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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후대를 원하는 사람(창 30:1-13) 조회수 : 204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5-08-15
  첨부파일:   20050814 주일강단 메시지.hwp(49K)
2005년 8월 14일 주일 강단 메시지
창세기 30:1-13 "후대를 원하는 사람"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잉태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1. 영적 영향
1) 부모의 영향
어느 가정에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났다. 왼쪽 무릎을 다쳐서 왼쪽 무릎을 꿇지 못하고 기도를 드렸다. 사고가 나서 치료 받는 기간이 길다 보니까 계속 아빠는 왼 무릎을 세우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자식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자식들이 왼쪽 무릎은 세우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하는 행동을 알게 모르게 따라서 한다. 보통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데, 사고가 나서 부득이 하게 왼쪽 무릎을 꿇지 못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애들은 그것이 기도의 표본인줄 알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의 영향을 무시하고 자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누구든지 크던지 작던지 부모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2) 영적 영향
성경에 보면 출 20:4-6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후대가 천(1000)대까지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는 후손들의 영적 영향은 1000대까지 간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복을 받고 이삭의 아들 야곱이 복을 받는다. 그리고 야곱을 통해 태어난 요셉이 축복을 받는다. 영적 영향이 후대에게 물려간다.
반면,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은 3-4대까지 망한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들이 우상숭배를 많이 하고 귀신을 많이 섬기게 되면 그 후손들이 영적으로 대부분 시달린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 모든 것으로 끝난다. 고후 5:17에 보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 했다. 과거의 부모로부터 잘못 받았던 것들, 습관들, 상처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람들마다. 시간차이가 있을 뿐이지 완전히 해결이 된다.
우리는 롬 8:2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이런 축복을 우리가 받았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후대도 사는 것이다.
3) 우선순위
그렇다면 축복받은 우리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아는대로 이 땅에서 가장 영향력 많은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이란 나라는 영국에서 청교도(신앙생활 바로하고 싶다고 한 사람)들이 미국땅에 오게 되었다. 이들이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았는데,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예배당을 지었다. 왜 예배당을 지었냐? 예배드리고 은혜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두 번째 한 일이 학교를 지었다. 우리 자녀들이 정말 알아야만 세상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를 지었다. 세 번째로 집을 지었다. 미국의 조상들은 우선순위가 분명했다. 믿음이 최고였고, 후대들을 세우고, 그 다음에 자신들의 삶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이란 나라가 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마 4:19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면서, 제일 먼저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이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예배의 축복부터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다. 예수님께서 마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절대 이 땅에서 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있다.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그랬다. 우리에게 성령충만, 영적 힘을 얻어야만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우선순위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바울은 영적 아들이자 제자인 디모데에게 딤후 2:1에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도 분명 이 땅에 사단은 반드시 존재해서 우리를 자꾸만 염려, 근심, 불신앙하게 해서 흑암을 꺽는 권세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사자를 파송해서 일하신다. 지금도 우리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사자들이 동원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천국의 소망이 있다. 죽어서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거를 주셔서 증거를 가지고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다.

2. 야곱을 통하여
1) 생명의 주인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본문 1-2절에 라헬이 자기 남편에게 말한다. 언니 레아는 아들을 넷이나 낳았다. 라헬은 아들을 못 낳았다. 야곱이 레아를 사랑하지 않고 라헬을 사랑했다. 그런데 사랑받는 사람이 자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형인 레아를 투기하면서 야곱에게 말한다.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2절에 보니까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당신이 아이를 못 낳는 것은 하나님이 못 낳게 하는 것이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냐고 말한다. 레아도 아내고 라헬도 아내이다. 이중에 라헬이 더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다. 잠자리도 더 많았을테고, 그런데 레아는 아들이 벌써 넷이다. 그에 비해 자기는 아들이 없으니까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래서 남편인 야곱에게 왜 언니에게는 아들이 있고, 내겐 아이가 없느냐? 내게도 애좀 낳게 하라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창 29:31에 보면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고 하셨다. 레아의 태의 문을 하나님께서 여신 것이다. 그러니까 레아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또 창 30:17에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심으로 레아의 태의 문을 여셔서 아들 둘과 딸을 하나 낳았다. 그런데 창 30:22에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고 하셨다. 라헬이 아이를 못 낳은 것이 한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시간표가 되니까 라헬의 태의 문을 열어서 아이를 갖게 하셨다. 무슨 얘기인가?
사람이 결혼해서 살다 보니까 아이가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생명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여인들의 관심
(1) 후대를 원하는 사람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여인들의 관심이 어디 있는가? 전부 아이를 낳는데 있다. 레아가 아들 넷을 낳으니까 라헬이 야곱에게 화를 낸다. 그래서 라헬이 자기의 여종인 빌하에게 가서 아이를 낳도록 만든다. 엉겹결에 야곱은 빌하에게 가서 아들을 둘 낳았다. 이것 때문에 라헬이 기뻐서 어쩔줄을 모른다. 그것을 본 레아도 야곱에게 자기 시녀인 실바에게 가서 아이를 낳도록 만든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다. 애 낳았다고 기뻐하고 못 낳았다고 부끄러워하고, 애 때문에 경쟁하고, 시기하고 아들 낳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한다.
(2) 자녀들의 이름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니까 아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레아가 아이를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다. 하나님이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는 말이다.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레아가 네 번째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다. 유다를 낳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런 이름을 지었다.
드디어 라헬도 아들을 하나 낳는데,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23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셧다.” 24절에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기를 원하노라. 라헬은 또 다른 아들을 원하는 것이다.
3) 야곱을 통하여
(1) 언약의 아내
여인들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했다. 그들의 아버지 라반이 야곱이 그 집에 와 있을 때,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그 때 야곱이 7년동안 일을 할테니 라헬을 내 아내로 달라고 했다.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라헬을 위해서 또 7년동안 일을 한다. 그래서 14년 동안 일을 해서 결국 라헬을 아내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 연애얘기가 무엇이 중요하다고 성경까지 기록했을까?
틀림없이 만약 우리가 라헬이나 라반이나 레아였다면 야곱에게 야곱의 관심이 왜 결혼에 있는지를 물어봤을 것이다. 야곱은 틀림없이 레아나 라헬에게 자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야곱은 부자집 아들이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1년 농사에 100년 수확을 거둔 사람이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다고 했다. 샘의 근원을 판 사람이었다. 이런 부자집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실은 세상에서 고생할 일이 없다. 그런데 부모 떠나서 목동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왜 왔는가? 그 가슴속에 무엇이 한이 맺혀있는가?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말했다. “야곱아, 너는 형처럼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말고, 언약 있는 여인을 아내로 취하라” 그리고 그 아버지 이삭이 말한다. “너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말고 니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그 딸들을 아내로 취하라.” 즉 복음가진 여자를 아내로 취하라는 말이다. 부자집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야 될 야곱이 라반의 집까지 도망 온 이유는 언약가진 아내를 맞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를 취하는 데는 10년이 아니라 20년이라도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언약가진 라헬을 아내로 취하기 위해서 7년동안 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고 소원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니 7년, 14년도 수일같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틀림없이 여자들에게 했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
또 야곱에게 잊을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먼 길을 떠나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가고 있는 가운데 벧엘이라는 곳에 잠깐 누워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이 꿈으로 야곱에게 약속을 보여 주셨다. 천사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네 후손이 땅의 티끌같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의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 야곱에게 하나님 주신 약속이다. 이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다. 자기가 체험한 것이다. 그러면 자기 아내인 레아와 라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3) 야곱의 서원
그래서 내가 이 약속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모든 일을 다 하고 무사히 아버지 집에 돌아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그 사람들에게 증거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배개 베고 잤던 곳에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10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서원을 하고 결심을 했다는 일을 말했을 것이다.
4) 사명의 사람들
그러면 야곱의 얘기를 들은 레아와 라헬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이 야곱을 통해서 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면 이 여자들은 정신병자들이다. 애 낳기 위해서 환장한 여자들이다. 자존심도 없고 배알도 없는 여자들이다. 그러나 야곱에게 이 말을 들었다는 말은 이 사람들은 분명 복음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야곱과 결혼한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후손을 많이 낳는 거구나! 왜냐면 내 자손이 많겠다고 했고, 땅의 티끌같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 이것이 야곱의 소원이요, 가문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소원이구나! 이것을 야곱의 여자들이 알았다. 그러면 여자들의 사명들이 야곱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즉 야곱을 통해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의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이 계획이 무엇인가? 이것을 발견하고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다면 레아와 라헬은 사명의 사람들이다. 한 시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을 아이 낳는 일에 생을 걸었다.

3. 후대를 위하여
1) 우리의 후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 아내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는 것이 생명의 후대를 많이 낳아서 생명의 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아닌가? 언약이 모든 후손과 족속들에게 씨가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릴 통해 하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1) 육적 후대
우리 후대는 누구인가?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대 이삭, 이삭의 후대 야곱, 야곱의 후대 12지파 이게 육신적인 후대이다. 나로 인해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언약의 후대가 되어야 한다.
(2) 영적 후대
하나님은 내가 낳은 자식만 후대를 세우기를 원하시지는 않는다. 나를 통해서 복음 받은 사람들, 나를 통해 제자로 세워지는 사람들 요 10:10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지고 풍성하게 전파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바울같은 사람은 살전 2:19에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앞에 너희가 아니냐?” 정말 우리의 소망과 자랑이 무엇이냐? 나를 통해 복음 받은 너희라는 말이다. 이게 바로 영적 후대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태어난 내 자식들이 영적 후대 축복을 누리고, 나를 통해서 복음 받은 많은 사람들이 영적 후대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2) 사단의 공격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서 사단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보인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이유도 없이 괴롭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들을 많이 낳다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적이 쳐들어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적과 연합해서 공격할까봐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낳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래서 법으로 명령을 내린다. 남자 아이들은 죽이고, 즉 씨를 없애라는 말이다. 생명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누가하는 것인가? 바로왕이 하는 것이지만 사단이 하는 것이다. 지금 이시대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이간질하고, 가장 생명의 복음을 전한 바울에게 이단의 괴수라고 했다. 누가 한 것인가? 물론 유대인들이 한 것이지만 유대인 속에 사단이 한 것이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 자신이 생명의 복음이 확립되는 것과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는다. 사단은 어디를 공격하는가? 생명의 복음이 우리 육적 후대, 영적 후대로 전파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생명이 후대들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생명이 여인들을 통해서 많은 후대들이 세워진 것 처럼 우리를 통해서 많은 영적 후대들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여기에 나오는 여인들은 자존심도 없는 것 처럼 보이고, 바보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소원을 알았다. 사단은 이 시대에 이것을 막고 있다.
3) 인생 성공
우리의 인생의 성공은 영적 제자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이것이 끊어져 버리면 우리는 실패하는 인생이다. 홍천에 가면 백항마을 이라는 곳이 있다. 설악산교회 있을 때 함경진 목사님이 한 번 오셔서 서울을 가는 도중에 그 마을을 들릴 기회가 있어서 따라가게 되었다. 그 사장님이 돈 많이 번 분인데, 전쟁 고아출신이다. 그런데 그 당시 홍천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미군들이 주는 것들을 얻어먹고 거지같이 생활했는데, 어느날 불이 나서 막사가 타고 그 선생님도 화상을 입었다. 이 미군이 불쌍히 여겨서 이 아이를 미군부대에 보내서 다 치료해주고 다 나았는데, 또 1.4 후퇴때 후퇴하면서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이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 축복 가운데 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 생명의 은인을 찾는 것이다. 미국만 가면 돈을 들여서 그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그 분(생명의 은인)을 찾아서 미국에 집도 사주고 그 사람 살아 있는 동안 생활비를 다 대주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돈도 벌고 믿음의 사람이니까 봉사를 하기 위해서 공장, 병원, 고아원, 교회를 지어서 한 마을을 만들었다.
육신적으로도 나를 도와준 사람을 찾는 사람도 있다. 야곱이 아이 열 둘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요셉이 있었다. 나중에 전 세계적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그 아들 요셉 때문에 살 수 있었다. 이게 제자다. 영적인 제자를 세우면 제자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다.
서울에 가면 예원교회에 정명주 장로님이 계신다.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복음만 희미했다. 그런데 목사인 형님을 통해서 복음을 받게 되었다. 자기 인생문제가 해결되었다 육신으로는 형님이지만 자기 담임목사님이다. 목사님이 사역하는데, 모든 뒷받침을 다했다. 복음 깨닫게 했기 때문에 내가 당연히 이 목사님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영적 제자를 세우면 다 산다. 바울에게서 영적 제자인 디모데를 한 사람 세워놓으니까 바울이 나이 많아 감옥에 갔을 때 디모데에게 사적인 부탁을 다 한다. 그런데 디모데는 자기 아버지처럼 바울을 생각한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 생을 다 드린다. 우리는 이런 덕을 보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영적 후대를 얼마나 남기는가에 달려있다. 나를 통해서 태어난 자녀들 중에, 혹은 나를 통해 복을 받은 사람들 중에 영적 후대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는 영적 후대 세우는 일 있어서 생명도 드릴 수 있고, 물질도 드릴 수 있고, 삶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여인들처럼 생명의 후대를 세우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자존심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게 하나님의 소원이다.

말씀 정리 : 우리의 최고의 인생의 이유가 영적 후대이다. 그러면 우리 신앙의 우선순위는 내가 은혜 받는 것이다. 내가 은혜받으면서 야곱처럼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영향주는 사람이다. 여인들이 하나님의 소원을 깨닫고 여인들이 영적 후대를 세우는 일에 생애를 드렸다. 이게 제자이다. 우리는 한 생애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이 은혜 속에서 강하고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영적 영향력이 전달되어져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제자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이것이 우리 인생의 이유요 목적이다. 여기에 우리가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고 해도 상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는 축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기도 : 하나님 무덥고 바쁜 철에도 언약백성들이 주의 전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이 언약 생명의 복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파될 이유를 알게 하시고 이 일에 한 생애 쓰임 받도록 은혜 베푸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이유요 가치요 소망임을 알게 하시사 축복된 일에 마음껏 쓰임 받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문들을 열어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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