔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신 가병 318명을 데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롯을 뺏어오고, 전리품을 가져와서 하나님 앞에 1/10을 드린다.
그런데 소돔 왕이 가만히 보니까 아브라함과 친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겠다고 말하니까, 아브라함이 창 14:23에 보면 사람들이 너의 도움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할까봐 안 받겠다고 했다. 즉 나를 도와 주려고 하는 것은 고맙지만 나는 당신의 도움 안 받아도 하나님이 복 주실 줄 확신한다. 이것을 야곱이 할아버지(아브라함) 얘기를 통해서 들었고 아버지(이삭)를 통해서 보았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100배 축복 주시는데, 삼촌의 도움 안 받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복을 받겠다는 얘기지, 사람도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3) 하나님의 약속
(1) 하나님의 약속
야곱의 말은 혹시라도 삼촌이 혹시라도 나중에 내가 도와서 야곱이 복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는지 증거를 보이겠다고 한다. 이게 바로 야곱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2) 기도의 축복
야곱이 이 믿음 가지고 기도의 축복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보면서 놀란 것이 있다. 창 30:25에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가서 고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연대를 계산해 보겠다. 야곱이 라헬을 부인으로 맞기 위해서 14년을 수고 했다. 그리고 창 30장에 보면 라헬이 자기에게서 아들이 없다고 남편에게 투정을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태의 문을 안 열어 주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까 라헬이 생각해 보니까 맞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시녀인 빌하를 붙혀주며 아이를 낳아달라고 해서 애들 둘을 낳는다.
그러면 한 사람당 아이를 둘을 낳으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린다.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서 14년 일을 하고, 그리고 빌하를 통해 아이 둘을 낳았다. 최단기간으로 16년이 지난다. 그 다음 라헬을 통해 요셉을 낳았다. 17년이 지났다. 그런데 성경이 야곱이 라반을 떠날 때가 라반 밑에서 20년 있을 때 일이다. 불과 2년-3년 사이의 일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서 떼를 이루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폭포수같이 축복하신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느냐 안 하시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야곱이 이 믿음을 가졌다.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아버지가 받았던 100배의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3. 생명을 아는 사람
1) 생명의 사람
야곱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바로 생명의 사람이다. 리브가가 아이를 가졌는데, 쌍둥이다. 이들이 뱃속에서 계속 싸우니까 리브가가 힘이 들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큰 자가 작은자를 섬기리라! 그렇다면 작은자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야곱이다.
리브가는 야곱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의 관심이 야곱에게 있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편애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리브가는 언약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야곱에게 모든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야곱도 어릴 때부터 관심이 언약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형 에서가 장자인데 자기는 둘째라서 장자의 축복을 못 받지만 장자의 축복을 늘 사모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죽쑤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냥하고 와서 배고픈 형에게 꾀를 내어서 장자의 명분을 야곱은 팥죽 한 그릇에 팔았다. 이처럼 야곱은 언약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또한 야곱이 언약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어머니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한 일이 무엇인가? 삼촌 라반이 야곱의 삯을 정하고자 할 때, 야곱의 첫 마디가 ‘라헬을 달라!’고 하면서 거기에 14년을 투자한다. 야곱의 관심이 전부 거기에 있다. 언약의 사람을, 생명의 사람 이것 때문에 14년을 투자할 만큼 언약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다.
2) 믿음의 영향
그러면 이것은 저절로 하늘에서 푹 떨어지는가? 아니다.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영향이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틀림없이 할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늘 사냥하러 가던 에서와는 달리 야곱은 늘 집안에 있었으니까 어머니와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틀림없이 이삭과 리브가는 언약의 사람이기에 자기의 아들 야곱에게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너희 할아버지는 옛날에 우상숭배 했는데, 하나님이 택해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그러면서 아마도 318명의 가병을 이끌고 가는 얘기도 했을 것이고, 어려움이 올 때 마다 단을 쌓고 기도했던 얘기도 했을 것이다. 이삭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응답 축복을 야곱에게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후대들은 부모의 믿음의 말을 듣고 자란다. 하나님 은혜로 믿음이 생기지만 믿음의 말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계속해서 불신앙의 말을 들으면 불신앙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틀림없이 야곱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또한 아버지 이삭에 대한 얘기는 더 잘 알 것이다. 농사하면 100배의 축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로 부터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쫓겨났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샘의 근원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그 쫓아냈던 사람들이 다시 와서 화친하자고 했던 얘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며,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가 전부이다. 우리가 불신앙의 영향을 계속 받으면 불신앙의 사람이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 잘 받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신비주의의 말을 계속 들으면 그 사람은 신비주의자가 된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 우리도 모르게 복음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어머니 리브가는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면서 야곱에게 언약을 계속 심어주었다. “내가 너를 태중에 안고 있을 때 너희 둘이 너무너무 싸워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큰 자가 작은자를 섬기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야곱이 어느 날 갑자기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다. 쌓여져서 이런 응답과 이런 인도를 받는 것이다. 먼저된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사람인가? 혹시 이런 축복을 못 받았다 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강단을 통해 은혜 받고 우리 후대들에게 이것을 물려줘야 한다.
3) 자신의 확인
더 중요한 것은 야곱 자신이 확인한 것이다. 부모가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라고 했을 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야곱이 몇 날 몇일을 울었을 것 같다. 왜냐면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다. 사실은 할수 없이 가는 길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였다.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뒤로부터는 완전 하나님의 인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부모로부터 들은 얘기였는데,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체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벧엘의 사건이다.
성도들이 아마도 어렵고 답답한 일 생길 때 강단 메시지가 생각 날 것이다. 그런데도 긴가민가하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믿음이 오면 아멘 했다가, 믿음이 떨어지면 ‘목사님 말씀이니까 그렇지 하면서’ 낙심되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본인이 직접 이것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을 했다. 지금 야곱이 그렇게 된 것이다. 야곱이 직접 체험했을 뿐 아니라 확인을 했다. 라반의 집에 가서 언약가진 아내를 맞기 위해 기도를 했는데, 아내를 맞고 감사하게도 아내들이 자기 얘기를 잘 듣고 애 낳기를 애쓰는 것이다. 부인들이 언약을 알고 사명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야곱이 확인이 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 들은 것은 왔다갔다 한다. 긴가민가 하다. 그런데 자기가 체험하고 응답받기 시작하면 누구도 해할 자가 없다. 야곱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
4) 증인의 축복
(1) 축복받을 이유
야곱은 축복받을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이제 나는 두 아내와 아들들을 얻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으로 가야 되겠다. 야곱은 대식구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식구가 먹고 살아야 될 것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돌아오게 된다면 성전을 지을 것이며, 내가 하나님 앞에 1/10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서원을 이뤄야 될 것 아닌가? 그러면 성전을 지을만한 물질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힘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이 돈이 있어야 되는데, 그 당시의 돈은 짐승이었다. 그러니까 축복받을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이 일을 놓고 기도하였다. 어디서 이것을 깨달았는가? 자기 할아버지가 롯을 떠나 보낸 이후 마므레 상수리 수풀 나무에서 전적으로 기도했다. 아브라함이 문제 올 때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그 아버지 이삭은 문제 생길 때 마다, 브엘세바를 향해서 가고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았다. 야곱은 문제 생길 때 마다 벧엘로 가서 자기가 은혜 받은 곳이다. 그곳에서 야곱은 예배의 축복을 누렸다.
야곱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다. 야곱은 생명의 사람이다. 자기를 통해서 생명의 후손이 계속 전달되어야만 한다. 자기를 통해 후대가 세워져야 하며 후대를 통해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임을 저가 알고 있었다. 성도들은 축복받아야 될 분명한 이유를 알고 언약을 붙잡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지역에 3000전도제자를 세우실 것이다. 거지같이 살면서 세울 것인가? 저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저에게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 교회에 증거를 주셔서 불신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주실 것이다.
(2) 증인의 축복
우리가 물론 영적인 축복 내적인 축복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보는 것으로 안다. 우리를 향해 핍박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축복받으면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다락방 죽어라 하고 해도 교회가 망하고 자식이 망하면 “거 봐! 다락방했더니 잘 망했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가진 자들이다. 야곱이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기다렸다. 이 축복을 우리는 누려야 한다. 우리는 증인 되어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겨우 밥 먹고 살 존재가 아니다.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증인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 축복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얼마나 주셨는지, 라반이 놓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복덩이로 부르셨다. 우리 가정에 나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다. 생명가진 자는 생명의 열매가 맺는다. 평안의 사람은 평안의 열매가 주변 사람들에게 맺힌다. 우울한 사람이 가정 안에 있으면 그 가정이 우울한 영향을 받는다. 늘 기쁘고 소망이 넘치는 사람이 있으면 기쁨과 소망이 전달된다. 감사의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에 감사가 전달된다.
말씀정리: 하나님의 생명 있는 자는 누구도 막을 자 없다. 하나님의 생명있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생명있는 자를 하나님이 가장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을 붙잡고 받은 축복 받은 응답을 놓치지 않고 약속의 길로 인도받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이다. 생명있는 사람은 생명의 축복을 지속해서 받도록 말씀을 지속해서 들어야 한다. 생명의 영향을 내 후대에게 전달한다. 하나님 주신 축복을 받아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언약기도 :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고 인도받게 하신 주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생명있는 자를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승리케 하심을 찬양합니다. 생명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면서 증인의 삶의 주인공으로 쓰임받도록 주님이 모든 축복의 문들을 열어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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